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천라지망(天羅蜘網) (3)
“이것을 중경분타에 보내게.”
이결제자는 향주가 건넨 전서구를 받고는 고개를 옆으로 숙였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온 곳을 확인했으니, 앞으로 갈 곳도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
전서구는 서화종가 차남 종조훈에 대한 것이었다.
“향주님,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향주가 그의 말을 잘랐다.
“사천성 전체에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네. 만에 하나 그들의 정체가 마교의 흉수라면 어떻게 하겠나?”
“그럴 가능성은 없지 않습니까?”
“일 할이 채 안 되겠지. 하지만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하네.”
이결제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전서구도 그렇고, 향주님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말입니다.”
향주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강호는 말일세.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기괴하고 위험한 일이 많다네.”
이결제자라면 적게는 오 년, 많게는 십 년 동안 개방의 밥을 먹은 제자였다.
그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강호에 이런저런 일이 있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향주가 혀를 찼다.
“쯧, 자네는 이번 흉수가 어떠한 자인지 알고 있나?”
“청성제일검을 살해하고 도망치는 자 아닙니까?”
향주가 난간에 몸을 기대며 쓴웃음을 지었다.
“개방에서 팔 년이나 있었으면서 그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건가?”
이결제자가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흉수는 천하십대고수 중 한 명인 청성제일검을 살해한 자일세. 자네 같은 제자가 그를 만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이결제자가 대답했다.
“단 일 초식도 버티지 못하겠죠.”
“서화종가의 차남 종조훈은 어떨까?”
“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흉수가 그를 죽이고 인피를 만들었다면?”
이결제자는 가슴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향주가 말했다.
“지금 형산으로 가는 종 공자가 흉수라는 말이 아닐세. 개방제자는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 뿐이네.”
이결제자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향주께 사과드립니다. 제 배움이 짧았습니다.”
향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청성제일검을 암격한 자를 상대로 천라지망을 펼친다고? 포위망을 펼친다고 해도 그와 마주치는 순간 수십에서 수백 명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무림맹이 진심이라면 적어도 부맹주급은 사천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림맹은 흉수를 잡으려는 척만 하고 있을 뿐이다.’
향주는 입맛이 썼다.
“결국, 이번 일은 청성파 혼자 속을 끓이는 모양새란 말인가?”
이결제자가 허리를 펴며 물었다.
“향주님?”
“아무것도 아닐세.”
향주는 손을 내젓고는 누각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 * *
중경.
과거에는 파(巴)라 불리던 땅.
이곳이 중경이라 불리게 된 것은 남송 때였다.
왕으로 봉해진 황족이 한 달 만에 황제가 되면서 겹으로 경사를 맞이하게 된 땅이라 해서 중경이 된 것이었다.
“경치가 좋군요. 물도 맑고.”
명운이 배의 난간을 잡으며 말을 받았다.
“장강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일세.”
“공자님께서 익숙하신 곳은 마른 먼지가 피어나는 땅이죠.”
명운은 어깨를 추켜세웠다.
“대신 고향에서는 마음껏 말을 달릴 수 있지 않나?”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 의도된 것이었다.
우리는 감숙에서 왔다.
장강을 보는 것이 처음이고, 강호 경험 또한 많지 않다.
명운과 서진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 주변을 속이고자 했다.
“두 분은 어디까지 가십니까?”
넉살 좋은 중년인이 거짓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왔다.
“형산까지 갑니다.”
“형산입니까? 그럼 형산파군요!”
그는 명운 일행이 검을 차고 있고, 형산으로 간다니, 형산파라 생각한 것이었다.
서진이 손을 크게 흔들며 말했다.
“형산파라니요. 형산파 대협들께서 들으시면 큰일 날 소립니다. 저희는 감숙에서 왔습니다.”
“아, 감숙이시군요.”
명운은 중년인을 보며 생각했다.
‘장사치가 풋내기들을 상대로 푼돈이나 뜯으려 하는 모양이군.’
그는 푼돈은 얼마든지 뜯겨 줄 수 있었다.
‘감숙에서 온 풋내기라면 돈을 뜯기는 편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겠지.’
명운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선미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무인이었다.
그들은 제대로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적어도 구파일방의 삼대제자 수준은 될 것이다.’
중년인이 말했다.
“이 배는 중경까지 갑니다. 두 분은 그곳에서 쉬시는 것입니까?”
