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349
349화
두 상단주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안 역시 입가에 옅은 헛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군사 훈련 같은 걸 시킨 적도 없는데….’
야인 전사들이 갈수록 군단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속감이 생겨서인지도. 단기간에 혹독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물론 자유분방함을 아예 잃은 건 아니었다.
“저게 다 뭐지…?”
“저자는 아는 얼굴이군. 설원에서 모피를 사던 상인이야.”
꼿꼿하게 선 와중에도 목소리를 낮춰 쑥덕대고 있었으니까.
이안이 트라벨가로 가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가 이끌고 온 마차들을 보며 어리둥절 해하는 중이었다.
물론, 바로 상황을 파악한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전사께선 진정으로 위대하시군. 늘 한발 앞서 생각하시는 거야.”
“눈물이 날 것 같군. 쉬지도 않으시고, 우리들을 이렇게나 신경 써 주시다니.”
백인장이나 경험 많은 노련한 전사들이 그랬다.
…또 난리가 나겠군.
생각하며, 이안이 고삐를 당겼다.
전사들을 향해 다소 겁먹은 듯 나아가던 적마가 곧바로 멈춰섰다.
꽤 말끔해진 군단병들을 한차례 훑어본 이안이 입을 열었다.
“너희가 쓸 병장기다. 욕심내지 말고, 필요한 것만 챙겨라. 결국은 전우들이 쓰게 될 물건들이니까.”
“…….”
적막은 길지 않았다.
“오오오오-!”
“위대한 대전사여!”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파엘과 조이스가 깜짝 놀란 듯 어깨를 들썩이고, 보르와 레긴이 입을 꾹 다문 채 전사들을 눈에 담았다. 둘은 어째서인지 묘하게 눈시울이 붉어진 채였다.
‘귀 아파 죽겠네, 진짜….’
소리를 못 지르게 할 수도 없고.
심드렁하게 입맛을 다신 이안이 안장에서 내렸다.
득달같이 달려온 볼베르가 고삐를 받아 쥐었다. 이안이 고함 사이로 내뱉었다.
“나랑 같이 밤새 온 이들이다. 피곤할 테니까 다른 백인장들과 함께 도와주고. 개판 나지 않게 잘 통제해.”
“예. 대전사. 염려 마십시오. 고생 많으셨습니다.”
볼베르가 깍듯하게 대답했다. 털 옷만 걸친 채로도 허리춤에 장검은 착용한 채였다. 삼각뿔 형태의 무게추가 눈에 띄었다.
불씨의 장검.
보아하니 다들 잘 나눠 가지고 애지중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짐 마차에 덮인 천을 거두기 시작한 상단 인원들을 눈에 담은 볼베르가, 군단병들 쪽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나다 싶은 놈들 열 명만 튀어 나가!”
저건 또 언제 배웠담. 피식한 이안이 군단병들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감사합니다. 대전사.”
“고생하셨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그가 다가가자, 다들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 공간을 만들었다. 덕분에 이안은 걸음을 늦출 필요도 없었다.
‘마법이 따로 없네.’
등 뒤로 분주한 소리가 이어졌다. 달려나간 군단병들이 상단 일꾼들을 도와 물건들을 옮기며 만들어내는 소리였다. 앞 열에 선 군단병들의 크고 작은 탄성이 번졌다.
“카르하여… 무기만 있는 게 아니었군.”
“저게 다 우리 거라니. 대전사께서 마법이라도 부리신 모양인데.”
“감사할 따름이군. 그 먼길을 앞장서 움직이셨으면서, 쉬지도 않고 또 이렇게 우리부터 챙기시다니.”
“목숨 바쳐 싸우는 것으로 보답할 수밖에, 암.”
…서로 가지겠다고 개판 날 일은 없겠네.
이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행렬의 후미를 뚫고 빠져나가자, 멀찍이 모여 선 사제들이 보였다.
이안의 시선을 받은 그들이 왼손을 가슴에 얹으며 고개를 숙였다. 물론 미구엘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고생 많으셨소. 역시. 대공 전하께 병장기를 받으러 가셨던 거군.”
