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43
140. 테라네스 (2) >
140.
배리어 앞에 선 하이마스터 라하르가 양손을 배리어에 가져갔다. 그러자 육각형으로 이어진 배리어가 눈 녹듯이 사르륵 녹아 사라졌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모모타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지난 번 슈퍼솔져들은 집중포격을 가해 배리어의 한 지점을 부수고 그곳을 빠르게 통과했었다.
그런데 테라네스의 하이마스터는 집중 포격을 가해 부숴낸 그 배리어를 너무나 손쉽게 제거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배리어를 부숴야만 통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출력이 약한 배리어 같은 경우엔 어느 정도 무시해도 관계없다.
하지만 출력이 강한 경우엔 배리어의 강력한 에너지가 육체를 내부에서부터 뭉갤 수 있었다. 출력이 약한 배리어라고 해도 사실 그건 마찬가지다.
약한 배리어를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는 건 개인용 실드 때문인데 아무리 강한 실드도 가장 약한 배리어보다 약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배리어를 통과하기 위해선 일단 그 지점의 배리어를 파괴하든 해제하는 것이 수순이었다.
앞서 통과한 슈퍼솔져들은 그 일을 집중포격 등을 통해 이뤄낸 것이고 라하르는 강력한 초능력으로 이뤄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한은 라하르가 해제한 배리어를 통과하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 일 역시 상당히 위험한 일에 속하지만 그게 예전에 자신이 맞닥뜨린 위협만큼 절망적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만큼 자신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눈에 띌만한 이능은 사용할 필요도 없다. 육체 능력을 보조하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자투족은 베어넘길 수 있을 것이다. 초진동검은 강화되었고 자신의 전투기술 역시 강화되었다.
어쩔 수 없이 죽을 자리에 떠밀려온 게 아니라 이게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 여겼기에 이 자리에 섰을 뿐이다. 생존확률이 전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그건 자신도 뭐 어쩔 수 없는 거다. 그야말로 개죽음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이 지식과 능력은···.’
하이모스에서 두 손이 불타오르는 고통에 휩싸였을 땐 그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뒤늦게 떠오르는 지식의 향연으로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알아차렸다.
석주에 손을 대는 순간, 아니 사실 그것도 확실하지 않다. 석주에 손을 댔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어째서 그런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그 이후로 육체 자체가 재구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한 자신이 얻은 건 일종의 생체 무기였다. 아니 엄밀히 말해 생체 무기로 만드는 어떤 것이었다.
양 팔을 비롯해 온몸에 점점 더 강력한 힘이 들어차고 있었다. 육체 능력은 물론 이능력까지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강화되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얻은 건 다섯 파트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나머지 네 파트를 찾아 완성한다면 그야말로 전천후 생체병기가 될 것으로 보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일반인을 슈퍼맨으로 만드는 무기라고 해야 할까? 정말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그 정도로 강력한 무기를 얻은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를.
아울러 칼란두를이 엔두카를 건설하게 된 원래 함선의 설계도나 자료가 머릿속에 우후죽순 떠올랐는데 워의 말대로 엔두카보다 훨씬 강력한 함선이었다. 아마 칼란두를은 이러한 자료를 얻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건 핵심이 아니었다. 핵심은 이한 자신이 얻은 무기로 이 무기는 알 수 없는 문명, 간략하게 고대 문명의 총화에 가까웠다.
워와 시에라에게는 고대 문명의 기술이나 정보를 습득한 것 같다는 이야기는 했지만 자신이 얻은 것이 어떤 강력한 무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낼 당시엔 이한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았고 정리가 된 이후에는 구태여 말을 꺼낼 필요가 없는 내용이었으니까.
물론 하이모스에서 얻은 고대 문명의 총화가 없더라도 자투족을 상대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고대 문명의 무기 같은 건 고려대상도 아니었다.
이한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테라네스의 마스터에게 말했다.
“초대해 놓고 초면에 박대하지는 않을 테니 긴장들 푸시죠. 제대로 된 전투는 놈들과 대화한 이후에 일어날 겁니다.”
이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이 이리저리 일그러지더니 이윽고 커다란 덩치를 가진 자투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한 이드라실이냐?】
“그래. 내가 한 이드라실이다. 패잔병.”
