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88)
88화 지긋지긋한 악연-7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수많은 해적선들.
그들의 모습은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돌진하며 끝없이 무언가를 탐하는 난폭한 곤충 무리, 황충과 닮아 있었다.
‘제정신 아닌 귀쟁이 새끼들 같으니!’
티베리우스 후작은 노골적인 자폭 및 보딩 시도가 이어지자 악귀처럼 얼굴을 구겼다.
대부분은 붙기도 전에 파괴되며 말 그대로 불나방 신세였지만, 저들이 행하는 무모한 행위 자체에 질릴 지경이었다.
이게 계속 누적되면 아무리 전함이라도 무리가 간다.
함선은 그 자체로 거대한 탄환이나 마찬가지며 기함은 자폭뿐 아니라 원거리 포격도 받아내고 있었으니까.
후작은 상황이 꼬였음에도 침착하게 명령했다.
“계속 쏘면서 회피하라. 버틸 수 있으니 모두 당황하지 마! 순양함급 이상은 구축함을 최대한 보호하고 구축함은 큰 놈부터 저격하라 전달해!”
창밖의 화면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전함이 동체를 비틀어가면서 적들이 최대한 늦게 달라붙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전면 실드 88%] [측후면 실드 95%] [후면 실드 97%] [우주 전투기 돌진, 104번 주포 파괴.] [대공포 33대 가동불능.] [엔진 근방 장갑판 8% 손상.]스크린 화면에 떠오른 함선 상태를 표시하는 색깔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군함 체급의 포격에 의한 피해도 있고, 달려든 것들의 숫자가 많은 만큼 자폭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자폭이 아니더라도 보딩 시도로 선체를 붙이면서 실드끼리의 마찰이 일어나는 것도 소소하게나마 실드 수치를 줄여댔다.
물론 군구 측도 당해주지만은 않았다.
“모든 전투기 발진. 난전 상황을 타개해라!”
우주전에서는 덩치가 클수록 단점을 상회하는 장점이 많아지지만, 그렇다고 전장이 거인만의 것은 아니었다.
양편의 함선에서 발진한 유인 및 무인 우주 전투기들이 여름철 물가의 날벌레 떼처럼 사방을 뒤덮었다.
에파바르 식인부족 특유의 뾰족하고 야만적인 장식과 문양이 덧대어진 전투기와, 오로지 효율과 생산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군더더기를 모두 제거한 전투기들이 뒤섞였다.
전장은 작은 광선들이 추가되어 더더욱 어지러워졌다.
전투기들의 레이저 빔이 서로를 격추했다.
전투기 밑에 달린 어뢰가 실드를 강타했다.
파괴된 함선의 잔해들이 사방으로 총알처럼 날아다녀 도그파이팅을 하다가 파편에 맞고 파괴되는 전투기가 생겨났다.
무인기의 경우는 어뢰를 발사하고는 수틀렸다 싶으면 들이받아 자폭하는 경우도 많았다.
작은 것들이 분전하는 때, 큰 것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우주전의 저격수 역할인 구축함이 수km에 달하는 길이의 초대형 레일건을 발사해 실드와 함체를 통째로 꿰뚫어 격침시켰다.
격침된 함선 주변은 수류탄처럼 주위를 파편으로 뒤덮었다.
일종의 서브탱커 역할인 순양함들이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주변에 다가오는 소형함들을 격추하거나 파편을 몸으로 받아내며 아군 전투기들을 보조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건 역시나 전함.
선두에 서서 강력한 실드와 화력으로 모든 걸 받아내고 섬멸하는 요새답게 사방으로 공격을 쏟아냈다.
전함은 미적 감각이라곤 최대한 배제해 무기로 표면이 뒤덮여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그 표면의 자잘한 대공포들이 날렵한 우주 전투기들을 쫓고, 크고 작은 포들이 접근하려는 중소형 함선들을 저지했다. 가장 크고 강력한 포들은 저 후방에서 서성거리는 군함 체급의 해적선들과 주고받기를 했다.
“도주하려는 순양함급 해적선 대파!”
“소형함 43척 파괴!”
“중형함 10척 파괴!”
“전함급 포에 피격! 전면 실드 10% 손실! 방향 전환 필요!”
굳이 오퍼레이터들이 말하지 않아도 대형 스크린에 결과가 올라왔지만, 급박한 상황에서는 글귀보단 소리가 더 잘 들어오는 법이다.
‘장관이네.’
진은 태연한 표정으로 바깥의 난장판을 구경했다.
[무인기의 비율이 제법 많네요. 전함을 맡는 AI도 세 개나 되고요.]세 AI는 전함 관리, 무인기 조종, 포격 조준을 각각 맡고 있었다.
‘무인기라. 너만큼 실력이 되나?’
[저랑 비교하면 곤란하죠. 제법 고성능이긴 한데, 격추당할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걸 보면 반쯤 과부하 상태로 운용하는 거 같네요.]‘유용한 정보는 얻었어?’