보아하니 저들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받은 게 아니라 빌려온 거다. 쓰고 남은 건 돌려줄 거야.”
미구엘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거, 멀쩡하게 남는 게 있겠수?”
“아예 없진 않겠지. 아마도.”
하여간 눈치 빠르긴.
마주 웃음 지은 이안이 덧붙였다.
“루시는?”
“화로에 성화를 지피고 있소. 이번엔 장작 하나하나에 기도를 올리면서 천천히 해본다더군.”
피를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자! 잠시 이쪽을 주목해 주시오!”
파엘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파엘과 조이스가 마차 위에 서 있었다.
마차 주위로는 적당한 빈공간이 만들어진 상태였다. 군용 짐마차에서 내린 물건들을 늘어놓은 게 분명했다. 둘이 선 마차 짐칸에도 뚜껑을 연 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북부인 전사들부터 앞으로 나오시오. 우선 무기부터 하나씩 고르시고, 방어구는 무기를 받지 못한 분들에게 우선순위를 주겠소. 하나씩 돌아보고,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직원에게 말하시오.”
“가격은 신경 쓰지 마시오. 북부의 초인께서 이미 값을 치르셨으니.”
조이스가 덧붙였다.
아까만 해도 안장에서 떨어질 것 같더니. 지금은 둘 다 얼굴과 목소리에 생기가 넘쳤다.
“대전사여-!”
“위대한 대전사를 찬양하라!”
양팔을 치켜든 군단병들이 소리쳤다.
그들이 우르르 달려들지 않는다는 것까지 확인한 이안이, 다시 미구엘을 돌아보았다.
“내 숙소로 안내해 줘.”
“끝까지 안 보시고?”
“됐어. 굳이. 당장은 식사가 더 급해. 이틀간 육포 몇 조각만 먹은 게 전부라서.”
“뭐라고…?! 루 엔테르 맙소사!”
미구엘이 눈을 치켜떴다.
“형씨나 루시나, 하여간 사람 놀라게 하는 데는 도가 트셨소! 설마하니 잠도 안 주무신 건 아니시겠지.”
“…….”
“…맙소사. 염병, 당장 갑시다. 드시고 주무시오. 아무리 형씨가 초인이라도 그러다 골병든다니까.”
미구엘이 홱 몸을 돌렸다.
새끼. 잔소리는.
코로 웃음을 흘리면서도, 이안은 선선히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루시아는 이안이 식사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한번 해 봐서 그런가. 이번엔 어렵지 않네요. 화로가 작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그다지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연신 조잘댔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은 미구엘이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넌 뭐든 빨리 배우잖냐. 이제 익숙해진 거겠지. 안 그렇수?”
입을 우물대던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조심해라. 부원장 말에 따르면, 쉬운 걸 택하려는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니까.”
“…의외로 부원장님이랑 죽이 잘 맞으시네요. 전부터.”
“맞는 말을 하니까.”
루시아가 입술을 오물대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번졌다.
“성자 대행. 식사 중이십니까?”
문 너머에서 파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식사가 시작된 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지난 시점이었다.
그사이 이안은 온갖 것들을 들이붓고 끓인, 꿀꿀이 죽이나 다름없는 스튜와 멧돼지 고기를 몇 접시나 비운 상태였다.
솔직히 맛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시장이 반찬이었다.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고, 파엘이 안으로 성큼 한 걸음 들어섰다.
“아직 식사 중이셨군요.”
“거의 다 먹었소.”
씹던 걸 삼키고 대답한 이안이 그를 바라보았다.
“벌써 다 끝나셨소?”
“예. 거의 다 끝났습니다.”
파엘이 빙긋 미소 지었다. 피로가 느껴지는 와중에도 뿌듯함이 묻어나왔다.
“최대한 많은 인원에게 골고루 분배하는 걸 우선했습니다. 일단 한 바퀴 돌았고, 나머지는 이제 백인장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군요. 다들 말을 잘 따라준 덕분에, 일이 편했습니다.”
“잘됐군. 수고하셨소.”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파엘이 몇 걸음 더 안으로 들어섰다.
보르와 레긴이 뒤따라 집안으로 들어왔다. 상당히 커다란 금속 상자를 양쪽에서 나눠 든 채였다.
