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70
169
자리를 옮긴 후.
“형제여.”
하켄이 마에스트로들을 대표해 지크에게 말했다.
하켄이 지크를 ‘형제’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자신과 같은 샤키로의 제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게 일정 부분은 사실이기도 했고.
그래서 하켄은 지크에게 누구냐고 묻는 대신에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분께 무얼 배웠습니까?”
“음.”
지크가 잠깐 고민하고는 말했다.
“무기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죠?”
“정확히 어떤…?”
“여러 가지….”
그 순간.
“헉!”
“여, 여러 가지라니…!!”
“드디어… 사부님의 모든 걸 이은 제자가…!”
“오오!”
지크가 대답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마에스트로들이 헛바람을 집어삼킴과 동시에 김칫국을 사발째로 들이켰다.
마에스트로들의 입장에서는 지크의 말을 오해할 만했다.
왜냐하면, 지크가 메긴기요르드로도 모자라 누구도 배우지 못했던 비기인 만천화우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아무리 대련이라지만 모든 마에스트로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까지 했으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샤키로의 후계자’ 쯤으로 생각할 여지가 충분했다.
정작 지크의 말뜻은 샤키로로부터 여러 가지 무기들의 사용법과 그 장단점을 배웠단 이야기였는데.
“그, 그렇다면…!”
하켄이 놀라 말했다.
“형제님께서 사부님의 정식 후계자시군요.”
“예에?”
“만천화우야말로 사부님의 정수. 형제님께선 그분의 정수를 이은 유일한 제자이십니다. 그러니 형제님께서 그분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때.
‘이거 뭔가 대단한 오해를 산 것 같은데…?’
지크는 일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서 해명하려고 하던 순간.
“반갑습니다, 대사형.”
하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지크의 손을 덥석 잡고는 말했다.
그러자 다른 마에스트로들 역시도 덩달아 지크를 ‘대사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굳이 ‘대사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나이나 입문 순서에 관계없이 지크가 샤키로 학파의 정통성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샤키로의 뒤를 이어 차세대 웨펀 마이스터가 될 사람 말이다.
“대사형!”
“대사형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대사형!”
“대사형!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산 지크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일단 제 말을 좀….”
이상한 오해 따위를 사고 앉았을 때가 아니었다.
‘샤키로 사부님의 부고를 전해야 하는데… 이 분위기에서 어떻게 말하라고… 으으… 제발 사람 말 좀 끝까지 들어줘….’
지금은 매우 안 좋을 소식을 전해야만 하는 때이기에, 지크는 난감함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저… 죄송하지만….”
마에스트로들의 흥분이 조금은 가라앉았을 무렵 지크가 조심스레 입술을 떼었다.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좋은 소식이요…?”
“예.”
하켄의 물음에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샤키로 사부님께서는….”
“……?”
“몇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마에스트로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
지크는 최대한 담담하게 샤키로와의 인연을 마에스트로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가셨습니다. 유언은 따로 없었습니다.”
지크가 말을 끝마쳤을 때.
“흑… 사부님께서 돌아가시다니….”
“오즈릭 교단…!”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다….”
“사부님….”
“마지막으로 뵌 게 3년 전이었는데… 흑….”
마에스트로들의 반응은 똑같았다.
분노.
그리고 슬픔.
단지 어떤 감정이 더 앞섰는지가 달랐을 뿐….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분은 제게도 좋은 분이셨는데….”
지크가 마에스트로들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분의 후계자가 아닙니다. 그저 잠시 인연이 닿아 약간의 가르침을 받았을….”
“아닙니다.”
하켄이 고개를 저었다.
“대사형께서는 그분의 후계자가 맞으십니다.”
“예?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제자들 중 누구도 만천화우를 전수받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대사형께 만천화우를 전해 주신 까닭은, 오직 대사형만이 그 기술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일 겁니다.”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크 역시 고개를 저었다.
