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468
467화. 솜사탕 (3)
밤이었다.
양춘각 영업을 마치고 문 앞에 영업 종료 팻말을 바꿔 달기 위해 나갔던 강소는 고개를 들어 골목길을 보았다.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시지?”
강소가 느낀 건 고영민의 기운이다.
그는 양춘각 안으로 들어가 유순태에게 고영민의 방문을 알렸다.
딸랑.
유순태가 주방에서 나왔을 때, 고영민이 양춘각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고영민은 아직 주방 안에 있던 황진혁과, 홀 안을 청소 중이던 허만철과도 인사했다.
오동수는 조금 전 퇴근했다.
아직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일찍 퇴근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밤중에 어쩐 일이십니까?”
유순태의 물음에 고영민이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좋은 소식이요?”
고영민은 탁자 앞에 앉았고, 강소가 평소처럼 그에게 물었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 혹시 커피 말고 다른 것 있습니까?”
“꽃차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곧 강소는 꽃차를 내주었다.
그건 메리골드라는 꽃을 말린 것으로 눈에 좋은 효과가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고영민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 하루 쌓였던 피곤함이 싹 풀리는 듯했다.
당연했다.
강소가 회복의 기운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벤토리에서 수확한 메리골드 꽃을 우린 것이니 말이다.
그 사이 임소영이 내려와 유순태 옆에 앉았다.
그리고 뒷정리를 마무리한 황진혁이 퇴근하고 허만철은 3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조용해진 가운데, 유순태는 고영민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입니까? 좋은 소식이라니요?”
“다름이 아니라…….”
잠시 뜸을 들이던 고영민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에 코튼핑크의 앨범 타이틀곡에 유하영 양이 공모한 가사가 채택되었습니다.”
“네? 하영이가 쓴 가사요?”
그 말에 고영민은 가방 안에서 액자 하나를 꺼냈다.
액자 안에는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이건?”
“하영이가 친필로 쓴 가사입니다.”
그건 유하영이 열심히 빈칸을 채운 가사지였는데, 빈칸 안에는 유하영이 직접 쓴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가사를 읽어 본 유순태와 임소영 그리고 강소는 깜짝 놀랐다.
7살이 썼다고 하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의 퀄리티였기 때문이다.
“이걸 정말 하영이가 쓴 겁니까?”
“어머나!”
그 말에 고영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CCTV도 확인했습니다. 정말 믿기 힘들지만 혼자 작성한 게 맞습니다.”
고영민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헤븐스 차일드 멤버들과 함께 간식을 먹다가 유하영이 종이와 연필을 챙긴 것.
그리고 혼자서 종이를 가지고 놀다가 잠이 든 것과 가사를 보고 홍석원이 대리로 제출한 것 등등.
모든 전말을 듣고서야 그들은 이번 일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된 일이었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때 유하영이 내려왔다.
그녀의 손에는 대본이 들려 있었다.
“아빠. 이거 모르는 글자가 있어요.”
대본을 읽다가 뜻을 모르겠는 글자가 있어, 그걸 물어보기 위해서 내려온 것이다.
“어? 안녕하세요.”
고영민을 본 유하영은 얼른 인사했다.
“하영 양. 좋은 밤입니다.”
“네.”
유하영은 의자 위로 올라왔고, 탁자 위에 있던 가사지를 보았다.
“어? 이거 내가 퍼즐한 건데?”
“퍼즐을 했다고?”
“네.”
유순태의 물음에 유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 빈칸에 들어갈 글자가 뭔지 알 것 같아서요. 그래서 낱말 넣기 퍼즐을 했어요.”
그러면서 배시시 웃었고, 이에 강소가 말했다.
“그랬구나. 그런데 모르는 글자가 있다지 않았냐?”
그 물음에 유하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본을 내밀었다.
“여기 ‘쾌척하다’가 무슨 뜻이야?”
강소는 유하영이 가져 온 대본을 보았다.
이번 게스트는 용해진이라는 이름의 중년의 조연 배우였다.
헌터였던 부인이 5년 전에 게이트 안에서 전사했는데, 용해진은 부인의 이름으로 부상당한 헌터들을 위해 많은 기부금을 쾌척했다.
대본을 보니 그때 일을 묻는 것.
“이 글자를 몰랐구나.”
“응.”
“이건 한자로 쾌(快)라는 글자와 척(擲)이라는 글자를 합쳐서 만들어진 낱말이다. 쾌에는 상쾌하다 라든지, 즐겁고 기쁘다든지 병세가 좋아진다와 같은 뜻이 있지.”
“그럼 척은?”
“척은 던지다, 버리다 또는 노름을 한다는 뜻이 있다.”
“어…… 노름이 뭐야?”
“그건…….”
