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46)
소소는 시선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소소를 본 벽태산이 혀를 쯧쯧 찼다.
“찔리는 게 있구나?”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시선은 옆을 향하고 있었다.
“그, 그런 게 아닌데 왜 말을 더듬느냐?”
벽태산이 놀리는 말에 소소의 볼이 살짝 부풀었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렇게 맘고생 중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벽태산은 벽태산대로 신기했다.
자신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다. 시비와 이렇게 말장난이나 하고 놀리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한데 지금은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재미있었다.
이것이 벽태산의 몸을 입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혼백이 정화되어서 새로운 성격이 발현되는 건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왜? 그날 안 왔는데도 내가 다시 안 찾아서 서운했던 모양이지?”
소소가 화들짝 놀라 펄쩍 뛰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럴 리 없잖아요!”
벽태산이 빙긋 웃으며 소소의 옆을 지나쳐갔다.
“배에서는 곤란하니 도착하는 날, 밤에 날 찾아와라.”
그 말을 남기고 휙 지나간 벽태산의 뒷모습을 소소가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이내 울상이 된 소소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이걸 어째?”
아무래도 이번엔 피할 수 없을 듯했다.
* * *
“호오. 여기가 호무련이로구나.”
벽태산은 호무련의 전경을 둘러보며 살짝 감탄했다.
솔직히 호북 무가 연합이라고 해서 약간 얕보는 감이 있었다.
천마신교가 상대하던 건 무림맹이나 흑련 같은 거대한 조직이었다.
그들의 조직망은 천하를 장악하고 있다.
천하를 놓고 그들과 경쟁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고작 호북에서 아웅다웅하는 놈들이 눈에 찰 리 있겠는가.
한데 막상 호무련에 와보니, 그 규모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이 정도면 무림맹까지는 아니어도 그 절반 정도는 너끈하겠는데?”
벽태산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천추신의가 말했다.
“그야 호무련 아닙니까. 말이 호북 무가 연합이지, 실제로는 그 주변, 호남, 강서, 안휘 쪽에도 발을 뻗고 있으니 규모로 따지면 무림맹의 절반 정도는 됩니다.”
“그래?”
“예. 그러면서 무림맹에도 한 발 걸친 채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으니 작은 무림맹이라고 할 수 있지요.”
“몇 번 제법이라고 듣긴 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벽태산의 말은 진심이었다.
천마이던 시절에는 호무련 따위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보고가 몇 번 올라왔던 걸 생각해보면 확실히 보통 조직은 아니었다.
당시 받았던 보고를 잠깐 떠올려봤다.
예상했던 대로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뇌리에 새겨졌다.
“그러니까 무림맹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무가들이 따로 만든 연맹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 막 떠오른 보고의 내용이 딱 이거였다. 물론 좀 더 세부적인 사항들이 있었지만, 요지는 정확히 천추신의의 말 대로였다.
벽태산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왜 그런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절 보십니까?”
천추신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오늘밤에도 절 부르실 생각이십니까? 오늘은 저 쪽에 있는 침쟁이 영감으로 하심이 어떠십니까?”
“후우. 꿰매버리고 싶다.”
저 멀리서 일침괴가 주먹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공자님.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저 영감이 수시로 절 협박해서 아주 못 살겠습니다. 한······ 닷새만 저 영감을 연달아 불러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야!”
일침괴가 천추신의에게 버럭 소리쳤다. 이제 좀 살 것 같은데, 다시 그 지옥의 구렁텅이에 자신을 밀어 넣으려는 걸 보니 울화가 확 치밀었다.
“둘이서 대충 해결해. 오늘은 너희 부를 생각 없으니까.”
두 사람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걸 본 벽태산이 물었다.
“그리고 의원은 알아봤고?”
순식간에 두 사람의 얼굴이 굳었다.
“그······ 어설픈 의원은 안 되겠죠?”
벽태산이 피식 웃고는 호무련의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그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오늘부터 좀 찾아봐라.”
“나 혼자 하란 거요?”
“난 의원들이 보기만 해도 다 도망쳐서 안 돼.”
“지금 그 말을 자랑이라고 하는 거요?”
