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8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88화
‘너무 많이 마신다’니.
나는 황당한 눈으로 배세진을 보았다.
“한 캔 마셨는데요.”
혼자 마실 때 과하게 취할 만큼 마신 적은 없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매일 스케줄이 있는데 과음할 리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내일은 서울 마지막 콘서트 날인데.
그러나 배세진은 긴장한 얼굴로 대꾸했다.
“…목욕하면서 마시는 건 위험해. 그리고 오늘만 말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자주 마시잖아.”
“오늘 기분 내려고 한번 마신 거지, 평소에는 이런 식으로 안 마시죠. 그렇게 자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아니, 자주 마신다니까!”
배세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자기가 놀라서 힐끔 다른 방 눈치를 봤다.
‘뭐하냐.’
떨떠름한 눈으로 보고 있자니, 배세진은 약간 목소리를 낮춘 채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너 며칠 전에도 마셨잖아. 지난주에도 마셨고.”
“그때도 한 캔이었는데.”
“양이 중요한 게 아니야. …너, 그때 왜 마셨는데.”
“뭐, 스트레스 해소 겸…….”
배세진이 손을 불끈 쥐었다.
“그러니까… 너 요새 계속 스트레스 해소한답시고 사나흘마다 한 번씩 마시는 꼴이잖아!”
“…!”
“너 최근에 계속 그런다고.”
배세진이 시선을 내렸다.
“…그, 미국 갔다 온 후로.”
“…….”
뒤통수 얻어맞은 기분이다.
“같이 방 쓰는 동안 너무 자주 봤어.”
나는 배세진의 증언을 들으며, 머릿속에서 계산을 돌렸다.
‘내가… 사나흘에 한 번씩 마신다고.’
맞다.
배세진 말이 맞았다. 일주일에 두 번. 거의 사흘에 한 번꼴이다.
마시는 날보다 안 마시는 날이 더 많고, 아무 생각 없이 금방 마셔서 체감을 못 했다.
그러니까, 매번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버릇처럼 마시는 것이다.
“내, 내가 계산을 좀 해봤는데, 너 상담 받을 때는 좀 빈도 줄었던 것 같거든. 근데… 그, 휴가 때 다친 후로 또 자주 마셔.”
“…….”
“그리고 누가 너 술 건드리면 기분 상하는 것 같고, 술 주면 좋아하니까…… 내가 보기엔, 너무 의존하는 것처럼 보여.”
의존.
그러고 보니, 빡센 일 생길 때마다 쉴 때 맥주를 마시는 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박문대의 몸에 들어오기 전보다도 심해.’
어쩔 수 없다.
‘가성비가 좋잖아.’
시간, 노력, 금액 모두 고려해도 이만큼 편한 방법이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밖에 없다.
“좀,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 풀어보려고 할 수 있잖아. 그, 선아현도 자수 같은 거 하고…….”
나는 손에 들린 빈 캔을 보다가, 대답했다.
“……맞아요.”
“…!”
“조심하겠습니다.”
“그, 그래!”
배세진은 좀 놀란 것 같더니, 곧 힘차게 대답했다.
‘…도움을 받았군.’
나는 새삼스럽게 배세진을 보았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큼, 내가, 이런 걸 좀 빨리 알아서…….”
아마 집안 사정의 문제가 영향을 끼쳤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이거 버리고, 자러 갈게요. 더 안 마실 테니까 걱정 마시고.”
“그래. 빨리 자. 안 그래도 늦었어. 음, 어, 내일 콘서트 잘해야지.”
“그럼요.”
나는 부엌 쓰레기통에 캔을 버렸다.
그리고 내 방에 돌아가서 침대에 누웠다.
옆의 차유진은 벌써 침대에 거꾸로 누워서 완전히 잠들어있었다. 팝콘 먹다 잠든 듯싶다.
‘새 취미…….’
스트레스 해소용 취미까지 개발해야 한다니.
그래도 이제 돈에는 구애받지 않고 선택해도 될 것 같았다. 저축액이 크니까.
‘비싼 음식이라도 사 먹을까.’
차유진 침대의 빈 팝콘 봉투를 보니 반사적으로 그쪽부터 생각난다.
‘양만 조절하면, 차라리 그쪽이 괜찮을지도…….’
뭐 한우라도 먹어야 하나, 짧게 고민해보다가 잠이 든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날.
콘서트 준비를 위해 오전 일찍 나가기 전, 무심코 열어본 냉장고에 변화가 눈에 띄었다.
맥주가 싹 사라졌다.
범인으로 짐작 가는 놈은 당연히 하나뿐이다.
“…….”
부엌을 슬그머니 들여다보던 배세진이 내 시선을 피하다가 제법 뻔뻔하게 외쳤다.
“뭐, 뭘! 안 마신다며.”
그렇긴 했지.
‘진짜 의존 증상이 있긴 했나 보군.’
순간 좀 열받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예정대로 탄산수를 챙긴 뒤 냉장고를 닫았다.
“그거 맛없어요!”
