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9
118
“안 한다고?”
“안 해. 너나 해라, 그 퀘스트.”
지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왜??”
“보상이 마음에 안 들어.”
“…….”
“랜덤 박스가 뭐냐? 지금 나랑 장난하냐?”
아우토니카 공방 랜덤 박스란, 말 그대로 랜덤 박스였다.
상자를 열게 되면 아우토니카 공방에서 제작한 아티팩트들 중 하나가 랜덤하게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랜덤 박스에서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일종의 사행성 콘텐츠인 것이다.
“랜덤 박스가 뭐 어때서? 딱히 힘든 퀘스트도 아닌데 아우토니카 랜덤 박스 열 개면 꽤 괜찮은 거 아니냐? 니가 안 까고 박스째로 내다 팔아도 3만 골드는 될 텐데?”
천우진의 반박은 사실이었다.
아우토니카 공방의 랜덤 박스가 사행성 콘텐츠이긴 하지만, 그래도 3대 명가 중 하나인 아우토니카 공방에서 제작한 박스인지라 개당 3,000골드 정도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니가 직접 까서 쓰레기 아이템만 나와도 1만 5,000골드 정도는 너끈히 벌 텐데?”
“그래도 싫다.”
지크가 딱 잘라 말했다.
“대체 왜 싫은데?”
“이래 봬도 비싼 몸이라서. 어딜 3만 골드 가지고 부려 먹으려고.”
“…….”
“더 내놓던지, 아니면 다른 놈 알아보든지 해라.”
지크는 그렇게 말하며 내심 생각했다.
‘몇 개만 더 써라. 돈도 많은 놈이 쪼잔하게 3만 골드가 뭐냐?’
사실 딱히 거절할 만큼 나쁜 조건이 아니었지만, 천우진으로부터 보상을 더 뜯어내기 위해 일부러 비싼 척을 하는 지크였다.
“야, 친구끼리 이러기냐? 좀 봐줘라.”
“가진 게 돈밖에 없다며?”
지크가 천우진의 말을 반박했다.
“그리고 누가 친구냐? 나 친구 같은 거 없는데? 아까 친구 없다고 광고했는데, 몰랐냐?”
“…….”
“열다섯 개 주면 한다. 아님 수고.”
지크가 최후통첩을 날렸고.
“어휴. 내가 더러워서 준다, 줘.”
천우진은 하는 수 없이 보상을 아우토니카 공방 랜덤 박스 열 개에서 열다섯 개로 올려야만 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었다.
[알림 : 퀘스트 메이커 이 퀘스트에 대한 보상을 15개로 정정했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es!]지크가 냉큼 퀘스트를 수락했다.
씨익-
흥정에 성공한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치사하게. 두고 보자.”
“아이고, 무서워라.”
천우진의 협박에 지크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 혹시나 연계 퀘스트가 발생하면 그 건에 대한 보상은 책임 못 진다.”
“연계 퀘스트?”
“혹시 모르잖아. 퀘스트라는 게 유동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열다섯 개로 합의 본 거니까, 혹시나 연계 퀘스트가 뜨면 그것까지 해결해라.”
“그러지, 뭐.”
지크는 별생각 없이 천우진의 말에 수긍했다.
연계 퀘스트가 발생할 때마다 보상을 받아먹는 건 상도덕상 예의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 난 간다.”
볼일을 마친 천우진이 지크의 어전을 나섰다.
씨익-
어째서인지, 지크를 등진 천우진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두 시간 후.
지크는 햄찌, 승구, 그리고 오스칼과 함께 북부의 항구 도시인 마사바에 도착했다.
마사바는 어느 왕국에도 속하지 않은 일종의 도시 국가로서, 어업과 해운업이 발달한 곳이라 수백 척의 선박이 오가는 무역항이었다.
그러나 지크가 본 마사바 항의 풍경은 전혀 활기차 보이지 않았다.
항구 앞바다에 뜬 배라고는 10여 척의 군함이 전부였고, 그 외 모든 선박은 어선과 무역선을 가리지 않고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단체로 개점 휴업이라도 한 것 같은 그런 풍경이었다.
“확실히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네.”
지크는 그렇게 혼잣말하며 일행을 돌아보았다.
“우선 인터벤션 호텔에 가서 체크인부터 하고 용병 길드로 갑시다.”
