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오퍼레이션 컷이어-1
돌탑을 쌓는 것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조급하지 않고 차근차근 조심히 돌을 올리다 보면 무너지지 않고 크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 탑을 만드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면? 돌을 줍는 사람과 쌓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그런 이들이 무수히 많다면? 또 그들이 탑을 높이 쌓을 수 있는 정교한 기술까지 가지고 있다면?
정보부가 바로 그 경우였다.
위장한 외계인을 색출하는 동시에 그동안 대작전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해 왔다.
남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은밀히, 하지만 확실히.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처럼 움직였다.
정보부가 쌓은 보이지 않는 돌탑은 하늘을 뚫을 정도로 높이 솟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지금.
어렵사리 쌓아올린 그 돌탑을, 발칙한 귀쟁이 외계인과 제국을 좀먹는 불순분자들의 머리 위로 무너뜨릴 때였다.
인류가 세운 울타리 안에서 땅 주인을 좀먹는 기생충들을 뽑아낼 준비를 말이다.
[이제 복수를 할 때다.]정보부 장관이 ‘인간밖에 없는’ 정보부의 통합 통신 채널로 모두에게 방송을 시작했다.
그동안 제국 곳곳에서 에파바르에 의한 피해는 꽤나 컸다.
에파바르에게 납치당해 바꿔치기 당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들이 여러 부문에서 고의로 정보를 왜곡하거나, 뒤로 빼돌린 검은 돈으로 키운 갱단도 상당수요, 진 테일러 함장의 제보 이후 벌인 교전으로 나온 사상자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숱한 이들의 희생과 노고로 우리는 놈들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고, 놈들의 전력을 계산에 넣을 수 있었으며, 하부조직을 일부 처리하고, 유인책으로 놈들을 어느 정도 몰아넣기까지 했다. 이제, 지금껏 우리가 흘린 피땀의 값어치 그 이상으로 놈들에게 뜯어낼 때다.]모든 요원들과 선원들의 눈이 비장해졌다.
침투한 에파바르에게 지인이 희생된 경우라면 더더욱 분노했다. 죽은 이들로 위장해 죽은 이를 조롱하고 자신들을 곁에서 비웃었으니까.
[밖에서는 간악한 종족 둘이 인류의 안위를 위협하고, 내부에서는 불순한 사상을 가진 것들이 결속을 저해해 숱하게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사람이나 잡아먹는 식인종 따위가 내분을 또 일으키려 하고 있지.]몇 년 전 바르닥 전쟁을 겪은 이들이 이를 갈았다.
[썩은 곳은 감염이 번지기 전에 도려내야 되는 법이다. 모두가 합심하여 잔뿌리도 남김없이 솎아내 놈들의 귀 끝조차도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하며, 동시에 내부에서 반목하는 불순한 무리들도 역시 지워버려야 할 것이다.]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손속을 두지 마라. 후환을 남기지 마라. 끝까지 추적해 모조리 섬멸하라! 그게 그늘에서 인류를 지키는 우리 정보부의 역할이며, 인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지 그 자체다!]각지에 배치된 채 숨을 죽이고 있는 요원들과 휘하 선원들, 수송선에서 잠잔 듯 가만히 듣고 있는 무력부대원들이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주먹을 쥐었다.
[귀쟁이 놈들의 말습관을 알면 들어본 적이 있을 거다. 귀 짤린 상황이라고. 우리가 흔히 좆됐다라고 뱉는 말과 다를 바 없는 어구지.]몇몇이 피식피식 웃었다.
장관이란 인물의 입에서 비속어가 나온 게 웃긴 건지, 아니면 귀쟁이의 입에서 그 단어가 튀어나오게 만들 미래가 웃긴 건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그래서 작전명은 모두가 이미 들은 대로, 컷이어(Operation Cut-ear)로 정해졌다. 모두들 열심히 노력해서 놈들의 귀를 자를 수 있도록 바란다. 귀가 길건 짧건 말이지.]대답은 없었다.
오로지 동의한다는 의지만이 통신채널 속에서 일렁일 뿐이었다.
[모두들, 인류의 결속을 위해…… 안전하게 성공하고 복귀하도록.]뚝
통신이 끊기는 소리가 통합 채널 내에 울려 퍼졌다.
이 순간부로, 정보부는 역량을 총동원해 내부의 적들을 ‘본격적으로’ 청소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만약 이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굵은 관악기 소리와 함께 비장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여러 곳에서의 장면을 휙휙 바꾸면서 보여주었을 것이다.
위이잉- 위이잉-
무력부대원들의 수송선에서 작전 시작을 알리는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장비를 갖추는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비장한 침묵과 얽히며 수송선 내부를 긁어댔다.
