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00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00화
아이돌 개인 활동.
주로 연차가 어느 정도 찬 상태에서 이루어지며, 심지어는 연차가 꽉 차도 안 하는 놈들도 있다.
지금 예시가 눈앞에 있기도 하군. 청려 말이다.
“VTIC이 재계약까지 개인 활동 없었던 건 네 입김이 맞겠지.”
“사장님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드렸다고 표현하죠.”
사장이 네 의견 행사에 도움을 줬겠지.
어쨌든, 그만큼 너무 팬덤을 자극하거나 분열되지 않을 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데뷔 초에는 그룹을 견고히 하는 것이 우선이라 더욱 그렇고.
하지만… 딱 결정적인 한 타만 원한다면, 이후 개인팬 봉합이야 알 바 아니라면.
지를 수 있는 것이다.
“일감 바로 분배하자.”
“미룰 필요는 없죠.”
끌어들일 수 있는 인맥은 다 끌어모은다. 대형 기획사라 꽂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은 것도 장점이지만….
‘이미 밖에서 성공한 놈들이 있다는 것도 써먹을 수 있지.’
배우 배세진, 자이롭 이세진.
동명이인 두 사람의 조력은 이미 약속된 상태였다.
-배세진 형 : 이미 이야기 됐어
-배세진 형 : 오후에 연락 갈 거야
배세진은 출연 영화의 OST를 잡아다 넘겼다.
원래는 그룹 단위로 참여할 수도 있지만. 짧은 텀으로 나오는 다음 앨범 타이틀에 화력을 몰아야 하니 홍보용으로 멤버 일부만 참여한다.
그리고 큰세진.
-큰세진 : 나 고정 들어갈 예능 있는데 같이 나오면 될 듯?ㅋㅋ PD님이 안 그래도 동료 추천 없냐고 물어보시더라
-무슨 예능인데
-큰세진 : 문제강아지 갱생 예능~~~ (훈훈한 곰 이모티콘)
큰세진이 문 프로그램답게 흥작이군. 당장 유년기부터 개를 키워 본 적임자를 추천했다.
“깜이를 돌보긴 했는데… 털 좀 깎아줬던 게 전부야.”
“보통은 털도 직접 안 깎아줘.”
그렇게 류청우는 즉시 투입되었다.
그리고….
“…….”
“이런 류의 프로그램에서 손해 본 적은 없긴 한데.”
“마음대로 해라.”
청려도 같이 출연하게 되었다. 못할 것 같진 않지만 어쩐지 사기 치는 느낌이 더 강해졌군.
그 외에도 특성 살려서 갈 수 있는 놈들은 다 잘나가거나 곧 잘나갈 프로그램에 꽂았다.
“저는 예능에 썩 적극적인 부류가 아닌….”
“우단아, 네가 VTIC 중에서 제일 예능감 좋기로 유명했더라.”
“유언비어입니다.”
나는 주단과 예스맨들을 재난 시뮬레이션 관찰 예능에 밀어 넣었다. 청려 결정이니 나한테 뭐라고 할 생각은 말아라.
“저는 뭐 해요?? 저 전부 잘해요!”
“넌 군대 갈 거야.”
“…!?”
그리고 차유진을 군대 예능에 꽂았다. 원래 안 가는 놈이니 이 정도는 견딜 거라 믿는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딱 한 명이 남는데… 뭐 이놈이야.
나는 김래빈을 정해둔 예능에 보냈지만, 놈은 기어코 당일 촬영 전에 전화까지 걸어왔다.
-형…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왜.”
김래빈이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건… 부정 참가이지 않습니까!
그렇다. 나는 이놈을 학생 래퍼 서바이벌 에 참가시켰다.
‘대형 기획사 17살 신인 아이돌, 학생 래퍼 서바이벌에 출사표’로 기사가 뜨는 이 상황이 부담스러운가 보다.
