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3
별안간 노파의 직설적인 물음이 그를 강타했다.
“원생에서는 가지지 못했었던 명예와 부를 맛보았으니 어찌 돌아가고 싶겠는가만은. 끌끌끌.”
“……!”
훅 들어오는 그녀의 말.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할머니께서 언급하신 것들 때문이 아닙니다!”
이를 악문 그가 외쳤다.
노파의 시선이 발끈한 우진의 모습에 꽂혔다.
“돈과 명예는 저한테 중요치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할머니께서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그것들에 욕심도, 미련도 없으니까요.”
“그러면, 무엇 때문이신가?”
“…연기 때문입니다.”
노파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저, 원생에서는 아무리 기를 쓰고 발버둥을 쳐도 할 수 없었던 연기를… 지금은 마음껏 할 수 있어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입니다.”
우진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덧붙였다.
“15년 동안 오디션을 500번이나 보면서 나름 노력했었지만, 결국 잡지 못했던 단 한 번의 기회… 닿을 듯 닿지 않았던 그 빌어먹을 한 번의 기회가 끝내 없었던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우진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던 노파의 부릅뜬 눈꼬리가 이내 곡선의 형태를 띠었다.
눈가의 주름이 만들어 낸 눈웃음에서, 뭔가 만족스러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끌끌끌, 이미 그렇게 말하리라 알고 있었네만.”
“네… 네?”
“이 늙은이가 분명 자네를 1,123일 동안 지켜봐 왔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끌끌끌.”
그녀가 능글맞은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자네가 부와 명예 따위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얼마나 연기에만 미쳐있는 배우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어.”
“그런데, 왜…?”
“재확인하고 싶었으니까. 자네도 대본을 읽고 스스로 분석한 것들을 직접 확인하고 경험해보고 싶어서 매번 가상 세계로 가는 거 아닌가?”
“그렇죠….”
“생각하는 것과 직접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건 다르니까 말일세. 이거, 자네가 했었던 얘기이네만?”
띵-
그제야 우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동시에, 뒤늦게 민망한 감정이 몰려왔다.
“아….”
우진이 이번에는 다른 의미의 탄식을 내뱉었고, 노파는 왜소한 어깨를 들썩였다.
진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참 짓궂으신 할머니란 생각이 드네.
갑자기 이재순 선생님이 뇌리를 스쳐 가는 건 덤이었고.
“끌끌끌.”
“장난치지 마세요, 할머니….”
우진이 울상을 지으며 속삭였다.
노파는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이내 웃음을 거두었다.
“장난이라고만 치부하지는 말아주시게나. 이 늙은이로서는, 자네의 진심이 필요했으니.”
그녀의 입에서 또 한 번 의미심장한 말이 튀어나왔다.
우진도 웃음기를 싹 거두고서는, 다시 진지한 얼굴로 대화에 임했다.
“여태껏 지켜본 자네의 모습과 일치한 맑으면서도 곧은 시선과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은 잘 들었네만,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게 사람 마음이라 이 늙은이가 차마 안심할 순 없구려.”
“절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남은 미션도 착실하게 수행할 거예요. 할머니는 제게 연기를 할 수 있게 해주신 은인이시니, 저 역시 제가 마땅히 해야 할 몫을 다 할 겁니다.”
“끌끌끌, 부디 그랬으면 좋으련만….”
노파가 말끝을 흐렸다.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애써 말을 멈춘 느낌이랄까.
뭐지, 이 찝찝함은.
3년 동안이나 지켜보셨다면서, 왜 100프로 신뢰를 하지 못하시는 걸까.
“끌끌끌, 자네를 못 믿어서가 아니야.”
아까부터 계속 드는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독심술이 분명한 것 같다.
“자네 전에 겪었던 아홉의 선행자들이 있다 하지 않았나.”
“네.”
“그들 중에서도, 당연히 자네처럼 반응한 사람이 있었지. 절대 변하지 않겠다, 은혜를 갚겠다 등등. 번지르르하게 얘기한 자들이 왜 없었겠는가.”
노파는 그녀가 거쳐온 선행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현생으로 회귀한 자들 모두 처음에는 다들 다이어리를 통해 미션을 완수하고, 길어봐야 2~30프로의 미션 진행도를 완수한 시점에서는 이미 성공한 배우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하긴, 다이어리 시스템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배우에게 있어서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것들이니까.