“예, 형님.”
승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 소신이 잠시 들를 곳이 있사온데, 잠시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들를 곳이요?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지크에게 예를 올린 오스칼이 골목길로 사라졌다.
“오스칼 경은 어딜 가는 겁니까? 행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형님은 다 아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내가 궁예냐? 시끄럽고, 호텔에 체크인부터 하자. 한 며칠은 여기 붙어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지크가 발걸음을 옮겼다.
***
“흠. 지크프리트라.”
용병 길드의 직원이 지크가 내민 라이센스를 들여다보았다.
“실버Ⅲ 등급이로군?”
“예, 뭐….”
“나머지 한 명은 실버Ⅰ 등급이고.”
승구의 경우 지크보다 용병 길드 등급이 더 높았다.
지크가 용병 길드를 통한 활동보다는 개인적인 퀘스트를 더 많이 진행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둘 다 실버인 게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요즘 우리 도시는 전시 상황이라 손이 100개라도 부족하니 말일세. 그럼, 두 사람 다 잘 좀 부탁하겠네.”
그러자 지크와 승구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알림 : 용병 길드로부터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퀘스트의 내용은 역시나 단순했다.
[해적 소탕]•분류 : 반복 퀘스트
항구를 습격해오는 해적들을 소탕하라.
•진행률 : 0% (0/10)
•보상 : 100골드
지크와 승구는 망설이지 않고 퀘스트를 수락했다.
“해적들은 어디 있습니까?”
“항구 근처를 어슬렁대다 보면 해적들의 습격이 있을 걸세.”
“감사합니다.”
퀘스트를 받은 지크와 승구는 용병 길드를 나서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로 향했다.
“형님, 뭐 하십니까?”
“뭐 하긴. 마스크 쓰지.”
지크가 메타모포시스 마스크를 뒤집어쓰며 대꾸했다.
“마스크는 왜 쓰셔서 잘생긴 얼굴을 가리십니까?”
“말했잖아. 난 적이 많다고. 그리고 나 안 잘생겼거든?”
“에이. 형님이 안 잘생기셨으면 저는 뭐 오징어입니까?”
“좀 닮은 것 같긴 하다.”
“혀, 형님!”
“시끄럽고, 빨리 가자.”
지크가 승구를 재촉했다.
그렇게 용병 길드로부터 약 15분쯤 걸었을 무렵이었다.
펑, 퍼엉!
포성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해적들이다! 해적들이 나타났다!”
“놈들이 온다!”
“습격, 습격이다!”
항구 곳곳에서 군인들, 그리고 모험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해적들의 침공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거, 오자마자 전투네.”
승구가 자신의 골렘들을 불러내며 중얼거렸다.
“좋지 뭐.”
지크가 씩 웃으며 망치를 움켜쥐었다.
***
해적들의 침공은 매섭기 짝이 없었다.
해적들이 탄 란 이름의 쾌속정들은 마사바 해군의 포격을 유유히 뚫고 항구에 상륙했고, 뒤이어 치열한 백병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해적들이 단순한 도적놈들이 아니라, 강인하기 짝이 없는 북쪽 군도 사람들이란 사실이었다.
[노르드족 해병]바다의 지배자 노르드족의 해병.
노르드족 출신답게 강인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다.
•존재 구분 : NPC
•레벨 : 110
•계급 : 일병(=)
•클래스 : 배틀 워리어
뿔 달린 투구에 도끼, 대검, 망치 등으로 무장한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은 순식간에 항구에 상륙해 마사바군과 모험가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악!”
“이 미친 터프가이 새끼들!”
“힘이 너무 세!”
“수, 숫자가 너무 많아!”
마사바군과 모험가들은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의 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르드족은 워낙에 강인한 사람들이라 일개 병사조차 100레벨을 넘어가는 고레벨 전사들이었기 때문이다.
“크핫핫핫! 이 나약한 대륙 놈들! 뒈져라! 나 위킹르가 왔다!”
게다가 키가 2미터는 족히 될 법한 노르드족 장군 위킹르의 등장은 마사바군과 모험가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위킹르]노르드족 해병대 장군.
매우 뛰어난 야전 지휘관이자 전사로서, 강력한 무력을 갖춘 존재이다.