【이 나약한 테라족 따위가!!】
눈매를 좁힌 이한은 초진동검을 벼락같이 뽑아내며 말을 꺼낸 자투족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그 모습에 테라네스의 마스터는 물론 주변에 은신해 있던 자투의 상전사들 역시 눈을 부릅뜨며 이한을 바라봤다. 오직 시에라만이 차가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필 뿐이었다.
쿠웅!
머리를 잃은 자투의 상전사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육중한 소음이 바닥에 울리기 무섭게 이한의 조롱이 이어졌다.
“나약한 건 너희고. 꼬리말고 도망친 패잔병 주제에 테라에 숨어 이런 짓거리나 하고 있었나? 전사라는 단어가 부끄럽군.”
【뭣이!】
【당장 네놈을 죽여주마!】
이한의 도발에 스무 명 정도되는 자투족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저마다 육중한 무기를 들고 이한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강력한 기세를 풍기는 자투족의 말에 저들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누가 움직이라고 말했지?】
【물러서라.】
이한에게 쇄도하던 스무 명의 상전사가 고개를 숙인 뒤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모습을 시에라가 새파랗게 타오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물러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시에라의 분노를 맛봐야만 했으리라.
강력한 기세를 지닌 자투족은 이한 앞에 다가오더니 이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전사장 우툰카다.】
“시답잖은 짓거리는 그만하고 초대했으면 그만한 예우나 갖춰. 미개한, 미개한, 미개한 항상 입에 싸물고 다니더니 너희 자투족은 그만한 예의도 없는 ‘미개한’ 종족인 거냐?”
크르릉!
우툰카는 한차례 그르렁거린 뒤 사나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따라와라.】
쿵! 쿵!
우툰카는 육중한 소리를 내며 걸음을 옮겼고 이한은 냉정한 표정으로 그를 뒤따랐다. 당연히 테라네스의 마스터들 역시 이동했는데 하이마스터 라하르는 시에라를 힐끗 바라봤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라하르는 그녀에게서 폭발적인 ESP 능력이 발출되려는 조짐을 느꼈다. 역시나 시에라 그녀는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ESP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분명했다.
그리고 한 사령관 역시 일반적인 초인공지능 마스터가 아니었다. ESP 능력은 감지할 수 없었지만 슈퍼솔져를 도륙한 저 자투족을 단번에 베어내다니. 어쩌면 그는 알려진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11명의 마스터, 카일, 페도라, 안드라, 벨리타, 도프람, 고르바초프, 페리스트, 포, 루모스, 가르디움, 올레만 역시 의문점을 느꼈지만 저마다 조용히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 건 모든 전투가 끝난 후에 확인해도 될 일이니 말이다.
이한은 숲의 거목처럼 우뚝서서 기다리는 자투족을 발견했다. 다른 자투족보다 몸집이 거대하고 강력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으니 저 자투족이 바로 이두르카라는 자투족이리라.
이한이 이두르카를 바라볼 때 이두르카 역시 무심한 눈빛으로 이한을 바라봤다. 다만 이한은 물론 이두르카 역시 무심한 뒤편으로 맹렬히 타오르는 분노를 갈무리하고 있었다.
【위대한 자투의 대전사장 이두르카다.】
“테라의 총사령관 한 이드라실.”
【먼저 승전을 축하한다. 이 자리까지 온 용기에 대해서도 경탄을 표한다.】
잠시 말을 끊은 이두르카는 폭발적인 기세를 발하며 이한에게 다시 말했다.
【그러나 넌 오늘 이 자리에서 처참하게 죽을 것이다. 테라 행성도 테라족도 그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패장 주제에 혓바닥이 더럽게 기네. 하나만 경고하지. 테라에 대한 모든 적대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거야. 반드시 치르게 해주지.”
【큭큭큭! 크하하하하! 대가를 치르게 해줘? 기고만장 하지 마라! 네가 승전을 거두긴 했으나 위대한 자투족의 영광을 가리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어리석은 것!】
“뭐 당장은 어려울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이 우주에 자투 너희만 존재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일단 이두르카 네가 끌고온 수준의 병력쯤이야 이젠 문제가 되지 않고 그 두세 배는 끌어와야만 우리를 상대할 수 있을거다. 이런 식으로 전쟁 규모가 더 커진다면 글쎄. 그때는 너희도 부담스러울 거다. 너희 하는 짓거리를 볼 때 적이 상당히 많을 것 같으니까.”
이두르카는 샛노란 눈으로 이한을 노려보다가 뭔가를 조작하더니 이한에게 보냈다.
