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51
어둠 속에서도 끊길 줄 모르고 연신 이어지는 박수 갈채 소리.
웨스트엔드라는 큰 무대에서 메인 롤 데뷔라는 엄청난 무게감을 훌륭히 감당해낸 아시아인 배우에게 쏟아지는 찬사였으며.
동시에, 극을 통해서 오랫동안 당신들을 옥죄여온 고통에서 비로소 벗어난 헤파이스토스와 헤스티아의 안녕을 바라는 기원이었다.
적어도 우진은, 그렇게 느꼈다.
그것이….
그가 방금 뜨거운 눈물을 흘린 이유이기도 했다.
커튼 뒤에서,
‘헤파이스토스, 보고 계십니까.’
우진은 오로지 가상 세계에서 대면했었던 헤파이스토스만을 떠올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곧바로, 이렇게 전해주고 싶었다.
이제 아무도, 당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당신에게도, 이렇게 많은 이들의 찬사가 쏟아질 수 있다고.
당신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며.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외로운 대장장이가 아니라고.
– 탁.
암전 속에서 내려오는 커튼이 무대 바닥에 닿았다.
그제야 비로소,
“수고하셨습니다.”
감정을 완벽하게 추스른 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홀가분한 감정.
배우만이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였다.
* * *
초연 이후.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2014년 8월 말.
의 마지막 공연이 종료됨으로써, WMAC의 ‘그리스 신화 3부작’ 프로젝트의 진행도는 7부 능선을 훌쩍 넘고 있었다.
아울러, 우진이 웨스트엔드에서 일명 ‘블루칩’으로 떠오른 지도 꽤 되었고.
그럴 만도 한 것이.
의 오르페우스나, 의 헤파이스토스나.
둘 다 기본적으로 비범한 캐릭터들인데다가, 완전 정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두 작품 사이의 텀은 고작 한 달에 불과했었다.
그런 두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찬사로 나날이 화제가 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엄청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는 의미.
더불어, 백우진이라는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이 실로 굉장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니까.
이즈음, WMAC는 마지막 3부작에서 우진의 출연이 계획되어있지 않음을 ‘더 스테이지’를 통해 공식화했다.
이는 릴리도 마찬가지였는데, 마지막 3부작은 1·2부작에서 비교적 작은 역할을 맡았었던 신인들이나 코러스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아쉽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으니, 우진의 웨스트엔드 상륙기는 성공적이었다.
플라워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도 실시간 현지 반응과 YTV TF 2팀으로부터 전달받은 공연 영상을 확인하자마자 축배를 드는 분위기로 휩싸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
9월 초의 인천공항.
우진이 8개월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41화
8개월 만에 돌아온 한국.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데다, 사람이 많지 않은 이른 새벽 시간에 조용히 입국한 터라.
우진을 알아보는 인파는 없었다.
빠르게 공항을 나와 고이와 혜정을 각각 집까지 데려다준 뒤, 준안과 함께 인천 본가로 향했다.
그렇게, 잠시 후.
동이 트지도 않았던 새벽에서 금세 아침으로 넘어가는 찰나.
본가에 도착한 우진은,
– 띵동.
곧장 벨을 눌렀다.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커서, 가족들에게는 입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었다.
평화로운 주말의 아침 시간대이니, 분명히 있을 거다.
누가?
– 아침부터 누구야….
작게 읊조리는 음성.
누구긴 누구겠어.
세렝게티 초원 한복판 어딘가에서,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한 마리의 사나운 암사자(?) 백우희지.
– 띵동, 띵동!
장난기가 발동한 우진이 연신 벨을 눌렀다.
그러자,
– 네네, 나가요~!
톤이 한층 올라간 목소리가 회신했다.
순간적으로 욱한 게 틀림없군.
우진이 ‘킥킥-’ 웃었다.
별안간 옆에서 펼쳐지는 꿀잼 상황을 관전하는 준안 역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숨을 죽이느라 애쓰고 있었고.
이윽고,
– 달칵.
문이 열렸다.
초인종 소리 때문에 깬 모양인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우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에게, 우진과 준안이 동시에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누나, 안녕?”
“……?”
“우희 씨… 아니, 내 여자친구! 오랜만에 보는데도, 예쁘네요.”
“……!”
우희의 찡그린 표정이 순식간에 활짝 펴졌다.
상황 파악이 끝난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우와악!”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질 뻔한 몸 개그는 덤이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우희가 말을 이었다.
“뭐, 뭐야?! 연락도 없이 이게 무슨 일이야!”
“서프라이즈~!”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도 없이 오는 게 어디 있어?!”
“그래서? 지금 8개월 만에 온 동생이 안 반갑다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남매가 숨 고를 틈도 없이 폭풍 대화를 주고받았다.
우희가 우진의 손을 잡았다.
누가 ‘동생 바보’ 아니랄까 봐,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것 같기도.
“어라? 누나, 울어?”
“뭐, 뭐라는 거야! 내가 언제?”
“다 큰 어른이 아침부터 운다!”
“조용히 좀 해!”
하하, 문 앞에서도 ‘우당탕탕-’.
환영 인사 한번 격하네.
준안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캐리어와 짐을 옮겼다.
남매가 얼른 손을 더했고, 그제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우희의 시선은 어느덧 준안에게 머물렀다.
“오빠, 그동안 잘 지냈어요?”
“네, 우희 씨는요?”
“저야, 뭐… 별거 없었죠. 머나먼 이국땅에서 못난 제 동생 놈 케어하신다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야… 다 들려.”
