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enders score goals well RAW novel - Chapter 117
제가 5백의 중심
파아아아앙!
요시 베나윤이 발 빠르게 왼쪽 뒷공간을 파고들어 나의 로빙 패스를 원터치로 차 넣었다.
[골! 골! 고오오오올~! 수비수 나영웅이 이번에는 도움을 기록하며 경기를 뒤집습니다!] [팔레르모 1 대 2 웨스트햄]팔레르모 경기장이 술렁거렸다.
세리에A 말고 타 리그에는 무지한 팔레르모 팬들에게 우리의 축구는 충격이었다.
“저 동양인은 수비수잖아. 그것도 최종 수비수. 근데 왜… 저 녀석이 우리 골대 앞에서 설치는 거야?”
핑크색 머플러를 두른 팔레르모 팬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경기를 보았다.
전반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희망에 불탔다.
창단 후 100년 동안 그저 그런 지방 삼류구단으로 지내오다가 이번에야말로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대항전에서 우승컵을 들지도 모른다고 들떠 있었는데.
유럽의 벽은 높고 두터웠다.
뻐어어어어어엉- !!!
[고오오오오올~!! 나영웅! 오늘 경기에서만 두 번째 중거리 슈팅을 성공합니다! 2골 1도움! 누가 이걸 센터백의 공격포인트라고 하겠습니까?] [팔레르모 수비진의 대처가 늦었어요. 슈팅력이 좋은 나영웅에게 절대 앞 공간을 내주면 안 되죠.] [팔레르모 1 대 3 웨스트햄]해법이 나오자 팔레르모는 일방적으로 당했다.
셰링엄과 구드욘센이 이탈리아 국대 센터백 두 명을 잡아놓은 덕분에 나는 그 앞에서 마음 편하게 중거리 슈팅을 때릴 수 있었다.
팔레르모도 뒤늦게 총공세를 해왔는데 우리 수비진은 두 번 당하지 않았다.
삑! 삑! 삐이이이익- !
[경기 끝났습니다. 웨스트햄이 원정 1차전에서 3대1로 승리하며 UEFA컵 8강에 한발 다가섭니다!] [팔레르모는 전술에 집착하다가 대전략에서 패했어요. 이탈리아식 수비 축구의 한계를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이제 이탈리아 축구도 변해야 유럽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MOM으로 선정된 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팔레르모는 너무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팬들도 환상적이구요. 나중에 관광 오고 싶네요. 아. 런던으로 돌아가기 전에 제 친필 사인 유니폼을 한 장 선물하고 가겠습니다. 이곳 팔레르모에 제 유니폼을 탐내는 노인네가 있다고 하니까요. 후후.”
나는 사인과 메시지를 적은 내 유니폼을 기자들에게 보여주었다.
[꽃의 도시 팔레르모의 구단주님께. ‘한국인’ 축구선수 나영웅이 사랑을 담아 드림.]나를 유니폼 팔이 중국 선수라고 약 올린 잠파리니 팔레르모 구단주에게 한 방 먹이고 나는 기분 좋게 시칠리아섬을 떠났다.
나중에 들었는데 내가 보낸 유니폼을 잠파리니 구단주가 받아서 액자에 넣어 구단 사무실에 당당히 전시해놓았다고 한다.
잠파리니는 진정한 괴짜 영감이다.
***
[웨스트햄. 프리미어리그 29라운드에서 볼턴에게 1대2 충격 패. 리그 순위 5위.]우리는 이탈리아에서 런던으로 돌아와 다음 날 리그 경기를 치렀다.
나는 휴식을 부여받고 교체 명단에서도 빠졌다.
피치에서 90분 동안 심장이 터지도록 뛰는 것보다 티비로 내 팀의 패배를 지켜보는 게 더 고통스러웠다.
[웨스트햄. UEFA컵 16강 팔레르모와 2차전에서 0대0 무승부. 8강 진출 확정.]나는 5일 후 벌어진 팔레르모와의 홈 경기에는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끝내 출전하지 않았다.
