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17
제 117 화
엄청난 속도에 피부가 뒤로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급류가 이렇게 빠른 줄 알았다면 아슈팔이 속도를 낸다 했었을 때 진지하게 고민했을 거다. 좀 더 깨알 찬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떻냐고 권유하며 말이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튕기는 강물과 요동치는 배, 거기다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속도는 절로 비명을 지르게 할 정도였다.
유림은 이를 앙다물며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이러다 정말 배가 뒤집히는 건 아니겠지? 우아! 근데 이 인간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얼굴 하나 안 바뀌냐.
“선배, 저희 대체 언제쯤이면 이 급류에서, 으힉! 벗어나는 거예요?”
“곧.”
아슈팔은 그리 답하더니 유림을 빤히 바라봤다.
“왜, 왜요?”
“아니. 이런 거 무서워하기에. 좋아할 줄 알았거든.”
“으~ 속도가 빠른 것도 좋고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좋아하는데, 으힉, 물에서, 달리는 건 싫어요.”
“물 무서워해?”
“아니, 무섭다기보단 다른 이유로 싫어해요.”
유림의 대답에 아슈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이유라니 대체 무슨?
그는 그게 뭔가 싶어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 곧 ’이라는 말대로 급류가 끝나고 강의 중류에 도착했기에 질문을 꺼낼 수 없었다.
유림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배의 앞부분이 물에 처박히듯 기울다 솟아올랐다.
“으힉!”
코앞까지 물이 튀었다. 그리고 그걸 끝으로 배의 움직임이 한결 편해지기 시작했다. 물살이 그리 느린 건 아님에도 하도 격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흡사 잔잔한 호수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유림이 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뒤로 젖혔다. 그제야 강가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확연히 넓어진 강폭과 벽처럼 즐비한 굵고 무성한 나무들 신선놀음하기 딱 좋은 경관이었다. 어쩐지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여기 멋지다.”
“그러게. 후아…… 이제 좀 살겠다.”
륜이 뺨에 튄 물을 닦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자 크라마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심하지 마. 좀 있으면 굴곡도 생기고 나무도 더 무성해질 거야.”
그리고 그 말에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만 유림이었다.
“진짜? 여기 인공적으로 만든 강이라며. 대박이다.”
아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이런 풍경이 나올 수 있는 건가?
어쨌든 대단한 건 매한가지였기에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아슈팔은 그런 유림을 빤히 바라보다 짧게 덧붙였다.
“이제 더 시끄러워지겠네.”
“네? 어째서요?”
“앞의 배들이 보이는 것 같거든.”
아슈팔의 말에 유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다 배가 휘청거리자 자셀 낮추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다시 조심스럽게 자릴 잡고 고갤 드니 검은 물체 세 개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슈팔의 말대로 배였다. 자신의 눈알이 돌아가지 않는 한 저건 배가 분명했다.
몇 형의 배지?
지금 자신들을 앞서간 배는 1, 2, 4, 7형이었다. 그리고 루아와 데몽이 가장 먼저 치고 나갔으니 확률상 나머지 세 형일 확률이 높았다. 역시나 그런 유림의 생각에 동의하듯 분홍색 가로 선(2형)과 푸른색 가로 선(4형), 그리고 흰색(7형)의 가로 선이 보였다.
그럼 그렇지!
절로 손가락이 튕겨졌다.
“2, 4, 7형의 배야.”
“은하랑 테오, 레이먼의 배?”
“응. 좋아 좋아. 이거 잘하면 다 제치고 2위까진 가겠는데?”
“그러게.”
“륜, 저 세 팀. 다 뒤집어엎자.”
“응.”
유림과 륜은 앞쪽에 신경을 집중하며 좀 더 그들에게 다가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곧이어, 콩알만 하던 세 척의 배가 큼직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따라잡았어!”
유림의 외마디 감탄에 앞서 달리던 세 팀이 뒤를 돌아 두 팀의 추격을 확인했다.
코니룸은 기쁨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싱글벙글한 얼굴에 입가를 비틀었다.
“이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림이다!”
“안녕, 은하! 선배님들도요~ 요런 곳에서 다시 만나네요~”
유림의 익살스러운 웃음에 재우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좀 더 늦을 줄 알았는데 빨리 왔구먼. 역시 아슈팔. 슈팔스럽게도 빠르네.”
대놓고 욕을 하고 있음에도 아슈팔은 별 감응이 없는지 눈만 느리게 깜빡일 뿐이었다.
“그런가요?”
“빠르지, 그것도 엄청.”
코니룸의 말에 아슈팔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이런 상황에서조차 평온 그 자체였다.
“캬- 코니룸, 저놈 표정 봐라. 엄청 평온해.”
“그러게. 뭐, 저 평온함이 앞으로도 계속될진 모르겠지만.”
둘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사이 배를 둘러보던 유림은 2형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사람이 코니룸에서 테오로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어라? 테오가 키를 잡고 있네? 무슨 일 있었어?”
분명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코니룸이 몰고 있었는데 지금은 테오가 몰고 있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코니룸이 작게 웃으며 답했다.
“내가 이쪽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바꾸자고 했어.”
“선배가요?”
“응. 키는 따분하기만 하더라고, 계속 앉아 있어야 하고.”
“하긴 키잡이 뒤가 더 재밌죠.”
“그래. 이것저것 재미난 게 많으니까 말이야.”
그의 입꼬리가 유려하게 올라갔다. 왠지 모르게 께름칙한 미소였다. 유림은 찜찜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데? 내 착각인가?
