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23)
아니, 그건 아마 평생 노력해도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자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화옥은 심호흡을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오늘부터 잠을 더 줄이기로 결심했다.
하오문과 비천단을 진짜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눈과 귀를 진짜 자신의 눈과 귀처럼 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벽태산이 자신에게 내려준 무공, 월영마공을 대성해야 한다.
사뿐사뿐 걷는 화옥의 눈이 결연하게 빛났다.
* * *
일단의 무리가 장사의 선착장에 있는 배에 올라타고 있었다.
밤이긴 했지만, 보름달이 쏟아내는 은은한 빛 덕분에 시야가 아예 막히지는 않았다.
“서둘러라.”
금월상단주 평자림의 재촉에 사람들이 걸음을 빨리했다.
평자림은 선착장에 서서 다른 사람들이 배에 타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신은 가장 마지막에 탈 생각이었다.
그는 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저 멀리 장사 번화가의 불빛이 보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번화가의 불빛 중 절반은 금월상단의 것이었다.
한데 이제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이제 장사는 현천상단의 것이었다.
평자림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현천상단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그놈들은 정말 지독했다.
어찌나 탐욕스러운지 조금의 빈틈만 있어도 악착같이 파고들어 모든 걸 갉아먹었다.
“현천상단, 하오문······ 그리고 벽태산. 두고 봐라. 내가 너희를 어찌 응징하는지.”
이제 장사에 남은 거라고는 유지할 의미조차 남지 않은 거대한 장원 몇 채가 전부였다.
그건 이미 은밀히 헐값에 처분했다.
아마 하오문이 그 사실을 알 때쯤이면 자신은 이미 절강에 도착했을 것이다.
목적지는 절강에 있는 항주였다.
그곳에 금월상단의 지부 중 가장 큰 곳이 남아 있었다.
거기서 몸을 추스른 다음, 다시 시작할 것이다.
무명과의 관계도 재정립하고, 이젠 남지 않은 거나 다름없는 상천문, 청무방, 구룡문도 다시 재건할 것이다.
아니, 그 세 방파를 넘어서는 힘을 갖추리라.
평자림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장사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배에 탔다.
금월상단 사람들을 태운 세 척의 큰 배가 선착장을 떠나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 조용히 나아갔다.
* * *
장사에서 할 일이 다 끝났다.
이곳의 무명을 전부 정리했고, 상권은 현천상단이 다 먹어치웠다.
금월상단주는 야반도주를 했는데,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이미 파악했다.
그래서 이제 다시 무한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벽태산은 당분간 영력을 키우고 최근 얻은 영력에 대한 깨달음을 정리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물론 그건 무한에 돌아가서 할 일이다.
오늘이 바로 장사를 떠나기로 한 날이다.
다들 각월객잔 앞에 모여서 벽태산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다시 집에 간다고 생각하니 좋은지,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저나 우리 공자님은 언제 나오시는 거야?”
천추신의가 각월객잔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한데 마침 그때 각월객잔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벽태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헌탁이었다. 그는 누가 봐도 여행을 떠날 준비를 철저히 마친 행색이었다.
그걸 본 검귀 나충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쩐 일이냐? 설마 너도 따라가는 것이냐?”
나헌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 되었습니다. 이 객잔은 앞으로 하오문에서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하오문에서? 하면 다른 객잔들도 전부 그러기로 한 것이냐?”
“맞습니다.”
나헌탁이 대답하기 무섭게 객잔에서 다른 비천단원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그 중에는 다른 지역에서 객잔을 운영하던 자들도 섞여 있었다.
나충길이 그걸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여기 있어봐야 별로 의미는 없지. 하오문 애들이 이런 일은 더 잘 하니까.”
나헌탁이 그 말에 수긍한다는 듯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오문도 지금과는 좀 달라질 겁니다.”
더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하오문도들이 은밀히 세상에 녹아들 것이다.
마치 예전의 비천단처럼.
벽태산이 시킨 일은 아니었다.
나헌탁이 화옥과 논의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하오문을 더 크게 키워서 비천단이 하는 역할까지 맡겨 버리고, 비천단은 무공에 더 집중해 혹시라도 큰 규모의 전투가 벌어졌을 때 쓸모가 있도록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다들 모여서 서성이고 있을 때, 벽태산이 나타났다.
다들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눈빛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제 드디어 무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벽태산은 일행을 슥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 * *
“아니, 굳이 그런 시골구석에 꼭 가야하는 거야?”
천추신의가 투덜거렸다.