그는 중경에 아는 객잔이 있어 두 사람을 그곳에 소개시켜 주고 소개비를 받을 생각이었다.
서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바로 무산(巫山)까지 갈 생각입니다.”
무산은 딱 중경과 형주 사이에 위치한 현성이었다.
“무산은 중경에서 이틀을 더 가야 합니다. 바로 출발하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그는 어떻게든 두 사람을 중경에서 쉬게 하려 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일정이 있어서 말입니다.”
중년인은 끈질기게 서진을 설득했으나 그가 넘어갈 리 없었다.
중경에 배가 거의 다다를 무렵.
작은 배 두 척이 상선을 향해 다가왔다.
“정지! 정지하라!”
선장은 작은 배 두 척에 단 깃발을 보고는 선원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속도를 늦춰라!”
작은 배들은 중경 일대에서 활동하는 수뢰방(水雷幇)의 것이었다.
상선이 속도를 늦추자 작은 배에서 여섯 명의 사내가 위로 올라왔다.
선장은 그들이 올라오자마자 두 손을 모았다.
“수뢰방 대협들께서 제 배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수뢰방 제자들은 대부분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이 배에 성질 사나운 계집이 타고 있다고 들었네.”
명운은 일단 안심했다.
‘우리 이야기는 아니군.’
서진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강호에서 흔히 일어나는 시비군요.”
중년인은 칼을 찬 사내들이 배 위에 오르자 서진의 뒤쪽으로 물러났다.
“대협들, 수뢰방은 쉬이 볼 수 없는 자들입니다.”
서진이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들을 아시오?”
“알다마다요.”
명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근처에서는 유명한 자들인 것 같군.”
중년인은 말끝을 올렸다.
“유명한 정도가 아닙니다. 이 근방에서는 저들이 왕입니다.”
서진은 고개를 중년인에게 돌렸다.
“중경에는 소양문(昭陽門)이 있지 않소?”
소양문은 중경에서 기세를 높이고 있는 문파였다.
“땅에서는 소양문이지만, 장강에서는 수뢰방입니다. 그리고 수뢰방은 장강수로십팔채와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명운은 생각했다.
‘다른 자들은 몰라도 장강수로십팔채는 조금 곤란하다.’
장강수로십팔채는 세력이 크고, 머릿수가 많아 적으로 돌리면 대단히 귀찮은 자들이었다.
“다들 이곳으로 모여!”
수뢰방 사내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승객들을 한곳에 모으고자 했다.
선장은 그들을 막기는커녕 살살 해 달라며 넉살 좋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할까요?”
서진의 물음에 명운이 되물었다.
“어떻게 하긴, 상대가 시비를 걸지 않는 한 그냥 넘기는 게 강호의 법도가 아닌가?”
중년인은 명운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 녀석들! 썩었어. 강호의 법도란 시비를 걸지 않는 한 그냥 넘기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것이다!’
그는 명운과 서진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너희 둘, 너희도 이리 와.”
명운과 서진은 검을 차고 있었으나 수뢰방 제자들은 그들의 검이 보이지 않는 듯 말을 높이고 있었다.
서진이 말했다.
“이쪽은 그대들이 찾는 자가 아닐세.”
그의 한마디에 머리가 큰 자가 미간을 좁혔다.
“뭐라고?”
머리가 큰 자가 화를 내려는 찰나,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중년인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저 둘은 우리가 찾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검을 차고 있는 자와 시비를 일으킬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소방주께서 말씀하신 계집을 찾지 못하면, 난리가 날 것이다. 지금은 계집을 찾는 것이 먼저다.’
수뢰방 제자들이 선실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그 순간 무인 두 명이 선실 앞을 막아섰다.
“아래로는 갈 수 없다.”
그 두 명은 명운이 이전부터 주시하고 있던 자들이었다.
‘결국, 저들이 싸우게 되는군.’
그는 그들의 싸움에 낄 생각이 없었다.
“뭐라고?”
솩!
검을 뽑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려왔다.
“악!”
명운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빠른 검이군.’
상대의 검에 비해 수뢰방 제자의 움직임이 너무 느렸다.
‘치명상을 피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남은 다섯 명은 선실 앞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포위했다.
“이 녀석들!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두 무인은 당당했다.
“이쪽은 형산제자다!”
형산제자.
수뢰방 제자들은 상대의 한마디에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혀, 형산제자라면…….”