졸라 감독은 이틀 후에 있을 포츠머스와의 리그 경기를 위해 나를 아꼈다.
“나영웅! 나영웅! 나영웅!”
팔레르모와의 홈 경기가 지루하게 흘러가자 웨스트햄 팬들이 나의 이름을 외쳤다.
이 타이밍에 중계 카메라가 내 얼굴을 확대해서 잡는다는 걸 알기에 나는 표정 관리하느라 힘들었다.
혹시 인상이라도 쓰면 다음 날 [나영웅과 졸라 감독의 불화설?] 같은 기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엿 같은 영국 언론.
심지어 경기장에서 졸라 감독에게 욕을 하는 팬들도 있었는데 축구 감독은 정말 할 짓이 못 된다.
본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100년 만에 첫 리그 우승을 위해 신중하게 수를 두고 있는 졸라 감독에게 욕이라니.
[나영웅. 2경기 연속 결장. 또 부상인가?] [나영웅 결장 미스터리. 리그 막판 웨스트햄의 악재.]이제 나도 꽤 유명해진 모양이다.
2경기 안 나왔을 뿐인데 전 영국이 일제히 나의 상태를 궁금해했다.
나의 부상설에 대해 [더 선]에서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했고 [매치 오브 더 데이] 방송에서도 나의 부상설을 다루었다.
심지어 한국의 현지도 걱정해서 부상이 아니라고 한참 설명을 해줘야 했다.
온 세계가 나의 몸뚱아리 상태에 관심을 가졌다.
[웨스트햄. 리그 30라운드에서 포츠머스 2대0 격파. 나영웅 풀타임 출전. 1도움 기록.] [나영웅. 팀 내 최고 평점. 부상설을 비웃다.]다음 경기에 내가 출전해서 멀쩡하게 뛰자 요란하던 부상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언론과 미디어는 또 다른 이슈를 만들기 위해 다른 먹잇감을 찾아다녔다.
“내가 점점 슈퍼스타가 되고 있구나.”
며칠간의 부상 소동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베컴, 메시, 호날두, 네이마르 같은 슈퍼스타들이 자신의 인기 때문에 끊임없이 온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하는지 그게 얼마나 짜증나고 피곤한 일인지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아직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가야겠지?”
신에게 다시 생을 부여받은 이상 축구로 내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시도할 생각은 변함없었다.
“신경을 끄자.”
나는 한국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려다 컴퓨터를 꺼버렸다.
한국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은 지도 꽤 되었다.
들어가면 나를 주제로 다양한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귀화설, 병역면제, 싸가지설, 국가대표 거부설, 바람둥이설, 썰썰썰~
온갖 잡설들이 난무했고 관계자도 아닌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끊임없이 싸워댔다.
독일 월드컵을 3개월 앞둔 상황에서 나를 둘러싼 한국의 여론은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웨스트햄. 맨시티전 3대 1 승리. FA컵 4강 진출.]리그 경기가 끝나고 3일 만에 치러진 FA컵에서 나는 90분을 풀타임으로 뛰며 승리를 이끌었다.
아르헨티나 듀오는 이제 팀에서 없으면 큰일 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영국에 왔을 때 몸이 엉망인 둘을 개인 코치까지 붙여 한 달을 기다려준 졸라 감독의 공이었다.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7일을 통째로 쉴 수 있어서 기뻐하고 있는데 구단 사무실로 손님이 찾아왔다.
한국에서 왔다는 그의 이름을 듣자마자 인상이 구겨졌다.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육성 팀장 박재윤]“영웅아~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드니~ 반갑다~ 나 기억하지?”
“당신은…”
예전에 잠실 부모님 집으로 나를 찾아왔던 축협 박재윤 팀장이었다.
고급 슈트에 갈색 피부 뻔뻔한 표정은 그대로였다.
그때 나는 박재윤과 일종의 거래를 하고 연령별 국가대표 소집을 보이콧 했다.
“런던에는 어쩐 일이세요? 그동안 승진하셨나 봐요?”
“덕분에~ 지금은 월드컵팀을 돕고 있어.”
