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enders score goals well RAW novel - Chapter 65
넌 지금 돈방석에 앉았다는 거야
“어쩌라구?”
나는 영어 교사 제임스에게 교양있는 사람들이 쓰는 런던식 영어를 배웠다.
나의 런던식 말투를 잉글랜드 타지역 사람들은 재수 없다고 여겼다.
반대로 나는 타지역 특히 북쪽 사람들의 영어를 알아듣기 어려웠다.
특히 리버풀 사투리와 뉴캐슬 쪽 사투리는 지독했다.
“현지에게 메일이 왔네.”
런던으로 돌아와 메일함을 열어보니 반가운 편지가 와 있었다.
성시경의 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음악 편지였다.
[영웅 오빠. 지난 새벽에 경기 잘 봤어요. 프리킥 완전 멋졌어요. 저도 모르게 꺅! 소리 질러서 할머니한테 혼났어요. ^^ … 요즘 주변에 오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분식집에 오는 초등학생들부터 학원 다니는 학생들, 선생님들까지요. 남자들은 다 오빠 이야기를 해요. 그 경기 봤냐!? 졸라 잘하지 않냐? 막 이러면서요. ㅎㅎ 내가 오빠랑 아는 사이라고 말하면 다들 비웃을까 봐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어요…]현지는 내 경기를 꼭 챙겨본다고 했다.
덕분에 축구에 흥미가 생겨서 책도 찾아보고 규칙과 역사도 공부한다고 했다.
내가 직접 운동장 가서 해보라고 했더니 본인은 운동신경이 꽝이라서 안 된다나.
“어디 보자~ 인터넷 반응을 좀 볼까~~”
딸깍- 딸깍-
시즌 초보다 아주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국 인터넷 스포츠 뉴스와 댓글을 찾아보았다.
[나영웅! 거인 리버풀을 물리치다! 1골 1도움으로 경기 최고 평점! 웨스트햄의 핵심!] [프리미어리거 나영웅의 환상적인 무회전 프리킥 골. 수비수로 리그 득점 순위 7위까지 올라.]L 진짜 경기 보는데 입이 딱 벌어지더라. 수비도 잘하고 골도 잘 넣고 생긴 것도 잘 생기고… 씨바. 왜 눙물이…
L 빨리 다른 팀으로 이적해야 할 듯. 나영웅이 아까움.
L 영어로 인터뷰하는 거 멋있더라. 우리 아들이 그거 보고 영어학원 끊어달라고 함. ㅎㅎ
기사와 댓글이 찬양 일색이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자랑스러운 대한의 국민 막내아들이었다.
시즌 초와 달리 부정적인 댓글이 하나도 없어서 좀 무서울 정도였다.
[어제 영웅이가 제라드랑 경합하는 거 봤냐!? 폼 완전 미쳤더라. 수비 공격 드리블 뭐 다 잘해.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까지 개멋짐.]L 맞아. 영어가 능숙하더만 그 어린 나이에 언제 그렇게 준비한 거지?
L 영웅이를 당장 성인 대표팀에 넣어야 해. 이러다가 아시아 예선에서도 떨어진다. 축협 새끼들은 일 안 하냐?
축구 커뮤니티에서도 나를 숭배하고 있었다.
시즌 초반까지는 1부리그에서 절대 안 통한다고 떠들던 놈들이 절반이었는데 모두 사라졌다.
이런 놈들은 조용히 숨어 있다가 내가 부진하면 하나둘 다시 등장할 거다.
[나영웅 월드컵 대표팀 승선을 축협에 정식 요청하는 서명을 받습니다. – 나영웅 국가대표 추진위원회]나의 팬카페에서는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었다.
이러면 부담스러운데.
사실 나는 구단을 통해 한국에서 오는 축협, 언론의 요청 등을 모두 커트하고 있었다.
요즘 대한민국 국대 팀은 조 본프레레라는 삼류감독이 이끌고 있었는데 그가 결국은 쫓겨날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굳이 내가 그런 팀에 들어가서 힘을 뺄 이유가 없었다.