“움직여! 위치로!”
“어서 타!”
각 행성의 요원들이 미리 하달된 작전지역을 향해 각자의 방법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명령 내려왔다. 차단기 내려!”
“우주 공항에 고한다. 정보부의 훈련으로 인해 잠시 항로를 모두……”
“AI긴급점검으로 인해 정거장은 잠시 폐쇄하겠다. 모든 함선 출항을 금지하고……”
요원들의 입김이 닿은 각 행정기관들이 육로와 우주를 차단했다.
“모두 해당 계좌 정지시켜.”
경찰과 적당히 타협하던 에파바르 갱단들의 검은 돈 계좌들이 출금 정지되며 국고로 회수되었다.
“상부에서 지원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출동!”
요원들이 검사를 마친 각 지역의 경찰력 및 군부대가 출정을 시작했다.
정보부라는 실과 연결된 사회 전체가 에파바르 비밀조직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섰다.
의태가 발각된 벌레가 새한테 잡아먹히는 건 당연한 일.
놈들이 숨어 살던, 인류가 구축한 거대한 사회망은 그대로 거미줄이 되어 그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아. 여기가 간부란 놈들이 싹 다 모인 곳이란 말이지?”
에파바르 비밀조직의 간부들이 모인 곳을, 검은 악마 진 테일러가 사납게 내려다보았다.
***
팔짱을 낀 내 푸른색 소매 너머로 반쯤 보이는 화면에는 외딴 변경의 천체가 내려다보였다.
회색 표면이 그대로 드러난 돌투성이의 작은 위성이었다.
“좋아. 여기가 간부란 놈들이 싹 다 모인 곳이란 말이지?”
나는 한껏 뒤로 젖혀 눕는 것과 다를 바 없었던 의자를 바로 했다.
위에서 말하길, 노획한 적의 통신기를 통해 거짓 정보 흘리기로 간부 회의를 이곳에서 열게 만들었다고 했다.
‘모일만한 데네.’
채굴 가치도 없고 공전하는 모행성이 위험한 고출력 전자기 폭풍을 사방으로 뿜어대는 가스 행성이라 아무도 접근하는 이들이 없다.
비유하자면 사막 한복판이나 다름없는 곳.
그런 회색 위성, 엔치의 근처에는 자그마한 불법 우주 정거장이 떠 있었다. 광산행성 카락 오베이크에서 봤던 것보다도 작고 낙후되어 보이는 시설이었다.
거기엔 수십 대에 달하는 크고 작은 해적선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해킹 돼? 발목 잡을 수 있겠어?”
[해킹은 됐어요. 하지만 안 들키려고 너무 멀리 있는 탓에 감시 카메라 장악 정도에 그쳐서 엔진 정지는 무리예요. 이거 보세요.]화면에 해킹된 감시 카메라 화면이 떠올랐다.
길쭉한 귀와 사나운 표정을 자랑하는 에파바르 우주 해적들이 정거장이고 함선이고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다양하다 못해 난잡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장비를 갖춘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매달거나 그려놓은 문양이 눈에 띄었다.
[비나바르 부족 문장이에요.]악명 높은 해적 부족이다.
바르닥 전쟁 때 가장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다른 해적들보다 훨씬 악랄한 악질 중 악질.
에파바르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의 70퍼센트가 이놈들에게서 유래한 것이기도 했다.
잡아도 잡아도 계속 튀어나오는 바퀴 같은 것들이 어디서 계속 생겨나는지 궁금했는데 비밀조직이랑 한통속이었다 이거지?
“마침 개새끼들이 모였네. 정거장 말고 표면에도 관련 없는 민간인은 없는 거고?”
[네. 애초에 외딴 무인행성이라.]“좋았어. 들었지 네브라?”
“들었지. 아주. 잘.”
네브라가 이를 갈며 답했다. 네브라는 놈들의 최후를 눈에 새기기 위해서인지 원독 가득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비단 네브라의 개인사정뿐 아니라 놈들의 해적질은 유명하니 전직 UBI로서도 화날 만했다.
‘에나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늘 같이 있던 에나가 없어서 그 빈자리가 제법 크게 느껴졌다. 에나는 정보부 기술팀에 있었다.
“자, 그럼 화끈하게 토벌 시작을 알려볼까?”
나는 토벌전의 선봉이다.
내가 공격하는 그 순간부터 오퍼레이션 컷이어가 제국 전역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정말 영광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일개 모험가가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절로 웃음이 나왔다. 스크린 화면에 어렴풋이 비치는 내 얼굴은 꽤나 사납게 웃고 있었다.
귀쟁이 놈들아.
