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05
304
“어? 삼촌?”
지크가 용태풍을 한눈에 알아보고 아는 체를 했다.
“오래간만입니다!”
“그러게! 오래간만이네!”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용태풍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조카도 잘 지낸 것 같던데? 요즘 아주 핫해? 크핫핫핫!”
“예? 제가요?”
“최초의 전쟁 콘텐츠에서 기여도 1위를 기록하고 MVP를 먹었으면 주목을 받을 만도 하지? 게다가 천하제일생존대회 우승 건도 있고!”
용태풍은 지크의 근황에 대해 꽤 자세히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최초의 전쟁 콘텐츠였던 이 많은 관심을 받았던 만큼, MVP를 차지한 지크에 대한 관심이 높은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솔직히, 최근 BNW를 열심히 플레이하는 게이머 중 지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관심을 두지는 않더라도 한 번쯤 ID 정도는 들어볼 정도로.
“하하….”
“보니까 레벨도 230인데. 여기 온 걸 보니 레벨업 빡세게 해서 슬슬 프로 데뷔 준비하는 건가?”
“예?”
지크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에이. 프로라뇨. 제 주제에 무슨.”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레벨업 하러 온 거죠.”
“프로게이머 할 생각이 없어?”
“제가 어떻게 그런 걸 해요?”
“엥?”
지크가 되묻자 용태풍이 눈살을 찌푸렸다.
“조카가 프로를 왜 못해?”
“에이. 그런 건 고수들이나 하는 거고요.”
“……?”
“변태도 아니고. 제가 왜 방송까지 나가서 탈탈 털리는 걸 보여줍니까? 그냥 혼자 열심히 게임이나 하는 거죠.”
“설마.”
용태풍이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몰라? 기만하는 게 아니라?”
“예? 기만이라뇨?”
“그 정도 실력을 가지고 프로를 못 한다고? 기만도 정도껏 해야지!”
“제가 무슨 기만을 합니까?”
지크는 억울했다.
‘내가 좀 잘하긴 하지만. 그건 초보들 사이에서나 잘하는 거지.’
지크는 과거 결투장에서 고수들을 쓰러뜨리며 자신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았다.
지크가 생각하기에, 프로게이머들은 게임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 하는 직업이었다.
재능뿐만이 아니었다.
BNW의 프로게이머라면 실력뿐 아니라 아이템도 좋아야 했고, 클래스도 좋아야 했다.
즉, 실력을 받쳐줄 만한 ‘재력’과 ‘운’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지크도 자신이 꽤 많은 걸 가졌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지크가 아는 프로게이머들은 더 상위의 존재였다.
아직은 넘볼 수 없는.
평생 평범한 실력을 가지고 살아왔던 지크로서는 프로게이머들에 대한 환상이 클 수밖에 없었다.
“저도 제 주제 파악 정도는 합니다.”
“주제… 파악?”
“프로게이머들이 얼마나 고수들인데요. 저 같은 건 아직 상대도 안 될걸요.”
“과연 그럴까?”
용태풍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봤을 때는 조카가 어지간한 프로게이머보다 나은데?”
“에이. 그럴 리가.”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하게 모르는 모양이지?”
“잘 아는데요?”
“그런데 왜 프로게이머를 못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못하니까요.”
지크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러니까 괜히 헛바람 넣지 마시죠.”
“허!”
용태풍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 진짜 모르는 건가? 아니면 고도의 기만인 건가?’
용태풍은 지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정도 실력이면 당장 프로로 데뷔해도 어디 가서 안 꿀릴 텐데?’
그러나 평생을 약자로 살아왔던 지크로서는 자신의 실력을 잘 알면서도 프로게이머들에 대해 막연한 환상과 두려움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그냥 자기 속마음을 들키기 싫은 거겠지. 이런 음흉한 친구 같으니.’
용태풍은 지크가 프로게이머 데뷔를 준비하면서 아닌 척 너스레를 떨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흠흠. 어쨌든. 조카가 그렇다니. 그런 줄 알고 있도록 할게. 렙 업 하러 왔다고 했지? 설마 첫날인가?”
“그런 셈이죠.”
“아쉽군.”
“뭐가 아쉬우십니까?”
“입문 퀘스트를 깼으면 버스라도 태워주는 건데. 쩝.”
“입문 퀘스트요?”
“대균열에서는 특정 조건에 갖춰져야 상위 던전에 들어갈 수 있지.”
“아하?”
“흐음.”
용태풍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삼촌이 좀 도와줄까? 우리 길드에 들어온다고 약속하면 고속으로 버스를….”
“아뇨.”
지크가 용태풍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다.
“제안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하지만 성장이 더 빠를 텐데?”
“제가 몸으로 때우는 걸 좋아해서요.”
“우리 길드에 들어오기 싫은 건 아니고?”
“어떻게 아셨어요?”
“아쉽군. 쩝.”
용태풍이 입맛을 다셨다.
‘어휴. 질척거리기는. 적당히 거리 두자. 괜히 코 꿰이지 말고.’
지크는 용태풍을 무척 경계했다.
지크는 누군가의 밑에 있는 게 싫었다.
천명 길드라는 대륙 10대 길드 중 하나의 꼬리가 되는 것보다야 프로아 왕국의 왕, 뚝배기단의 길드 마스터가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럼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그럴 일 없을 겁니다.”
“허. 사람 참.”
“그럼, 저 갑니다.”
지크는 게임계의 살아 있는 화석이자 대선배인 용태풍에게 인사를 꾸벅 해 보이고는 입문 퀘스트를 받기 위해 NPC를 찾아 나섰다.
***
“어서 오십시오.”
남쪽에 있는 을 관리하는 기사가 지크를 반겼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이지 반갑습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
“환대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어쩐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대균열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허가도 받고 해야 한다고 들어서요.”