“내가 대표팀에 들어가는 타이밍은 아시아 최종예선이 끝난 후야.”
나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빼고 다른 국가대표 경기는 나갈 생각이 없었다.
괜히 비행기 타고 한국을 오가며 의미 없는 경기를 치르는 것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경기라도 더 뛰는 게 나를 위해서도 좋았고 미래의 한국 대표팀을 위해서도 좋았다.
게다가 나는 한국에서 학력이 중학교 중퇴라 군대도 면제였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대회에 나갈 이유가 없었다.
“분위기를 보니 슬슬 축협이 움직일 거 같은데~”
여론이 축협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만났던 그 싸가지 없는 간부가 떠올랐다.
박재윤 유소년 육성 팀장이라고 했던가.
곧 런던으로 그 사람보다 윗사람이 나를 찾아오지 싶었다.
***
“영웅아. 너를 만나고 싶다고 한국 사람이 구단 사무실로 찾아왔어.”
며칠 후.
나를 만나러 온 한국인은 축협이 아니라 다른 조직 사람이었다.
“반갑습니다. 나영웅 선수. 나는 오성기획 영국지부 최종건 팀장이라고 합니다.”
최종건은 영업팀장답게 수완이 좋았다.
나와 반드시 만나려고 직접 사무실을 찾아와서 기다렸다.
구단으로 요청서를 보냈으면 그냥 무시해 버렸을 텐데 이렇게까지 하면 나도 만나줄 수밖에 없었다.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하하하! 런던에서 일하는 같은 한국인으로 나영웅을 만나고 싶은 건 모두의 꿈 아니겠습니까?”
“설마요.”
“요즘 영국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이 나영웅 선수 때문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덕분에 국가 브랜드가 엄청나게 올라갔거든요. 다들 저를 만나면 나영웅 선수와 아는 사이냐고 물어보고 난리에요.”
“정말요?”
“그렇다니까요! 하하하.”
축협 박재윤 팀장과는 달리 최종건은 자연스럽게 아부를 하며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오성기획은 종합 광고 기획사로 대한민국 최고 재벌 광고를 도맡아 집행하는 회사였다.
거기에 영국지사 팀장이면 회사 내에서도 잘 나가는 엘리트라는 뜻이다.
그런 엘리트가 나에게 아부를 늘어놓다니.
“물론 제가 여기 온 건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라 회사의 일 때문입니다.”
“오성기획 일이요?”
“나영웅 선수. 우리 한국인들끼리 영국에서 일 크게 한번 칩시다.”
최종건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넌 지금 돈방석에 앉았다는 거야. 인마.]이런 표정이었다.
우리는 미팅룸으로 가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 정리하자면 오성그룹이 저와 저의 구단을 후원하고 싶다는 뜻이네요?”
“그렇습니다. 앞으로 저희와 파트너로 협력하며 전 유럽에 한국의 새로운 이미지를 심는 거죠. 그 새로운 한국의 얼굴이 바로 나영웅 선수가 될 겁니다.”
“거창하네요.”
“과장이 아닙니다. 유럽 축구, 특히 프리미어리그는 앞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스포츠 브랜드가 될 겁니다. 그곳에서 아시아인이 활약한다는 것. 그 아시아인이 한국인이라는 것. 이건 엄청난 상징성을 가집니다. 유럽을 넘어 전 아시아까지요.”
“… 일단 알겠습니다. 뭐든 진행해 보죠. 그리고 앞으로는 구단으로 오지 마시고 이곳으로 연락을 주세요.”
내가 건넨 명함을 보고 최종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명함과 나를 번갈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런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제가 투자한 회사에요. 운영은 친구들이 하고 있구요. 저의 초상권과 광고 계약 등을 전담해서 집행하고 있으니까. 앞으로 프로젝트는 저의 직원들과 함께 진행하시면 됩니다.”
“아… 그러죠.”
“그럼. 이만.”
나는 최종건을 놔두고 먼저 미팅룸을 빠져나왔다.