[최전선에 관한 건 별로 없어요. 드로칸에 대한 것도 매우 제한적이에요. 드로칸 정찰대가 가끔 들락거려서 그 때마다 경찰이 도둑 잡는 것처럼 실랑이 벌이는 정도?]진은 1인칭 카메라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는 외부 카메라 화면을 계속해서 구경했다.
현 상황에서 그가 (대놓고)할 수 있는 건 전무했으므로.
휙휙 돌아가는 정신없는 화면이지만 오감강화 장치와 스크린의 전황판으로 대략적인 상황을 모두 해석할 수 있었다.
‘제법 잘 막네.’
세 군구는 작전이 꼬였음에도 침착하게 대응하며 저 무식한 물량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는 깨진 진형을 수복하여 마치 방진처럼 굴며 공격을 막아내는 전단도 있었다.
바르닥 전쟁 당시의 후방 군구들이, 제식 군함이 해적에게 보딩 당해 털리는 등 기습에 정신을 못 차렸기에 더욱 대비되었다.
‘역시 최전선의 바로 뒤편 군구라 그런가? 대처가 중앙군구 수준은 되겠는데?’
제국군의 대처와는 별개로, 전장은 난장판을 넘어서 개난장판이었다.
수십 명 끼리의 패싸움도 때에 따라 엄청 어지럽고 난잡해 보이는데, 크기를 불문하고 수천 대가 뒤섞인 우주전이면 말할 것도 없었다.
우주전은 속도와 빛의 전쟁이라 부르곤 했다. 그 말대로 바깥은 레이저건 플라즈마건, 다양한 형태의 빛들이 슝슝 날아다녀 장막을 형성할 정도였다.
그 선들의 사이를 온갖 잔해와 어뢰들이 돌아다니며 혼란을 더했다.
‘오. 저게 맞네.’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명중률이 낮아 원거리에서는 적에게 회피를 강요하는 역할 정도밖에 안 되는 어뢰가, 용케 전장을 쭉 관통해 저 멀리 대륙급 전함의 한 부분을 타격하는 번개 맞을 확률의 사건도 발생했다.
호위함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기함의 우주 전투기들이 절반 이상 소진되고 기함의 전반적인 실드 수치가 60%를 향해 갈 무렵.
“놈들이 물러섭니다!”
스크린에서 보이는 점들이 점차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피해는 제법 있었지만 제국군은 훌륭하게 방어에 성공했다. 대륙급 전함이 토해낸 수많은 선박들도 수많은 유인, 무인기들의 희생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이 교전으로 해적들의 소형함은 거의 다 전멸했고, 중형 체급 역시 결딴이 났다.
그러나 환호를 지르기에는 아직 일렀다.
“진형을 갖추고 포위할 준비부터 해라! 각 함선 함장들은 섣불리 추격하지 말고 전투기 불러들이고 전열 정비부터 해!”
에파바르의 발악은 이제 시작이었다.
제국군이 반격에 나서려는 때, 티베리우스 후작 옆에서 홀로그램 화면이 떠오르면서 발작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티베리우스! 드로칸 방어막이야!]대형 스크린 한쪽에 외부 카메라 화면 하나가 떠올랐다.
“이런 씨발.”
전장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크기의 일렁이는 녹색 장막이 생겨나 있었다.
대륙급 전함의 바로 위, 난잡하게 가지를 뻗은 형상의 드로칸 함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함선 밑에서는 거대한 녹색의 빛덩어리가 꿈틀거렸다.
거대한 장막은 바로 거기서 뻗어 나온 빛줄기에서부터 생성되고 있었다.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 점점 확장해 가는 장막은 대륙급 전함으로 날아가던 제국군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내며 이윽고 모든 에파바르의 함선들을 집어삼켰다.
“썅! 뒤로 물려!”
후작은 할 수 없이 부대를 빼기로 했다.
제식 군함에 맞먹는 해적의 주력들은 아까 난전에 참여하지 않아 경미한 피해만 입은 채 드로칸 방어막 안쪽에 죄다 모여 있었다.
아까의 자폭과 난전은 다 저 방어막을 펼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필이면 방어막 함선이었다니…..!’
원망스러운 눈으로 화면을 노려보던 후작에게 진이 다가갔다.
“각하, 저게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후작은 절로 신경질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정보부 쪽 사람이라면서 그것도 모르나?”
“저야 최전선 사람이 아니니까요.”
어차피 이 상황에서는 숨길 것도 없겠다, 후작은 순순히 저 장막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보다시피 촉수대가리 놈들의 광범위 실드야. 안 그래도 선체 단단한 놈들이 저런 것까지 가지고 있으니 원.”
“저런 게 많습니까?”
“방어막 함선은 귀해서 한 전역에서도 몇 개밖에 안 나오는 거야. 저 귀쟁이 새끼들과 촉수대가리들이 한 몸이나 다름없단 얘기지.”
진은 연이어 질문했다.
“우리 것과 비교해서 얼마나 강합니까?”
