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96)
일단 의선에게 보내는 건 안 된다. 혼천마 정도로는 의선을 상대할 수 없을 듯했다.
혼천마가 여럿 있다면 모를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무한으로 보내야겠어. 그나저나······ 이 혼백을 담을 만한 그릇을 구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겠군.”
혁련가주의 눈빛이 음험하게 번득였다.
끝
천경완과 유서연은 함께 길을 나섰다.
둘만 달랑 가는 건 아니었다. 제법 많은 하오문도가 두 사람에게 붙었다.
두 사람은 오직 싸우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벽태산의 지시가 따로 있었던 건 아니고, 화옥이 알아서 조치해준 것이었다.
화옥은 단 한 명의 패배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벽태산의 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덕분에 십대고수와 싸우게 된 사람은 그 전까지 오직 수련과 싸움에 대한 고민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천경완과 유서연은 마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굉장히 큰 마차였는데, 안에서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잘 꾸며진 마차였다.
마차 안에 푹신한 이불까지 마련되어 있을 정도였다.
만일 지금 십대고수와, 그것도 천경완의 원수인 번천혈응과 싸우러 가는 길이 아니었다면, 좀 심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경완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명경지수 같은 정신 상태를 유지 중이었다.
큰일을 앞두고 유서연이 몸가짐을 조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서연 자신도 큰 싸움을 앞두고 있어 수련에 열중하고 있기도 했고.
이런 마차를 제공해준 화옥에게는 굉장히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짜고짜 찾아가서 싸워도 되는 건가요?”
유서연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생각보다 십대고수는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흑련과 무림맹 소속인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 두 사람은 각자가 속한 세력에서 철저히 보호했기에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십대고수들은 생각보다 잦은 도전을 받아야 했다.
물론 모든 도전을 다 받아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특별한 인맥을 통해서 오는 도전은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설명을 들은 유서연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우리도 이제 특별한 인맥을 보유한 사람이 되었다는 거네요.”
“그런 셈이지.”
천경완은 이불을 깔고 편안히 누운 채 대답했다.
그는 온몸을 부드럽게 이완시킨 채 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편안했던 적이 과연 언제일까?
아니, 자신이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긴 했을까?
예상치 못하게 얻은 휴식인데, 이 휴식이 천경완을 또 성장시켰다.
제대로 된 휴식은 굉장히 중요하다.
비단 육체적인 부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인 부분 역시 휴식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의 천경완은 이 휴식을 통해 영력을 성장시키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일이 천경완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휴식이 그야말로 꿀맛 같았다.
그런 천경완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유서연은 왠지 그런 천경완이 얄미웠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아예 시선을 옆으로 돌려 버렸다.
‘나중에 몰아서.’
그녀는 천경완이 들었으면 경기를 일으킬 법한 생각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제 곧 흑련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간다.
* * *
“하! 형님,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요?”
“나도 지금 내 귀를 의심하는 중이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섬서 남쪽에 있는 안강현에 있는 제법 큰 주루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이 여기에 온 것은 천독검 원구악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천독검 원구악은 독검방이라는 방파 소속이었다.
물론 그가 독검방의 주인이었다. 자신의 별호를 따서 방파를 만들어 문을 연 것이다.
독검방은 문을 연 지 삼십 년이 넘었다.
그리고 천독검이 십대고수가 된 지도 그쯤 되었다.
원구악은 자신이 십대고수가 되자마자 독검방을 만든 것이다.
독검방은 독과 검을 동시에 다루는 방파였는데, 독보다는 검 쪽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독은 검을 보조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 무리를 이끄는 자들은 반드시 독의 수준을 높여야만 했다.
독검방은 이곳 안강현을 지배하다시피 했다.
안강현에서 독검방을 거스르면 살 수가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아다녔다.
안강현에 문파나 무가가 독검방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법 힘깨나 쓰는 문파나 무가들이 몇 개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독검방을 거스르지 않았다. 독검방과 잘못 얽히면 그저 싸움 몇 번 하고, 사과나 대충 하고 끝내지 못한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었다.
독검방은 이름처럼 굉장히 독했다.
아무튼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오늘 아침에 여기 도착했다.
그리고 독검방에 연락을 넣었다.
천독검과 싸우고 싶은 의원이 둘이나 있다고.
당연히 허락할 줄 알았다.
지금까지 천독검은 의원이 도전하는 걸 거절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상대했던 모든 의원들이 죽지도 못하고 천독검의 독에 당해 평생 고생하면서 살았다.
똥오줌도 제대로 못 가리고 걸핏하면 피를 토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곤 했다.
그렇게 독에 당하기 전에도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들여 그들에게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굴욕과 치욕을 주었다.