나에게 예의를 갖췄지만 속으로는 아직 어리니까 비즈니스를 자기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있을 거라고 얕봤을 거다.
최종건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비즈니스에서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는 건 기본이니까.
나는 첫 미팅에서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인상을 확실히 심어주었다.
앞으로 정식 광고 계약을 할 때 훨씬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을 거다.
나는 폴과 제임스에게 전화해서 이 소식을 알렸다.
“와우! 영웅아! 이건 엄청난 비즈니스가 될 거야!”
“앞서가지 말아요. 아직 정식 제안은 없으니까. 앞으로 나의 활약상에 따라서 계약의 크기와 형태가 많이 바뀔 거예요.”
“그래도 그들이 먼저 제안을 해왔잖아. 이건 대단한 사건이 맞아.”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이 일을 지렛대로 삼아서 한국기업 말고 영국기업과도 일을 만들어야 해요.”
“와… 그건 생각 못 했네. 넌 역시 난 놈이야.”
“내일이라도 사무실에 연락이 갈 거니까 지금부터 준비해놓으세요.”
“알겠어!”
뚝-
전화를 끊고 혼자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돌아갔다.
안필드에서 리버풀을 꺾은 후 이상하게 모든 일이 잘 돌아갔다.
그렇게 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첫 12월을 맞이했다.
***
16라운드 풀럼전 2대0 승
17라운드 볼턴전 1대0 승
안필드 원정 승리 후 웨스트햄은 상승세를 탔다.
새 주장 마이클 캐릭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우리는 뛰어난 경기력으로 3연승을 달렸다.
캐릭은 졸라가 뛰던 위치에서 10번 롤을 수행하며 동시에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주었다.
보통 10번은 중앙에서 설렁설렁 뛰는데 캐릭은 마당쇠처럼 뛰어다니면서도 절묘한 전진 패스를 찔러넣었다.
캐릭의 10번 롤에 재미를 본 건 저메인 데포였다.
그는 3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슬럼프를 벗어났다.
그런데.
[EPL 04-05시즌 18라운드 첼시 대 웨스트햄]하필 박싱데이를 앞두고 리그 1위 첼시를 만났다.
우리는 지난 홈경기에서 첼시와 극적인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때 첼시 무리뉴 감독은 심판의 판정을 비판하며 다음 첼시 홈경기 때 복수를 하겠다고 예고했었다.
그 경기 후 웨스트햄 훌리건과 첼시 훌리건들이 그린 스트리트에서 한바탕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었다.
“웨스트햄은 기적의 팀입니다. 그런 형편없는 선수들로 지금 성적을 유지한다는 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하지만 그 기적도 내일이면 끝이 납니다. 그들을 끝장낼 방법을 찾아냈거든요. 후후.”
무리뉴 감독은 경기 전날 인터뷰에서 독설을 퍼부어댔다.
반면 졸라 감독은 기자들의 악의적인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의 런던 복귀에 첼시 팬들이 실망한 걸 알고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저도 염려했던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첼시의 선수 이전에 축구인입니다. 웨스트햄의 감독이 된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만약 첼시에서 먼저 제안이 왔다면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겠죠. 내일 스탬퍼드 브리지의 피치에 설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졸라 감독을 두고 첼시 팬들은 반으로 갈라져 논쟁을 벌였다.
이해한다는 편과 배신자라는 편.
첼시 팬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말싸움을 벌이며 경기 전부터 불타올랐다.
웨스트햄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과격파 훌리건들은 마치 스탬퍼드 브리지 공성전을 준비하는 용병단처럼 작전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내일 서부 런던에 피바람이 분다는 건 예정된 사실이었다.
***
“옆 동네 가는 건데 왜 이렇게 떨리지?”
경기 날 당일 아침.
우리는 훈련장에 모여서 밥을 먹고 간단하게 몸을 푼 후에 버스를 타고 서런던으로 떠났다.
졸라 감독은 굳은 얼굴로 창밖을 보았다.
“감독님. 떨리세요?”
옆에 앉은 내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