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529
528화. 환상의 섬 (1)
동해의 깊은 바닷속.
인어들을 다스리는 왕, 해수령은 옥좌에 앉아 자신이 보낸 전령이 가져온 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간들의 우리 인어들에 대한 인식이 점점 바뀌고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전령이 대답했다.
“각성자 협회의 도움이 컸습니다.”
각성자 협회에서는 인어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아이돌 인어 아이들을 시작으로, 인어가 주인공인 이런저런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것을 제작 지원하는 등 열심히 움직인 결과 사람들이 인어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인어 역시 도깨비와 같이 우호적인 존재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거 협회장에게 감사해야겠어.”
그는 옆의 탁자에 놓여 있는 서류에 시선을 주었다.
[환상의 섬 계획서]그건 이번에 각성자 협회에서 인어들에게 [환상의 섬]이라는 것을 제안했다.
일종의 테마 리조트였는데, 인어들의 영토 안에 있는 섬 중 하나를 개발하자는 제안이다.
그 자본은 인어들과 각성자 협회가 반씩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인어들은 인간들의 관점에서 볼 때 제법 부자였는데,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귀금속들과 문화재들을 취할 수 있는 건 인어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인어들에게는 별 쓸모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들에게는 식량이 더 중요했다.
인어들은 곡물이든 고기든 가리지 않고 먹었는데, 인어마다 식성이 달랐다.
고기를 좋아하는 인어도 있었고, 곡물을 좋아하는 인어도 있었다.
해수령이 주목하는 건, 환상의 섬을 운영함으로써 얻는 수익으로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협회장의 제안을 두고 해수령은 여러 원로 인어들과 의논을 했다.
“저희가 게이트를 통해 이곳에 오기 전이라면, 이 안에 대해서 반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곳에 왔고, 이곳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로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였고, 이제 해수령이 최종 결정을 내리면 되었다.
그는 전령을 보았다.
“수고스럽겠지만, 한 번 더 인간 세상에 다녀와야겠구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는 해수령의 신하입니다.”
그렇게,
각성자 협회에서 제안한 [환상의 섬] 리조트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올해 초의 이야기였다.
* * *
딸랑.
“다녀왔다.”
마침 나와서 쉬고 있던 유순태가 양춘각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소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수고했다. 그게 마지막 배달이지?”
“맞다.”
강소는 철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다 보니까, 철물점 사장님은 휴가를 가신 모양이더군.”
“아, 그래?”
강소는 달력을 보았다.
양춘각의 휴가는 7월 12일부터 3일 동안이다.
“사장님, 휴가 때 어디 가실지 정하셨어요?”
김지은의 물음에 유순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못 정했어.”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름에 하영이랑 갈 곳을 정하는 게 참 어렵네. 지은 씨는 휴가 때 뭘 할 계획이야?”
그 물음에 김지은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 저도 정하지는 못했지만, 아무래도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보낼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녀는 이번 휴가 때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서 팬카페에 올라온 자료들을 정주행할 계획이었다.
그 상상에 김지은의 표정은 순식간에 흐물흐물해졌다. 유순태는 그걸 애써 외면했다.
왠지, 김지은이 무슨 상상을 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혁 씨는 휴가 때 뭘 하실 계획입니까?”
강소의 물음에 커피 한 잔을 하고 있던 황진혁이 대답했다.
“저는 아직 예정이 없습니다. 예진 씨하고 의논해 봐야죠.”
“그렇군요. 그럼 만철 씨는……?”
강소의 시선에 허만철은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아직 계획 없습니다.”
“선아 씨와 어디 놀러 가거나 하지 않으십니까?”
“사실 그게…….”
허만철의 얼굴이 붉어졌다.
“놀러 가자고 말하기가 쑥스러워서…….”
그 말에 황진혁이 말했다.
“용기를 내 보십시오. 저도 늦게서야 깨달은 진리인데, 용기 있는 자가 원하는 것을 얻는 법입니다.”
* * *
은탑.
윤한종이 업무를 보고 있을 때,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진호 과장님 오셨습니다.”
“아, 들여보내.”
그리고 윤한종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성진호가 들어왔다.
“일하시는데 제가 방해한 건 아닌가 싶네요.”
그 말에 윤한종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덕분에 좀 쉬는 거지. 앉아. 차는 뭐 줄까?”