차라리 콜라를 마시라며 강력히 추천하는 차유진을 무시하며 탄산수를 마셨다.
지난밤 고민을 다시 떠올랐다.
‘취미라…….’
그런 걸 특별히 만든 적이 있어야 말이지.
에라 모르겠다. 일단 콘서트나 제대로 끝내자.
* * *
“감사합니다!”
“사랑해! 사랑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우리 또 봐요!”
마지막 서울 콘서트라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다 감상에 젖었는지, 퇴장 멘트가 길었다.
“SEE YA~”
차유진이 닫히는 스크린 밖으로 손을 내밀어서 흔들다가 끼일 뻔했다는 점만 빼면, 그래도 만족스러운 엔딩이었다.
“바보야! 그렇게 행동하다가 다치는 거야!”
“나 바보 아니야! Passion 가졌어.”
체력 한번 넘치는군. 곧 똑같이 체력 넘치는 류청우에게 몇 마디 듣겠다.
나는 물을 마시며 수건으로 얼굴 부근과 목을 닦았다. 여운에 잠긴 놈들이 여기저기서 숨을 고르거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문대, 너도 폰!”
“어.”
그냥 대기실 가서 받아도 되는데, 오늘은 굳이 나눠주는군.
나는 스탭의 손에서 스마트폰들을 받아 나눠주는 큰세진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이윽고 위에서 울리던 환호성이 줄어들고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하자, 진정한 놈들은 백스테이지에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 오늘 왠지 더 착착 맞는 느낌 아니었어요? 아니, 물론 콘서트 다 좋았지만~ 마지막이라 그런가?”
“하하.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좋았어.”
“저, 정말… 좋았어요!”
“관계자분들의 시간 외 근무와 야간 소음 문제만 아니라면 한 곡 더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도를 걸으면서 듣는 말에 반박하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재밌긴 했어.’
사고나 곤란한 돌발 상황은 한 건도 없이, 딱딱 맞물려 돌아가는 공연이었다.
최상의 가정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해야 하나.
심지어 토크 때 즉석 공연도 그랬다. 약간의 행운과 우연이 맞물려서 재밌는 상황이 발생했거든.
‘다 벌칙에 걸릴 줄이야.’
덕분에 이긴 놈들 무대가 없어서 앵콜로 한 번 더 했다.
보니까 대놓고 벌칙 받게 만들려고 팬들끼리 모의하는 것 같던데, 아주 뿌듯해하고 있겠군.
“문대문대는 어땠어?”
“좋았지.”
“오~ 하기야 오늘도 닭똥 같은 눈물을… 켁.”
다 질질 짰으면서 매번 말만 뺀질뺀질 잘한다.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쓴 큰세진을 지나쳐 다시 걸음을 옮기자니, 복도 반대편에서 매니저가 다가왔다.
“저, 흠흠, 문대야!”
“…? 예.”
“잠깐, 잠깐 이야기 가능할까? 길게는 아니고!”
“아, 예.”
음, 십중팔구 회사 이야기겠지.
음주와 콘서트 생각하느라 바빠서 잠깐 잊고 있었다만, 지금 회사는 ‘ 시즌 4 테스타 콘서트 출연 사태’ 때문에 비상 상태 아니겠는가.
슬슬 위키에 ‘논란 및 사고’ 항목으로 추가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왜 굳이 날 집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뭐, 산업스파이 사건 때문에 내가 이것저것 잘 주워듣는 스타일이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겠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른 놈들에게 목례한 뒤, 매니저를 따라 이동했다.
매니저는 출입이 제한된 관계자용 주차장으로 가더니 내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내밀었다.
“음, 일단 좀 마시고 있어 볼래?”
“그러죠.”
나는 음료를 마시는 취미의 효용을 고민하면서 매니저가 본론을 꺼내기까지 좀 기다렸다.
그러나 아메리카노 한 잔이 다 작살나고 얼음만 남을 때까지 이놈이 입을 안 연다.
“……?”
그냥 어색하게 서서 괜히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는 척하는 매니저 놈을 보며, 나는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요, 형.”
“…아~ 음. 문대야. 요새 고민 없니?”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언제부터 회사가 그런 걸 신경 썼다고.’
나는 떨떠름히 대답했다.
“뭐, 특별한 건 없습니다. 왜요?”
“아니~ 음음, 아, 상담! 상담 같은 건 다시 해볼 생각 없고?”
“…….”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가, 피식 웃었다.
“왜요. 멤버들이 저 상담 필요하대요?”
“…! 어, 그런 건 아니고~ 요새 너 힘들어 보여서!”
아니긴.
‘태도를 보니 누가 찌르긴 했군.’
그리고 그걸 변명으로 대려면, 내가 입원했을 때 하는 게 맞았을 텐데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상담은 어차피 투어 시작하면 받기 힘들잖아요.”
“음, 그건 그렇지. 그… 음, 그래. 그래도 필요하면 꼭 말하고!”
“예.”
“…….”
“…….”
설마 이걸로 끝인가.
