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애물단지
‘그래서 그랬던 건가.’
가온은 그제야 블루블러드가 왜 이중적인 면모를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던 보쿰, 그리고 적대적이었던 산하 조직들.
블루블러드가 둘로 나뉜 상황이라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상황을 알게 된 것과 그걸 이해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으므로.
물론 산하 조직의 공격으로 큰 위기를 겪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적대적인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가온은 이어지려는 상념을 애써 멈추고 다시 물었다.
“다른 거대 조직들은?”
“다른 곳도 블루블러드와 다르지 않아. 같은 문제는 아니겠지만, 내부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 같았어.”
‘원’은 애초에 도시 내정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가온은 렌의 덧붙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은 딱히 희망을 가지지도 않았다.
원이 그런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이었으므로.
“그러니까 마왕군이라는 가장 거대한 문제를 고작 내부의 작은 일 때문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단 이 말이지?”
그야말로 소탐대실의 전형이다.
가온은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니 아주 수확이 없었던 건 아니야.”
렌도 그런 거대 조직의 작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에서 거대 조직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다.
도시의 대소사에 가장 크게 연관되어있는 그들을 제외해버리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생길 것이 분명했으니까.
아니꼬워도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다.
“네가 고생이 많았겠어.”
가온은 그런 렌의 노고를 모른 척하지 않았다.
하지만 렌의 표정은 썩 개운하지 못했다.
“어쨌든 씨앗은 무사히 발아했으니 조금 상황을 지켜보자고.”
가온은 렌을 달랬다.
현 상황이 가장 답답한 건 그였지만, 애써 속내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전쟁이 일어날 건 필연적이지만, 그도 아직 준비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온은 여전히 성장이 목말랐다.
종래에는 마왕을 상대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지금 당장 대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쟁 준비가 다소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야지. 후우, 그래야겠지.”
가온은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화제를 바꿨다.
“앞으론 어지간하면 도시 밖으로 떠나지 않을 생각이야.”
“그래. 더 이상 너흴 가로막는 존재는 없을 테니까.”
렌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론 어떤 일을 할 생각이지? 너희 실력에 맞는 마수들을 사냥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 될 텐데.”
가온은 렌에게 자신의 경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렌은 당연히 가온이 초인이 되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블루블러드 산하 조직들을 박살낸다는 것은 누구 하나가 6레벨에 들어서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가온도 렌의 추측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 수지타산이 맞지 않지. 그래서 의뢰를 받을까 해.”
“의뢰?”
렌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라도 들을 듯 다시 되물었다.
“맞아. 의뢰.”
“하지만, 가온. 의뢰는…….”
렌은 영 내키지 않는다는 기색으로 안색을 굳혔다.
흑마법사 샤키아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케일 모험단에게 쫓겨 도시를 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것도.
모두 쟈올의 의뢰를 가온에게 소개한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때문에 렌은 이따금 마수사냥꾼들에게 의뢰를 연결해주던 것도 극도로 줄여버렸다.
언제 또 쟈올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몰랐으므로.
“걱정하지 마, 렌. 그때와 지금은 달라. 그땐 내게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
가온은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비췄다.
가온의 자신감이 렌에게 닿은 것일까.
“…….”
렌은 꽤 오래 침묵을 유지했지만, 눈동자는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곤 결국 살짝 눈을 감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아. 널 원하는 곳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볼게.”
“고마워, 렌.”
“하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 너와 네 동료들을 모두 사용하려면 의뢰비가 만만치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그 가격을 지불하려는 사람이 있을걸.”
가온은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며 씨익 웃었다.
렌도 따라 피식, 웃었다.
“참, 그리고.”
가온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품에 손을 넣었다.
그가 품에서 다시 손을 뺐을 땐, 웬 주머니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게 뭐지?”
렌의 물음에 가온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 말했다.
“아티팩트.”
“뭐? 아티팩트?”
렌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가온이 꺼낸 내용물은 결코 그리 가볍게 말할 만큼 가치가 없는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온은 주머니를 렌에게 내밀었다.
“한 번 열어봐.”
“…….”
렌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머니를 열었다.
달그락.
물건이 부딪히며 나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라고?’
렌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반지, 팔찌, 귀걸이, 목걸이 등등.
다양한 형태의 아티팩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렌이 아연실색해 물었다.
“이게……다 뭐야?”
“뭐긴. 아티팩트라니까.”
가온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확히는 불 속성에 관련된 아티팩트지.”
“불 속성? 이거……설마?”
렌은 가온의 대답에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 모양인지 아티팩트를 향했던 고개를 들어 가온을 바라보았다.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케일 모험단의 물건들이지.”
“……허.”
렌은 다시 고개를 내려 아티팩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려 10개의 블루블러드 산하 조직이 눈이 멀어 달려들었던 원흉을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익숙한 것들이 보이는군.”
렌은 나지막이 말하며 몇몇 아티팩트들을 만졌다.
모두 케일이 주력으로 사용하던 물건들이었다.
당연히 그 효과나 성능이 매우 잘 알려진 것들이었기에 그 물건의 가치 또한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왜……?”
“사용할 사람이 없어.”
“사용할 사람이 없다고?”
“우리 중에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디산즈와 레이나뿐인데, 알다시피 디산즈는 공방을 꾸리고 나면 마도구를 제작하는 일에 열중할 예정이지. 그래서 딱히 사용할 일이 없어.”