일반인도 금세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실로 엄청난 능력이니.
이런 다이어리를 갖고도 연기 못하는 배우 소리를 듣는다면, 그거야말로 어불성설이지.
문제는….
“거기서 끝이 난 게지. 더 이상의 진행이 없었어.”
“헐, 왜요?!”
“이 늙은이가 어찌 알겠나.”
그녀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이 늙은이가 했던, 자네가 제일 빨랐다는 말 있잖은가. 왜 그런지 가르쳐줄까?”
대답하기도 전에, 노파가 이유를 말해주었다.
“처음이거든.”
“네?!”
“이 늙은이와 재회한 계약자 말이야. 열 명 중, 자네가 처음이란 말일세.”
아니, 여태껏 50프로를 달성한 선행자가 없었단 말이야?
우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네가 이 늙은이한테는 가장 신뢰가 가는 계약자인 건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전의 짓궂은 농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이 때문일세.”
“아홉 명의 실패 원인이 하나로 귀결이 된다니, 신기할 따름이네요. 그럼 그들은 지금….”
“자네가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었던, 기회가 나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원래 주어졌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야.”
“깔끔하게 이해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할머니.”
우진은 노파에게 묵례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인데도, 솔직하게 의문을 풀어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다이어리를 통해 성공한 배우로 거듭났다고 해서, 본질을 잃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충고이자 경고.
이것 또한, 우진으로서는 자신의 연기 열정을 불태워주는 말로도 들렸으니까.
당연히, 애초부터 그럴 마음도 없었거니와.
“할머니, 그러면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말하게.”
“계약이 성립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다는 점은 잘 알겠습니다. 모든 기억을 잃고 원생의 35살 무명 배우, 백우진으로 돌아간다는 점도요. 그런데, 이것들은 전부….”
우진이 굉장히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백우진의 입장에서 잃는 것들인데, 그렇다면 정작 할머니께 미치는 영향은 뭔가요?”
노파가 흠칫할 만큼, 본질을 꿰뚫는 물음이었다.
“끌끌끌, 그동안 지켜봤었던 모습 그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는구먼. 자네가 그동안 만났었던 배역들의 심정을 정확하게 알 것 같으이.”
그녀가 너털웃음 소리를 내며 주름이 만연한 입술을 움직였다.
“자네는 기억을 잃고, 이 늙은이는 말이야.”
노파는 단 세 글자의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기(氣)에서 다시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져 나왔다.
“죽는다.”
우진의 목 뒷덜미에서, 땀 한 방울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 * *
그야말로 다이어리 너머, 정보의 바다에서 양껏 헤엄을 치고 나온 다음 날.
각종 인터넷 포털 연예뉴스란에서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드라마 최종회, 시청률 35.6프로 기록하며 화려하게 종영!] [‘연출·극본·연기, 완벽한 3박자’의 표본… ‘저스티스’ 앞에서 케이블, 사전 제작이라는 약점 따윈 없었다!] [백우진에게 연일 쏟아지는 러브콜, ‘現 남자 배우 브랜드 파워’ 단연 1순위… 쌓인 섭외만 수십 건] [플라워엔터 측, 소속 아티스트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에 무한한 감사… 팬 여러분께 반드시 보답할 것]tvKR 수목 미니시리즈, 가 화려한 종지부를 찍으며 막을 내렸다.
최종회 시청률은 35.6프로.
‘최초 메이커’라는 우진의 별명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성공으로 방송가에서는 점점 새로운 열풍이 불어닥치려는 조짐이 생겨나고 있었다.
바로, 케이블 드라마의 평균 시청률이 점점 지상파 3사의 드라마가 기록하는 수치를 뛰어넘고 있다는 것.
이 현상은 그동안 케이블이 지상파와 비교하면 항상 시청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을 한 방에 깨버림과 동시에.
암묵적으로 존재했었던 방송 채널의 급이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 분석에서 최초 기준점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2010년, tvKR ’
였다.
하나의 신드롬이 분다는 것은 곧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중들도 그 분위기를 몸소 느낄 수 있을 정도라는 뜻.
다시 시작된 백우진 캐스팅 쟁탈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휩싸여있었다.
