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말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은 필립이, 양팔을 뻗어 녀석들의 목덜미에 손을 얹었다.
“하… 왜 하필 지금….”
장탄식을 흘린 것도 잠시.
“두 녀석 다 죽었습니다….”
일어서며 내뱉은 그가, 저만치의 냇가에서 물을 마시는 남은 한 마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 녀석이라도 어떻게든-”
풀썩-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은 녀석도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킁, 하고 단말마 같은 콧김을 뿜은 녀석이 그대로 물속에 고개를 처박았다.
“…….”
필립이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멈춰 섰다.
“마시면 안 되는 물이었나….”
입맛을 다시며 읊조리던 이안의 눈매가 일순간 꿈틀댔다.
그의 시선이 다시 옆으로 돌아갈 찰나.
“그… 이제 말을 다 잃게 됐군요.”
필립이 애써 웃음 지으며 그들 쪽을 돌아보았다.
이안이 턱짓했다.
“뒤를 봐라. 필립.”
“뭐,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될 걸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요. 내일부턴 제가 가방을 메고… ……?!”
주절대며 뒤를 돌아본 필립이 다시 한번 굳어졌다. 쓰러졌던 말들이 다시 부스스 일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필립이 중얼댔다.
“분명히… 죽었었는데…?”
자세를 다잡은 말들이 천천히 몸을 돌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어, 어어…?”
녀석들이 냇물로 걸음을 옮기자, 손을 내뻗은 필립이 후다닥 달려갔다. 그가 고삐를 낚아채 끌어당기자, 두 녀석 다 별다른 반항 없이 순순히 끌려왔다.
절그럭-
곧, 쓰러져 있던 다른 한 마리도 비틀대며 일어섰다.
고삐를 쥔 필립이, 녀석들의 상태를 확인할 틈도 없이 곧바로 몸을 돌렸다. 녀석도 터덜터덜 냇물로 발을 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메브가 중얼댔다. 냇가 너머에서 달려오는 샬롯을 눈에 담으며,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 녀석도, 뭔가 본 모양이오.”
잘라낸 나뭇가지들을 품에 안은 샬롯은 필립을 본 척도 하지 않고 달려왔다. 그 뒤로 활을 든 테사이아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 숲엔 마물이 있다. 이안.”
앞에 멈춰선 샬롯이, 나뭇가지를 우르르 떨어뜨리며 내뱉었다. 흐릿한 푸른 빛무리가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나뭇가지는 하나같이 뒤틀리고 변형된 형태였다.
…곰팡내가 진동을 하는군.
화륵, 그 한복판에 불꽃을 던진 이안이 샬롯을 바라보았다.
“무슨 마물?”
“정확히는 모르겠다. 빛을 내면서 날아다니던데. 벌레 같아 보이더군. 굳이 따라가지는 않았다. 나한테 날아들지도 않았고.”
“나도 봤어. 한 마리가 아니던데. 걸어 다니는 것들도 있더라. 걔들은 좀 익숙하게 생겼었어. 반짝거리는 것만 빼면.”
모닥불 옆에 장궁과 연습용 화살이 담긴 화살통을 던져 놓은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그래, 별것들이 다 있단 거지.
게임의 서부를 떠올린 이안이 낮게 코웃음 치며 숲을 돌아보았다.
어둠 너머로 푸르스름한 빛이 도깨비불처럼 아른거렸다.
테사이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게다가 숲 자체도 묘하게 기분 나빠. 여기랑은 또 달라. 표현하기 어려운데… 뭔가 거슬려.”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이 냇물이 경계선인지도.”
동의하듯 덧붙인 샬롯이 손을 털었다. 손바닥 사이에서 반짝이는 포자가 번졌다. 그녀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건, 타고난 내성에 델라 루의 은총이 더해진 덕분일 터였다.
“싸울 각오를 해야겠군. 내일부턴.”
메브와 눈빛을 교환하며 말한 이안이, 냄비를 꺼내 샬롯에게 건넸다.
“오늘은 든든하게 먹어 두자. 물을 그냥 마시지는 마라. 오염된 것 같으니까.”
“그러지.”
샬롯이 몸을 돌리는 가운데, 이안이 아공간에서 봉인함을 꺼냈다. 그가 그 안에서 보존 식량들을 꺼내는 사이, 테사이아는 다시 마차로 걸음을 옮겼다.
말들을 이리저리 살피던 필립이 모닥불 쪽을 돌아본 건 바로 그때였다.
“아무리 봐도 말입니다, 나리. 이 녀석들, 죽은 게 맞는 것 같은데요?”
“……?”
안에서 꺼낸 육포와 햄, 빵을 차례로 찢으면서 이안이 미간을 좁혔다. 마차를 뒤적이던 테사이아가 필립의 곁으로 다가갔다.