이안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이젠 내 차례였군.”
“피곤하시다면, 나중으로 미룰까요?”
“아니오.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대답한 이안이 턱짓했다. 둘이 금속 보관함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주문 회로로 보이는 문양이 음각된 외형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물로 입을 헹군 이안이 옆으로 몸을 숙였다. 곧 식탁 옆에 미리 내려놓았던 봉인함을 집어 든 그가 일어섰다.
“게다가 나도 줄 게 남았잖소.”
걸음을 옮긴 이안이 방 중앙에 봉인함을 내려놓고는 뚜껑을 열었다.
“루 엔테르 맙소사….”
미구엘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안에서 번지는 황금빛을 응시하는 그의 눈이 절로 몽롱하게 풀어졌다. 루시아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봉인함 내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금화가 말 그대로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돈이 많으실 줄은 알았지만… 정말 이 정도이실 줄은 몰랐소. 이게 다… 몇 개요?”
사제답지 않은 눈빛이 된 미구엘이 더듬더듬 물었다. 이안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전에 좀 빼서 쓰긴 했지만… 그래도 천 개 가까이 될 것 같은데.”
“제국 금화가… 천 개….”
침 떨어지겠네.
하긴. 평범한 사람은 평생 먹고살고도 남을 만큼의 돈이었다.
이안이 파엘을 마주 보았다.
“풍차 상단의 물건 대금까지 하면, 이걸로도 부족할지도 모르겠군.”
“괜찮습니다. 남는 금액은 황녀 전하께 청구할 예정이니까요. 그보다….”
상인보다는 호인의 미소를 지은 파엘이, 걱정스럽게 목소리를 낮췄다.
“이걸 다 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전 재산이실 것 같습니다만.”
그러게, 시발. 이걸 이렇게 한 방에 다 쓰게 될 줄은 나도 몰랐네.
이안은 내심 읊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 준 건 아니오. 조금은 남겨 뒀지.”
어쨌건, 세라스가 준 마석함에 금화 몇 개를 남겨 두긴 했다.
고개를 끄덕인 파엘이 봉인함의 뚜껑을 닫았다. 몇 개인지 세어 보기는커녕, 지금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한 태도였다.
곧바로 몸을 돌린 그가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꺼내 보십시오.”
그가 금속 보관함의 자물쇠를 풀고는 뚜껑을 열었다.
그 앞으로 다가선 이안의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귀하다더니….”
그를 맞이한 건, 작고 새하얀 금속 조각들이 비늘처럼 겹겹이 이어진 미늘 갑옷이었다. 조각 하나하나가 아주 정교한 오각형이었다. 안감을 사슬로 덧댄 줄 알았건만, 뜻밖에도 판금이었다.
아주 얇은 판금을 정교하게 겹쳐 이어 붙여서,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움직임이 아주 편해 보였다. 동시에 보기보다 가벼웠다.
대체 이 위에 비늘들을 어떻게 이렇게 붙인 거지. 생각하면서도, 예전에 본 비슷한 물건을 떠올린 이안이 입을 열었다.
“요정의 장비 같은데.”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옛 고위 요정이 쓰던 물건이라고 합니다. 백 년도 더 된 물건이라는데, 어제 만든 것 같지 않습니까?”
이안이 집어 든 미늘 갑옷을 빤히 응시하는 사이, 파엘이 말을 이었다.
“성자 대행께서 말씀하셨듯이, 가볍고 단단하면서도 주문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고대 주문이라더군요.”
“그래. 정말이군….”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이미 정보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고귀한 요정의 백린 갑옷.
유물 등급으로, 보기보다 방어력과 내구도가 아주 높았다. 그런데도 요구 능력치는 낮았다. 아마 가볍기 때문일 터였다.
‘세트 장비라니….’
심지어 다섯 개 부위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세트 아이템이었다.
치명타 피격 확률 감소나 피격시 무기 파괴 같은 좀처럼 보기 힘든 옵션도 여럿 달려 있었다. 짝이 맞는 장비를 함께 착용할수록 발동 확률이 높아지는 식이었다.