“구파일방이 아닌가?”
수뢰방 제자들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선실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산제자를 사칭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사칭.
이 한마디에 수뢰방 제자들의 표정이 변했다.
“놈!”
그들은 상대가 자신들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했다.
“감히 형산파를 사칭하다니!”
“우리를 얕본 것이냐?”
그러나 상대의 실력을 본 이상 쉬이 달려들 수는 없었다.
“증원을 요청해!”
상선에 붙어 있던 작은 배 중 한 척이 그 말을 듣고는 방향을 돌렸다.
“일이 커질 것 같습니다.”
서진의 말에 명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지켜보세.”
서진은 명운의 명이 떨어지면, 작은 배를 습격해 증원을 부르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아가씨, 왜 저들에게…….”
선실 안쪽에 있는 여인이 문제의 중심인 것 같았다.
“형산파를 사칭하는 것은 무림맹과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입니다.”
명운은 턱을 쓰다듬었다.
“무림맹 쪽은 아닌 모양이군.”
“무림맹이 아니면 어디일까요?”
“무림맹에 속하지 않은 세가나 장원이 아닐까 싶군.”
서진이 말했다.
“저 두 무인은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는 증원이 오기 전에 승부를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사정이 있겠지.”
서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젊은 아가씨가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사매를 잃은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자네가 나서게.”
자신이 직접 나서지는 않지만, 서진이 나서는 것은 막지 않겠다.
명운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서진은 그의 말에 눈썹을 위로 올렸다.
“공자님, 정말 괜찮은 겁니까?”
“서화종가에 좋은 일 한 번 하지 뭐.”
명운은 서화종가의 차남 종조훈으로 위장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들이 협행을 한다면, 그 명성은 고스란히 서화종가의 몫이었다.
‘이름을 빌려 쓰는 값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윽고 수뢰방의 증원이 도착했다.
“장, 장로님.”
장로라 불린 사내는 오십 대 장년이었다.
“그 계집이 이곳에 있다고?”
“그렇습니다.”
수뢰방 장로는 제법 큰 배를 이끌고 왔는데, 그 배에는 서른 명이 넘는 수뢰방 제자가 타고 있었다.
상대의 숫자가 많아지자 두 무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가씨, 큰일입니다.”
선실 안쪽에서 다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대가 많다면, 나도 나가서 싸우겠어요.”
“그것은 안 됩니다.”
두 무인은 그녀가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막아섰다.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아가씨께서 나오실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명운은 생각했다.
‘저들과 엮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냥 둘 수 없다는 느낌이군.’
그는 형산파를 사칭하지 않으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수뢰방 장로가 앞으로 나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가 감히 우리 소방주께 칼을 들이댔다고?”
문제의 중심은 수뢰방 소방주와 선실의 여인인 것 같았다.
선실에 있던 여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무례한 자에게 벌을 내린 것뿐입니다.”
“뭣이!”
수뢰방 장로가 광도(狂刀)를 빼 들었다.
“소방주께 가서 용서를 구해라!”
그의 거친 목소리에 선원들이 움찔했다.
그러나 두 무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비켜라!”
수뢰방 장로의 광도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서진이 싸움을 보며 이야기했다.
“제법입니다.”
초반에 기선을 잡은 것은 장로의 광도였다. 그는 광도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두 무인을 몰아붙였다.
“수뢰방이라는 자들이 입만 산 것은 아니군.”
두 무인은 수세에 몰렸지만,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고자 했다.
명운은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위태한 상황에서 억지로 위치를 지키고자 하니, 형세가 위태로울 수밖에.’
그의 예상대로 오른쪽에 서 있던 무인이 짧은 신음을 터트렸다.
“큭.”
그의 허벅지에서 흘러나온 피가 갑판을 적셨다.
“청풍!”
동료로 보이는 무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는 동료를 도울 틈이 없었다.
승기를 잡은 수뢰방 제자들이 동시에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큭!”
그는 드디어 선미 쪽으로 밀려났다.
장로는 부상당한 무인을 몰아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세상에 가서 사죄해라!”
휙!
그는 위에서 아래로 광도를 크게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광도는 무인의 몸이 아닌 갑판에 박혔다.
팍!
수뢰방 장로는 뭔가가 자신의 광도를 밀어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지?”
다음 순간 그의 목에 둔탁한 일격이 작렬했다.
퍼억!
수뢰방 장로는 그대로 갑판을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