그런 식이니 도전하는 의원이 누가 있겠는가. 당했던 의원의 자식이나 친우가 복수하겠다고 찾아오는 것 말고는 거의 없었다.
천독검은 도전자가 없는 시일이 길어지면 직접 도전할 사람을 찾아 나서곤 했다.
무슨 방법을 써서든 도전하게 하고 지금까지의 다른 의원들과 똑같은 꼴로 만들었다.
그러니 의원이 두 명이나 찾아왔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줄 알았는데, 거절을 당한 것이다.
한데 거절한 이유가 참으로 어이없었다.
초서란을 데려오면 상대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초서란까지 셋이 동시에 덤비라는 뜻이었다.
“이 새끼가 이거 십대고수라고 다른 사람들이 벌벌 떠니까 진짜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나?”
“시발, 공자님한테 확 이를까보다.”
일침괴가 홧김에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천추신의가 얼른 고개를 휙휙 저었다.
“형님, 그런 안 될 말이오. 그렇게 하면 통쾌하기야 하겠지. 천독검인지 천똥검인지 공자님 앞에서 설설 기면서 똥오줌을 찍찍 싸갈기겠지. 그럼 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될 거 같소?”
“어······ 미안하다. 내가 실언을 했다.”
“아니 다행이오.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쇼. 심장 떨어질 거 같으니까.”
일침괴는 속으로 발끈했지만, 지은 죄가 있는지라 꾹 눌러 참았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냐?”
“이놈이 우리가 누군지 벌써 알고 있는 게 분명하오.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 소속되어 있고, 전부 조사했을 거요.”
“하긴, 그렇지 않으면 서란이 이름이 거론될 일이 없지.”
“그리고 자기가 무한으로 가면 호된 꼴을 당한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거요.”
“묵검산장의 십대고수 두 명이 한 명한테 당했다는 소문이 벌써 쫙 돌고 있으니까.”
게다가 그 사람이 벽태산이라는 것까지 포함되어 소문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도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소.”
“그래?”
일침괴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기감을 쫙 퍼트렸다.
영력까지 담긴 기감이었기에 훨씬 넓게 퍼졌고, 돌아오는 감각도 굉장히 예민했다.
“근처에는 수상한 놈이 없는 거 같은데?”
“있소. 형님이 못 찾는 거지.”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그래? 내가 너보다 영력도 많고 내공도 많은데. 감각이야 비슷하잖아. 그런데 내가 못 찾은 걸 네놈이 찾았다는 거냐?”
“아이고, 형님. 근처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내공이나 영력이 무슨 도움이 되겠소?”
“그럼 뭐로 찾아?”
천추신의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옆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여기로 찾아야 하오. 여기로. 머리를 쓰란 말이오.”
머리 쓰라는 말에 일침괴가 인상을 팍 썼다. 하지만 자신은 못 찾아낸 걸 천추신의가 찾았으니 할 말이 없었다.
“저놈들이 우리한테 뭐 대단한 걸 얻어내려고 감시하겠소? 뭘 하는지 그냥 지켜보다 보고만 하면 되는 거지.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놈이 감시하고 있을 거라, 이 말이오.”
일침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군.”
“그러니까 역으로 이쪽에서 뭔가 수상한 행동을 하는 놈을 찾으면 그놈이 바로 감시자일 거라는 뜻이고.”
“그래서 찾았냐?”
“세 놈이나 찾았소.”
일침괴는 새삼 천추신의가 정보 쪽에서 일을 하던 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원으로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천추신의는 사실 비천단 출신이다.
“흥, 고작 일반인 세 놈 따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따돌릴 수 있다.”
“에이, 걔들을 왜 따돌리오?”
“뭐? 그럼 계속 꼬리를 달고 다니잔 말이냐? 찜찜하게?”
“꼬리는 무슨. 그냥 이용이나 좀 해먹자 이거요.”
“이용?”
“우리 소식을 천독검한테 직통으로 날려줄 테니 그놈 열이나 좀 올리자 이 말이오.”
“그거 참 듣던 중 재미난 얘기로구나. 그래서 어떻게 열을 올릴 건데?”
“천독검이 잘 쓰는 독 몇 가지를 쓸모없게 만들어 보려고 하오.”
일침괴의 입가가 씨익 올라갔다.
“재미있겠구나. 하, 이럴 때 서란이가 같이 있었으면 해독약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우리가 서란이랑 같이 보낸 세월이 얼마인데, 해독약 정도 만드는 거야 금방이지. 못하겠으면 형님은 구경이나 하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이놈이? 나 일침괴야, 일침괴! 내가 왜 빠져? 네놈이 빠지면 모를까.”
“알았으니 일단 갑시다.”
“어딜?”
“어디긴 어디요. 독부터 구해야지.”