오늘도 질문의 개미지옥이 이어졌지만, 강소는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노름은 도박과 같은 말이다. 돈이나 이런저런 물건 같은 것을 걸고 게임을 하는 거지.”
“나 그거 알아. 그런데 왜 노름을 하는 거야?”
유하영은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나중에는 다 잃는데.”
다른 사람과는 다른 눈을 가진 그녀의 눈에는 역시 다르게 보이는 듯했다.
강소는 피식 웃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노름에 빠지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여기서 쾌척이라는 말은 상쾌하게 던지다 즉, 금품을 써야 할 곳에 시원하게 돈을 내어 놓는다는 뜻이지.”
“그렇구나. 이해했어.”
유하영이 말을 이었다.
“한자는 글자마다 뜻이 여러 개 있어서 어려워.”
“그래서 세종대왕님께서 소리글자인 한글을 만드신 거겠지.”
“응. 나 한글 좋아.”
유하영이 배시시 웃었다.
“알려 줘서 고마워.”
그렇게 유하영의 용건이 해결되고 고영민이 말했다.
“하영 양. 이번에 하영 양이 쓴 이 가사가 코튼핑크의 노래로 만들어질 겁니다.”
“이모들 노래요?”
“네.”
이에 유하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모들이 좋아하면 저도 좋아요.”
그러곤 다시 2층으로 쪼르르 올라갔고, 고영민이 말했다.
“이제 보니, 강소 씨. 제법 아이 돌보는 데 소질이 있으십니다.”
“그렇습니까?”
강소는 뺨을 긁적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네.”
유순태가 말을 이었다.
“이 가사를, 우리 딸이 지었다니! 이제 7살인데!”
그 말에 고영민이 말했다.
“저희 RD엔터의 A&R 부장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원래 천재는 범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 안에 있다고요.”
그는 말을 이었다.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임소영이 말했다.
“사실 코튼핑크 애들의 앨범이 엎어졌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아팠는데, 이렇게나마 하영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
고영민이 하하 웃었다.
“아, 내일 중으로 유하영 양 통장으로 5백만 원이 입금 될 겁니다.”
“5백만 원이요?”
“네. 상금입니다. 아, 물론 작사가로 정식 등재됨은 물론이고 저작권 수입도 나올 겁니다.”
* * *
코튼핑크의 앨범 작업에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이미 만들어 놓은 앨범에 노래 하나만 바꾸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약 일주일 후.
강소는 TV를 보고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새 앨범으로 찾아오신 분들이 있죠] [네! 여전히 사랑스러운 그녀들! 코튼핑크입니다]강소가 보고 있는 건 음악 방송이었다.
엊그제 코튼핑크 멤버들이 양춘각에 찾아왔었다.
한우 세트와 과일, 초콜릿 종합 선물 세트를 들고 온 그녀들은 유하영에게 고맙다고 말하기 위해 온 거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컴백 무대를 하니까 꼭 보라는 말에 이렇게 양춘각 직원들이 단체로 음악 방송을 보고 있는 것.
“그러고 보니, 오늘이 하영이의 작사가 데뷔일이네?”
유순태의 말에 강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역사적인 날이다.”
“맞아. 역사적인 날이지.”
뒤에 앉아 있던 황진혁과 허만철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 임소영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유하한테 메시지가 왔는데, 맨 마지막 순서라고 하네요.”
“아, 그래?”
“원래 가장 중요한 사람은 맨 나중에 등장하는 거다.”
진지한 강소의 말에 황진혁과 허만철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김지은은 열심히 팬클럽 활동 중이었다.
팬클럽 회장으로서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면서 열의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역시 김지은은 열혈 대왕 초코빵이다.
그렇게 코튼핑크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
“…….”
강소는 불쾌한 기운을 느꼈다.
게이트가 열리려는 기운이었는데, 그 위치가 강소를 상당히 불쾌하게 했다.
‘왜 하필 방송국 근처지?’
아무리 사전 녹화를 했다지만, 이렇게 되면 제 시간 안에 제대로 방송이 진행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어디 가?”
유순태의 물음에 강소가 대답했다.
“잠시, 볼일이 생각났다.”
양춘각을 나선 강소의 두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감히 하영이의 작사가 데뷔를 방해해?’
그건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 * *
그 시각, 은탑의 관제실.
전국의 모든 게이트의 발생을 감지하는 곳이다.
“게이트가 발생했습니다. 등급은 현재 B등급으로 예상 중.”
직원의 말에 함께 있던 또 다른 직원이 얼른 윗선에 보고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어?”
그때 관제 모니터를 보고 있던 직원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그 직원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게이트가 있었는데요.”
“……?”
“없어졌습니다.”
“……응?”
* * *
딸랑.
양춘각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며 강소가 들어왔다.
“왔냐?”
“얼른 오십시오. 형님.”
