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42
441
은 사실상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기 직전이었다.
호른 영지에서부터 북부로 치고 올라온 반란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기세로 수도 코앞까지 진격해 들어왔다.
그리고 오늘.
타라니스가 이끄는 반란군은 키예프 왕국의 수도 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반란군은 를 포위한 후 공성전 준비에 돌입하는 한편, 심리전을 전개했다.
괜히 피를 흘려가면서 공성전을 벌여서 수도인 를 쑥대밭으로 만드느니, 이쯤에서 항복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확성기를 가지고 오도록.”
타라니스는 수도 의 성문 앞으로 가 확성기를 손에 쥐었다.
– 국왕 전하! 전하께서 통신을 받지 않으시니 부득이하게 확성기를 통해 말씀을 올리는 것을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타라니스는 알렌 국왕에게 먼저 양해를 구한 후 본격적으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 전하! 이 타라니스가 왔사옵니다! 이제 마음을 놓으소서! 전하께서 통신을 받지 않으시는 이유는, 아마도 간신배들이 눈과 귀를 막아서일 것이옵니다!
– 하지만 이제 괜찮사옵니다! 이 숙조부가 왔사옵니다! 누가 뭐래도 이 세상에 믿을 건 오직 가족뿐이라는 말도 있지를 않사옵니까?
– 전하! 기다리소서! 이 숙조부가 간신배들을 모조리 처단하고 전하를 보필할 것이옵니다!
타라니스는 자신이 왕족이며, 왕실의 충신이라는 걸 강조하며 왕당파 귀족들에게 역적의 프레임을 씌웠다.
그리고는 왕당파 귀족들에게 협박과 회유를 동시에 펼쳤다.
– 지금 전하의 곁에 머무르는 귀족들은 들어라!
– 몇몇 간신배들이 있긴 하지만, 나는 너희 모두가 전하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역적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 그러니 전하의 군대가 무의미한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항복하기를 간언하라! 그럼 목숨을 살려주는 것은 물론, 전하께서 크게 포상하실 수 있도록 내가 직접 건의해 주도록 하겠다!
– 또한! 역적 중의 역적인 언더테이커의 머리통을 가지고 오는 자에게는 공작의 지위를 줄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
– 전하! 부디 간신배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마소서! 부디 이 숙조부의 충심을 헤아려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타라니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확성기를 놓았다.
“훌륭하신 연설이셨사옵니다.”
오슬로 백작은 그런 타라니스를 칭찬했다.
“매우 효과적인 선전이었사옵니다. 운이 좋다면 저들이 항복해올지도 모르옵니다. 어쩌면….”
“언더테이커 그 늙은이의 머리통이 선물로 들어올 수도 있겠지.”
“그러면 얼마나 좋겠사옵니까?”
“항복할 확률은 얼마나 되는 것 같은가?”
“매우 높사옵니다.”
오슬로 백작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수도 의 점령은 기정사실이었다.
승리는 이미 반란군의 것이었다.
항복을 받느냐, 아니면 밀어버리느냐의 차이였을 뿐….
“아무래도 이쯤 했으면 항복을 해오지 않겠사옵니까? 24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아마도 항복해올 것이옵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타라니스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대업을 이루는군. 무려 30년을 넘게 기다렸는데.”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지 않사옵니까? 감축드리옵니다. 공작 각… 아니 키예프 왕국의 국왕이시여.”
“쉿.”
타라니스가 오슬로 백작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직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다. 말을 삼가라. 크흠.”
“죄송하옵니다, 공작 각하.”
타라니스는 말은 오슬로 백작에게 주의를 주는 척했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곧 왕이 된다. 이 왕국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타라니스는 자신이 왕위에 등극할 것이라고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같은 시각.
왕궁 안의 분위기는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
“…….”
“…….”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패배였다.
수도 가 포위당한 이상 이 전쟁에서 이길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반란군이 공격해오지 않고 계속 포위만 한다고 해도 2~3주 안에 물자가 떨어져 말라죽을 판국이었다.
“항복… 하겠습니다.”
결국, 알렌 국왕은 항복하겠단 의지를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패배한 전쟁이었기에 항복 선언을 통해 병사들만이라도 살려보려는 것이다.
“…….”
“…….”
“…….”
귀족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항복은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항복하자는 말도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하.”
그때, 언더테이커 대공이 나섰다.
“잠시 주변을 물려 주시겠사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지목한 몇몇을 뺀 나머지 모두를 어전에서 잠시만 내보내소서.”
“알겠습니다.”
알렌 국왕은 언더테이커 대공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어전에는 언더테이커 공작을 포함한 몇몇 충신들만이 남게 되었다.
왕실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충신 중의 충신들 말이다.
“전하.”
“말씀하세요.”
“소신이… 자결하겠사옵니다.”
“예?!”
알렌 국왕이 화들짝 놀랐다.
“공작께서 자살을?”
“어차피 항복하게 되면 소신은 죽은 목숨이옵니다. 역적 타라니스가 소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옵니다.”
“…….”
“소신이 자결하면, 테너 백작이 타라니스를 찾아갈 것이옵니다. 소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말이옵니다.”
테너 백작은 지금 이 자리에는 없는 자로서, 평소 그리 충성심을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다.
또, 언더테이커 대공과 친한 귀족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테너 백작은 평소 그 충성심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뼛속까지 전하의 사람이옵니다. 그런 그에게 소신의 머리통을 맡기시면, 훗날 타라니스의 허를 찌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즉, 테너 백작을 변절자로 위장시킨 후 타라니스에게 보내 스파이로 써먹자는 이야기였다.