“자랑은 무슨. 나도 지금 내 지난날이 후회스러워 미칠 것 같다. 시발 어떻게 아는 의원이 하나도 없어.”
“그러지 말고 이 근처 의방을 싹 돕시다. 내가 위치만 알아봐줄 테니 반씩 나눠서 돌면 될 거요.”
“그래서 의원들을 납치라도 하자는 거냐?”
“어째 입만 열면 망발이요? 여기 호무련의 영역이오. 그런 짓을 하면 저놈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소?”
“그럼 어쩌라고?”
“우리한테는 충분히 많은 돈이 있잖소. 고용합시다.”
“고용?”
“하루 왕진하면 되는 일인데 어려울 게 뭐 있겠소?”
일침괴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너, 보통이 아니구나?”
“내가 좀 그렇소. 하이고, 이거 송곳의 인생이 참으로 피곤하다니까. 주머니 속에 있을 수가 없어요.”
“좋아.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자. 일단 쭉 돌면서 쓸 만한 의원을 찍어놓고 한 명씩 부르면 되겠구나.”
“어설픈 놈은 안 된다는 거 명심하쇼.”
“의원 보는 눈은 너보다 내가 훨씬 위다. 걱정은 네놈이나 해라.”
천추신의가 씨익 웃었다.
“이거······ 누가 더 쓸 만한 의원을 찾을 수 있는지 내기라도 해야 할 판인데?”
일침괴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내가 의원 생활이 벌써 몇 년째인데. 해보자, 내기. 단, 의방 위치는 공유해야 할 것이다. 비겁한 놈에게 돌아갈 건 응징밖에 없으니까. 부디 내가 네놈의 입을 꿰매는 일이 없게 해라.”
“뭘 걸 거요?”
“넌 뭘 걸 건데?”
“뭐, 원하는 거라도 있소?”
일침괴가 강렬한 눈빛으로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네놈 정체.”
“그거야 이미 알지 않소? 나 천추신의요, 천추신의. 일침괴 바로 위에 있는 천추신의.”
일침괴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하여간 이놈은 진지해지려고 하면 꼭 이딴 식으로 사람 속을 확 뒤집어 놓는다.
“그거 말고 진짜 정체 말이다. 네놈이 감추고 있는 진짜 정체. 눈치를 보니 공자님은 아시는 것 같고, 어차피 평생을 함께 할 몸인데 그 정도는 알려줘도 되잖아?”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감당할 수 있겠소?”
“그거야 내가 걱정할 문제고. 어쩔 거냐?”
“좋소. 걸지. 그럼 나도 비슷한 무게의 조건을 걸어야 할 텐데······ 아, 그걸로 하면 되겠군.”
“뭐냐?”
“일침공.”
일침괴의 얼굴이 더 할 나위 없이 일그러졌다.
“너 미쳤느냐? 내 전부나 다름없는 걸 달라고?”
일침공은 일침괴가 일침괴로 불릴 수 있는 이유이자 전부였다.
그것은 침술이자 살상무공이었고, 그 자체로 내공심법이기도 했다.
“전부 달라는 건 아니고, 침술 쪽 요결만 있으면 되오. 그것도 어렵소?”
일침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천추신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공정하려면 심판도 있어야 할 텐데······.”
“공자님으로 하지.”
“공자님 말이오?”
천추신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침괴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공자님이야말로 가장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진짜 궁금하긴 하네.’
벽태산이 의원을 찾는 이유는 아마 기루에 가던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의원을 통해 무언가를 해서 절맥을 고치고 있다는 뜻인데, 대체 뭘 어떻게 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직접 당했는데도 그랬다.
그렇다고 몰래 훔쳐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랬다간 진짜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까.
어쨌든 내기는 성립되었다.
두 사람이 불꽃 튀는 시선으로 서로를 노려봤다.
그 대치는 바로 깨졌다.
“안 오고 뭐해?”
저 멀리서 들려온 벽태산의 외침에.
“아이고, 갑니다, 공자님.”
천추신의가 후다닥 달려갔다. 그리고 일침괴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벽태산 일행이 드디어 호무련에 도착했다.