그리고 그 독을 해독해 이 근방의 문파나 무가에 쫙 뿌리면 입질이 올 것이다.
아마 이런 식으로 나온 의원들은 한 명도 없었을 테니까.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신이 나서 주루를 나섰다.
그러자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자들이 사방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 신호를 하오문도들이 조용히 따라가 확인했다.
두 의원이 일을 벌이면 나중에 그걸 정리하는 일은 하오문이 맡아야 한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듯했다.
어쩌면 이번 일로 독검방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 그에 대한 대비책 몇 가지를 미리 만들어 두면 좋을 듯했다.
하오문도들은 현재 벌어지는 일에 대한 보고서를 빠르게 작성해 무한으로 보냈다.
* * *
“뭐? 내가 쓰는 독의 해독약을 만든다 했다고?”
“예.”
천독검 원구악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허! 내가 쓰는 독은 어디서 구하고? 그걸 그리 쉽게 구할 수 있는 줄 아는 모양이지?”
천추신의와 일침괴에 대한 소문은 자주 들었다. 그리고 그 둘이 무한에 있는 현천장에 소속되기 전에 만나서 한 번 눌러줄걸 그랬다고 아쉬워했다.
한데 그 두 놈이 여기 안강현에 왔다. 자신에게 도전하겠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 둘을 상대해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애초에 한 번쯤 눌러주고 싶기도 했고.
그래서 몰래 그 둘을 살펴보고 왔다.
자신이 분명히 위에 있었다. 둘이 한꺼번에 덤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그냥 모습을 드러내고 대로에서 박살을 내려고 했다. 평소 했던 것처럼 자살하고 싶을 정도의 치욕과 굴욕을 안겨주고 말이다.
한데 그 순간, 저 둘과 함께 있다던 약왕 초서란이 떠올랐다.
그동안은 무림맹과 얽혀 있는 것 같아 감히 건드릴 엄두조차 못 내던 여인이었다.
한데 이렇게 되었으니 한 번쯤 찔러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초서란을 데려오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 괘씸한 놈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감히 헛수작을 부려?”
천독검 원구악은 머리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돌다리를 두드려 보는 사람이었다.
“그놈들 제대로 감시해. 그리고 주변에 그놈들을 돕거나 도울 가능성이 있는 무인들이 있는지도 확인해.”
“예. 즉시 이행하겠습니다.”
“별 거 없으면, 바로 실력 확인하고.”
수하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실력을 확인하라는 것은 그 두 의원을 암습하라는 뜻이었다.
그 둘을 암습으로 처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싸우는 모습을 확인하고 그들의 버릇이나 약점 같은 것들을 조사하려는 것이었다.
실력 차이가 압도적이지 않을 때, 원구악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상대를 조사했다.
그리고 항상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 그냥 이길 수 있는 사람을 압도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방법을 쓴 적은 십대고수가 되기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온 놈들은 지금까지 상대하던 것들과는 좀 달랐다.
그러니 여러 방법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천독검은 수하가 물러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풀며 수련을 시작했다.
일단 몸을 풀어놓고, 수하들이 약점이나 버릇을 알아오면 그걸 토대로 제대로 수련을 할 것이다. 딱 맞춰서 말이다.
* * *
혁련가주는 환마에게 받은 호리병을 들고 가문의 비처로 향했다.
그곳은 지하에 마련된 거대한 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는데, 어마어마한 영력이 바닥에서 뭉클뭉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혁련가주는 그 공간의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 시체 한 구가 놓여 있었다.
상당히 깔끔하게 죽은 시체였는데, 그 시체가 놓인 장소가 이 공간 안에서 가장 영력이 풍부한 곳이었다.
이런 공간은 혁련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심가와 악가에도 같은 공간이 있었다.
애초에 거대한 영맥을 셋으로 갈라서 각 가문이 나눠 가지고 있었으니까.
무명이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가 바로 이 영맥 때문이었다. 또한 무명이 본단의 위치를 철저히 감추는 이유도 이 영맥 때문이었다.
“잘 익었군.”
혁련가주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호리병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시체의 입에 호리병 입구를 물렸다.
이 시체를 구하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나 혼백과 잘 맞아 떨어지는 시체를 구했으니 결과가 사뭇 기대되었다.
혁련가주는 수인을 맺은 후 끊임없이 진언을 읊었다.
주변에 흐르던 영력이 회오리치며 시체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시체가 눈을 떴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입에 물고 있던 호리병을 빼서 휙 던져버렸다.
그리고 혁련가주를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봤다.
“넌 누구고, 여긴 어디지?”
혁련가주는 사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는 네 주인이고, 여긴 네가 되살아난 곳이지.”
“개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구나. 내가 누군지 몰라서 이러는 모양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