축협 같은 조직에서는 박재윤 같은 인간이 성공하는 법인가 보다.
“서로 바쁘니까 결론부터 말할게. 지금 감독님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아드보카트 감독님이요!?”
“그래. 너 때문에 런던까지 오셨다. 인마.”
월드컵 국가대표팀 감독이 일개 선수인 나를 만나려고 런던까지 찾아오다니.
충격이었다.
나는 그와 아드보카드 감독이 기다리는 호텔로 향했다.
스코틀랜드에 차린 월드컵팀 훈련 캠프를 점검하러 왔다가 나를 만나려고 런던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박재윤 팀장은 능글맞게 친한 척을 했다.
“내가 뭐랬어? 너는 될 거라고 그랬잖아. 어릴 때부터 떡잎이 달랐다니까.”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당연하지. 너 보기보다 기억력이 나쁘구나. 난 내가 한 말은 전부 기억해. 남이 한 말도 그렇고. 후후.”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런 인간과 말을 오래 섞어봐야 좋을 게 없다.
“어서 와요. 영웅 선수.”
“처음 뵙겠습니다. 감독님.”
아드보카트 감독은 친근하게 나를 대했다.
유럽 최전선에서 일했던 감독답게 선수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알았다.
전생에서 그는 독일 월드컵에서 선전했지만 결국 조별리그 탈락이란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다.
그런데 그는 월드컵의 아픔이 사라지기도 전에 러시아로 재빨리 팀을 옮기며 한국인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네덜란드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지 몰라도 한국인들 정서에서는 돈만 밝히는 얍삽이로 보였다.
“자네의 요즘 활약상을 잘 보고 있네.”
“감사합니다. 감독님.”
“너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찾아왔어.”
“어려운 걸음 하셨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국가대표팀에 참여하지 않은 걸 알고 있어. 항간에 나쁜 소문도 있지만 나는 사실이 아니라고 믿네.”
“대부분 사실이 아닐 겁니다. 저는 그저 동양인 선수로 유럽에서 자리를 잡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훌륭해. 어린 선수가 그런 각오로 유럽에서 경력을 쌓는다는 건 대단한 일이야.”
“과찬이십니다.”
“내가 먼저 제안을 하지. 나는 자네를 중심으로 국가대표팀을 짤 거야. 그러니까 유럽 일정이 끝나는 대로 최대한 빨리 대표팀에 합류해 주게.”
“저를 중심으로요? 저는 대표팀 선수들과 한 번도 발을 맞춰본 적이 없는데요.”
“독일 월드컵 개막전까지 4번의 평가전이 있어. 그 정도면 충분해.”
“4번의 평가전…”
“우리 대표팀은 지금까지 4백과 3백을 병행하며 실험을 해왔어. 하지만 아직도 뾰족한 해답을 얻지 못했지. 그런데 웨스트햄에서 자네의 플레이를 보고 비전을 봤어. 지금 대표팀 수비진에 자네를 중심에 놓고 역습 위주의 5백을 운용한다면 월드컵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제가 5백의 중심…”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아드보카트호는 월드컵 직전까지 4백과 3백을 실험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가 수비진 리더의 부재였다.
영원한 리베로이자 2002년 월드컵 4강의 수비수 캡틴 홍명주가 은퇴하며 대한민국팀에는 수비진을 조율할 리더가 없었다.
“영웅 선수가 스리백과 윙백을 컨트롤 하면서 리베로처럼 자유롭게 공격에 가담하는 거야. 그럼 상대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겠지.”
지금 아드보카트호에는 양질의 윙백 자원이 풍부했다.
안인표와 송정웅은 말할 것도 없고 조희원, 김종진도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했다.
내가 태극마크를 달고 그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두근- 두근-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우리가 구상한 수비 시스템이 독일에서 제대로 작동하기만 한다면 조별예선 통과는 기본이고 8강, 4강…
그 이상도 노려볼 만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멤버들이 건재했기에 수비만 받쳐주면 놀라운 성과를 또 만들어낼 수 있다.
“감독님.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