“아하! 차원 저항력에 관한 임무를 받으러 오셨군요!”
“차원 저항력요?”
처음 듣는 얘기에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균열은 일반적인 차원의 균열과는 다릅니다.”
기사가 지크에게 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대균열은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차원과 시공간이 심하게 뒤틀리고 엉켜 있는 곳이지요. 아주 강한 시공의 폭풍이 항상 휘몰아칩니다. 그렇기에 차원 저항력이 없다면….”
“없다면?”
“육체가 뒤틀려 분해되어 버립니다. 심한 경우에는 뒤틀린 시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헉? 진짜요?”
“그렇습니다. 설마 모르셨습니까?”
“제가 천민 출신이라… 하하하.”
지크는 의 존재에 대해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과거의 지크는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할 쓰레기였기 때문이다.
“그럼 차원 저항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일단 전하께서는 차원 저항력이 아예 없으시기 때문에, 최소한의 차원 저항력을 갖추셔야 합니다. 그래야 가장 낮은 등급의 대균열에라도 진입하실 수 있지요.”
“그래서요?”
“그 최소한의 차원 저항력을 갖추실 수 있도록 저희가 아티펙트를 드리겠습니다. 단….”
“공짜가 아니란 말씀이시죠?”
“하하하.”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죠?”
“최근 차원의 대균열로부터 흘러나온 에너지에 의해 서쪽 숲의 식물들이 변이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지크의 물음에 NPC가 최소한의 차원 저항력을 갖출 수 있는 조건, 즉 퀘스트 내용을 말해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대균열을 향하여!]서쪽에 자리한 에서 변이 식물들을 처치하고 D등급 차원 에너지 조각 1,000개를 모아오기.
•보상 : C등급 차원 에너지 결정(교환불가) + 차원의 부적
“어? 차원 에너지 조각은 교환 불가인가요?”
“그렇습니다.”
지크의 물음에 NPC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원 에너지 조각은 형태가 매우 불안정한 물건입니다. 사라지거나 폭발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기에 취급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한 번 습득하시면 무조건 아공간 인벤토리에 보관하시고, 절대로 누군가와 교환하시면 안 됩니다.”
“왜요?”
“워낙 불안정한 물건인지라 아공간 인벤토리를 오가다가도 에너지가 손실되거나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하?”
“그러니 취급에 주의해 주시고, 부디 무사히 D등급 차원 에너지 조각을 모아 오시길 바라겠습니다.”
은 다른 게임에 흔히 등장하는 아이템인 모양이었다.
“아쉽네요.”
“예? 뭐가 아쉬우시다는 건지….”
“거래가 되는 물건이었으면 그냥 살까 했거든요.”
“하하.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곤 하시죠.”
“어쨌든 알겠습니다. 차원 에너지 조각, 모아 올게요.”
지크가 퀘스트를 수락했다.
[알림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퀘스트를 수락한 지크는 곧장 서쪽에 있다는 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앞에 도착한 지크는 곧장 숲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뀨우?”
지크의 주머니 속에 잠들어 있던 햄찌가 슬쩍 나와 귀를 쫑긋거렸다.
“주인 놈아아! 여기 어디냐! 뀨우! 분위기가 안 좋다!”
“여기? 악령의 숲이라던데? 근데 너 뭐 하다가 이제 나오냐?”
“주인 놈아 싸돌아다닐 땐 주머니 안에서 잠이나 자는 게 최고다! 뀨우!”
“…….”
“주인 놈아 햄찌 이동 수단이다! 뀨우!”
지크는 햄찌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잃었다.
최근 햄찌는 딱히 활약할 일이 없어서인지, 살이 토실토실 올라 있었다.
‘어쩐지 주머니가 무겁다 했다. 어휴. 이 게으른 놈.’
지크는 내심 햄찌를 얄미워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던 중.
쿠웅!
지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굉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어디서 포탄이라도 터지는 건가?”
“뀨우?”
굉음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쿵, 쿠웅, 쿠우웅, 쿵!!!
마치 벼락이 치는 것 같은 소리는 을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번쩍!
심지어, 숲이 우거져 햇빛 한 점 없는 숲에 허연 섬광이 빗발칠 정도였다.
찌릿, 찌릿!
지크는 문득 온몸의 피부가 따끔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이 느낌은?’
지크는 알 수 없는 느낌에 굉음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 뛰었다.
그런데.
‘쑥대밭이잖아?’
천둥 치는 소리를 쫓던 지크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
말 그대로 쑥대밭 그 자체.
은 마치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온통 그슬리고 불타올라 황폐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의 시체임이 분명한 식물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기까지 했다.
‘다 쓸어버리면서 전진하는 건가?’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천둥 치는 소리를 쫓아가 보았다.
쿵, 쿠웅!
천둥 치는 소리는 빨랐다.
‘무작정 달리면서 다 부수고 있는 거잖아?!’
지크는 천둥 치는 소리를 내는 존재가 마치 불도저처럼 을 밀어버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누구일까? 누군데 이렇게 세지?’
지크는 호기심에 달리고 또 달려 천둥 치는 소리를 추적했다.
그로부터 약 30분 후.
지크는 널찍한 공터에서 온몸에 전류를 두른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내는 거의 수백 마리나 되는 식물형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도와줘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후욱!
지크를 등진 사내가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앙!!!
그러자 천둥 치는 소리가 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푸슥, 푸스슥!
수백 마리의 식물형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
그 광경을 본 지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 뭔데 저렇게… 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파괴력이었다.
“어? 다른 사람이 있었네? 안녕!”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주먹 한 방에 몰살시켜 버린 사내가 지크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을 쓸어버린 존재는 과거 사부가 이기지 못했던 그랜드 마스터의 후예 중 하나였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