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75)
75화 노다지와 화수분 그 사이 어딘가-8
내가 선택한 채굴 영역에는 일반 광물 몇 종류밖에 없었다.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누가 피해 보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진짜 광물이 나올 것도 사실이고, 사람 살리는 데에 이 정도의 일탈은 괜찮다는 마음가짐으로 지질 스캐닝 결과를 조작했다.
양을 뻥튀기하고 무기에 자주 쓰는 광물 원소들을 추가적으로 넣는 정도.
물론 광물들의 비율을 플라제8의 다른 지역의 일반 광물 원소 비율의 평균에 최대한 가깝게 맞추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그 원소 비율을 그대로 따르게 되면, 앞으로 만들어낼 무기의 양에 비해 존재하는 양이 적어서 수입을 해야 마땅한 원소가 존재하게 된다.
그걸 해결하려면?
‘맨틀의 용융된 암석에서 각종 원소를 추가적으로 분리해 내는 기술로 해결했습니다!’라는 게 딱이다.
아, 당연하겠지만 굳이 떠벌리는 건 아니고 만약에 조사가 들어오면 그렇게 변명하겠단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광물분포도에 나오는 광물의 양보다 더 많은 광물이 생산되는 것과, 분포도 상으로 부족하거나 없는 광물들을 수입하지 않는 걸 설명할 수 있다.
또한 무기 생산하느라 자원 비축해도 바쁠 판에 광물을 펑펑 팔아대는 것 역시 설명 가능하지.
내 계획에 모두가 감탄을 하면서 환호를 내질렀으나.
그것도 잠시.
“……”
그 계획을 위한 준비를 보고 말이 없어졌다.
선원들의 시선은 외부 카메라로 찍고 있는, 낯선 장치를 비춘 화면을 향하고 있었다.
“기술자로서 저런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고철덩이를 만들어야 하다니……”
파비안은 뭔가 회의적인 눈길로 화면 너머로 보이는 자신의 급조된 창조물을 바라보았다.
“어, 함장아. 진짜 안 들키겠지?”
-껍대기만. 왜? 만듬?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고 있는 검은 현무암질 암석 위, 뭔가 복잡해 보이는 계기판이 달리고 커다란 용광로 비슷한 큼직한 금속 원통을 닮은 장치가 있었다.
저 장치의 이름은 ‘맨틀 추출기’
가진 기능은 단 하나.
완전히 녹아 흐물흐물해진 암석을 빨아들여서 순식간에 각종 원소를 분리해 뭉친 다음 순수한 결정 형태로 내뱉는 것이다.
라는 설정을 가진……
단순히 계기판에서 빛과 소음과 진동을 내뿜는 기능과 컨베이어 벨트가 공회전하는 것 외에는 별 기능을 하지 않는 장치다.
물론 겉보기로는 멀쩡하다.
맨틀 쪽으로 파이프도 연결되어 있고, 뭔가 많은 게 들어 있을 것만 같은 큼직한 몸체에, 광물을 내뱉을 법한 호스와 컨베이어 벨트까지!
“얘들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의 노력이 합쳐져 만든 놀라운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잖아.”
저 몸체 만드는 것도 어쨌건 손이 갔잖아. 그것도 노력이라고 노력.
“마앚, 습니다아아아……”
뭔가 분필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 진짜 안 걸리겠지?”
걸린다니? 뭐가?
-거짓, 말? 쟁이?
쓰읍, 너. 알콜 샤워 맞기 전에 말조심해라.
어딜 봐도 아무 문제없다.
“그렇지 얘들아?”
“네! 정말 말 그대로 최고의 기계에요!”
에나야. 너만이 날 이해해 주는구나.
“역시 함장님은 대단하세요. 고대 종교 경전에서 나오는 무한의 식량이라는 설화를 함장님은 정말로 실현하실 수 있는 진실된 제국의 구세주이시며 이 지지부진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진정한 영웅이시고……”
에나의 말은 점점 빨라지면서 낮아져 마치 경전을 외는 것처럼 중얼거림에 불과해졌다.
……호응은 하지 말자.
나는 뭔가 상태가 이상해진 선원들을 무시하며 앤젤라에게 물었다.
“앤젤라, 우리가 이걸로 얼마나 산출을 해야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계산해 봤어? 그리고 그걸 근처 도매상에게 팔면 얼마나 나와?”
여기서 24시간 동안 꾸준히 생산(?)될 극소량의 엑시움을 포함한 각종 광물들을, 이 맨틀에 포함된 원소 비율로 대충 계산한 결과……
[세후 한 달에 7천만에서 9천만 크레딧 정도가 적당하다고 봐요. 이 이상 팔면 이 주변 지역의 광물 거래 가격에도 영향이 가고, 채굴권을 구입한 투자자들에게도 좋게 보이진 않을 거예요.]고작?
아니, 고작은 아니지. 아직도 억 단위 미만은 푼돈으로 보는 습관을 못 버렸네.
행성에 비해 물가가 훨씬 비싼 우주에서도 억은 고사하고 수백만도 결코 호락호락한 숫자는 아니다.
“계산 편하게 1억으로 맞추자.”
