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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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5분 후.
지크는 작은 실랑이 끝에 크반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 보셔야죠. 제가 왜 그런 요구를 했는지 정도는 들어 보셨어야지, 그렇게 말을 끊으시면 제가 기분이 나빠요? 안 나빠요?”
물론 용건을 먼저 말하지 않는 지크의 잘못도 분명히 있었지만, 크반트가 성급하게 화를 낸 것도 사실이었기에 한 말이었다.
“나쁘오! 아주 나쁘오!”
크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잘못했소이다!”
“그걸 아시는 분이 그러셨어요?”
“미, 미안하오. 몰라서 그랬소. 내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이번 건만 잘 해결하면 재료 일곱 개 중에서 세 개 모으는 셈인데, 그럼 거의 반은 한 거 아닌가.”
“크흠!”
“그냥 그만둘까….”
“아, 아니오! 왜 그러시오! 내 몇 번이고 사과하지 않았소! 고정하시오!”
“그래서 해줄 겁니까, 말 겁니까.”
지크가 물었다.
“안 해주시면 저 그냥 아우토니카 갈랍니다.”
“당연히 해드려야지!!!”
크반트가 버럭 소리쳤다.
“대륙 전 지점에 문의한 결과 재고가 정확히 78개가 있다고 하였소. 그럼 22개만 만들면 되는데, 이는 공방의 대장장이들이 모두 달려든다면 48시간이면 충분하오!”
“그래요? 그럼 믿고 기다립니다?”
“아무렴! 우리 공방이 언제 그대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있소이까? 걱정 붙들어 매시오!”
그렇게 지크는 매우 값비싼 아이템인 을 무려 100개나 공짜로 얻게 되었고.
“뭐야. 이 템 시세가 왜 이렇게 올랐어?”
“누가 사재기 했나?”
“지옥 거머리 창 값이 네 배가 뛰었는데?”
그 후 뉘르부르크 대륙의 의 가격은 무려 네 배가 폭등하는 기염을 토했다.
왜냐하면, 제작 기간은 짧은 반면 재료가 워낙에 희귀한 것들뿐이라 비머리언 공방으로서도 추가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기능을 가진 메르세데스, 아우토니카 공방의 것들 역시도 값이 두 배 이상으로 뛴 것은 물론이었다.
‘재생력 억제 아티팩트는 이거면 충분하겠지.’
그렇게 세 가지 준비물 중 두 개(지옥 거머리 창, 마검 어벤져)를 확보하게 된 지크는 마지막 재료인 죽음의 신 타나토스 교단의 성수를 찾아 비머리언 공방을 나섰다.
***
비슷한 시각.
프로아 왕국의 영토 내에 자리한 에서는….
“루시로.”
뱀파이어 로드 마그누스가 자신의 심복 중의 심복인 루시로를 불렀다.
“부르셨습니다, 로드시여.”
“가서 가축들의 동태를 살펴라.”
“가축들의 동태를 말씀이시옵니까?”
“인간이란 무릇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무언가에 도전하는 버릇이 있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미천한 종으로서 감히 로드의 드높은 의중을 헤아릴 수 없나이다.”
“그저 알고 싶을 뿐이다.”
마그누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가축들의 왕이 내게 진정으로 굴복한 것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하오나 로드시여, 로드께서는 가축들의 왕 따위의 하찮은 생각을 알 필요가 없으시옵니다. 가축들의 왕이 로드께 진심으로 굴복했든, 아니든 결과는 변함이 없지 않사옵니까?”
루시로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마그누스는 밤의 마왕이라 불리는 뱀파이어 로드… 황제도 아니고 일개 약소국의 왕 따위가 나쁜 마음을 먹은들 뭐가 달라질까?
굴복해도 그만.
덤벼도 그만인 게 사실인데.
“그걸 몰라서 알아보라는 게 아니다.”
“하오면….”
“나는 그저 새로운 가축들의 왕을 가지고 놀 계획을 세워야 할지 아닐지를 알고 싶을 뿐이다.”
“……!”
“뭘 알아야 가지고 놀든 말든 할 것이 아니더냐.”
마그누스는 만약 지크가 딴마음을 먹었다면, 그걸 염두에 두고 철저히 농락해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가축들이 더 그를 두려워할 테니까.
뱀파이어 로드가 모든 걸 알고 있단 사실이 밝혀진다면, 다시는 가축들이 감히 그를 귀찮게 할 엄두를 내지 못할 테니까.