「…이 늙은이가 진작에 나타나 정보를 줄 수 없었던 족쇄를 자네가 끊어주었으니, 이제 언제든 자네 앞에 나타날 수가 있게 되었어. 비단 오늘만이 날이 아니니, 언제든 의문이 생긴다면 이 늙은이를 찾으시게나.」
“…….”
우진은 지난밤 노파와의 대화를 계속해서 머리에 떠올리며, 소파에 누워있었다.
그녀의 말들 하나하나가 전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한동안 다이어리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 탁.
이내 핸드폰을 들었다.
“네, 백우진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가 몸을 일으켰다.
134화
– 지이이잉.
“으아아아아!”
김태곤 팀장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플라워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팀 사무실의 상쾌한(?)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RRRRR.
공식적인 업무 시간이 되자마자, 팀원들의 핸드폰과 사무실 전화기가 정신없이 울렸다.
“플라워엔터 이민성 차장입니다. 네, 감독님! 잘 지내셨어요?”
이민성은 짧은 한숨을 내쉬자마자, 단숨에 표정과 목소리를 바꾸며 전화를 받기 일쑤였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네, 네… 일단 백우진 배우 의견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요. 저희가 상의하고 나서 빨리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우진의 필모가 하나씩 쌓일 때마다, 그의 스토브 리그 기간에 걸려오는 전화량이 점점 늘고 있었다.
이후 때와 비교하면 체감상, 최소 다섯 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 같았다.
매니지먼트팀의 일복이 터졌다는 것은 그만큼 소속 배우가 잘나간다는 뜻이니, 당연히 두 팔 벌려 춤을 춰도 모자랄 판이지만….
잘나가도 너무 잘나간다는 게 문제다!
– RRRRR.
“그만 좀 전화해에에에에에!”
머리를 감싸 쥔 김태곤이 인상을 찌푸리며 핸드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여보세요… 플라워엔터 매니지먼트팀 김태곤 팀장입니드아….”
– 팀장님, 저 우진이에요.
전화 너머에서 들리는 음성의 주인공은 우진이었다.
– 우당탕탕!
“크악!”
등받이에 기대어있다가 급히 몸을 일으키려던 김태곤이 의자와 함께 넘어졌다.
대각선 방향에 앉아 통화 중인 이민성이 그 모습을 보고는,
“풉!”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뿜었다.
곧장 김태곤이 주먹을 올려 보이며, ‘전화 끊고 보자.’라는 입 모양을 전달했다.
이민성이 시무룩하게 시선을 떨궜다.
– 여보세요, 팀장님?
“어… 어어, 우진아! 웬일이야?”
– 괜찮으세요? 갑자기 뭐가 ‘쾅-’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아, 아니야. 여기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
아침 내내 전화 업무에 시달리던 김태곤의 지친 눈빛에 ‘번뜩-’ 생기가 돌았다.
주구장창 섭외 관련 전화만 받다가 배우의 전화를 받으니, 왠지 살 것 같은 이 후련함은 무엇?
“무슨 일이야?”
– 아, 다름이 아니라요. 저 혹시 다음 주까지 잡혀있는 인터뷰 말고, 새로 논의 중이거나 추가된 스케줄이 있나 해서요.
“지금 우진이 너를 섭외하고 싶다는 전화가 폭발 중이긴 한데 아직은 뭐, 기존에 정해진 그대로야.”
– 그래요? 잘됐네요!
말끝이 올라가는 목소리였다.
음, 뭐가 잘됐다는 걸까?
– 마침 드릴 말씀이 있었거든요.
“어, 말해. 뭔데?”
– 차기작이요… 나중에 정하고 싶어서요.
김태곤의 눈이 절로 휘둥그레지는 얘기였다.
그의 시선이 사무실 구석 테이블에 쌓인 대본으로 천천히 옮겨갔다.
우진이 말을 이었다.
– 휴가가 필요해요.
3년이 넘도록 쉬지 않고 달려온 그가 처음으로 ‘휴가’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이었다.
* * *
종영 후, 바로 그다음 주.
[‘매일매일 신기록 행진 中’… 독립영화 가 몰고 온 파란과 신드롬] [한국 ‘다양성 영화’의 희망을 보았다! 백우진 주연 영화 의 아름다운 퇴장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 [, 독립영화 역사에 엄청난 기록을 남겼다… 최종 관객 스코어는 무려 842만!] [배우 백우진, ‘를 사랑해주신 관객분들과 전국의 소방관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직접 쓴 손편지 공개 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