“오면서 에너지 드링크 달라고 말 해 놨습니다.”
문이 열리고 비서가 에너지 드링크를 유리잔에 담아 가져왔고, 탁자 위에 놓고 나갔다.
연한 보라색의 액체가 정말 마법 시약처럼 보였다.
하지만 성진호는 그걸 망설임 없이 들이켰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요.”
“아무리 그래도 나는 좀 그래.”
“그럼 이것도 제가 마시겠습니다.”
“그러든가.”
성진호는 윤한종 앞의 잔을 가져오며 말했다.
“이번에 환상의 섬이 완공되었다죠?”
“맞아.”
윤한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사는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각성자들의 능력과 마정석 기술 덕분이었다.
리조트 [환상의 섬]은 인어들과 인간들의 교류를 위해서라는 표면적인 목적이 있었지만, 사실 숨겨진 목적들이 많았다.
“그래서 왜 온 거냐?”
“거기, 블랙맨들이 노리고 있다던데요?”
“하아…….”
그 말에 윤한종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손으로 머리를 눌렀다.
“아니, 그 자식들은 왜 허구한 날 시비야.”
“원래 그런 녀석들이니까 이해해 줘야죠. 물론 이해하는 거랑, 족치는 건 별개지만요.”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잘 알고 있지?”
“물론이죠.”
각성자 협회에서 인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 가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바다를 되찾기 위함이었다.
아직, 바다는 마수들의 소굴이었기에 이모저모 불편했다.
바닷길도, 바다의 자원도 모두 아쉽기만 한 것들.
이런 상황에서 인어들의 도움은 무척이나 절실했다.
그러니 인간과 인어의 첫 번째 합작물인 [환상의 섬] 사업의 성공은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할 아주 중요한 열쇠인 것.
“그래서 해결책은?”
“체험단. 어떠세요?”
“뭔 소리야? 자세하게 설명해 봐.”
성진호는 윤한종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어차피 환상의 섬 개장을 앞두고 체험단을 모집하여 체험하게 하잖아요.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 일종의 클로즈 베타죠.”
“그 말은, 체험단을 미리 선정하자는 건가?”
“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없으니까 체험단을 두 개를 운영하는 거죠. 첫 번째는 클로즈 베타. 두 번째는 무작위로 선정한 체험단.”
윤한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리고 첫 번째인 클로즈 베타가…….”
“미끼인 거죠.”
“그러면, 클로즈 베타에 누구를 선정해야 하는지가 문제군. 블랙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연령과 성별이 골고루 섞여야 하는데…….”
“그래서 말인데요.”
성진호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양춘각 식구들을 초대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거 좋은 생각이긴 한데, 그가 자신들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면 불쾌해할 텐데.”
그 말에 성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저 같아도 불쾌할 겁니다.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숨기는 거 없이 까고 들어가서 협조를 구해야죠.”
현재 이 세계에서 가장 눈 밖에 나서는 안 되는 인물이 바로 강소였으니까.
“최고의 대우로 모실 생각입니다.”
“알았다.”
윤한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맘대로 해라. 그럼 그 밖의 다른 이들은 어찌할 생각이냐?”
“……사실 저와 명희가 갈까 합니다. 솔직히 다들 바쁜데 가라고 하기도 뭣하고…….”
그 말에 윤한종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해라.”
“네?”
“명희랑 데이트가 하고 싶었다고.”
“혀, 협회장님! 그, 그건 아…….”
“아니면 아니지 왜 얼굴이 빨개지는데?”
“…….”
* * *
그날 밤.
강소는 김명희의 연락을 받고 미리내 공원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덕분예요.”
김명희의 표정을 보니, 빈말이 틀림없었다.
강소는 피식 웃었다.
“눈 밑의 다크서클은 숨길 수 없는 증거입니다.”
“어머!”
그녀가 멋쩍게 웃었다.
“사실 요즘 홀리 웨폰을 가진 전 세계의 이들을 수소문하느라 바쁘거든요.”
휘가 각성자 협회에 잠자던 삿된 것이 깨어났고 그걸 저지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의 신성한 무기의 주인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신목의 말을 전한 듯했다.
“그런데, 블랙맨들까지 말썽이네요.”
“……?”
김명희가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봉투를 꺼내어 내밀었다.
“이건?”
