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61
“하지만 구마병단의 임무는 계속할 것이며, 아가씨는 이곳의 수색이 끝난 후 저희와 함께 윈스크로 가야겠습니다. 도시에서 신분을 증명하면 풀어 드리죠. 단, 거짓 신분을 내세웠을 경우에는…… 후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봐준다는 듯이 말하는 자바니에의 말에 발끈한 스칼렛. 그녀가 한마디 쏘아붙이려 했지만, 자바니에는 개의치 않고 말꼬리를 자르며 자기 할 말만 이어 갔다. 그는 이미 스칼렛이 거짓말을 한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자바니에가 턱짓하자 성전사 두 명이 스칼렛에게 다가가 양옆에 섰다. 혹여 나와 싸우는 동안 그녀가 도망칠까 봐 미리 사람을 붙인 것이다.
“괜한 짓 하지 말고 거기서 얌전히 기다리십시오. 금방 끝납니다, 레이디.”
마지막까지 능글맞게 말한 자바니에가 지하실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제 그가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이룰 시간이었다.
“그 안에서 다 듣고 있겠지, 늑대 도살자 테온. 지하에 숨어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당장 밖으로 나오시오.”
“…….”
“지금 나온다면 스스로 변호할 기회를 주겠소.”
“…….”
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자바니에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성전사들에게 손짓했다.
“불을 지르세요.”
“옛!”
그의 지휘에 따라 성전사들이 횃불에 불을 붙였다. 순백의 눈이 타오르는 횃불 아래에서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잠깐! 지금 나간다!”
성전사들이 횃불을 던지기 직전, 나는 보브찬친의 동생들을 모두 데리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늑대 도살자? 저 검은 머리의 사내가 그 늑대 도살자 테온이라고?”
내 모습을 보며 스칼렛이 중얼거렸다.
자바니에는 그런 스칼렛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한번 확신한 듯 웃었다.
“모르셨나요? 레이디께서 진짜 스칼렛 보론초바라면, 늑대 도살자 테온을 몰라볼 리가 없을 텐데요. 그는 윈스크 교구에 계속 머물렀는데, 당신의 아버지가 바로 윈스크의 주교공 아닙니까?”
스칼렛이 공작 영애가 아니라고 확신한 자바니에는 완전히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는 손짓으로 포위망을 좁히도록 명하고, 성전사들에게 호위받으며 다가왔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었군요. 늑대 도살자 테온. 나를 기억하겠지요?”
“물론이지. 북어장국회.”
“북부정교회입니다.”
“그래, 북부정교회. 네 이름이…… 짜바리였나?”
“자바니에다. 장로회의 명을 받아 너에게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으니 질문에 답하라.”
내 도발에 화가 났는지, 자바니에가 대뜸 하대했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얼마 전 네가 윈스크 중앙 광장에서 교수대를 보며 한참 동안 혼잣말하고, 검은 고래 주점의 직원들을 폭행한 것이 사실인가?”
“검은 고래 주점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교수대 인근에서 건달 패거리와 싸움이 붙었던 것은 사실이다.”
“흠, 순순히 대답하니 좋군. 그렇다면 그들을 손가락으로 찔러 사지를 마비시키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만든 것도 그대인가?”
“그렇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길래, 매운맛 좀 보여 줬지.”
“스스로 마법을 사용했다고 시인하는 것인가?”
“무슨 개소리야. 이 몸의 절학을 마법 같은 잔재주와 비교하지 마라.”
“마지막으로 묻지. 북문 밖 빈민가에서 남자 서른두 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우린 그 흉수를 찾고 있는데, 그들도 네놈이 살해했느냐?”
“아, 그놈들? 그것도 내가 했다. 감히 내게 보복하려고 뒤를 캐고 다니길래, 화근을 제거했지.”
“…….”
자바니에는 어째서인지 어금니를 악물고 화를 참는 모습이었다. 다른 신관과 성전사 들도 덩달아 긴장한 모습이었다.
눈을 감은 채 한참 말이 없던 자바니에가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그의 눈빛에는 살심이 가득했다.