* * *
“우와, 여기 진짜 넓은데요?”
호무련에서 배정해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소소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묘하게 들떠 있었다. 물론 그 들뜸 아래에 긴장감이 쫙 깔려 있었지만, 그걸 알아차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호무련의 무사가 일행에게 설명했다.
“원래 오기로 했던 서문세가, 구양세가, 추가장 분들이 오지 않으셔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기 중요한 손님도 한 분 계시고 말입니다.”
숙소 조정을 하긴 했지만, 그들이 갑자기 빠지는 바람에 정확하게 재배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벽태산 일행에게 크고 좋은 숙소가 배정되었다.
물론 일행에 일침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들 적당한 방을 찾아갔다.
그리고 벽태산은 들뜬 소소의 옆을 슥 지나치며 말했다.
“오늘 밤이다. 잊지 마라.”
소소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연하린 쪽을 바라봤다.
연하린이 굉장히 묘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소소가 울상을 지었다.
끝
서문덕은 호무련주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호무련주는 서탁에 쌓인 서류를 한쪽으로 치우면서 서문덕을 바라봤다.
“순찰당주 오셨는가? 만만치 않았다면서?”
서문덕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호무련주 앞에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았다.
“별 일은 없었습니다.”
“별 일이 없기는. 애들 똥 치우느라 고생 좀 했다던데.”
서문덕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똥 싼 놈들 돌려보냈습니다. 와서 물 흐릴 것 같아서 말이지요.”
“잘했네. 답 안 나오는 놈들 아무리 데리고 있어봐야 품만 들어.”
거기까지 말한 호무련주가 분위기를 환기하며 물었다.
“그래, 좀 어떻던가?”
서문덕이 고개를 저었다.
“별다른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이번에 서문덕이 굳이 의창까지 서문제학 일당을 맞이하러 간 것은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는 금월객잔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금월상단이었다.
금월상단에 위험한 배후가 있다는 말이 있어 그걸 조사 중이었다.
혹, 그 위험한 배후가 흑련이나 천마신교라면 정말 큰일이니까.
그래서 서문덕뿐 아니라 호무련에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 부분을 맡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은 호무련 단독으로 움직이는 건이 아니라, 무림맹의 협조요청에 따라 움직이는 건이었다.
그래서 유사시 무림맹 지부나, 무림맹 소속 방파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도 있었다.
아무튼 이번에 고작 서문제학 정도 데리러 가면서 호무련의 정예무사를 스무 명이나 대동한 것은 그래서였다.
그들은 금월객잔에 머무르면서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정보를 입수했다.
“평범한 객잔보다 무인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지만, 그거야 금월상단 소속이니 당연하고······ 그것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더군요.”
호무련주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각지에서 조사한 내용이 속속 도착 중인데······ 다들 마찬가지라고 하는군.”
“전부 아무것도 못 찾은 겁니까?”
“이 정도면 혐의가 없다고 봐야 하는데······.”
“뭔가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호무련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군.”
“확실히······.”
“어딘가 작위적인 느낌이 드네. 그게 어디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부탁하네.”
“별 말씀을.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아, 참. 그리고 그 일침괴와 함께 왔다면서?”
“예.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데 묘한 얘기가 들리던데?”
서문덕이 바라보자, 호무련주가 말을 이었다.
“일침괴가 금벽상단에 들어갔다면서? 그뿐 아니라 천추신의까지 그랬다던데, 맞나?”
서문덕이 차분히 대답했다.
“일단 그 두 사람이 함께 있었던 건 맞습니다.”
호무련주의 눈이 번득였다.
“그거 대단하군. 금벽상단이 그 정도였던가?”
“일단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기에 올 때는 일부러 거리를 뒀습니다. 기회는 많으니까요.”
호무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어차피 우리의 초청을 받아들인 이상, 후기지수 모임이 끝날 때까지는 함께 할 테니 그동안 자리를 마련하면 되겠군.”
“예. 한데······.”
“왜 그러나? 자네도 뭔가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나?”
“금벽상단의 둘째공자가 함께 왔는데······ 좀 묘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