백린의 가호라는 주문이 내장되어 있었는데, 주문이 적중됐을 때 자동으로 발동되는 보호 주문이었다. 다섯 개를 전부 착용하면 백린의 수호라는 스킬로 이름이 바뀌는 것 같았다.
“진은을 섞어 만들었다는데, 보시다시피 가볍고 단단합니다. 누군가 날붙이를 휘두르더라도, 정방향으로는 비늘 하나 깨뜨리기 어려울 겁니다.”
파엘이 막힘 없이 설명했다.
이안이 만족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오히려 날이 미끄러지겠죠. 역방향으로는, 칼날이 비늘에 걸릴 테고요. 오히려 이가 나갈 겁니다.”
“훌륭하군….”
“각반까지 함께 착용하신다면, 날붙이는 물론이고 마물이라 해도 성자 대행의 몸에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을 겁니다.”
“다른 부위는 구할 수 없었던 모양이군.”
이어진 이안의 말에, 파엘의 미소가 순간 옅어졌다.
“예. 어깨나 소매의 홈을 보고, 저도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구매자에게 물어도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잠시 머뭇거린 파엘이, 슬며시 루시아와 미구엘 쪽을 일별하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사실상, 장물에 가까운 물건이라서 말입니다.”
“그런 거로 그렇게 속닥댈 필요 없수. 우리가 그렇게 꽉 막힌 사람들은 아니라서 말이오.”
넌지시 덧붙인 미구엘이 실실 웃었다. 루시아도 입꼬리만 당겨 미소 지었다. 이안도 종종 보여주곤 하는 용병의 미소였다.
하여간, 하는 짓이 똑같다니까.
피식한 이안이 말을 이었다.
“암시장에서 구한 물건이오?”
“제국에는 한때 유명했으나 몰락해 가는 귀족 가문이 아주 많습니다. 대부분 내전이나 전쟁의 시대에 이름을 알렸던 가문이죠.”
파엘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업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비밀 창고에는, 전리품이나 약탈한 보물들이 남아 있는 법입니다. 물론 그런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내다 팔 수는 없습니다만, 뜻이 통하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지 않습니까.”
돈이 부족할 때마다 곶감 빼먹듯이 남몰래 팔아먹는다는 거군….
피식 웃은 이안이 백린 갑옷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길이 있긴 하군. 부족한 부위는 내가 본래 쓰던 걸 사용하면 그만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파엘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흡족해하시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군요. 자신만만하긴 했습니다만. 혹여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했습니다.”
“까다로운 주문이었는데, 기대 이상이오. 수고했소.”
물론 풀 세트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둘만으로도 차고 넘칠 만큼 훌륭했다. 무려 유물 등급이 아닌가. 부숴 먹지 않고 쓴다면, 언젠가 다른 부위를 손에 넣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테사를 다시 만날 때까지 쓸 수 있다면….’
어디까지 멀리 보는 거람. 아직 당면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스스로에게 코웃음을 친 이안이 갑옷을 다시 상자에 되돌릴 찰나.
“보관함도 드리겠습니다.”
보르와 눈빛을 교환한 파엘이 덧붙였다.
“크기에 비해 가볍고, 아주 견고한 물건입니다. 녹이 슬지도 않습니다. 표면의 주문 회로들이 그런 종류의 파괴를 막아주지요.”
서비스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턱짓했다.
“그럼 저 금화가 담긴 상자를 가지고 가시오.”
오래 사용한 봉인함이지만, 보내주는 게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사실, 테사이아를 납치하기 위해 쓰던 감옥이 아니던가. 더 튼튼하고 가벼운 대용품이 생겼으니,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파엘이 고개를 숙였다.
“예.”
“피곤할 텐데, 이제 물러들 가서 푹 쉬시오. 한 며칠 머물면서 충분히 체력을 회복하고 돌아가시오. 마을 주민들이 잘 대접해 줄 거요.”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성자 대행. 그런데….”
슬쩍 마른 입술을 혀로 훔친 파엘이 덧붙였다.
“출진은 언제 하실 예정이십니까?”
지켜보던 미구엘과 루시아를 차례로 일별한 이안이, 이윽고 아무렇지 않게 상자를 닫으며 대답했다.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