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 9 Master Inspection Technique RAW novel - chapter 88
궁녀의 갈색 머리가 어지럽게 흩날리며 바람은 궁녀의 몸 곳곳을 휩쌌다.
기분 좋은 시원함으로 강한 바람들이 궁녀의 몸 전체를 통과하는 것이 여러번 반복되었다.
갑갑하게 그녀의 생명을 틀어쥐고 있던 어떤 힘이 서서히 없어져갔다.
금제의 힘이 모두 사라지자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바람과 푸르른 빛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조용해진 회장에 데리오의 침착한 음성이 울렸다.
“수고했소.마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고난위의 마법을 사용한 것 같군.”
“전하의 생각이 맞사옵니다.궁녀에게 걸린 마법이 5클래스의 마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강제로 해제하기 위해서 7클래스의 마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궁녀를 조종한 자는 최소한 5클래스의 마법사라는 것이군.
공작 덕에 그들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소.
이제 심문을 다시 시작할테니 공작은 다른 곳으로 물러가 있으시오.”
세르디오는 데리오가 돌아간 것을 보고 다시 궁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갑작스런 고난위 마법의 시전으로 잠시 흐트러졌던 긴장감이 다시 장내에 감돌기 시작했다.
“어제 네가 자백했던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었느냐?”
처음으로 겪는 희귀하고 환상적인 경험에 잠시 자신의 처지를 잊고 있었던
궁녀는 세르디오의 차가운 음성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진실을 말하려고 시도할때마다 온 몸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몰려와서
그럴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들이 알려준 그 이야기 말고는 달리 말할 것이 없어서…”
궁녀는 바들바들 떨며 쥐어짜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었지만
점점 매서워지는 세르디오의 시선에 결국 끝말을 흐렸다.
“금제와 여러 일로 그들에게 이용되었다는 것은 알지만 너는 결코 용서하지
못할 일을 두가지나 저질렀다.그 죄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고 싶다면 이제부턴
진실만을 말해야 할 것이다.알겠느냐?”
“예.이제 제가 알고 있는 그대로만을 말하겠사옵니다.이미 죽은 목숨이지만 그
것으로 제가 폐하와 제국에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지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크나큰 죄책감이 한없이 무겁고 괴로워 했던 궁녀는
세르디오의 말에 한없이 무겁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이제 그들에 대해 소상히 말해보거라.”
세르디오의 명령에 궁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그 당시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회장 안에 모인 모든 이들은 이제 곧 이번 일의 진짜 범인이 밝혀질 거란 기대를 가지고 궁녀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그게 다인 것이냐? ”
궁녀의 말을 모두 들은 세르디오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궁녀가 그때의 정황을 열심히 말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로는
사건의 배후를 완전히 가릴 수 없었다.
게다가 클레이톤 가가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만한 이야기도 없었다.
오히려 의심의 여지를 줄 수도 있는 어정쩡한 증언이었다.
데리오가 궁녀의 금제를 풀어줄때 부터 내심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프라나 공작은
겉으론 다른 이들처럼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좋아했다.
“죄송합니다 전하.하지만 이것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입니다.”
“협박에 못 이겨 이 양피지에 싸인을 하고 돌아갈때는 마법으로 클레이톤 가와 케이른 시를
잇는 길 도중으로 이동되었다니…결국 그대로군.”
세르디오는 난감하다는 기색으로 궁녀를 보았다.
창백한 몸과는 달리 순수하게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를 보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너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이게 다인것 같군.이제 됐으니 그만 데려가라.”
궁녀를 살피던 세르디오가 한쪽 구석에 서 있던 두 경비병들을 보며 말했다.
궁녀가 경비병들에게 끌려 회장 안을 나가자 그는 기사 무리들과 함께 섞여 있는 세빌과 로니엘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클레이톤 백작.할 말이 있다면 해 보시오.”
궁녀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세르디오가 변명의 기회나 한번 주겠다는 말로 냉랭하게 말했다.
“전하 저희는 결코 그런 극악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사옵니다.하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저희
가문의 누명은 제가 증명해 보이겠습니다.저희 가문의 문장이 든 물건들은 대대로 그 관리를
철저하게 해왔습니다.그래서 물건을 새로 만들거나 분실하면 꼼꼼히 기록을 해두지요.
하지만 그 같은 목걸이는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기록된 적이 없사옵니다.최근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희 가문에 누명을 씌우려는 극악무도한 자들이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가짜일거라 확신합니다.
제가 잠시만 그 목걸이를 살펴보게 해주시면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사옵니다.”
“그러시오.”
세빌은 단 위로 올라가서 허리를 숙여 세르디오가 건네는 목걸이를 받았다.
“감사하옵니다 전하.”
세빌은 목걸이의 문장을 잠시 바라보고 자신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의 문장을 보았다.
“전하 이것은 가짜가 분명하옵니다.자 이걸 보십시오.”
세빌은 세르디오가 목걸이의 문장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목걸이를 움직였다.
“각도에 따라 다양한 빛이 나지만 이 안의 사자는 움직임이 없습니다.제법 그럴싸하지만 진짜와는
확연히 다릅니다.여기 이 반지의 문장이 진짜이니 한번 보시옵소서.”
세빌은 오른손에 들려있던 목걸이를 치우고 자신의 왼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세르디오의
앞에 갔다 댔다.반지의 움직임에 따라 안에 있던 금빛 사자의 모습이 조금씩 틀려졌다.