여기서 다른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채굴 시작하면 주변 광물 가격이 떨어질 건 자명한 일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빨리 팔아야 돼.
“1억 크레딧에 맞추려면 내가 만들 광물이 얼마나 있어야 되는지도 계산해줘. 비율 맞춰서.”
[네.]“그러고 보니까 우리가 조작한 분포도대로의 지상 채굴량은 얼마야?”
[대략 4백억 크레딧이요. 채굴 범위를 모두 구석구석 파내야 나올 수익이지만요.]“조작한 게 아니라 실제로는?”
[10억 크레딧밖에 안 돼요.]10억이라. 아무리 텅텅 빈 지역이라지만 그 부스러기 광맥 크기도 장난 아니던데.
‘역시 일반 광물이 싸긴 해.’
중상급 광물이 아니라 그 밑의 일반 광물은 따로 통제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로 싼 편이다. 산출량이 많으니까.
그래서 채굴권을 잘못 사면 채굴해서 얻는 광물 가격보다 채굴권이 더 비싼 경우도 자주 생긴다. 주로 귀족 소유 광산에서 벌어지지.
어쨌건 주된 광물 수입은 맨틀 추출에 의존(?)해야 한다. 지금은 조금 아쉽지만 앞으로 수입이 더 늘어날 여지는 충분하다.
‘나중에 추출기 몇 개 더 설치해서 몇 배로 늘려버리면 돼.’
이밖에도 생각해놓은 게 몇 가지 있고.
자, 그럼 다음 단계다.
“앤젤라, 이제 가짜 광산 파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그런데 함장님. 조금 과하게 많이 조작한 건 아니겠죠? 그 많은 양을 벌써부터 죄다 캤다고 변명이 될까요?]“진짜로 있는 광맥을 남겨서 위장해야지.”
10억 크레딧짜리를 말이다.
“그리고, 드론 숫자 감안하면 마냥 말이 안 되는 건 아닐걸?”
현재 가진 드론 수는 약 3천 대.
컷이어 작전에서 공여 받은 드론 중 남은 것들이다.
그 드론들을 AI과부하 없이 모조리 채굴에만 동원한다면, 그리고 채굴한 광물로 추가적인 드론을 만들었다고 변명한다면,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양의 광물을 파내도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 거다.
“자, 드론들 다 모아. 채굴 장비 붙이자.”
***
나는 자동 생산 설비로 드론의 장비를 교체해 사상 최고의 드론을 무더기로 만들어냈다.
‘어나힐레이션 무장 드론’을 말이다.
‘어우 흉악해라.’
공격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몇 번 쏘고 나면 순식간에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뒤에서 다른 드론이 계속 배터리를 새로 교체해줘야 하는, 비효율적인 면에서 사상 최고인 드론이다.
아, 어나힐레이션이 무거운 탓에 느린 속도로도 최고인 드론이다.
조금만 속도를 내도 무게중심이 무너져서 휘청거리는 바람에 배터리 충전 드론이 뒤에서 붙잡아줘야 될 정도다.
전투용으로는 날아다니는 사격 연습 표지 그 자체지만 땅굴을 파내는 목적에는 충실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앤젤라, 드론 한 번에 수천 기 조작하면서 정보 복구 가능하겠어?”
드로칸 데이터 센터의 정보 복구는 더뎠다.
일단 처음 보는 외계인의 전자정보 체계인 것도 그렇고, 앤젤라도 몰랐던 자신의 기능을 알아가느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단다.
[일단 무리는 없어요. 다만 어느 쪽에 더 중요성을 둘 지에 따라서 속도가 달라질 순 있죠.]“그럼 드론을 느리게 해. 어차피 지금 파는 건 위장용 땅굴이잖아. 당장 누가 의심해서 스캐너까지 들고 조사하려 들 것도 아니니까 천천히 파자고.”
[네. 알았어요.]나는 시험 삼아 앤젤라가 알려준 양만큼 광물을 생산(?)해 화물칸을 꽉 채워 보았다.
직경 2m의 구체 형태로 생성되는 광물덩이는 부수느라 손도 가고 누가 봐도 뭔가 이상해 보이니까 아이템코드에 fragment(파편)라는 단어를 붙여서 파편 버전으로 만들었다.
게임에서는 가끔 채광 실패 시 나오는 것들인데, 이거 열 개를 합치면 광석 하나가 된다.
특이한 건, 그냥 ore(광석)로 하면 산화철 빼고는 순수 결정 수준인데, fragment는 순도 30-50%정도의 랜덤 원석이라는 것.
‘잘됐다.’
공장에다 쌓아놔서 위장하기엔 최고로군.
언젠가는 사람들이 맨틀 추출기라는 신기술을 알아차리고 경악하며 관심을 보이겠지만, 그때쯤이면 귀족도 함부로 날 못 건드리게 될 것이다.
왜냐면 군납 입찰에 성공해 있을 거니까.
군납업자 대놓고 건드리면 정부의 철퇴가 세게 들어오거든.
‘내가 낸 세금으로 나도 혜택 좀 받아보자.’
