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구원-2
우리는 워프 방해 영역의 끝자락에 도달하자마자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리나케 워프를 몇 번 한 끝에 금세 중앙군구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곧바로 우물로 가는 건 아니었다.
“우선 화성부터 들르자.”
나노머신 연구의 총책임자였던 에릭 드렉슬러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
***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수님.”
드렉슬러 교수를 찾아간 나는 갑작스럽지만 나노머신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
아무리 주피터의 직속 연구팀과 괴리되어 있었다 한들, 엄연히 핵심 연구팀의 총책임자였다. 조금이라도 단서를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죄송합니다만 그에 관해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히 쌓인 노인은 나노머신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훨씬 더 늙어버린 듯했다.
일평생을 일구어왔던 영역에서 저지른 일생일대의 실수는 듣기만 해도 그의 마음을 칼날처럼 저몄다.
‘음……’
나는 정보창을 잠시 껐다. 너무나도 절절해서 찬찬히 속내를 읽기가 힘들어서다.
나는 네브라에게 귓속말했다.
“그때 말씀 드려봤어?”
전에 지구 홀로그램 문제로 같이 연구를 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때 네브라에게 생각이 있으면 교수와 나노머신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라 제안한 적이 있었다.
네브라는 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나나 교수님이나 서로 상처만 될 거 같아서.”
그러나 그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때가 오고 말았다. 교수에겐 미안했지만, 이번 일은 시선에서 치운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니.
나는 슈타이너와 접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했다. 동시에 그림자 우물에 나노머신이 있으며 그걸 정화할 거란 계획을 밝혔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조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슈타이너 씨까지 만났다니. 그럼 어지간한 건 다 알겠군요. 하지만 저는 정말로 얘기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을 살짝 드러냈다.
“그래도 이것저것 주워듣거나 추론한 건 제법 있긴 합니다만. 혹시 슈타이너 씨가 연구한 걸 볼 수 있겠습니까? 본다면 확신이 들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자료를 넘겨받은 교수는 슈타이너의 연구를 보면서 하나둘씩 망각의 저편으로 던져버린 기억을 맞추어 갔다.
그에 따라 죄책감 역시 새록새록 피어나며 드렉슬러 교수는 몇 번이고 얼굴을 쓸어내려 가면서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안타깝지만 특별히 조언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없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는 총책임자란 말이 무색하게도 고개를 저었다.
이는 교수가 그런 큰 사건에 엮였음에도 연금에 그쳤으며 여전히 지구의 비밀과 직결된 전문가로 임명되어 있는 이유기도 했다.
그는 주피터 제약이 쳐놓은 장막 뒤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므로.
“그렇지만 몇 가지 알려드릴 점은 조금 있습니다.”
교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에 도움이 되길 원한다며 연구 당시의 의문점들을 말해주었다.
“사실, 저와 제 연구팀은 기여한 게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드렉슬러를 주축으로 연구팀은 나노머신을 최초로 발명했다. 그러나 초기의 물건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기껏해야 기존의 나노라는 이름이 붙은 흡사한 의료 수법에서 AI에 의존하는 걸 탈피하고 이것저것 부가적인 기능이 추가된 정도.
그럼에도 기존 수법보다 효율이 월등할 거란 전망이 나와 연구에 매달리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문제는, 재생은커녕 외부 환경이 조금만 달라져도 스스로 파괴되는 등 하자가 많았고 예산 문제로 추가 실험이나 업그레이드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그때 주피터 제약이 어떻게 알았는지 접촉을 해왔단다.
의체 기술이 널리 쓰이고는 있지만 실제 사람 몸에 비하면 하자가 다소 있다. 또 스포츠 등의 일부 업계(무용수 등)에서는 기계 몸을 인정을 안 해주는 데다, 정신적인 문제는 아직도 약물에 의존하는 답보상태.
주피터 측에서는 나노머신을 더 발전시키면 그런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달콤한 속삭임으로 그를 꼬셨다.
결국 악마의 손을 잡은 그는 주피터 제약의 산하 나노머신 핵심 연구팀장이라는 이름을 가슴팍에 달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거의 발전이 없었죠.”
그것도 몇 년 동안이나 말이다.
왜냐면 지원을 해주겠다던 회사가 막상 산하 연구팀이 되고 나니 지원에 인색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거면 왜 고용했냐며 고성을 질러도 봤지만, 계약으로 묶인 것도 있고 다른 회사에 투자의견을 타진해도 영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며 퇴짜를 맞았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몸을 담그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연구소장이 포함된 주피터 제약 직속 연구팀이 나노머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며 느닷없이 시료를 제공해 주었다.