마그누스가 원하는 건 가축들에게 더욱 큰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었지, 지크가 굴복했느냐 아니냐가 아니었던 것이다.
왜?
심복인 루시로의 말마따나, 지크가 굴복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으니까.
“이 미천한 심복에게 로드의 고귀하신 의중을 가르쳐 주시어 감사하옵니다.”
루시로가 마그누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지금 바로 가축들의 동태를 살펴보고 오겠나이다.”
그렇게 말한 루시로는 곧장 가축들, 그러니까 프로아 왕국의 백성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가 동태를 살폈다.
그 결과.
프로아 왕국의 수도인 에서는 그야말로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다.
“제, 제발요! 기사님! 제 아이만은…!!!”
“닥쳐라!!!”
기사가 울며불며 매달리는 어머니를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네 딸년은 뱀파이어 로드께 바치는 공물이 될 것인데, 어찌하여 이런단 말이냐!”
“기사니임! 제, 제바아알…!!!”
“국왕 폐하께서 보상은 충분히 해주실 터이니, 기꺼운 마음으로 네 딸년을 바쳐라! 알겠느냐?”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기사님 제발!!! 제바아아알!!!”
그러나 무자비한 기사는 어머니를 가차 없이 내팽개치고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것만 같은 미소녀를 끌고 가라 명령했다.
“꺄아아아악!!! 엄마아아아!!! 살려주세요!!! 엄마아아아아아!!! 아빠아아아아아!!!”
작은 소녀가 소리쳤지만,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흠씬 두들겨 맞다가 피를 철철 흘리며 기절해버린 후였고, 어머니 역시 병사들에게 꽁꽁 붙들린 채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가자!”
“예, 대장님!”
그렇게 소녀는 병사들에게 붙들린 채 왕성으로 끌려가고 말았고, 거리는 순식간에 인적 없는 유령 도시로 변했다.
‘흐음. 좀 더 지켜볼까.’
루시로는 정확한 보고를 위해 프로이센을 조금 더 돌아보았다.
“차라리 날 데려가라!!! 날 데려가라고 이 X발놈들아!!!”
“닥쳐라!”
“으악!”
루시로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가축들의 밀집 지역에서는 공물을 준비하기 위한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호오. 새로운 가축들의 왕이 공물을 아주 잘 준비하고 있군. 로드께서 조금 재미없어하시긴 하겠지만, 기특하긴 하군.’
덕분에 루시로는 정보 수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블러디 캐슬로 귀환해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로드시여. 새로운 가축들의 왕이 공물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것 같사옵니다.”
“그런가?”
“예, 로드시여. 지금 가축들의 밀집 지역에서는 로드께 바칠 공물을 준비하느라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사옵니다. 또한, 공물의 질적 수준 또한 매우 훌륭하옵니다. 하나같이 13세 미만의 동남동녀로 구성되었으며, 그 생김새도 매우 훌륭하옵니다.”
“생김새가 훌륭하다….”
“옛말에 보기 좋은 쿠키가 먹기도 좋다 하지 않았사옵니까? 미천한 소인이 본 바로, 이번 공물들의 질적 수준은 가히 역대급이라 해도 손색이 없사옵니다. 로드께서 오래간만에 포식하실 것을 상상하니 이 미천한 종이 다 기쁠 지경이옵니다.”
루시로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뱀파이어들에게 있어 가장 좋은 음식이란 심신이 맑고 깨끗한 인간의 피와 살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리면 어릴수록.
예쁘면 예쁠수록.
심성이 고우면 고울수록.
그 피와 살의 맛은 뱀파이어에게 더 없는 황홀경을 맛보게끔 해주는 최고의 미식(美食)이자 성적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최고의 최음제로 작용했다.
최고의 최음제인 이유는, 이 세계의 뱀파이어는 성욕이 존재하지 않는 대신에 흡혈 욕구가 식욕과 성욕 모두를 대체해서였다.
“흐음. 최고의 퀄리티라. 기대가 되는군.”
마그누스가 약간은 기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역시 뱀파이어인지라 13세 미만의 어여쁜 동남동녀라면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축들의 왕이 생존법을 아는 모양이로군. 가식이 아닌 진심이었다니. 약간 아쉽긴 하지만, 정성이 갸륵하니 어쩔 수야 있나.”