곧 우두커니 선 말들을 만져 본 테사이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이네. 심장이 안 뛰어. 기분 나쁜 느낌도 들고.”
“언데드라도 됐단 말이냐?”
견갑을 기름 먹인 천으로 닦던 메브가 물었다. 아마도, 하고 덧붙인 테사이아가 다시 휑하니 마차로 되돌아갔다.
푹 한숨을 내쉰 필립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불쌍한 녀석들 같으니…. 제가 편하게 만들어 주겠습니다.”
“동작 그만.”
이안이 내뱉은 건 그때였다. 멈칫한 필립이 고개를 돌렸다.
“잠깐만 기다려 봐.”
이안이 내뱉는 가운데, 되돌아온 샬롯이 물을 담은 냄비를 모닥불 위에 올려놓았다.
목에 건 가죽 주머니에서 델라 루의 은총을 꺼내 물속에 넣은 이안이, 앞에 늘어놓은 재료들을 전부 던져 넣고는 일어섰다.
“팔팔 끓을 때까지 맛보지 마라. 상자 안에 암염 통도 있으니까, 적당히 갈아 넣고.”
샬롯에게 덧붙인 그가 말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녀석들은 정말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탁 풀린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한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은 이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심장은 뛰지 않는데….”
말의 몸속에서는 여전히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손바닥을 타고 뜨끈한 체온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 오염된 마력이 전해졌다.
이 마력이 이것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게 그저 피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어쨌건.
“이것들, 마차를 끌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안이 내뱉은 말에, 필립의 한쪽 눈썹이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죽었다가 되살아난 말들에게 마차를 맡기시겠다고요?”
“움직이긴 하잖아. 미쳐서 덤벼드는 것도 아니고. 당장은. …그거 줘 봐.”
이안이 필립이 모아든 고삐로 손을 뻗었다. 입맛을 다신 필립이 안장이 달린 녀석의 고삐를 건넸다. 이안은 곧바로 안장에 올라탔다.
말은 반항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게다가 고삐를 내리치자 앞으로도 나아갔다. 몇 번 더 고삐를 흔들던 이안이 중얼댔다.
“달릴 수는 없나 보네.”
냇물을 건너 숲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긴 했지만. 어쨌건 말은 그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움직였다.
이안이 꺼림칙한 표정의 필립을 돌아보았다.
“그 녀석들, 그냥 마차 옆에 묶어 둬라.”
“…예.”
입맛을 다신 필립이 몸을 돌렸다. 주위를 작게 한 바퀴 돈 이안이, 말을 묶고 있는 필립의 곁으로 다가갔다.
필립이 중얼댔다.
“괜찮을까요. 아무리 봐도, 마물이 된 것 같습니다만.”
“무슨 상관이야. 타고 끌 수만 있으면 되지.”
말에서 내린 이안이 고삐를 던져주며 말했다. 필립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뭐, 그렇겠습니다만.”
“단단히만 묶어 둬라. 혹시 자는 사이에 괴상하게 변이해 버릴지도 모르니까.”
덧붙인 이안이, 성물 스튜에서 번지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몸을 돌렸다.
“변이….”
말들을 바라보며 중얼댄 필립이, 고정끈의 매듭을 더 힘껏 고쳐 조였다.
***
다음날에도 말들의 상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눈동자가 탁하게 물들고 털의 윤기가 사라진 게 변화의 전부였다. 아니, 전부는 아니었다. 녀석들은 더 이상 먹지도 자지도 않았으니까.
“…언제 돌변해서 달려들지 모르니, 잘 지켜보겠습니다.”
녀석들을 마차에 고정한 필립이 마부석에 오르며 내뱉었다.
“그러던가.”
마차 지붕에 앉은 이안이, 그에게 가죽 수통을 던졌다. 안에는 델라 루의 은총으로 정화하고 한차례 팔팔 끓인 물이 가득 들어있었다.
성물을 불경하게 사용한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었다.
마차가 출발하는 가운데, 이안이 안장에 오른 메브를 돌아보았다.
“탈 만하시오?”
고개를 숙인 채 터덜터덜 걷는 말을 내려다본 메브가 견갑을 으쓱였다.
“그래. 어쨌든, 말을 듣긴 하는구나.”
마물을 탄 성기사라. 진귀한 광경인데.
속으로 읊조리며, 이안이 시선을 돌렸다. 냇물을 가로지른 마차가 어느새 숲길로 들어섰다.
한순간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통 이끼와 곰팡이, 버섯들로 뒤덮인 숲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비틀린 가지를 위아래 할 것 없이 제멋대로 뻗었고, 그 사이로 형광 물질 같은 청록색 빛이 번졌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풍경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조금씩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안이 현실의 경계를 넘었다 느끼는 건, 비단 그런 몽환적인 풍경 때문만이 아니었다.