봉투에 [환상의 섬에 체험단 여러분을 초대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환상의 섬이라면…… 요즘 떠들썩한, 인어들의 섬에 지은 리조트 아닙니까?”
“맞아요. 정식 오픈 전에 체험단을 모집하여 미비점을 평가하기 위한 거죠.”
“언제입니까?”
“7월 12일부터 2박 3일이요.”
“잘 되었군요.”
강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 날이 양춘각 휴가이고, 또 어딜 가야 하는지 순태가 고민했거든요.”
“…….”
“그리고 하영이도 가고 싶어 했고요.”
밝은 표정의 강소와 달리 선물을 건넨 김명희의 표정은 점점 어색해졌다.
그걸 알아차린 강소가 고개를 갸웃하자, 김명희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요……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 있어요.”
“뭡니까?”
강소의 물음에 김명희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설명을 끝낸 후 그녀는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강소 씨를 이용하는 것 같아서…….”
“아닙니다.”
강소가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덕분에 환상의 섬에 가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그래서 저희 측에서 최상의 대우를 해 드리려고요.”
“……?”
김명희가 말을 이었다.
“우선 강소 씨와 함께 가는 이들의 숙소는 스위트룸으로 배정해 드릴게요. 그리고 모든 시설을 이용할 때 패스트 카드를 적용해서 줄을 서지 않고도 이용하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졌다.
그래서 강소는 흔쾌히 받기로 했다.
그깟 블랙맨들이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다음 날 아침.
모두 함께 둘러앉아 아침을 먹었다.
아침 메뉴는 별다른 건 없었다. 소시지 야채 볶음에 계란찜, 그리고 된장국 등.
하지만,
강소는 그 어떤 음식보다 이런 소박한 밥상이 제일 좋았다.
먹으면 왠지 가슴이 따스해졌으니까.
허만철이 빈 밥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을 한 그릇 더 먹기 위해서였다.
“아, 내 것도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형님.”
허만철은 강소의 밥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 밥을 퍼 왔다.
“고마워요.”
그렇게 배부르게 아침을 먹을 후, 커피를 마셨다.
강소는 품에서 환상의 섬 체험단 티켓을 꺼냈다.
지금이 말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이번 여름휴가 때 여기 갈까?”
“어? 환상의 섬?”
“거기가 각성자 협회랑 인어들이 합작한 곳이잖아. 그래서 김명희 과장님이 체험단을 부탁하시더라고.”
그때 그 말을 들은 유하영이 소리쳤다.
“와아아아! 환상의 섬! 나 거기 엄청 엄청 가고 싶었어요!”
유순태가 얼떨떨해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니까.
“우리 가족이 가도 되는 거야?”
“정확하게 말하면 양춘각 가족들 다 함께 가는 거다.”
“……?”
“그거 초대권, 10장이 넘거든.”
“……!”
* * *
환상의 섬.
체험단을 맞이하기 전 그곳에서는 직원 교육이 한창이었다.
직원들은 인간과 인어들이 섞여 있었다.
물론, 고객도 인간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인어들도 언제든지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뮬레이션을 실시합니다. 각자 위치로 가 주세요.”
“네.”
환상의 섬의 시그니처는 바로, 환상의 수족관이다.
수중으로 연결된 유리관 안에 들어가서, 바닷속 풍경을 보는 것.
그리고 환상의 수족관을 담당한 직원들 중 하나인 긴아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곳은 곧 사라질 곳이었으니까.
우웅.
그때 그의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메시지가 와 있었다.
[데이트 날짜가 정해졌어요. 7월 13일 금요일이에요.] [알겠습니다.]데이트 날짜.
그건 이 증오스러운 환상의 섬을 부숴 버릴 날을 뜻하는 암호였다.
그는 환상의 섬을 반대했다.
하지만 원로들과 해수령은 이 일을 추진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온 누군가가 있었다.
“증오스럽지? 저 증오스러운 섬을 부숴 버리고 싶지? 우리가 도와줄게.”
“당신은 누굽니까?”
“우리는, 이 땅에 올바른 정의를 세우기 위한 이들이지.”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 정의가 뭔지 알 수 없지만, 상관없었다.
‘이 섬은 사라져야 해. 인어들은 이대로 고고한 존재여야 한다고.’
무림에서 온 배달부 52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