“그러하옵니다! 로드시여! 가축 주제에 어찌 감히 딴마음을 품고 로드께 대항하겠나이까? 유희를 즐기지 못하게 되신 것은 안타까운 일이오나, 가축들의 왕이 착실하게 공물을 준비하고 있사오니 이 얼마나 기특하옵니까?”
“네 말이 옳다, 루시로. 차라리 일주일을 줄 것을 잘못했군. 그랬다면 공물의 질적 수준이 더더욱 향상되었을 터인데.”
“이번 공물 이후에 그 점을 강조하신다면, 다음번에는 질적 수준이 더 높아질 것이옵니다.”
“그러기를 빌지.”
마그누스가 그렇게 말하며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식욕과 성욕이 차오를 대로 차올랐다는 증거였다.
***
정찰을 마친 루시로가 로 귀환해 마그누스에게 보고를 하고 있을 무렵, 프로아 왕성의 지하 감옥에서는….
“자자! 수고들 하셨습니다!”
그랭구아르가 약 100여 명의 남녀노소를 모아놓고 그들을 격려했다.
“대본 연습할 시간도 없으셨을 텐데, 고생들 하셨습니다!”
그러자 100여 명의 남녀노소가 저마다 한마디씩을 떠들어댔다.
“에이! 뭘요!”
“너무 쉬웠는걸요!”
“주어진 상황이 너무 명확해서 오히려 연기하기 편했어요!”
“근데 아까 너무 세게 때린 거 아닙니까? 아직도 온몸이 욱신욱신 쑤십시다!”
“죄, 죄송합니다… 최대한 리얼하게 연기를 하느라….”
“나도 모르게 극에 몰입해서 진짜로 내 딸이 공물로 바쳐지는 줄 알았지 뭐야!”
그러자 그랭구아르가 말했다.
“모두 잘하셨습니다. 제가 봤을 때, 여러분들의 연기력은 정말이지 손색이 없더군요. 특히나 우리 아역 배우들 같은 경우에는 훗날이 정말이지 기대가 될 정도였습니다! 하하!”
그 말에 아역 배우들, 정확히는 몇 시간 전 프로이센 시티에서 공물로 선정되어 병사들에게 붙들려 갔었던 아이들이 웃음꽃을 피웠다.
“와아!”
“정말요? 저도 그랭구아르 님처럼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와! 내가 그랭구아르 사관님한테 칭찬을 받았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그랭구아르는 자타 공인 위대한 천재 예술가로, 비단 노래뿐 아니라 연기와 춤과 미술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기 캐릭터이자 인기 연예인이었다.
오죽하면 강대국들의 귀족들마저도 그랭구아르의 공연을 보기 위해 비싼 관람료를 지급하고, 이 작은 약소국까지 올까?
그런 인기 연예인에게 칭찬을 받았으니, 아역 배우들의 기분이 뛸 듯이 좋아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몇 시간밖에 연습할 시간이 없었지만, 내가 직접 지도했으니 그 뱀파이어가 깜빡 속아 넘어갔을 거다. 내가 봐도 훌륭한 연기였으니까.’
그랭구아르는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전하께서는 지략이 보통이 아니시군. 가끔은 섬뜩할 정도야.’
그러면서 내심 지크의 권모술수에 혀를 내둘렀다.
몇 시간 전.
지크는 그랭구아르를 불러다 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뱀파이어 놈들이 우릴 염탐하러 올지도 모르니까, 연막 작전 좀 전개하죠. 그랭구아르 사관님?] [예?] [배우들 뽑아다가 연기 좀 가르치시고, 상황극 좀 펼쳐주세요. 혹시 뱀파이어들이 우릴 염탐하러 왔을 때 그들이 깜빡 속아 넘어갈 수 있게끔.] [명령,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그 스킬 있죠? 존재감 없이 막 빠르게 이동하는 거요.] [귀신의 춤 말씀이십니까?] [예. 그거라면 뱀파이어의 눈도 속일 수 있잖아요? 그거 쓰고 돌아다니시면서 잘 좀 지켜보세요. 뱀파이어가 염탐하러 오는지 안 오는지.] [예, 알겠습니다.]루시로가 깜빡 속아 넘어가 마그누스에게 거짓 보고-그게 자의든 타의든-를 올리게 된 것은, 지크의 머릿속에서 나온 권모술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크의 무시무시한 권모술수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오싹!
그랭구아르는 지크가 꾸미고 있는 설계를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한 번에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으시려 하시다니… 전하께서는 정말이지 무서우신 분이다….’
세 마리 토끼.
지크의 표적은 하나가 아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