포자만큼이나 자욱한 오염된 마력. 그리고 거슬린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불쾌감이 온몸을 감쌌기 때문이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질감이었다.
그저 기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이안은 감각이 어그러지고 왜곡되는 걸 느끼고 있었다. 감지 능력이 형편없어졌다는 의미였다. 마경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섰다는 뜻이기도 했다. 비상식과 비현실의 영역에 완전히 발을 들인 것이다.
‘어쨌든, 제대로 찾아오긴 한 거네.’
문득, 내면에서 작은 울림이 일었다.
뭐. 먹잇감이 가까워졌단 거냐?
이안이 혼돈의 파편을 관조하며 내심 중얼댄 그때, 마차의 문이 벌컥 열렸다. 완벽하게 무장한 샬롯이 지붕 위로 날렵하게 기어 올랐다.
“왜?”
“마물이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전투 도끼를 옆에 내려놓으면서, 샬롯이 덧붙였다.
“뭐가 나오건, 내가 상대하겠다. 몸 상태가 완벽하게 돌아왔는지 확인하고 싶거든.”
“그러던가. 잡몹을 대신 잡아 준다는데, 나야 좋지.”
“잡몹…? 그게 뭐지?”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또 안 죽는 놈들일 수도 있다. 용쓰지 마.”
“알고 있다. 그냥 토막만 낼 거야.”
샬롯이 도낏자루에 손을 가져간 건, 그렇게 삼십 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다 잠든 건가 했는데. 아니었군.”
샬롯이 몸을 웅크리며 내뱉었다. 그제야 그녀와 같은 방향을 돌아 본 이안은, 숲의 그림자 너머로 드리운 푸르스름한 실루엣들을 눈에 담았다.
“어제 네가 본 놈들은 아니겠네.”
“딱 봐도 벌레는 아니네요. 그보단… 아주 예전에 본 것들이랑 비슷하게 생겼군요. 물론 저것들이 조금 더 역겹긴 합니다만.”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필립이 내뱉었다. 메브가 곧바로 첨언했다.
“그 고대수가 있던, 오염된 숲의 마물들과 닮았군.”
아, 그 동충하초들? 이안은 짧게 코웃음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것들은 고블린이나 코볼트가 아니라 트롤들이었지만.
세 마리의 트롤은 온몸이 푸르스름한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다. 머리에는 각자 갓이 넓은 주황색 버섯을 달고 있었는데, 눈구멍에서 자라난 것들이었다.
어쨌건, 마차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에도 녀석들은 고함을 지르거나 달려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시시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내뱉은 샬롯이 지붕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마차가 한차례 덜컹대고, 전투 도끼를 몸에 바싹 움켜쥔 그녀의 뒷모습이 화살처럼 멀어졌다. 멋대로 뒤틀린 나뭇가지들을 날렵하게 박찬 그녀가, 삽시에 곰팡이 트롤들에게로 쇄도했다.
놈들은 여전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콰직-!
샬롯이 내리찍은 도끼가 가장 앞에 선 놈을 정수리부터 가슴팍까지 갈랐다. 우뚝 멈춰선 트롤의 머리가 좌우로 쩍 갈라졌다. 피가 튀지는 않았다. 대신 점액질처럼 푸르스름한 체액이 흘러내렸다.
놈을 밀쳐내며 멈춰선 샬롯이 도끼날을 뽑아 다시 한번 힘차게 내리쳤다. 우지직, 이윽고 완전히 반으로 갈라진 트롤이 좌우로 쓰러졌다. 풀썩, 반짝이는 포자들이 먼지 더미처럼 번졌다.
도끼날에 묻은 체액을 휙 털어내며, 샬롯이 곧바로 다른 트롤에게로 달려들었다.
“…….”
이안은 허물어진 트롤의 시체를 여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놈은 세로로 반 토막 난 채로도 아직 꿈틀대고 있었다. 단면에서 흘러내린 체액이 뚝뚝 떨어졌다. 체액은 불그스름한 땅에 넓게 번지며 스며들더니, 곧 부글대며 자리를 잡았다.
이안이 중얼댔다.
“저건 곰팡이 트롤이 아니라, 트롤 모양 곰팡이 같은데.”
“뭐가 됐건, 식욕이 뚝 떨어지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고 샬롯의 싸움을 구경하던 테사이아가 중얼댔다.
샬롯은 벌써 두 번째 트롤의 머리를 날리고, 놈의 팔다리를 토막 치는 중이었다.
동족이 둘이나 죽었는데도, 마지막 남은 한 놈은 아무런 전의도 없어 보였다.
전의는커녕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쩍, 놈의 정수리로 샬롯의 도끼가 여지없이 틀어박혔다.