“멀쩡한 사람을 손으로 쿡쿡 찔러 벙어리로 만들고, 교수형을 당해 원한을 품고 죽은 보브찬친의 동생들을 찾아온 것도 모자라, 수십 명의 죄 없는 사내를 자비 없이 살해했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자바니에는 전후 사정 따위를 묻지 않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선언하듯 외쳤다.
“늑대 도살자 테온은 정체를 숨긴 마법사가 분명하다! 순례의 수호자가 사실은 마법사였다니, 거짓된 믿음으로 민중을 현혹하는 아도나이 교회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지! 기도문을 낭송해라! 타락한 마법사에게 성수를 뿌려라!”
자바니에의 명이 떨어지자 구마신관들이 오각형으로 진형을 짜고 나를 둘러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아이들이 내 등 뒤로 숨었다.
신관들은 품에서 성수를 꺼내 아낌없이 뿌리며 기도문을 낭송했다. 성전사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검을 곧추세웠다.
‘요즘 자꾸 날파리들이 꼬인다 싶었는데, 이놈이 원흉이었군.’
나는 손을 옮겨 운철묵검의 자루를 잡았다.
사파에서 온 용사
도망치는 아이들 (1)
스칼렛은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도적 떼인 줄 알고 급히 달려왔는데 구마병단이 모여 있질 않나, 신분을 밝혀 이제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귀족 사칭범으로 몰려 공격받질 않나, 그녀가 침착을 유지하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스칼렛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자바니에는 한 걸음 물러선 곳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굴욕감을 주었던 나에게 복수할 생각에 흐뭇한지, 웃으며 전투를 지켜보았다.
“생각보다 반응이 늦다. 성수를 더 뿌려라.”
신관들이 내게 성수를 마구 뿌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내 몸은 성수가 닿는다고 불타지 않았고, 기도문을 듣지 않으려 귀를 막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저 놀란 아이들을 감싸며 안심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 멀쩡한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구마신관들이었다.
“생각보다 강한 마법사다! 기도에 신성을 더 담아라! 성수를 아낌없이 뿌려!”
기대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자 자바니에가 역정을 냈다.
그의 지휘에 따라 신관들은 바쁘게 교대하며 정해진 방위를 밟고, 성경을 영창하고, 성수를 뿌려 댔다.
반면, 호들갑을 떠는 구마신관들과 달리 후방에서 대기하는 성전사들은 심드렁한 모습이었다.
‘이 헛짓거리가 끝나면 저놈들이 나서려나?’
상식적으로 성수와 기도가 통하지 않으면 마법사도 아니란 얘기지만, 자바니에가 여기서 순순히 물러갈 리 없었다.
종교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다음은 성전사들의 칼날이 나를 상대할 터였다.
“으앙-!”
흉흉한 분위기에 겁먹은 막내 필립이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본 스칼렛이 재빨리 달려와 필립을 껴안았다. 스칼렛 옆에 서 있던 성전사들은 아이들에게 달려가는 그녀를 굳이 붙잡지 않았다.
“놀랐구나, 필립. 괜찮아, 진정해.”
“왜, 왜 우리한테 물을 뿌려요? 왜 우리를 향해서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울먹이는 필립은 온몸이 성수로 흠뻑 젖어 있었다. 겨울바람이 젖은 소년의 몸을 빠르게 얼리고 있었다.
스칼렛은 사시나무처럼 떠는 필립의 얼굴을 닦아 주며, 자바니에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감히 귀족에게 하대하는 것도 모자라, 무고한 사람을 마법사로 몰아세우다니!”
스칼렛의 호통에 신관들이 찔끔하며 자바니에를 돌아봤다. 지금 이 상황은 누가 봐도 그의 오판이었다.
자바니에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뒤에서 대기하던 성전사들에게 눈짓했다.
성전사들은 거침없이 칼을 뽑아 들고 나섰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그 흉흉한 기세에 놀란 스칼렛이 외쳤다.