평소 같았으면 같이 있는 일침괴가 한 마디 했겠지만, 오늘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일침괴의 표정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공자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는데.”
소청명의 말에 천추신의가 잘 됐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아니, 그렇잖아. 옥벽문인지 뭔지에 가고 싶으시면 일단 무한에 갔다가, 단출하게 몇 명만 추려서 데리고 가시면 되잖아. 아니, 그게 맞지. 지금 우리가 몇 달째 밖으로 나돌고 있는데. 안 그러냐?”
소청명이 안절부절못하고 일침괴와 천추신의를 번갈아 바라봤다.
“야야, 그만 해. 쟤 또 울려고 그러잖아. 넌 공자님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꼭 저 녀석 앞에서만 큰소리치더라.”
“아니, 형님! 이러기요? 형님은 대체 누구 편이오?”
일침괴가 씨익 웃었다.
“나야 공자님 편이지.”
“와아, 머리 검은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라고 하더니. 내 이렇게 형님한테 뒤통수 맞을 줄은 몰랐소.”
“야이, 시발. 그럼 지금 내가 짐승이라는 거야? 응? 그런 거야?”
일침괴가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에라도 한 방 날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소청명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한데 옥벽문은 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전 솔직히 처음 들어보는 문파인데······.”
“뭐······ 지금은 사라진 문파라고 할 수 있지. 그거 금월상단이 관리하는 곳이다.”
“예? 금월상단 말입니까?”
“그래. 듣기로는 무명하고도 뭔가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모르지, 실제로는 어떤지.”
옥벽문에 금월상단은 물론이고 무명까지 얽혀 있다고 하자, 소청명의 호기심을 부쩍 자극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공자님, 금벽상단의 둘째시죠?”
“그렇지. 음?”
“묘하네. 금벽도 그렇고 옥벽도 그렇고. 혹시 뭔가 연관이 있는 곳인가?”
“가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그곳에서 며칠은 지내야 할 텐데.”
소청명의 말에 천추신의가 또 투덜거렸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문파라던데, 게다가 망한 문파니 사람도 안 살 것이고, 진짜 고생 직싸게 하겠구나.”
그러는 동안에도 일행을 태운 마차는 옥벽문이 있는 광동을 향해 열심히 달렸다.
끝
옥벽문은 광동 동북부에 있는 대여산맥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문파였다.
문파 자체는 몰락한 지 굉장히 오래 되었는지라, 옥벽문 출신 무인도 남아있지 않았다.
옥벽문의 역사는 짧지 않았다. 본래 이렇게나 몰락한 지 오래 되면, 문파에 남아나는 게 없어야 정상이다.
전각이나 담장도 다 무너져야 하고, 곳곳에 풀과 나무가 자라 그나마 남아 있던 것들도 다 부스러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옥벽문은 지금까지 제법 잘 관리되어 있었다.
금월상단이 욕심을 부리고 있었으니까.
옥벽문이 몰락하게 된 계기는 무명이었다.
무명이 옥벽문에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문파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무명은 원하는 것만 딱 얻고 옥벽문을 버렸고.
금월상단이 그때 개입해서 옥벽문의 관리를 맡았다.
무명으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고.
옥벽문은 금월상단에서 손꼽힐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었다.
특히 역대 금월상단주들은 상단을 물려받을 때, 옥벽문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들어야만 했다.
그건 지금의 상단주인 평자림도 마찬가지였다.
옥벽문에는 항시 금월상단에서 파견한 학사들과 무인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학사들은 옥벽문을 연구해 거기에 뭔가 다른 비밀이 없는지 항상 살펴봤고, 무인들은 그런 학자들을 감시하고 옥벽문을 지켰다.
옥벽문에 대한 모든 일은 장사에 있는 금월상단 본단에서 직접 관리하기에 광동에 있는 금월상단 지부는 옥벽문에 대한 관심 자체를 두지 않았다.
심지어 지부장쯤 되지 않으면 옥벽문의 존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그동안은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본단이 무너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금월상단의 지원이 갑자기 뚝 끊어진 것이다.
물론 아직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이 길어지면 분명히 문제가 된다.
더구나 옥벽문에서 머무는 자들은 아직 장사의 상황이 어찌 되었는지 전혀 모른다.
이곳은 산맥 깊은 곳에 있고, 세상과 단절되다시피 한 장소였다.
그동안은 굳이 금월상단의 일을 알고자 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동안은 오직 수련과 휴식에만 집중하고자 해서였다.