너희들의 테러(?)에 고혼이 된 내 배, ‘엔터프라이즈’의 복수를 할 시간이다.
“앤젤라, 채굴 드론 몇 대 있지?”
[522대 준비 중입니다!]“좋았어. 앤젤라는 정거장하고 해적선을 상대해. 우리는 행성을 담당한다.”
“그런데 함장. 어나힐레이션이 채굴도 가능할 정도로 화력이 좋은 건 알겠지만 너무 면적이 작지 않아? 표면에 흩뿌려진 것들을 어느 세월에 일일이 다 죽이게?”
“무슨 소리야? 배는 해적선 상대할 건데?”
“뭐? 그럼 우리 둘만으로 저 표면에 있는 것들을 다 잡아죽이라고?”
정보부의 스텔스 드론의 도움을 받아 장거리 스캔을 한 결과, 우주정거장 말고도 표면에도 착륙해 은폐한 함선들이 여럿 있었다.
“아니. 한 가지 더 있지. 안 그래 앤젤라?”
[우후후후! 그럼요. 기습엔 폭격이죠!]네브라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폭격? 화물선에 폭탄 하나 없던데?
앤젤라의 홀로그램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계산하고 씨익 웃었다. 어우 사악해라. 그런데 내 표정도 별반 다르진 않을 거다.
***
정보부 장관의 기함.
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그 자체로도 단단한 장갑을 두르고 있는 기함은 제국의 온갖 정보가 몰려드는 바다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런 배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걸로 착각이 될 정도로 드넓은 함교에서는 우주 곳곳에서 시작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대형 토벌 작전들이 여러 스크린에 비쳐졌다.
“긴장되는데……”
장관은 평소에 잘 안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깍지 낀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동안 정보부의 눈을 피해 온 영악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을 그물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모조리 척살해야 한다.
제국의 두 주적은 대놓고 인간과 다르게 생기기라도 했지, 이놈들은 내부의 다른 에파바르 사이로 숨어들 수가 있으니 놓칠 경우의 리스크가 크다.
‘진 테일러……’
그래서 그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보부의 온갖 수단을 동원한 기만작전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놈들의 높은 간부들 대다수를 한 곳으로 모았다.
그들을 저기서 다 죽여야 한다.
‘드로칸. 그리고 로치. 제발 조용히 있어줘야 할 텐데.’
이렇게 다소 ‘한 방이 중요한’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이유는, 제국과 전쟁을 벌이는 두 종족 때문이었다.
평소 정보부 역량의 70퍼센트가 전쟁 중인 두 종족과의 첩보전에 소비되고 있다.
진의 제보 전까지, 에파바르의 은밀성이 좋았긴 하지만 더 파고들지 못하고 고작 간부 몇 놈 의심한 걸로 끝난 이유기도 하다.
혹시라는 가설에 과한 관심을 주기엔 발등에 떨어지다 못해 코앞에 닥친 불길을 끄기 정신없으니까.
현재 정보부의 모든 역량이 동원된 대작전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요원들을 다시 원래 임무로 돌려놔야, 두 종족이 틈을 노리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안 그래도 두 종족 중 하나가 에파바르를 지원하고 있단 의심도 하고 있는 마당이니.
장관은 진에게 그 점을 강조하며 확실히 수뇌부 참수가 가능하겠냐 물어보았고, 그는 몇 가지를 묻고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그가 화물선 개조 이후 시험 사격을 하는 걸 보면서 화력은 대충 납득했다.
그러나 과연 저기 모인 놈들을 모두 없애버릴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장관은 정보부 요직에 앉은 사람으로서 다양하게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지역 군부대에게 워프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켜두긴 했지만 이왕이면 단번에 끝나는 게 좋지.’
‘시작 전에는 최대한 은밀하게 시작 후에는 최대한 빨리 끝낸다’가 이번 작전의 중점이었으므로.
‘과연 어떻게 할까.’
장관의 시선은 물론이고 함교 내 요원들의 눈이 모두 하나의 스크린으로 모였다. 대작전의 스타트를 끊을 진 테일러의 화물선을 비추는 화면이었다.
“화물선이 발진해 정거장으로 접근합니다. 드론들 발진했습니다. 그리고…… 초광속 항행을 준비 중입니다?”
오퍼레이터가 자신도 모르게 말끝을 올렸다.
화물선 아랫부분에서 오백여 대의 무장 드론들이 방출되면서, 엔진 노즐 부위에서 초광속 항행 예열을 의미하는 푸르스름한 광채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이들도 머릿속에 물음표를 떠올렸다. 갑자기 초광속? 공격하고 바로 빠지려고 예열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