지금은 눈치를 좀 봐야겠지만 그때가 되면 추출기 더 설치했다면서 바로 생산량을 5억 10억으로 늘려버려야지. 그리고 주변 군구로도 수출하는 거야.
‘이제 한 층 더 올라왔어.’
공장도 지었고 광산도 마련했다. 입찰 신청까지 넣었으니, 이제 남은 일은 내 물건을 선보이며 화려하게 업계에 등장하는 일 뿐이다.
팀의 재건이 한층 더 가까워졌다.
***
“그럼 분리한다.”
나는 파비안에게 턱짓했고, 파비안은 조심스럽게 화물선에서 앤젤라의 서브모듈을 분리했다.
서브모듈은 AI 본체와 연결되어 AI와 같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두 개 이상은 허락되지 않는다.
AI를 혹사시켜서 암호화폐 채굴에 쓰는 놈들이 많아서다.
군용으로도 자주 활용되는 서브모듈 가격이 요동치면 곤란하니 그렇게 제한을 두는 것.
서브모듈을 더 마련하려면 서브모듈을 쓸 수 있을 수준의 고급 AI를 구매해야 하는데, 파비안 살리느라 지금 돈이 없다.
“그런데 괜찮겠어? 여기서 데스페라도까지는 거의 1만 광년이고, 나중에 심사가 열릴 행성은 족히 2만 광년은 넘는데.”
AI 회로에 들어가는 스마터늄의 양자얽힘 어쩌구 하는 원리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도 동시에 기능하도록 하는 원리라는데, 정보부의 양자기술인 순간이동 기술도 질적으로 별로인 것처럼 이것 역시 그다지 유효거리가 넓지 못하다.
[일단 확인은 해봐야죠. 함장님이 업그레이드도 해주셨고 하니까 그 거리도 늘지 않았을까요? 연결 끊겨도 바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큰 문제는 안 되죠. 워프하는 데 몇 시간씩 걸리는 것도 아니고.]파비안이 워프 얘기가 나오자 동경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열과 냉각이 긴 시간 필요한 다른 워프엔진과는 달리 내가 스폰으로 만든 ‘모델1’은 그게 없었다.
그래서 파비안은 워프엔진을 볼 때마다 무슨 연인 보는 얼굴로 쳐다보는데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알았어.”
나는 서브모듈을 옆의 채굴 드론이 들고 있는 튼튼한 티타늄 합금 박스에 넣었다.
이제 이 드론은 이 행성의 지휘 드론이 되었다. 이걸 통해 앤젤라는 멀리서도 부지런히 수천 기의 드론들을 가짜 땅굴을 파도록 조종하겠지.
“이제 해킹해 봐.”
조종하는 주체가 사라진 화물선을 조종할 수단은 본체의 해킹이었다.
정보가 소실될까봐 함부로 전자두뇌 본체를 장착 해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 방법밖엔 없었다.
[조종은 되네요.]다만 서브모듈 장착을 통해 직접 조종하는 것보다는 하자가 있어 정교한 조종은 어렵다고 한다. 지금 분석하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도 있고.
앤젤라의 표현으론, 그냥 달리기가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단 장애물 달리기가 된 것에 비유할 수 있단다.
이것저것 기능을 점검해 봤더니, 확실히 각종 기능의 반응시간이 조금 늘었다.
[그렇게 크게 기능 감소는 일어나지 않았네요. 대략 15%정도?]15%라지만 1초 만에 뜨는 인터넷 창이 2초나 3초로만 늘어나도 체감이 확 되듯, 성능이 엄청 떨어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걸로 전투할 것도 아니니까 큰 문제는 아니겠지.
***
데스페라도 본사로 돌아가자 날 반긴 건 뜻밖의 손님이었다.
“당신이 진 테일러입니까?”
우주 시대라기보다는 18세기 복장에 가까운 붉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옷의 중년 사내였다. 인간이다.
나는 데스페라도에서 내 안내를 전담한 직원을 쳐다보았다.
“이분은 페넬로페 공작가에서 오신 시종이십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십니까. 어쩐 일로 절 찾으셨는지요?”
시종은 조용히 직원을 바라보았고 직원은 ‘말씀 끝나고 들어오겠습니다’라며 얼른 방 밖으로 나갔다.
직원이 나가자마자 시종이 입을 열었다.
“지금 공작가를 대표하여 MRE의 관리를 맡으신 에이반 르베리아 파라미슈 페넬로페 공자님의 명으로 왔습니다.”
“공자요? 높으신 분입니까?”
민간에서 귀족에 대해 알려진 건 그렇게 많진 않다. 공자는 공자인데 어느 정도의 지위신지요?
“방계 중 방계이십니다. 직계와는 촌수가 7촌 정도 차이나시지요.”
남남이네.
물론 귀족 가문 내에서는 어떤 취급일지는 모른다.
나는 대충 아 고귀하신 분이군요 하고 넘어갔다.
“그래서 용건은 뭡니까?”
“에이반 공자님께서는 진 테일러 함장님이 이번 군납 전투식량 입찰을 포기하시길 바랍니다.”
이런, 말실수했군.
고귀하지 않은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