자바니에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비록 구마의 신비가 발현되진 않았지만…… 난 아무래도 너희 연놈들이 마법사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그러니 북부정교회로 데리고 가서 조사해야겠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성수를 이만큼 뒤집어쓰고도 멀쩡한 마법사가 어디 있어!”
“시끄럽다!”
스칼렛의 외침에 자바니에는 더 이상의 말다툼을 피하려 고개를 돌려 버렸다.
“성전사들은 저들을 포박해 교회로 압송하세요. 심문은 교회에 도착한 뒤 실시하겠습니다. 혹여 저항이 심해 생포가 어렵다면…… 이 자리에서 죽여도 좋습니다.”
“결국 네놈이 염라대왕의 수염을 당기는구나.”
자바니에는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잠깐, 테온! 일단 순순히 체포 명령에 따르자. 스칼렛은 도시에 입성하면 신분을 증명하고 풀려날 거야. 우린 스칼렛의 보증을 받아 석방되거나, 최악의 경우 탈옥하면 돼.] [내가 왜 그런 수고를 해야 하지? 여기서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인데.] [제발, 한 번만 참아 줘!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여기서 싸움이 벌어지면 혹시라도 동생들이나 스칼렛이 눈먼 칼에 맞을 수도 있잖아!]내가 운철묵검을 꺼내려 하자 보브찬친이 급히 말렸다. 그의 말을 듣고 나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당장 싸움을 벌이는 것보다 압송당하는 것이 차라리 쉬운 길이었다. 구마병단은 성전사가 스무 명이나 있고, 무장도 만만치 않아 보였으니까.
결정적으로, 이들을 상대로 스칼렛과 어린아이 네 명을 보호하며 싸우는 건 위험부담이 컸다. 차라리 보브찬친의 말대로 순순히 압송된 후 스칼렛이 먼저 석방되면 그때 혼자 탈출하는 것이 안전한 순서였다.
‘후, 그래. 한 번만 참아 주지. 일각노괴는 공자로 다시 태어났으니까.’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한 번쯤 피식 웃으며 참아 줄 아량이 있었다. 성질대로 살다 죽음까지 경험했던 것이 내 성격을 많이도 바꿔 놓은 듯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런 판단을 뒤집어야 할 상황이 벌어졌다.
“심판관님,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물론 함께 압송해야죠.”
상급 성전사의 물음에 자바니에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냥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순수는 때때로 욕망의 제물이 되는 법. 마법사와 가깝게 지내다 보면 어린아이의 깨끗한 영혼이 더 쉽게 타락하는 법이지요. 아이들도 함께 조사하고, 조금이라도 마법의 흔적이 있다면 정화의 의식을 치러야 합니다.”
[안 돼! 테온, 동생들은 끌려가면 안 돼!]보브찬친이 다급하게 외쳤다.
[왜 그래? 설마 북부정교회는 아이들도 데려가서 고문하는 건가?] [보통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지. 하지만 롭과 니콜라는 몸에 특이한 문신이 있다. 저들은 그걸 분명 마법의 증거라고 주장할 거야.]보브찬친의 말처럼 롭과 니콜라의 몸에는 박쥐의 뼈를 형상화한 작은 문신이 있었다. 둘은 북부 산악 지대의 소수민족 출신인지라, 부족의 토착 신앙에 따른 문신을 새긴 것이다.
[이대로 끌려가면 롭과 니콜라는 ‘정화의 의식’을 치르게 될 거다. 막아야 해.] [정화의 의식이란 게 뭔데?] [화형이다.] [……!]심각한 내용이었다. 이대로 멍하니 끌려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즉시 자바니에에게 항의했다.
“아이들도 끌고 간다니? 아이들은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않았잖아?”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다. 조사해 보고 문제가 없으면 풀어 줄 것이니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자바니에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위험을 감수하고 검을 뽑아야 하는 것인가? 내가 잠깐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활로가 열렸다.
“얘들아! 1번 작전이다!”
“이야앗!”
이고르의 외침과 동시에 아이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가씨! 뛰어요!”
고함을 지른 이고르가 멀뚱히 서 있던 스칼렛의 손목을 잡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놈들이 미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