지금과 같은 유사-생물학적 성질을 가지게 된 것으로.
드렉슬러 교수는 슈타이너가 알던 수준으로 자세히 성질을 파악하고 있진 못했다.
지원이 개판이라 쓸 만한 분석기기가 없던 탓이었다. 그래서 단순 실험을 통해 일부 특징만 간신히 파악했다.
어쨌건 갑자기 나노머신이 크게 발전한 덕에 나노머신이 단순 약물 전달 수단으로서의 위치를 뛰어넘어 사람의 신체 기능을 대신하는 것까지 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제약회사가 비밀리에 임상실험자를 모집하기 시작했고 말이다.
“어쩌면, 저희의 물건은 핑계였을지도 모르지요.”
이미 관련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함부로 내놓기가 왠지 꺼려져서, 드렉슬러 교수의 나노머신으로 포장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당장 내가 게임 기능을 숨기는 수법이 그와 비슷하니까.
교수는 참 순진하게도, 주피터 측이 뭔갈 숨기고 있는 만큼 뭔가 더 획기적인 것을 개발해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렇게 생각한 나머지 임상실험자를 왜 굳이 몰래 모집하냐는 찝찝한 사실을 애써 무시해버렸다. 결국에는 모두를 위한 선행이 될 거라고 믿으며.
교수는 그게 자신의 진짜 죄라며 고해성사를 하듯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잠시 후 감정을 도로 되찾은 그가 물었다.
“그런데 나노머신은 대부분 폐기되었을 텐데 갑자기 웬 우물 얘기인지요? 설마 주피터 쪽에서 투기라도 했습니까?”
“아, 교수님은 아직 모르시겠지만. 지금 저희가 다루고자 하는 나노머신은 교수님이 알던 것과 많이 다릅니다.”
교수에게 광산 행성에서 있었던 참사와 에파바르 검거 도중 일어났던 나노머신 괴물로의 변이들, 그리고 드로칸의 테러 건에 관한 영상들을 찬찬히 보여주었다.
“이, 이, 이게, 다 나노머신이라고요?”
그는 꽤나 당혹스러워했다.
정보부에게 감시당하는 인물인 그는 세상의 뒷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그림자 우물에 대한 소문은 돌고 있지만 정보부의 연막작전 탓에, 그를 비롯한 사람들은 과거 지구의 버뮤다 삼각지대에 대한 괴담처럼 그냥 불행한 사고가 과장되었다 정도로 알고 있었다.
“이게, 그거라니. 이 무슨……”
그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정화니 뭐니 하는 것도 나노머신이 미생물처럼 구는 성질 때문에 환경에 영향을 끼칠까봐 유출된 것을 처리하겠다 정도로 받아들였지, 이런 날뛰는 괴물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검은 덩어리라는 것만 보고 그 나노머신이라고 확신한 네브라가 대단하다고 봐야 했다.
그 정도로 주피터 제약 사건 때와 이후의 나노머신은 너무나도 달랐다.
에나가 발언했다.
“아마, 주피터 측에서는 이런 광폭한 성질을 진작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노머신의 약점을 왜 하필 에탄올로 설정했을까가 추측의 시작이었다.
실험실에 가장 쉽게 대량으로 반입해도 이상할 게 없는 물질인 건 둘째 치고, 에나는 사람에게 무해하기 때문이란 점을 꼽았다.
나노머신이 광폭하게 변해 탈출할 것을 대비 내지는 저지하기 위하여, 무해한 물질을 몸에 뒤집어써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란 것.
“허. 그런, 그럴 수가. 그러면 그게…….”
다른 실험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대량의 에탄올이 주피터 측의 직속 실험팀에게 들어갔다는 것을 교수는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주피터 측의 직속 연구팀의 실험을 꽁꽁 숨겼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죠.”
교수에게서 조언을 얻는다는 것은 의심점 몇 가지만 얻은 것 외에는 성과가 없었지만,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그림자 우물의 나노머신 덩어리에 대량의 에탄올을 투하하여 없애야 한다는 것!
“함장님. 꼭 부탁드립니다.”
화성을 떠나는 내 손을 붙잡고 교수가 절절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그의 눈은 네브라가 보였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노머신들이 어쩌면 희생자들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
이는 단순히 한 회사의 악행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에까지 맞닿아 있는 일이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화성을 떠난 우리는 그림자 우물의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기존에 그림자 우물을 탐사하던 정보부의 함선들과 만나 그동안 어디를 탐사했는지를 받아보았다.
“고작 이 정도밖에 못했네.”
스캔 수법을 얻어간 지 얼마나 되었는데 스캔을 완료한 영역이 우물의 중심부도 아니고 고작 변두리 부분의 3%도 되지 않았다.