“더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음… 그래그래! 이제 들어가 볼까? 문대 앞으로도 화이팅하고!”
“네.”
별꼴을 다 보겠군.
나는 약간 의구심을 가지고 놈을 훑었으나, 곧 거두었다.
‘회사가 헛짓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뭐, 어디서 말이라도 들어서 면피용 시늉이라도 하나 싶다.
나는 말이 없어진 매니저를 대동한 채로 대기실로 복귀하며, 스마트폰을 만졌다.
‘소감이라도 하나 올리는 게 좋지 않나.’
나는 걸으면서 바로 화면에서 카메라 어플을 켰다. 그리고 셀카 모드로 돌렸다.
‘이젠 이걸로도 어느 정도는 찍지.’
물론 걸음에 초점이 흔들릴 정도로 스킬이 없지도 않다.
자, 수평 맞추고.
찰칵. 작은 소리와 함께 적당한 사진이 저장되었다.
‘괜찮군.’
이걸 올리자.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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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러뷰어
콘서트가 정말 즐거웠습니다. 사흘이 어떻게 지나간 건지 모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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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소개문을 빠뜨렸군.’
적다 말고 앞에 ‘저는 문대’를 추가하고 있으니 문득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음, 혼자 올리는 것보다는 단체샷도 하나 있는 편이 낫겠지.’
콘서트니, 그편이 더 와닿을 것이다. 쓸데없이 멤버를 비교하거나 빈정대는 개소리도 방지할 수 있고.
‘대기실 들어가자마자 한 컷 찍자.’
마침 대기실 문 앞이 코앞이었다.
나는 버릇처럼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반짝이가 비상하며 시야를 가린다.
퍼퍼펑! 퍼퍼퍼펑!!
방금까지 무대에서 봤던 꽃가루와 유사한… 이벤트 폭죽이다.
“…??”
정신 차리니 무슨 번쩍이는 실 따위를 뒤집어썼다.
어안이 벙벙해서 말문이 막힌 순간, 눈앞에 온갖 색의 고깔을 뒤집어쓴 놈들이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맨 앞에 선 두 놈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초콜릿인지, 흑갈색 강아지 데코레이 엉망진창으로 올라가 있었다.
문구는… ‘HAPPY BIRTHDAY’.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해!”
“…!!”
생일?
나는 문득, 머릿속을 날짜를 계산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12월 8일.
내 생일이다.
그러니까… 박문대 생일이 아니라, 내 생일.
류건우가 태어난 날 말이다.
“어떻게 알았….”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다가, 얼른 말을 멈췄다.
그러나 머리는 여전히 돌아가질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하하!”
내 꼴이 웃겼는지 큰세진이 빵 터지더니, 내 어깨를 친다.
“야, 설마 까먹었어? 너 다음 주 생일이잖아!”
“그, 그때 우리가 비행기에 있다고 하셔서… 가, 같은 요일에라도, 축하하면 좋을 것 같아서…!”
“…….”
아, 그랬군.
‘그렇지. 알 리가 없지.’
식은땀이 다 난다. 이제야 좀 이해가 간다.
…그래도 어떻게 하필 이날을 고른 건지는 모르겠다.
다 같이 벌칙을 받은 즉석 무대처럼… 우연과 행운이 겹쳐서 생긴 건지.
“그래. 그리고 콘서트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류청우가 웃으며 덧붙였다.
“문대가 워낙 콘서트 좋아하잖아.”
“…….”
“우리 열심히 준비했어요! 생일 케이크! 나랑 김래빈이 만들었어요!”
“차유진은 솜씨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가 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니야! 나 그림 잘 그려!”
제일 어린 두 놈이 케이크 데코레이션 공을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자기주장을 한다.
큰세진이 씩 웃었다.
“어쨌든 얘 진짜 놀란 것 같죠? 서프라이즈 대성공!”
“서, 성공…!”
‘맙소사.’
옆으로 슬쩍 빠져서 흐뭇한 얼굴로 보고 있던 매니저가 눈에 들어오자, 즉시 저놈의 행적을 이해했다.
“그럼 계속 뜬금없는 소리 한 게…….”
“에이, 요놈들이 시간 좀 끌어달라잖아~ 어쩌겠어! 형은 오다 받은 대로 말한 것뿐이다, 문대야!”
“…….”
매니저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상담 이야기나 해보세요’ ,‘좀 더 시간 끌어야 합니다’ 같은 소리로 찬 단체메시지방이 보였다.
참고로, 방 이름은 다.
누구 네이밍센스인지 안 봐도 알겠군.
히히덕거리던 큰세진을 보고 있자니, 놈이 웃음기를 줄이고 진지하게 말했다.
“아무튼 생일 진짜 축하한다!”
“Happy birthday, bro~”
그리고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엉망진창 생일 축하 노래가 대기실을 채웠다.
자리에 함께 있던 스탭들도 히죽히죽 웃으며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었다.
“…….”
느낌이 정말 이상했다.
‘…아니.’
좋았다.
그래. 이건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