-저는 학생도 신인이 아닌데, 일종의 학력 조작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아직 설득이 덜 된 모양이다.
나는 입을 열었다.
“네가 아이돌을 5년 했든 하루 했든 거기선 똑같이 아이돌이야. 아이돌은 래퍼가 아닌 타 분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
“그리고 학생은 원래 나이에 결부된 명칭이 아니잖아. 어느 나이든 학교에 재학 중이면 학생인 거야.”
-그건…!
그리고 실제 이곳의 김래빈은 고등학교에 편입한 상태고 말이지.
스마트폰 너머의 소리는 한동안 조용했으나, 곧 대답이 돌아온다.
-그건… 타당한 말씀이시긴 합니다만.
“어. 그러니까 걱정 말고 최선을 다해서 하고 와라. 대충하는 게 오히려 실례인 거야. 얕보는 거 같잖아.”
-…!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래빈은 애들 싸움에 끼어든 재벌이 되어 판을 개박살 내게 되었다는 뜻이다.
‘벌써부터 반응이 예상되는데.’
나는 제법 흡족히 내 선택들을 되새김질했다.
그때, OST를 물어온 놈에게서 마침 연락이 온다.
-배세진 : 금방 촬영장에서 얼굴 보겠네 너희랑 뭐 같이 찍는다던데
OST 이야기에 가 생각난다며 의외로 아련한 발언을 하던 녀석다운 말이다.
그리고 OST 부르는 놈들에게 홍보 일정에 짧게 동행까지 시켜준다는 뜻이기도 하고.
하지만 말이다.
-영화 OST 제가 안 부르는데요
-배세진 : ???
-배세진 : 왜 너 메보잖아
-시간이 없어서요
그렇다.
나는 효율을 고려해서 다른 활동으로 빠졌다. OST는 음색 좋은 리드보컬들도 적임자니까.
그렇다면, 메인보컬은 무엇을 해야 가성비가 생기는가.
‘김래빈이 래퍼 서바이벌에 나간다… 면.’
그리고 증명된 능력치를 한 번 더 써먹는 메타라면.
사실 내가 갈 곳은 뻔하지 않은가.
나는 며칠 전에 확인한 기사를 떠올렸다.
[오로지 아이디어와 노래만… 특별 편성]이 특집 프로그램.
난 아직 프로토타입인 에 한 번 더 출연할 예정이었다.
물론 그 파격적인 꽃대가리 ‘5월의 신랑’을 또 들고 갈 생각은 없다.
‘…그것보다는.’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나는 차 안에서 노트북을 켜고 회사용 문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일은 오후 스케줄이니, 밤새워서라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 * *
이 처음부터 홀로그램을 이용한 최첨단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시작은 분장이었다.
전신을 가리는 탈과 특수분장으로 흡사 놀이공원의 캐릭터처럼 ‘가수의 아바타’를 만든 사람들이 직접 등장했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시작의 시기.
[내가 만든 가수님]“오.”
마침 TV 앞에 앉아 있던 한 아이돌 팬은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메인보컬만 잡아 온 그녀는 대학에 입학하고선 열정을 잃었다.
‘마음 가는 애도 없고.’
요새는 실물을 봐도 딱히 마음이 설레지 않았다. 이게 바로 돌태기인 게 분명했다.
‘이제 나도 어른이라 이건가….’
대학생은 화면에서 지나가는 설명을 감흥 없이 보았다.
‘…기괴한데.’
몇 년 후에야 정형화되지만, 초창기라서 도리어 어그로를 끄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캐릭터가 지나간다.
‘와 거미는 진짜 에바다.’
[춤추는 스파이더퀸] [8개의 발에서는 사람을 감동으로 얼어붙게 하는 독이 나온다!]메두사냐?
하얀 거미줄 의상 아래로 검은 발 여덟 개가 떡 벌어진 것은 솔직히 악몽에서나 볼꼴이었다.