“무슨 볼일이 있어서 나갔던 거야?”
유순태의 말에 강소는 인벤토리에서 시원한 음료 캔을 꺼내 놓았다.
“왠지 맥주는 아니더라도, 음료수 한 잔 씩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이것 때문에 나갔던 거구나!”
그 말에 강소는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사실은 그것 때문에 나갔던 건 아니었으니까.
“잘 먹을게.”
“잘 먹을게요.”
“잘 마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은 각자 음료수 캔을 손에 들고 다시 음악 방송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에 사랑스러운 그녀들이 돌아왔다! 코튼핑크!]“어, 시작한다!”
붉은색의 조명이 비추는 무대 위에, 여러 사람들이 올라왔다.
그들 사이로 검은색의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은 그녀들이 보였다.
두둥-! 두둥-!
강렬한 비트와 함께 음악이 시작되고 그녀들은 격렬하게 춤을 추었다.
시선을 사로잡는 약 30초 정도의 춤이 끝나고, 그녀들은 하나씩 그녀들을 감싼 댄서들 사이로 사라졌다.
치이익-!
불꽃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그리고 화면 밑에 노래 제목이 표시되었다.
[솜사탕]이게 이번 타이틀곡의 제목이다.
어느새 그녀들은 옷을 갈아입었는데 분홍빛의 발랄한 스타일의 옷이었다.
아마도 방금 전의 오프닝 무대가 사전 녹화한 것일 터.
경쾌하고 상큼하면서도 발랄한 전주와 함께 그녀들은 노래하기 시작했다.
우리 함께 걷는 이 거리에
달콤함이 넘치네요.
얼마나 달콤한지
분홍빛의 솜사탕 같아요.
사랑이 원래 이렇게나
달콤한 것이었나요.
나무들이 모두
솜사탕으로 보일 만큼
그동안 내게 다가왔던 사랑은
쓰기만 해서 몰랐는데.
내 사랑, 나와 함께 걸어요.
분홍빛의 이 거리를
내 사랑, 지금 듣는 이 노래를
달콤하게 속삭여 줘요.
그 노래를 들으며 강소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 코튼핑크와 딱 맞는 그런 노래가사였다.
성공적인 유하영의 작사가 데뷔였다.
.
.
.
그날 밤.
유하영은 ‘하영이의 오르골 스튜디오’ 촬영 녹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임소영과 함께 욕실에 들어가 씻고서 뽀송뽀송해진 유하영을 앉혀 놓고 유순태가 말했다.
“하영아.”
“네. 아빠.”
“이번에 하영이가 작사한 거 있잖아. 그거 코튼핑크 이모들이 무척이나 좋아했어.”
“그래요? 이모들이 좋아하니까 저도 좋아요.”
“하하하.”
그 말에 유순태가 웃었다.
“이번에 작사한 거 상금으로 5백만 원을 받았거든.”
고영민이 말한 대로, 상금은 칼같이 입금되었다.
“하영이는 그거로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그 물음에 유하영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거 제가 마음대로 써도 되는 돈이에요?”
“만약, 그렇다면?”
유하영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그거로 어렵게 사시는 하부지랑 할무니들한테 드릴 선물 살 거예요.”
솔직히 유순태는 유하영이 장난감이나 초콜릿 같은 것을 사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왜 그렇게 하고 싶은데?”
“용해진 아저씨가요, 세상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어요.”
용해진은 바로 오늘 하영이의 오르골 스튜디오의 게스트였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들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전에는 친구들에게 선물했으니까, 이번에는 하부지랑 할무니들한테 선물 드리고 싶어요.”
그녀의 말에 유순태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다니! 우리 딸, 정말 잘 컸네.”
“아니에요. 아직 더 커야 해요. 저 아직 아가예요.”
“그렇지! 아직 아빠 눈에는 아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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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에서 유순태와 유하영 모녀의 대화를 들으며 강소는 미소 지었다.
사실 유순태는 유하영이 번 상금을 기부하려고 이미 마음먹은 상황이었다.
세상은 남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로 인한 시기질투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유하영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참 바르게 잘 컸어. 그리고 순태와 안주인께서도 아이를 참 잘 기르셨고.’
바른 부모 아래에서 바른 아이가 자란다고 했다.
강소는 그 말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하던 그는 흠칫했다.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은,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예전과 다르게 점점 다채로운 표정을 짓게 되었다.
그 말은 그만큼 감정 역시 다채로워졌다는 증거.
그는 그게 결코, 싫지 않았다.
자신이 싫어하던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는 창밖의 별을 보았다.
여전히 밤은 어둡고, 추웠다.
하지만, 그는 생각했다.
유순태 가족은, 아니 자신의 가족은 저 별처럼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자신이 지켜 낼 거라고.
무림에서 온 배달부 46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