【네 오만함과 별개로 네게 전사의 처형식을 경험할 기회를 주도록 하지. 행성폭탄의 위치다. 폭탄을 해체하고 싶다면 어디 이곳까지 돌파해보도록 해라. 서두르는 게 좋을 것이다. 너희 도시가 날아가는 것을 또다시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야.】
“처참하게 죽인다면서?”
【네 부하들부터 하나하나 차근히 죽이고 그후에 처참하게 찢어주마. 한 이드라실. 그런 점에서 네 부하를 적게 이끌고 온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지랄하고 있네. 2만 명쯤 되는 병사들과 함께 했어도 네가 나와 대면하고 있을까? 네 입맛에 맞을 때까지 행성폭탄을 계속 활성화시켰겠지.”
【모행성도 방어하지 않은 너희의 어리석음을 탓하라! 전사의 처형식을 시작하지.】
“전사의 처형식 같은 소리하고 있네. 여기까지가 내 마지노선이다. 더 이상 너희의 장단에 놀아날 생각이 없단 말이지.”
【네게 선택지는 없다. 네 오만의 대가는 나머지 테라인들이 치르게 될 것이야.】
냉혹한 눈빛으로 이한을 바라보던 이두르카는 단말기를 조작했다. 딱 봐도 행성폭탄을 재활성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한은 그를 막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워!”
『마지막 퍼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해체하려면 서둘러 행성폭탄이 연결된 지점으로 향해야 합니다.』
이두르카는 차가운 눈으로 이한을 바라봤다. 행성폭탄을 활성화시켰음에도 별다른 작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거지? 설마? 너희가 자투의 기술을 파악했다고?】
“애초에 나를 죽이려고 했으면 내가 파고들 여지를 주지 말았어야지. 네게는 여러모로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니 이만 죽어라!”
이한은 초진동검을 뽑아듬과 동시에 이두르카를 향해 쇄도했다. 매우 빠른 속도였음에도 이두르카는 가볍게 이한의 초진동검을 반투명하고 날카로운 에너지 무기로 반토막 내버렸다.
후우우웅! 서걱!
반으로 잘린 초진동검은 빠르게 회전하며 허공을 날아가다가 바닥에 꽃혀 파르르 떨다 움직임을 멈췄다.
“음?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인데. 워! 이 새끼야! 이런 기술부터 추출해서 복원해야 하는 거 아냐?”
『파괴된 함선에서 정보를 되살리는 것이 사령관님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두르카는 양손에서 반투명하고 날카로운 에너지 소드를 형성하며 주변을 슬쩍 바라봤다.
시에라는 푸른 눈을 발하며 주변의 자투족을 들어올렸고 나머지 12인의 마스터들도 제각각 불, 번개와 같은 이능을 발현해 자투족과 대치했다.
그때 우툰카 역시 양손에서 에너지 소드를 형성하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흥! 에너지 소드를 사용해서 모조리 끊어버려라!】
그러자 놀랍게도 12인 마스터의 강력한 이능이 잘려나갔다. 시에라의 강력한 염력까지도 말이다.
이두르카는 초진동검을 잃은 이한을 바라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자투의 상전사들은 이능을 발현하는 족속들을 처단하기 위해 훈련된 전사들이다. 생각보다 제법 강력한 이능을 보유하고 있긴 하나 치열한 전투 한 번 치러보지 못한 너희 테라족이 우리 위대한 자투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 보느냐?】
“웃긴 놈이네. 함대전을 치를 때는 너희가 우리한테 질 거라고 상상이라도 했었냐? 지금 역시 마찬가지야.”
【너는 내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나마 명예롭게 죽었어야 했다.】
이두르카는 샛노란 눈으로 이한을 뚫어져라 쳐다본 뒤 땅을 박차고 이한을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그때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우두두둑! 우두둑!
【크허허헉!】
【커허헉!】
그건 바로 자투 상전사들이 내뱉는 비명이었다. 이두르카가 눈매를 좁히며 그곳을 바라보자 상전사들이 아무렇게나 구겨진 채로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앞으로는 테라족 여인이 푸른 빛이 넘실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오시하고 있었다.
의외의 상황에 이두르카가 잠깐 멈칫한 사이 그에게 짓쳐 든 이한이 입을 열었다.
“짧게 표현해줄게. 너흰 X된 거야.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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