“그분께서 제게 만천화우를 전해주신 이유라면… 마지막 순간에….”
“잘못 알고 계십니다. 사부님께서는 비기가 사라질까 봐 아쉬워하실 분이 아닙니다.”
“……!”
“평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만천화우를 전할 만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절대로 후대에 남기지 않으시겠다고.”
“설마요….”
“정말입니다. 저 말고도 많은 형제자매들이 사부님의 그 말씀을 한 번쯤은 들었을 겁니다. 안 그래들?”
하켄이 마에스트로들을 향해 물었다.
끄덕끄덕!
마에스트로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여 그 말에 동의한단 뜻을 전했다.
“말도 안 돼…!”
“사실입니다. 그리고….”
“……?”
“사부님께서는 언젠가 만천화우를 전수받은 사람이 나온다면, 그가 곧 자신의 후계자나 다름없단 말씀도 하셨었습니다.”
확인 사살.
이쯤 되면, 지크는 뭐라고 변명을 하더라도 빼도 박도 못한 채 샤키로의 후계자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하켄이 지크를 향해 물었다.
“혹시 상주가 되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 상주요?!”
“저희들을 대표해 사부님의 장례식을 치러 주셨으면 해서….”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뭐라고 그분의 장례식에서 상주 노릇을….”
“부탁드립니다.”
하켄이 간곡한 어조로 부탁했다.
“하셔야만 합니다. 대사형께선 사부님의 진정한 후계자이십니다. 그런 대사형께서 상주를 하지 않으시면 누가 하겠습니까?”
그러자 다른 마에스트로들 역시 지크에게 상주 역할을 부탁했다.
마에스트로들 입장은 당연히 샤키로의 ‘진정한 후계자’인 지크가 상주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휴. 이건 좀 감정 노동 같지만….’
지크는 내심 한숨을 쉬면서도 마에스트로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래. 나도 샤키로 사부님한테 받은 게 있으니까. 아무리 게임이라도 인간 된 도리는 지켜야겠지.’
결국, 마음 약한 지크는 샤키로의 넋을 기리기 위해 상주가 되기로 했다.
안 그래도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러줄 수 없었던 상황에서 샤키로를 보내야만 했었기에 마음에 걸리던 것도 있었고.
“실례가 아니라면… 제가 상주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지크는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의 상주가 되어 3일 동안 웨펀 아카데미에 머무르게 되었다.
***
샤키로의 장례식은 곧장 진행할 수 없었다.
샤키로의 다른 제자인 ‘사이드 마에스트로’ 스칼렛과 ‘블런트 웨펀 마에스트로’ 막심이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 박센 산맥이요?”
“예, 대사형.”
하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족인 타이탄들이 박센 산맥에서 자꾸 출몰하는 바람에 스칼렛과 막심이 지원을 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불러올 때까지….”
“제가 직접 가죠, 뭐.”
지크가 선뜻 나섰다.
‘어차피 박센 산맥에 가긴 가야 하니까.’
때마침 타이탄의 힘줄 30개가 필요하던 참이었으므로, 지크는 겸사겸사 스칼렛과 막심을 찾아오기로 한 것이다.
“아닙니다. 형제자매들 중 하나를 시켜 그들을 불러오겠습니다. 어떻게 대사형께서 직접 가십니까.”
“저도 그쪽에 볼일이 있거든요. 안 그래도 들를 참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녀오려고요.”
누군가 스칼렛과 막심을 찾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샤키로의 장례식까지 치르는 것보다 지크가 직접 다녀오는 편이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사형께서 직접 가시는 건 아무래도 예의상….”
“됐어요.”
지크가 손사래 쳤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그래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슬픈 전령]박센 산맥으로 가 타이탄 토벌에 나가 있는 스칼렛과 막심을 찾아오기.