인형 탈의 퀄리티가 좋지 않아서 더 그랬다.
“어흐.”
그래도 노래는 잘 부르고, 묘한 컬트적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채널은 고정되었다. (그리고 이 점이 이 특집 프로그램이 정규가 된 이유기도 했다.)
그렇게 온갖 괴상한 가수들이 순식간에 7, 8팀쯤 지나갔다. 1분만 노래를 부르고 승자만 뜨는 경우도 많았다.
“으헉.”
이제 그녀도 이 괴상함에 좀 질릴 때가 됐을 때.
휙휙 넘어가던 프로그램은 마침내 속도를 멈추고 천천히 다음 참가자를 소개한다.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처럼.
[이번 참가 가수는…… 개?]그리고 뒤뚱거리며 스테이지로 등장한 것은 정말로 피켓을 든… 웰시코기다.
노란 강아지 전신 인형 옷 말이다.
‘헐.’
너무 평범해서 도리어 괴리감이 느껴진다.
‘너무 대충 짠 거 아니야?’
아무 곳에서나 볼 법한, 대놓고 평범한 싸구려 인형 탈을 쓴 가수는 버둥버둥 움직여 스테이지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피켓이 클로즈업된다.
“큽!”
‘사랑해 주세요’ 따위의 멘트를 생각한 시청자는 사레가 들릴 뻔했다.
어쩐지 B급 감성인 번쩍이는 이펙트와 함께 캐릭터 설명이 나온다.
[너희 집 웰시코기] [온갖 재롱과 개인기를 마스터한 간절한 구직견] [출전 선언 : 키워 (네?) 키우라고]‘저게 뭐야!’
어쩐지 인형 탈의 반들거리는 눈알이 뻔뻔하게 느껴질 만한 멘트였다.
“미쳤나 봐.”
그렇게 말하면서도 대학생은 고개를 들고 화면을 보았다.
‘개그맨일까? 왠지 노래를 잘하진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음악이 깔리고, 마침내 그가 부르기 시작한 곡은….
-구름 너머 저 위로!
“…!”
밝은 미성과 강한 고음이 돋보이는 시원한 밴드곡이었다.
‘어어.’
B급 분위기를 확 바꿀 정도로 노골적인 가창력 자랑 곡.
“어후 누구야? 잘한다~”
“어어.”
거실을 지나가던 엄마의 말에 반사적으로 대꾸했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진짜 잘하네?
그 순간, 대학생은 아무 생각 없이 시간 때우기 용으로 보던 마음의 자세를 살짝 바꾸었다.
저 웰시코기의 다음 무대가 궁금했다.
웰시코기는 어마어마한 환성과 함께 인상적으로 2라운드로 진출했다. 뒷모습이 어쩐지 씩씩하게 보였다.
그리고 이후 라운드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2라운드에서는 또 다른 컨셉충 참가자와 함께 구성지고 애달픈 트로트를 부르고, 3라운드에서는 감성적인 발라드를 부른다.
음색이 휙휙 바뀌며 묘기처럼 곡을 부른다.
‘강아지 탈이 잘생겨 보이다니….’
왜 굳이 캐릭터를 창조하는지 알겠다며, 대학생은 재롱을 부리는 웰시코기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마침내, 우승자를 가리는 마지막 일대일 대전.
긴장감이라고 부를 것도 없이 시원시원 편집이 흐른다.
[참가 가수들은 모두 사전에 공지 받은 같은 곡을 부르게 됩니다!]선곡이 같으면 기량 차이는 더 두드러지게 되니까.
그리고 웰시코기는 기량이 정말로 출중했다.
-Be my light
이 시간이 지나도
너는 영원 해줘
여성 가수의 곡을 원키로 소화한 웰시코기는 거미를 정신적으로 때려눕히다시피 하며 최종 승리했다.
압도적이었다.
와아아악!!
“와씨.”