그녀가 코니룸을 빤히 보다 이내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손 그늘을 만들며 몸을 살짝 앞으로 뺐다.
“루아나 데몽은 아직 안 보이네요.”
유림의 말에 재우가 손사래를 쳤다.
“아직 보이려면 멀었지.”
“그런가요? 근데 너무 태평하신 거 아니에요?”
“야, 초장부터 그렇게 벌어졌어. 거기다 녀석들이 급류를 제대로 탔으면 이미 꽤 앞쪽일 거라고.”
재우가 턱도 없다며 다시금 쯧쯧 혀를 찼다. 솔직히 말해 아슈팔과 크라마가 클레이즈 내에서도 늄의 운용이 손꼽을 정도였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자신들을 이리 빨리 따라잡진 못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림은 계속 보이지 않는 1형의 배만 찾았다.
“그 정도로 차이가 나요? 음…… 설마 이미 결승점을 지난 건 아니겠죠?”
유림의 질문에 코니룸이 답했다.
“걱정 마, 그럴 리는 없으니까.”
“어째서요?”
“이 강은 꽤 길고 험한 데다 쓸데없는 방해 요소가 많거든.”
“방해 요소?”
“그래. 하여튼 녀석들이 아무리 빨리 가도 결국 하류에서 만나게 될 거야. 거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시합이기도 하고 말이야.”
“정말요? 그럼 얼마 안 있으면 다 만나게 되겠네요?”
조금 들떠 있는 유림의 목소리에 코니룸이 옅게 웃으며 재우를 흘끔 쳐다봤다. 얄미울 정도로 밉살맞은, 그러면서도 의미가 확실한 눈빛이었다.
재우는 그 뜻을 이해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만나겠지?”
능청스런 목소리가 코니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근데 가능할까?”
“네? 뭐가요?”
“뭐긴 뭐야. 너 말이야.”
“제가 뭐요?”
“이런,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건가?”
“에? 그게 지금…….”
무슨 뜻이에요?
질문이 목 안으로 삼켜졌다. 코니룸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뭐지? 이 선배가 지금 어딜……!
순간 섬뜩한 느낌이 척추를 타고 올랐다.
“……!!”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척. 유림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언제 이쪽으로 넘어왔는지 코니룸이 바로 뒤에서 능청맞게 웃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뇌가 상황을 못 따라갔다. 유림은 다급히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질문은 앞과 마찬가지로 언어가 되지 못했다.
하늘과 땅이 뒤집혔고, 시야가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에?
유림이 두 눈을 깜빡였다. 허공에 붕 뜬 몸과 눈앞에 가득 들어찬 하늘. 그리고 그 끝에 다가온 건,
풍덩!
소리와 함께 저를 끌어안는 차디찬 강물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코니룸에게 던져져 물에 빠졌단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림은 살기 위해 허우적거렸다.
“푸악!”
이게 지금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저 인간이 진짜, 나랑 한 판 뜨자 이거야?!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물 밖으로 내밀었다. 그때 그런 유림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붕 하고 떠올랐다.
얼굴에 그려지는 그림자, 본능적으로 유림의 시선이 올라갔다.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것. 그건 유난히도 결 좋은 머리칼을 흩날리고 있는 사내, 바로 아슈팔이었다.
“선ㅂ…… 우엑! 컥컥!”
유림은 입안 가득 들어온 물을 퉤퉤 뱉으며 아슈팔이 넘어간 곳을 바라봤다.
자신도 모자라 선배까지 던지다니!!
아슈팔은 유림보다 더 멀리 날아가더니 이내 첨벙 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졌다.
“젠장! 코니룸 선배, 이게 무슨……!”
악에 받치고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그러나 더한 상황은 그 뒤에 이루어졌다. 저들을 집어 던진 코니룸이 어느새 2형의 배로 돌아가고, 대신 재우가 8형의 배 위에서 주먹을 불끈 쥔 채 유림을 향해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헐…… 재우 선배까지…….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순간 어쩐지 봉사 동아리의 주된 활동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왜 다 부수고 보는 무식한 행동 말이다.
설마…… 에이 설마, 저 인간이 그 정도로 미치진 않았을 거야…….
인정하기 싫은 가설에 뇌가 현실을 부정했다.
유림은 불길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배 위에서 싱긋 웃는 재우와 눈이 마주쳤을 때, 자신의 더러운 불길함이 결코 기우가 아님을 깨달았다.
“한유림.”
재우가 유림을 불렀다.
“너를 잊지 않으마. 크흑.”
유림은 안 된다는 의미로 고개를 붕붕 내저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저항은 강물과 함께 저만치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잘 가렴, 큭큭.”
재우가 얄미운 저음의 목소리로 큭큭거리며 있는 힘껏 주먹을 내려쳤다.
쿵!!
콰앙!!
강물에 파문이 일었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8형의 배는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배의 파편들이 강물에 떨어지는 것이 유림의 두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투명한 강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검은 나뭇조각, 그 사이로 보이는 보라색 조각들. 유림의 유일한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세 사람의 배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달았다.
8형의 배는 무너졌고, 강물은 더럽게 차갑고 깊었으며, 자신은 수영을 1도 할 줄 모르는 맥주병이었다는 아주 불쌍하고도 비참한 현실을 말이다.
유림이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천천히 강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저 처절한 비명만이 그녀의 입안을 맴돌 뿐이었다.
사……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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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