조금씩 움직이는 근육들과 바람에 살짝 휘날리는 듯한 갈기들.
사자에게선 단순한 문장에서 느낄 수 없는 생명력이 느껴졌다.
“정말 다르군.”
세빌은 목걸이가 다르다는 것을 세르디오에게 확실히 인식시키고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전하.목걸이가 가짜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양피지 일은 아직 밝혀진 것이 아니옵니다.
어쩌면 이것도 다 계획적인 일일지도 모릅니다.일이 들킬 경우 의심을 덜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일수도 있습니다.”
일이 자신이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돌아갈 것 같자 프라나 공작이 나섰다.
그를 보는 세르디오의 표정이 좀 더 날카롭게 변했다.
하지만 심문을 시작했을때 부터 날카로운 표정이었기에 그 변화는 미미해 보였다.
게다가 금방 이 전의 표정으로 돌아갔기에 그것을 본 몇 안되는 사람들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제법 눈치가 빠른 프라나 공작은 세르디오에게 말을 하느라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기에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데리오나 세빌과 로니엘 그리고 타레스의 얼굴은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공작님의 말이 맞사옵니다.궁녀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얼굴을 가렸다는 것은 궁녀가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도 있어서 일지도 모릅니다.즉 궁녀가 아는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지요.
게다가 궁녀는 납치되서 정신을 잃고 있다가 그 마법사가 있는 곳에서 정신이 들었다 했습니다.
그러니 그녀가 잡혀갔던 곳이 클레이톤 가가 아닐거란 보장은 없지요.”
평소에 의심이 많기로 소문이 나있던 메빌로스 백작이 프라나 공작을 지지하며 말했다.
잠시 세빌들에게 좋게 바꾸려 했던 회장의 분위기가 다시 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그러고보니 클레이톤 백작의 큰 아들 로니엘이 5클래스 마스터라고 들었습니다.너무 앞 뒤가
딱 맞아 떨어지는군요.궁녀를 케이른 시에서 클레이톤 가로 가는 길목으로 이동시킨 것도 마나
소비가 많아서 거기까지 밖에 못한 것 아닙니까?”
메빌로스 백작에 이어 켈르돈 후작이 논리 정연하게 문제점을 꼬집자 귀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클레이톤 가가 이번 일의 배후라고 거의 확신하게 됐다.
‘운이 좋군.’
프라나 공작은 속으로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한 일이라곤 그저 그럴지도 모른다는 운만 띄웠을 뿐이었다.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생각하고 결정지은 것이다.
자신의 말에 머리를 굴려 그럴듯한 생각을 해낸 메빌로스 백작이나 켈르돈 후작이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쉽게 그들의 생각에 동조를 하며 이제 열까지 내고 있는 대다수의 귀족들이 만족스런 한편 우습기도 했다.
메빌로스 백작이나 켈르돈 후작은 그렇다 쳐도 아무 생각없이 남의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수많은 귀족들은 그의 생각으론 참 한심한 족속들이었다.
“캐러디안 공작이 한번 말해 보시오.5클래스 정도에 이른 마법사가 남을 이동시키는 것은 클레이톤 가에서
케이른 시 입구 정도까지가 한계인 것이오?”
가만히 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르디오가 데리오에게 물었다.
데리오는 세르디오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안 좋게 생각하는게
클레이톤 가가 아닌 프라나 공작이라는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잠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클레이톤 가가 더욱 불리해질 수 밖에 없었지만 이 안에 있는 마법사는 자신만이 아니었다.
비록 그가 가장 높은 레벨의 마법사이긴 했지만 5~6클래스 정도에 이른 마법사가 네명이나 더 있었다.
그것을 잘 아는 세르디오가 금방 드러날 거짓을 원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그래서 데리오는 세르디오에게 어떤 생각이 있을거라고 믿고 진실을 말하기로 결정했다.
“개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통 5클래스 마스터에 이른 이들은 남을 이동시킬 때 마차로
한시간 정도의 거리가 한계이옵니다.”
데리오의 말에 귀족들은 세빌과 로니엘에게 노골적으로 안 좋은 시선을 보냈다.
처음부터 세빌을 믿고 있었던 기사들의 얼굴에 낭패감이 짙게 드리워졌다.
이번 일이 클레이톤 가를 무너뜨리려는 모함으로 여기고 있던 그들은 정황이 드러날 수록 점점
더 자신들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벗어나려 할 수록 더욱 꽉 옭아매는 올가미 같은 함정이었다.
철저하고 교묘하게 준비된 함정에 그들이 존경하던 클레이톤 가문이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쉬워보이지 않았다.
어느정도 믿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황태자 마저도 그들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
불안감이 기사들의 마음을 내리누른다.
폐단의 근원은 뿌리채 뽑아야 한다.
회장 안은 클레이톤 가가 배후이다 아니다 하는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대세는 클레이톤 가가 배후라는 쪽으로 기울어 갔다.
클레이톤 가를 변론해 주는 이들 대부분이 기사들이었고 반대파 사람들은 대부분이 문관 출신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충분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기사들은 말로 그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데리오가 있었지만 그는 세르디오를 믿으며 가만히 논쟁을 지켜보기만 할뿐이었다.
“양피지의 글씨체는 그렇다쳐도 인장은 어떻게 해명할 것이오?”
한 귀족이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