이안의 고개가 뒤로 휙 돌아간 건 그때였다.
“저게 어제 샬롯이 본 녀석들 같은데.”
나뭇가지 사이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벌레들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자리 같은 기다란 날개를 가진 거대 지네였다. 좌우로 벌어진 아가리가 냄새를 맡듯 움직였다. 몸통에 뒤덮인 작은 버섯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놈들이 지나친 궤적을 따라 푸르스름한 가루들이 흩날렸다.
“야옹아! 뒤!”
테사이아가 소리쳤다. 마지막 트롤을 조각내던 샬롯이 홱 고개를 돌렸다. 날아드는 두 벌레를 눈에 담은 그녀가 볼에 튄 체액을 손등으로 닦고는 뛰어 올랐다.
꽈지직-!
곰팡이 벌레 한 마리가 도끼에 찍혀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이리저리 꿈틀대는 놈 위로 올라탄 샬롯이 도끼를 마구 내리치며 이어질 공격에 대비했다.
불필요한 대비였다.
“……?!”
그대로 그녀를 지나친 다른 한 마리가, 토막 난 트롤의 단면 위에 내려앉은 것이다. 아가리를 쩍 벌린 놈이 머리를 그 안에 처박았다.
샬롯의 얼굴에 드물게도 당황이 번졌다. 아마도 완전히 무시당했다는 생각 때문일 터였다.
테사이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댔다.
“보통, 온순한 마물이란 건 없지 않아?”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어두운 본능을 가진 것들이니. 하지만….”
메브가 자신이 탄 말을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여기선 예외를 여러 번 보는군.”
그녀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때, 샬롯이 트롤을 빨아 먹고 있는 벌레의 머리를 내리쳐 몸에서 분리해 버렸다.
머리를 잃은 몸통이 그대로 날아올라 체액을 뚝뚝 떨어뜨리며 멀어졌다.
샬롯은 굳이 뒤쫓지 않고, 남은 머리를 발로 뻥 차버리고는 마차로 몸을 돌렸다.
달려오는 그녀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전투 같지도 않은 전투였던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펄쩍 뛰어 마차 지붕에 착지한 샬롯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중얼댔다.
“어이가 없군. 어쩌면 어제도 날 발견하지 못했던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
내뱉던 그녀가 곧 켁켁대는 기침을 토해냈다. 이안의 시선에, 그녀가 덧붙였다.
“그 가루를 삼켜서 그렇다. 목이 간지럽군.”
“…당장 마부석으로 내려 가라.”
“……?”
이어진 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샬롯이 순순히 필립의 옆으로 내려갔다. 이안이 턱짓했다.
“필립. 그 녀석에게 신성력을 좀 쏴 줘. 골고루.”
“예.”
필립이 오른손을 펼쳤다. 그의 손아귀에서 번진 흐릿한 빛이 샬롯의 전신을 감쌌다. 일광욕을 하듯 눈을 감으면서, 그녀가 내뱉었다.
“델라 루의 은총이 있어서 괜찮다만.”
“예방 차원이야. 재수 없으면, 이곳의 괴물들과 똑같아질지도 모르니까.”
“똑같아… 진다고요?”
필립이 인상을 찌푸리며 내뱉었다. 메브는 물론 테사이아도 마차 옆으로 몸을 쭉 빼고는 이안을 돌아보았다.
짧게 입맛을 다신 이안이 말했다.
“저놈들이 우릴 공격하지 않는 건, 우리가 곧 이 생태계의 일부가 될 거라 여겨서인 것 같거든.”
“그러니까, 기다려주고 있단 말입니까? 저들과 똑같아질 때까지요?”
“추측이야. 여기선 숨만 쉬어도 아까 그 트롤이나 이 말들처럼 감염되는 것 같으니까.”
“…갑자기 숨을 그만 쉬고 싶어지는군요.”
필립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샬롯이 고개를 주억댔다.
“확실히. 여기 놈들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였다. 날아다니는 지네들은 아예 처음 보는 놈들이지만….”
“여기서 새로 태어났거나 변이된 거겠지.”
첨언한 메브가 주위를 돌아보며 읊조렸다.
“이곳의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어쨌든 그럼, 이 숲의 마물들은 계속 우릴 공격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필립이 덧붙인 말에, 이안이 마차 천장에 드러누우며 대답했다.
“두고 보면 알겠지. 우리를 감염시키려고 달려드는 것들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방심은 하지 마라.”
“마물이 마차를 끌고 있는데, 방심을 할 수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신성력을 거둬들인 필립이 입맛을 다시며 고삐를 고쳐 쥐었다.
이미 곰팡이의 숙주가 된 말들이 터덜터덜 나아갔다. 구불구불하게 휘어진 산길을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