이게 뭐라고, 그녀는 압도적 승리로 느끼는 대리만족에 잠시 짜릿해 했다.
화면에서는 웰시코기가 제법 귀여운 승리의 댄스를 추고 있다. 놀이공원 경력직 같은 퍼포먼스다.
그러자 동시에 궁금해졌다.
‘누구지? 누구지?’
이럴 때는 집단 지성이지!
그녀는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인터넷에 접속해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내가 만든 가수님’과 ‘너희 집’이 검색어로 떠 있었다.
-와 재밌다
-뭐 이런 게 다 있냐고 생각하면서 보고 있는 내가 레전드
└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나도 그럼ㅇㅇ
-아니 근데 진짜 웰시코기 누구세요ㅋㅋㅋㅋ강성추인가?
└목소리가.참으로.비슷하긴.합니다.
└그 형님 성대 다 쓴지 오래십니다ㅠ 절대 아님~!
하지만 뾰족한 인물이 추려지지 않는다.
‘어?’
‘기성가수다’, ‘인디밴드 보컬이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유명 아이돌 메인보컬도 심상치 않게 나오는 분위기.
이 정도로 떠드는 사람이 많으면 대상자가 확 추려질 법도 한데 말이다.
그리고 대학생은 심각하게 생각했다.
‘아이돌이야.’
이 인간들이 편견 때문에 아이돌 팬들 주장을 안 받아줘서 그렇지, 그 재롱과 춤 실력은 예사 것이 아니었다.
트레이닝의 산물, 짬의 산물이 분명했다!
노래 잘 부르는 무명 아이돌 메인보컬! 이미 유사사례도 있으니 여기 배팅한다!
‘와, 이거 미치겠네.’
갑자기 대학생의 몸을 타고 쭉 긴장감이 솟았다.
‘아 얼굴도 모르는데 뭘 긴장해!’
입덕 신호였다.
결국 그녀는 묘한 입덕 부정기를 거치면서도 두근거리며 다음 주를 방송을 기다리게 된다.
추리해 보려 온갖 무명 아이돌 무대를 봤더니 눈이 충혈될 지경이었지만, 결국 딱 한 명을 가려내지 못했다.
‘제발!’
오늘이 이 특집 프로그램 끝인데 얼굴은 보여주겠지! 그럼 확 식든 불타오르든 하나로 결론이 날 것이다!
그녀는 침을 삼키며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내가 만든 가수님!] [불타는 아이디어와 가창력의 정면승부] [바로 지금, 후반전을 시작합니다.]또 괴상망측한 캐릭터들이 난무하고, 간간이 구색만 맞춘 듯 평범한 캐릭터가 나온다.
하지만 거기엔 ‘너희 집 웰시코기’ 같은 위트는 없다.
‘독보적이지.’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며, 그녀는 웰시코기에게 판정승을 8번쯤 때리며 프로그램이 끝나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그리고 한 시간이 좀 넘은 후, 마침내 이번 화의 우승자가 가려졌을 때.
[‘가마솥 우주선’이 만나게 될 마지막 상대는…?]피켓을 부여잡은 강아지가 스테이지 위로 올라온다.
[전반전 우승 가수님의 등장] []“후욱.”
대학생은 심호흡하며 TV를 보았다.
그 와중에 웰시코기는 피켓을 바꿨다.
[강인한?반려인간 구함]“흡.”
기준을 낮췄잖아…!
‘서사가 있네… 서사가 있어.’
구직난이 심화된 시대, 웰시코기는 관객들의 웃음을 선점하며 멋지게 최종 결승전 무대를 시작했다.
무대 위로 천천히 어둠이 내리고.
탁.
스포트라이트가 켜진다.
평범한 한 손 마이크를 손에 든 강아지의 탈에선 얼굴 변화 하나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기분 좋은 목소리가 나온다.
[찾는 사람이 있어요]웰시코기는 이야기를 하듯이 마지막 노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