•진행률 : 0%(0/2)
– 블런트 마에스트로 막심
– 사이드 마에스트로 스칼렛
•보상 : 웨펀 아카데미 마에스트로들의 호감도 +500
•주의 사항 : 서두를 것.
“예.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지크가 대답하자 퀘스트 수락을 알리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하켄이 조심스레 말했다.
“부디 말씀 놓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
“대사형께서는 그분의 진정한 후계자이십니다. 형제자매 중 서열이 가장 높은 분께서 꼬박꼬박 존대를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 그게….”
“부디 말씀을 놔주시지요.”
“그, 그럼… 그럴게.”
지크는 하켄의 간곡한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말을 놓게 되었다.
“일단 내가 다녀올 테니까 장례식 준비 잘하고 있어.”
“예, 대사형.”
하켄이 희게 웃었다.
***
‘왜 서두르란 거지? 장례식에 늦으면 안 돼서 그런 건가?’
지크는 퀘스트의 주의 사항인 ‘서두를 것’에 주목하며 서둘러 웨펀 아카데미를 나서 박센 산맥으로 가는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박센 산맥에 도착한 직후.
‘레인저 연대라….’
지크는 타이탄 종족을 주적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의 기지를 찾아 나섰다.
“주인 놈아!”
“응?”
“왜 그렇게 급하냐? 좀 천천히 가자!”
“걷기 힘들면 그냥 몸 크기를 줄이면 되잖아.”
“알겠다! 뀨우우우~ 뀨!”
햄찌가 몸 크기를 토끼 정도의 크기로 줄여 지크의 어깨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근데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냐?”
“그냥 빨리 처리하고 가려고 그러지.”
햄찌에게 퀘스트에 대해 말해줄 순 없었으므로, 지크는 대충 둘러대었다.
퀘스트창에 적혀 있는 주의 사항인 ‘서두를 것’이 은근히 신경 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넓디넓은 박센 산맥에서 101 레인저 연대의 기지를 찾아가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레인저 연대가 나름 군부대인지라 워낙 깊은 산 속에 있고, 그 위치가 대놓고 드러나 있지 않았던 탓이었다.
“아. 오늘은 도저히 못 찾겠다. 조금만 쉬고 다시 찾아야지.”
덕분에 지크는 레인저 연대의 기지를 찾는 걸 포기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햄찌야. 여기 토굴에서 몇 시간만 자다 가자.”
“많이 피곤하냐?”
“응. 나 벌써 18시간째 접ㅅ… 아니 18시간 동안 못 잤어. 잠깐 눈 좀 붙이려고.”
“알겠다. 다녀와라.”
“한 대여섯 시간 있다가 올게.”
“알겠다, 뀨!”
그로부터 여섯 시간 후.
잠시 눈을 붙이고 배를 채운 뒤 다시 뉘르부르크 대륙에 강림한 지크는 햄찌와 만나 다시 101 레인저 연대의 기지를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어?’
지크는 갑작스레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을 보곤 크게 당황했다.
[알림 : 퀘스트의 내용이 변경되었습니다!]지크는 서둘러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슬픈 전령]박센 산맥으로 가 타이탄 토벌에 나가 있는 스칼렛과 막심을 찾아오기.
•진행률 : 0%(0/2)
– 블런트 마에스트로 막심
– 사이드 마에스트로 스칼렛
•보상 : 웨펀 아카데미 마에스트로들의 호감도 +500
•주의 사항 : 최대한 서두를 것.
퀘스트의 내용이 변경되어 있었다.
본래 막심과 스칼렛 두 명을 찾아야 할 퀘스트였는데, 막심의 이름이 지워진 것이다.
게다가 주의 사항의 문구마저도 ‘최대한 서두를 것’으로 변경되어 있었다.
‘어?’
달라진 퀘스트의 내용을 본 지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햄찌야.”
“왜 그러냐, 주인 놈아.”
“뛰자.”
“뀨우?”
지크가 햄찌를 옆구리에 끼고는 땅을 박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