“전함 하나가 하루 종일 두들겨도 소용없어. 전단 하나가 몇 시간 동안 때려야 겨우 한쪽이 뚫리지.”
저걸 깨는 방식은 딱 두 가지라며 후작이 덧붙였다.
전군이 미칠 듯이 때려서 배터리를 소진시키든가.
실드가 재생성되는 걸 방해하는 특수 자기장 교란 탄환을 발사해 구멍을 내고 들어가, 방어막 생성 함선을 공격해 하여금 실드의 범위를 줄이게 강요하든가.
그리고 진의 눈에는 한 가지가 더 보였다.
—–
독심 : 최전선처럼 무지막지하게 물량을 쏟아 넣어서 실드 회복량보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깨버리던가.
—–
이 와중에도 최전선의 ‘아군’과 관련된 정보는 내뱉지 않으려는 것이, 완전히 습관화된 것처럼 보였다.
진은 잠시 조용히 있다가 선뜻 말했다.
“각하. 제가 적 함선에 침투해보겠습니다.”
“……정보부 놈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더니 자네가 딱 그 꼴이군.”
“나갈 수 있게 허가만 내려주십시오.”
“무슨 생각이지?”
“말씀드렸다시피 방어막 함선에 침투를 할 생각입니다.”
당돌하게 얘기하는 진에게 장교들의 어처구니없는 눈초리가 몰렸다.
“들어갈 구멍 딱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후작은 무시무시한 눈매로 진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런다고 속내를 알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진의 눈은 단호했고 허리는 올곧았으며 표정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후작은 그런 인물들을 제법 봐왔다. 지금 진이 보여주는 분위기는 둘 중 하나를 의미했다.
만용 아니면 확신.
이 상황에서는 누가 봐도 전자 같았으나, 이쯤 되니 오히려 궁금해졌다.
한 명으로 전황을 뒤집는 기적이 불가능한 우주전.
대체 이 용병이면서 밀사인데 그렇다고 정보부에서 고위 직급도 아니라는 인물이 어째서 이런 헛소리를 하는지 궁금했다.
‘강습병대가 오기까지 일단은 뭐라도 하긴 해야겠고, 지가 원한 거니까 죽어도 정보부에 할 말은 생기겠고…… 뭘 할지 봐볼까?’
후작의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은, 불명예 은퇴한 중앙군구의 총사령관이 바르닥 전쟁 당시 했던 고민과 매우 닮아 있었다.
저 자의 계획이 실패해도 손해는 아니고 성공하면 좋은 거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든가. 당연하지만 지원은 없어. 자네 말대로 구멍 하나 만들 특수탄 딱 하나만 지원해 주지. 이것도 아깝긴 하지만.”
“감사합니다.”
진은 티베리우스 후작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후작과 장교들은 저승길 잘 가겠다고 인사하는 걸로만 보였다. 저 검푸른 제복을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 모두가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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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투기 하나만 내주시죠.”
격납고 담당 장교는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말문이 막혔다. 그는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수리 드론과 엔지니어들이 기체마다 달라붙어 수리하느라 애쓰고 있었다. 격렬한 전투로 인해 유인이고 무인이고 멀쩡한 기체는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죽다 살아난 전투기 조종사들이 들것에 실려 가고 바닥에 엎어져 있고 난리였다.
“한 대도 없습니까?”
“모든 전투기는 다 주인이 있습니다만.”
가뜩이나 바빠 죽겠구만 뭔 소리야 이놈은.
“무인기라도…..”
“그보다 허락은 받았습니까?”
“받았죠.”
“명령서 보여주시죠.”
당연히 없다.
애초에 후작은 출진 허가와 특수 탄환 하나만 지원해준다고 했다. 전투기 등의 물자의 지원은 당연히 NO.
진은 억지를 부렸다.
“총사령관님 허락 받았습니다. 뭣하면 바로 확인해보세요.”
후작과 화상통신을 연결한 장교를 통해, 진은 매정한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자살하러가는 데 너무 많은 게 필요한 거 아닌가?]화물선으로 가나 뭘 빌려서 타고 가나, 장막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포화를 맞고 증발하는 건 똑같으니까.
“부서진 것만이라도 좀……”
“안 돼요. 폐기물이라면 모를까.”
“폐기물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진과 장교가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 뒤에서 파비안이 외쳤다.
“함장니임! 이거 어때요오?”
***
화물칸.
“그래서 얼씨구나 하고 가져왔다고? 이놈 이제 보니 엔지니어가 아니라 암살자였구나! 나가 죽어 이 돌덩이야!”
“어쿠쿠! 누님, 살려줘요오오!”
한쪽에서는 네브라가 파비안을 탱탱 두들기고 있었고.
“앤젤라, 그러니까 조종은 가능하다고?”
[일단 전자회로가 있는 장치로 방향을 실시간으로 변화시키는 방식이니까 되기는….. 하죠?]에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앤젤라와 얘기를 나누었으며.
-우익? 이거, 머냐?
“이거?”
진은 공허한 표정으로 무언가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어뢰.”
자신이 곧 탑승해야 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