•레벨 : 190
•존재 구분 : NPC
•계급 : 준장(★)
•클래스 : 워 해머(War hammer) / 워 버퍼(War buffer)
무려 190레벨의 고레벨 NPC인 위킹르는 거대한 망치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적들을 말 그대로 ‘박살’을 내고 있었다.
또한, 위킹르가 함성을 내지를 때마다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에게는 란 이름의 버프가 걸렸기에 전투는 마사바군에게 더더욱 불리했다.
“저거 좋아 보이잖아?”
위킹르를 본 지크의 눈이 반짝였다.
사실 지크는 위킹르를 본 게 아니라, 그가 쥔 망치를 보고 있었다.
[냉룡의 앞발]냉룡의 숨결이 깃든 망치.
강력한 한기가 깃들어 있는 마법의 망치로써, 무기 전체가 화이트 드래곤의 뼈로 이루어져 있다.
•타입 : 둔기 (망치)
•등급 : 유니크
•속성 : 수(水) 속성
•레벨 제한 : 140
•공격력 : 1,650
•내구도 : 28 / 30
•효과 :
– 드래곤 슬레이어 : 드래곤 타입의 적을 상대로 8%의 추가 데미지
– 엄습하는 냉기 : 타격 시 적을 둔화시킵니다.
– 냉기 중첩 : 3회 타격 시 적을 1초간 얼립니다.
때마침 의 내구도도 다 닳았고, 레벨에 따라 무기 교체 시기가 다가오고 있던 지크였기에 위킹르가 가진 은 굉장히 매력적인 무기일 수밖에 없었다.
“야, 햄찌야. 그만 자고 일어나 봐.”
“뀨우? 왜 자는데 깨우냐, 이 주인 놈아!”
지크의 어깨에 매달려 졸고 있던 햄찌가 졸린 눈을 비볐다.
“나 버프 좀 걸어줘라.”
“뀨? 버프가 벌써 필요하냐?”
“사정이 있어서 그래.”
지크의 눈길이 주변의 모험가들을 훑었다.
‘제네시스 놈들이 꽤 있어. 여기서 디버프 필드를 전개했다간 시선이 집중될 거다.’
불과 며칠 전 디버프 필드를 이용해 제네시스 길드원들을 쓸어버린 전력이 있었기에, 지크는 섣불리 본래의 힘을 드러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뀨! 알겠다!”
햄찌가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마법의 쳇바퀴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승구 너는 알아서 싸워. 죽지만 마.”
“예, 형님! 오지게 한번 싸워 보겠습니다!”
승구가 골렘들을 데리고 전투에 합류했다.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햄찌가 쳇바퀴를 굴리는 소리가 들리고.
[알림 : 당신의 펫인 햄찌가 스킬을 사용해 당신의 모든 능력치를 15퍼센트 상승시켜 주고 있습니다!]지크의 능력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가 볼까.’
지크가 위킹르를 향해 내달렸다.
***
“뭔가, 이 애송이는.”
한창 자신의 무력을 과시하던 위킹르는 웬 애송이가 덤비자 황당했다.
“멸치 주제에 사나이의 무기인 망치를 들어? 주제를 모르는 놈이로군.”
비실비실하게 생긴 모험가.
현실에서나 게임 속에서나 181센티에 75킬로그램 정도의 꽤 준수한 신체 스펙을 가진 지크였지만, 위킹르의 입장에서는 그저 ‘멸치’에 불과한 게 사실이었다.
그런 멸치가 상남자의 무기인 망치를 들고 덤벼오니 위킹르로서는 그저 가소로울 뿐이었다.
‘오냐, 한 방에 부숴주마.’
위킹르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멸치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콰앙!
망치와 망치가 부딪치던 순간.
“허억…!!”
위킹르는 순간 손에 쥔 을 놓칠 뻔했다.
찌릿찌릿!
전해져 오는 충격이 너무나도 커서, 망치를 쥔 손아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멸치 따위가 어디서 이런 힘이…!!’
하지만 위킹르에게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푸욱!
날카로운 창이 그의 복부를 꿰뚫음과 동시에.
서걱!
그의 목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툭, 데구르르르….
잘린 위킹르의 목이 항구 돌바닥을 나뒹굴었다.
위킹르의 목을 단번에 날려버린 그 기술의 이름은 이라고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