“그럼 레이나는?”
“레이나는 바람 속성을 다루는 마검사지.”
“아!”
“그래서 불 속성인 케일의 아티팩트들은 레이나가 다루기에 다소 결이 맞지 않아.”
“허, 이 귀한 게 애물단지가 되어버리다니.”
렌은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 턱을 쓸어내렸다.
켄트 모험단의 아티팩트를 노리고 접근했다가 몰살당한 이들이 떠오른 탓이었다.
왜 그들이 헛된 소문을 믿어가며 불나방처럼 가온 일행에게 덤벼들었겠나.
그건 모두 다 케일 모험단이 가졌던 아티팩트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켄트 모험단의 아티팩트는 성능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켄트 모험단은 블루블러드라는 든든한 뒷배 덕분에 외부에선 섣불리 그들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런 까닭에 케일 모험단은 그들이 가진 아티팩트의 정보를 공개하는 걸 꺼리지 않았다.
아티팩트를 잃어버리는 경우를 대비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아티팩트라는 걸 알려두면 추후 이를 습득한 자도 쉽게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어버리므로.
‘오염지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고, 유물 탐사에 실패하거나 누군가의 급습을 받는 등의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런 경우, 케일 모험단은 끝까지 추적해 사건의 경위를 파악한 다음 아티팩트를 가지고 오기 위해 무력 사용도 불사했다.
나팔수가 되어 떠벌려 놓은 것들이 그들에게 충분한 명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세력이 굳건할 때야 괜찮은 방법이었고.
모두 전멸한 지금은 성능은 확실히 보장되나 소유권이 없는 물건에 불과했다.
얼마나 강렬한 무기인지 잘 알기에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랄까.
그렇게 많은 인원이 죽고 난 뒤에야 헛된 욕심이라는 걸 깨닫게 될 만큼 매혹적인 물건들이었다.
케일 모험단의 아티팩트들은 말이다.
헌데 정작 새로운 소유주들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물건에 불과하다는 게 참 우습지 않은가.
“이걸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나?”
“비슷한 가치를 가진 바람 속성의 아티팩트와 교환할 수 있을까?”
“으음…….”
렌의 미간이 절로 모였다.
“까다로운 문제네. 하지만……완전히 불가능할 거 같지는 않아.”
렌은 많은 아티팩트 중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아마도 이게 교환을 성사시켜주지 않을까 싶거든.”
렌이 집어든 건 팔찌였다.
커다란 루비 같은 붉은 보석이 중앙에 박혀 눈길을 사로잡는 아티팩트였다.
이 아티팩트는 케일이 가장 애지중지 아끼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물건이었다.
“이 아티팩트에는 엄청난 옵션들이 있어.”
“뭐가 있지?”
“불 속성 감응력 증가, 불 속성 마법 주문 보조, 불 속성 마법 위력 증대, 마나 회복 속도 증가.”
“많군.”
“많지. 이런 엄청난 옵션이 많은 만큼 이걸 탐낼 곳도 많아.”
“그래?”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비록 어떤 마법 주문도 각인되어 있지 않지만, 성능 하나는 확실하지. 레벨이 올라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잖나. 수요가 없을 수가 없지.”
렌은 오랜만에 의욕에 불타올랐다.
가치 있는 거래를 성사시키겠다는 의욕이었다.
“일단 맡겨 놓고 가게. 내가 최선을 다해보지.”
“고맙다, 렌.”
“뭘.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온은 그런 반응이 그의 배려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이걸로 쟈올에 대한 빚은 없던 걸로 하자고.”
“음?”
“그렇게 해. 이 정도면 충분히 빚을 갚았다고 생각하니까.”
다믈과 디산즈의 문제를 해결해준 것부터 아티팩트의 교환까지.
그의 헌신적인 노력은 충분한 값어지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그래. 이걸로 빚쟁이 신세를 끝낼 수 있겠군.”
렌도 가온의 생각을 읽었기에 더 덧붙이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홀가분해?”
“그래, 홀가분하군.”
장난기 섞인 가온의 물음에 렌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에 가온도 따라 웃었다.
* * *
도시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가온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정작 그들은 관찰자들이 따분해할 정도로 평이한 시간을 보낼 따름이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저게 정말 인간의 식사량이란 말이지…….”
“끝도 없이 들어가는군.”
가온의 엄청난 식사량에 혀를 내둘렀다는 것이다.
가온은 하루의 대부분을 방 안에서 보냈다.
다만 식사 시간은 딱 맞춰 식당에 등장했기에 관찰자들이 그를 관찰할 시간이라곤 그때 말곤 없었다.
가온은 끝없이 서빙되는 음식들을 쉬지 않고 먹어 치웠다.
손으로 음식을 집는다거나 묻히며 먹는 등 추잡스러운 모습 없이 깔끔한 식사 예절.
결코 빨라 보이지 않는 식사 방식이었지만, 그의 식사 속도는 의외로 빨랐다.
레이나와 유케는 식사조차 방 안에서 해결했다.
새로운 마법과 주술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는 까닭이었다.
대신전으로 간 켄트의 행보는 알 길이 없었고, 다믈은 렌이 붙여준 길라잡이와 함께 오염지대로 떠났다.
디산즈도 조용히 방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곧 완성될 자신만의 공방을 기대하며 자꾸만 치솟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한 요행이었다.
그리고 그때.
“렌 님께서 가온 님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렌의 전령이 도착했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