한 번 옥벽문에 들어오면 최소 오 년 이상은 여기 머물러야 한다.
그러니 폐관수련을 한다고 여기면 굉장히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무튼 이제 슬슬 이쪽에서도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긴 했다.
이러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면 조치를 하려고 해도 너무 늦을 테니까.
옥벽문에 있는 금월상단의 무인들이 그런 생각으로 논의를 시작할 무렵, 벽태산 일행이 대여 산맥 인근에 있는 화평현에 들어서고 있었다.
* * *
“결국 여기까지 왔네.”
천추신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산맥 속에 들어가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일단 이곳은 시골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려웠다.
과장을 좀 많이 보태면 장사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하오문도들이 나서서 잡은 객잔 주변은 굉장히 번화했다. 아마 여기보다 더 화려한 곳도 있을 것이다.
“형님, 우리 여기서 며칠이나 있을 것 같소?”
천추신의의 질문에 일침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래도 한 사흘은 있지 않을까?”
“확실한 거요?”
일침괴가 인상을 팍 썼다.
“왜? 공자님 불러줘?”
“아오, 협박 좀 그만 하쇼. 유치하게시리.”
일침괴가 유치하다는 말에 발끈하려는 순간 천추신의가 얼른 치고 들어갔다.
“보아하니 여기 제법 괜찮을 것 같소. 오늘 이 동네 기루 수준이 어떤지 보러갈까 하는데, 어떻소?”
“기루?”
일침괴가 쏟아내려던 호통을 꿀꺽 삼키고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소청명이 지켜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건 왜 저래?”
“전 안 갑니다.”
“그걸 왜 네놈이 결정해? 너도 당연히 가야지.”
“전 의술 공부하느라 바쁩니다.”
“하여간 저러니 아직 그 모양이지. 이놈아, 우리가 놀러가는 줄 아느냐?”
소청명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그럼 기루에 놀러가지 뭐 하러 간단 말인가.
“이게 다아, 의술 공부다, 공부. 좋은 의원이 되려면 뭐가 제일 필요할 것 같으냐?”
“당연히 의술에 대한 지식과 경험입니다.”
“이거 봐, 이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그러니까 그 모양 그 꼴인 거 아니냐.”
소청명이 발끈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의술에 대한 걸로 저딴 말을 들으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 어르신이 생각하는 건 뭡니까?”
“당연히 사람이지.”
“예?”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단 말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 더 나아가 혼백까지 싹 꿰뚫고 있어야 좋은 의원이 될 수 있다, 이거야.”
소청명은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얼른 떠오르지가 않았다.
“너같이 지식만 파고들면 어찌 되는 줄 알아? 제대로 진맥하고도 병을 못 고쳐. 약만 쓴다고 병이 고쳐지는 줄 알아? 마음을 다스려야지. 마음만 잘 다독여 줘도 약 없이 병을 고칠 수도 있는 법이야. 알아들어?”
소청명의 표정이 깊어졌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저런 식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아직 의술 공부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으니까.
“자, 그럼 사람 마음을 가장 잘 공부할 수 있는 데가 어디 같으냐?”
소청명이 갑자기 확 깨는 표정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그게 기루란 말입니까?”
“당연하지. 걔들 하는 일이 뭐야? 사람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거 아니냐. 너 같이 어설픈 의원보다 걔들이 어쩌면 더 의원에 가까울지도 모르지.”
소청명이 발끈했다.
“그 부분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천추신의가 낄낄 웃었다.
“그럼 따라와서 한 번 증명해 보든가.”
소청명의 표정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여기서 그러겠다고 말하면 왠지 말려드는 것 같았고, 또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 도망치는 것 같아서였다.
천추신의가 히죽 웃으며 소청명을 지나쳐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일침괴는 그런 천추신의를 보며 혀를 쯧쯧 차고는 소청명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너무 고민할 거 없다. 네 녀석 나이 때는 그냥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히면서 경험하는 게 좋아. 그러니 그냥 따라와라. 편협함을 버리면 극락이 열리느니라.”
일침괴도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청명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방금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한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 * *
화평현에는 하오문도가 제법 많았다.
벽태산이 예전에 화옥에게 옥벽문과 검벽채를 찾으라는 지시를 내렸기에 그 두 곳 근처에 좀 더 많은 하오문도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벽태산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옥벽문에 대한 최근 동향을 남김없이 보고했다.
“옥벽문을 금월상단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알아보니 그곳에 옥으로 만든 벽이 있는데, 그걸 연구하고 지킨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