다만 정보부가 변명할 구석은 많았다.
에파바르의 정보부 본부 침투 및 나노머신 괴물 변이 사건 이후, 정보부는 팀에게서부터 나노머신이 그림자 우물에 있다는 사실과 그걸 점으로나마 볼 수 있는 스캔 방식을 전달받았다.
그 이후로 꾸준히 그림자 우물을 탐색했지만, 우주는 그들에게 ‘마, 광년이 만만해 보이나?’하고 따끔한 교훈을 내려주었다.
스캐닝은 움직이는 속도가 빠를수록 정확도가 떨어진다. 초광속 항행으로 우물을 가로지르며 스캔을 하는 수법이 불가능하단 것이다.
여기에다가 나노머신이 아주 작은 점으로밖에 표시되지 않는단 문제 때문에, 범위는 넓지만 정확도가 떨어져 큰 것만 포착할 수 있는 광년 단위 스캐너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퍼레이션 컷이어 준비와 컷이어 작전 완료 이후 대부분의 자원이 최전선에 집중되는 등의 요소들이 겹쳐 탐색작전은 후순위로 밀려버렸다.
나노머신은 우물을 지나가려고만 들지 않으면 괜찮았으니 일단 두고 보자는 것이었겠지.
그런데 정보부의 무인 정찰기 수백 대를 동원하고도 그 모양인 그림자 우물에서 어떻게 이전에 만난 나노머신 덩어리를 찾느냐 하면……
[엣헴! 초천재유능킹왕짱 AI인 내가 있소이다!]뭔가 모르는 사이에 별명이 길어진 앤젤라가 해결책을 내놓았다며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예전에 사고로 나노머신 덩어리 안쪽에 처박혔을 때는 바깥에서 전달되는 그 어떤 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때문에 앤젤라뿐 아니라 그 어떤 초정밀기기나 고성능 AI를 갖다 놓는다고 해도 당시에 어떤 위치에 있었느냐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
그런 앤젤라가 탐색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바로 슈타이너의 자료와 슬라임이었다.
슈타이너는 나노머신을 연구하며, 무기물에 불과한 나노머신이 어째서 액체 같이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 이유로 추정되는 것은 여러 가지였고, 그중 앤젤라의 관심을 끈 것은 나노머신이 독특한 파장으로 인력을 발휘한다는 주장이었다.
다만 그건 슈타이너도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왜냐면 그 인력을 일으키는 파장이 너무나도 미약해 현존하는 어떤 검출기기로도 존재를 확실히 긍정할 수 없던 탓이었다.
얼핏 보면 단순 오류 내지 측정 상 오차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정도.
그마저도 추출한 나노머신 시료마다 조금씩 다르기까지 했기에 ‘이런 것도 어쩌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추정에 그쳤다.
그렇지만 앤젤라는 그 미약하기 그지없는 파장을 슬라임에게서 발견했다.
슬라임도 나노머신이니 마찬가지로 해당 파장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앤젤라가 주장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바로 나노머신 테러가 일어난 행성에서 나노머신들을 집합시킨 수법이 바로 그걸 이용한 걸로 보인단다.
나노 크기의 나노머신 개체들을 한데 응집하는 표면장력 수준의 힘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슬라임에게서 행성 전체를 덮을 정도로 강력한 메시지 전달 수법으로 발현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걸 이용해 대략적으로 방향을 잡자는 거죠. 그렇지 라임아?]-우익? 내가?
슬라임은 ‘나 때릴 거야?’라고 말하는 자주색 다람쥐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
엔터프라이즈의 선원들을 보며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는 앤젤라의 속내는 겉과는 다소 달랐다.
사실, 슬라임으로 추적을 할 수 있다는 건 다소 과장된 구석이 있었다.
모든 파장은 멀어질수록 효과가 대폭 줄어든다.
행성 하나를 덮을 순 있다곤 해도, 광년이라는 시간 단위를 거리 단위로 써먹는 우주에서도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앤젤라는 진이 하던 것처럼, 슬라임을 핑계로 삼아 ‘다른’ 방식으로 추적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 수법은, 팀과 함장에게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으로 협조하는 앤젤라도 절대 말할 수 없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앤젤라의 홀로그램과 함교 내의 모든 감시 카메라 시선이 조그만 검은 덩어리로 향했다.
앤젤라는 정말로 의문이었다.
‘대체 왜……’
대체 왜 나노머신이 가진 파장이-
‘왜 비슷한 거지?’
-AI라고 통칭되는, 스마터늄에서 기인한 사이버 공간의 전자 생명체들이 자기들끼리 소통할 때 쓰는 채널 주파수와 흡사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