항복 후 타라니스가 섭정의 지위에 오르고, 알렌 국왕이 꼭두각시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하, 하지만 언더테이커 공작….”
“이 방법만이 유일하옵니다.”
그렇게 말하는 언더테이커 공작의 주름진 눈가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전하… 이것이 이 늙은이가 전하께 바칠 수 있는 마지막 충성이옵니다….”
“어, 언더테이커 공작….”
“부디… 부디 훗날 옥체라도 보전하시기를 바라겠사옵니다….”
“언더테이커 공작… 흐윽….”
결국, 알렌 국왕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언더테이커 공작… 지금 지금이라도 그대가 타국에 망명이라도 하는 것이….”
“그런 치욕을 당할 바에야 차라리 전하를 위해 죽겠나이다.”
“흐윽….”
알렌 국왕은 언더테이커 공작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저 눈물만을 흘렸을 뿐이었다.
***
다음 날 아침.
“고, 공작 각하!!!”
타라니스는 잠에서 깨자마자 오슬로 백작의 다급한 방문을 받았다.
“기침하셨습니까! 공작 각하!”
“이제 막 일어난 참이다, 오슬로.”
타라니스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오슬로 백작의 말에 대답했다.
“막사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라.”
“공작 각하!”
오슬로가 타라니스에게 보고했다.
“기대하시던 일이 벌어졌사옵니다!”
“으음?”
“테너 백작이… 테너 백작이….”
“테너 백작이라면 왕당파의 귀족이 아닌가?”
“그렇사옵니다.”
“그자가 왜?”
“그가 언더테이커 공작의 목을 가지고 항복을 해 왔사옵니다!”
“뭐라!”
타라니스는 이 믿지 못할 소식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맙소사!
진짜로 언더테이커 공작의 목을 따온 자가 있었을 줄이야!
“그, 그게 정말인가? 테너 백작이 진짜로 언더테이커 그 영감탱이의 목을 따 가지고 왔어?”
“예! 공작 각하!”
“허….”
타라니스는 이 믿지 못할 일에 혀를 내둘렀다.
어차피 다 이긴 마당에 알렌 국왕이 항복해올 줄은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설마하니 누군가 언더테이커 공작의 목을 따올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너 백작이라… 의외로군.”
“테너 백작은 왕당파에 속해 있던 귀족이긴 하지만, 평소 충성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행동을 하지는 않던 자이옵니다.”
“그렇지.”
“그런 테너 백작이라면 이미 충성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사옵니다.”
“할 만큼 했다 이건가?”
“예, 공작 각하.”
“흐음. 비록 끝까지 충성을 다하지는 않았지만, 의리를 지키는 선에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겠단 이야기로군.”
“그럴 가능성이 높사옵니다.”
“오히려 그런 자가 상대하기 편한 법이지. 맺고 끊음이 분명하니, 그는 앞으로 내게 충성을 다하겠군.”
“예, 공작 각하.”
“좋다.”
타라니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테너 백작을 불러들여라. 언더테이커 그 영감탱이의 목을 따왔으니 내 손수 술이라도 한잔 따라 주어야지 않겠나?”
“현명하시옵니다, 공작 각하.”
오슬로 백작은 타라니스에게 고개를 숙인 뒤 테너 백작을 부르러 막사를 나섰다.
“좋군.”
타라니스의 입에서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곧 항복도 받아낼 수 있겠어.”
타라니스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왕당파의 핵심 인물이자 충신 중의 충신인 언더테이커의 목이 날아간 이상 알렌 국왕으로서는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란군이 알렌 국왕의 항복을 받아내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에 불과했던 것이다.
***
그로부터 10분 뒤.
타라니스는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곧 그의 신하가 될-들을 모아놓고 테너 백작을 맞이했다.
“타라니스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테너 백작이 타라니스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씨익-
그런 테너 백작을 본 타라니스의 입이 쭉 찢어졌다.
왜냐하면, 지금 테너 백작이 타라니스에게 취한 예법이 신하가 왕에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테너 백작은 벌써부터 타라니스를 키예프 왕국의 왕으로서 대접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호칭이야 라고 불렀지만 말이다.
“어서 오게, 테너 백작. 험난한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이렇듯 환대해 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테너 백작이 타라니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얘기는 이미 들었네. 언더테이커 그 늙은이의 모가지를 가져왔다지?”
“예, 공작 각하.”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
“양심의 가책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군.”
“때로는 생존을 위해 심적인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음에 드는 대답이다.”
타라니스는 테너 백작의 답변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생존.
그 어떤 미사여구나 구차한 변명, 혹은 거창한 대의명분 없이 생존을 말하는 건 대단히 솔직한 답변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고생했다, 테너 백작.”
“망극하옵니다.”
“술을 한잔 따라주고 싶은데.”
“기꺼이 받겠사옵니다.”
“그 전에.”
타라니스가 테너 백작의 곁에 자리한 상자에 눈길을 주었다.
“언더테이커의 머리를 내 눈으로 볼 수 있겠는가?”
“물론이옵니다.”
테너 백작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언더테이커 백작의 머리통이 들어 있다던 상자를 열었다.
딸깍!
상자가 열리고.
“……?”
타라니스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건 반란군 소속의 귀족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반란군 소속 귀족들은 언더테이커 공작의 머리통을 구경하려다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저, 저게 언더테이커 공작의 머리?”
“엥?”
“……?”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왜냐하면….
“뀨우우?!”
상자 안에는 언더테이커 공작의 머리통이 아니라, 웬 귀여운 햄스터 한 마리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