“맞아, 너 들으라고 하는 말. 견우와 직녀가 재회하는 감동적인 순간인데, 좀 조용히 협조해주지?”
“…….”
늦바람이 더 무섭다더니, 남자친구랑 같이 왔다고 동생은 거들떠보지도 않냐!
황당하다는 기색을 살짝 내비쳐 보았으나, 이미 안중에는 없는 모양이었다.
동생이 그러든지 말든지, 누나는 준안이 형과 포옹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주 난리가 났구먼.
하긴… 좋을 수밖에.
연애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떨어졌다가 자그마치 8개월을 만에 다시 만난 거니까.
준안이 형 앞에서 누나는 귀여운 여자가 되었고, 그런 누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준안이 형은 ‘스윗 가이’ 그 자체였다.
두 사람의 깨알 쏟아지는 광경은 나름 보기 좋았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가져온 짐부터 풀기 시작한 우진이 물었다.
“누나, 엄마는?”
“요 앞에 약수터 가셨어. 요즘 아침마다 운동하신다고.”
“아, 그래? 같이 좀 가지.”
“만날 같이 갔었어. 어제만 회식하고 들어와서 그랬지… 아무튼, 슬슬 돌아오실 때가 됐는데.”
“엄마, 깜짝 놀라시겠다.”
“그러려고 말 안 하고 왔다며?”
“그건 맞지.”
“엄마 오시면, 같이 아침 먹자.”
“그러자. 형도 괜찮죠?”
“당근이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짐을 얼추 다 정리했을 즈음이었다.
드디어, 어머니께서 돌아오셨다.
가족끼리는 특별히 말을 안 해도, 뭐가 통하는 게 있는 것일까.
운동 후에 장을 보고 오셨는지, 양손에 든 봉투에는 식재료 거리가 가득 들어있었다.
“어머, 이게 누구야?! 아들!”
“엄마~ 얘 봐봐. 우리 깜짝 놀라게 한다고 말도 안 하고 온 거 있죠, 글쎄?!”
“아이고, 우리 엄마. 오랜만에 한 번 안아보자!”
우진이 어머니와 포옹했다.
왠지, 쏙 안기는 느낌으로다가.
식재료가 담긴 봉지들은 어느새 어머니의 양손에서 떨어져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준안이 그것들을 주워 식탁에 올려놓았다.
어머니와 준안이 형도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더 자세한 얘기는,
“내 정신 좀 봐. 엄마가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맛있는 아침 해줄게. 매니저님도 들고 가요.”
“감사합니다, 어머니.”
“아, 신난다!”
우희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길었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깜짝 손님들 덕에, 집안에는 절로 웃음꽃이 만개해졌다.
* * *
해외 일정을 전부 마치고 돌아왔다고 해서, 스케줄이 느긋해진 것은 아니었다.
1년 전속, 그리고 두 작품 타이틀 계약.
WMAC과 상호 간에 합의한 계약 내용 중, 웨스트엔드에서 해야 하는 몫을 끝내고 돌아온 거니까 말이다.
즉,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우진이 요청했었던 조건이자, 그가 영국에서 활동한 모습들을, 한국 팬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바로, ‘내한 공연’.
맥 오브라이언과 플라워엔터테인먼트 사이에서는 이미 조율이 끝난 사안이었다.
내한 공연 기간은 일주일로, 공연 예정인 작품은 우진의 주연 데뷔작인 으로 결정되었다.
도 굉장히 좋은 작품이나, 우진의 비중이 작아서 한국 팬들에게는 아쉬울 테니까.
그렇다고 일주일 동안 두 작품을 보여주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WMAC는 당장 10월 말에 ‘그리스 신화 3부작’의 마지막 작품까지 올려야 하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이방인 배우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자, 무려 일주일이나 내한 결정을 해준 배려가 되레 고마운 상황이었다.
우진이 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독님, 저는 한국에 잘 도착했습니다.”
– 좋네요. 잘 쉬고 있습니까?
“예, 크게 배려해주신 덕분에 오자마자 잘 쉬고 있습니다. 다들 고생하시는데, 저만 이렇게 먼저 와서 정말 죄송하네요.”
– 아닙니다. 이미 성공을 거둔 곳에서 안주하지 않고, 과감하게 나를 믿고 새로운 곳으로 따라와 준 우진 배우에게 내가 고맙지요.
고마워.
아니야, 내가 더 고마워.
아니라니까, 진짜 고맙다고!
그러니까, 내가 너보다 더 고맙다니까?!
맥과의 대화는 거의 이런 식의 느낌으로 흘러가곤 했다.
그래서일까.
가끔 뒤풀이를 떠올려 볼 때면, 맥의 첫인상은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함께 작업해보니, 루카스가 했던 말 중에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우진이 지켜본 맥 오브라이언이라는 사람은, ‘냉혈한’은커녕,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공평했으며.
앞에서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현장을 진두지휘하지만, 뒤에서는 자신이 품고 있는 배우들에게 어떻게든 좋은 기회를 주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실력이 있다는 전제 아래.
– 저희는 다음 주 중으로 한국에 들어갑니다. 음, 9월… 둘째 주가 되겠네요. 아직 정확한 날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그렇군요.”
– 내한 공연에 관해서는 우리 WMAC보다 플라워엔터가 더 잘 알 겁니다. 공연장 섭외부터 자잘한 것들까지, 전부 우진의 소속사에서 처리해주기로 했어요. 원래는 우리가 하는 게 맞는데, 워낙 바쁜 일정인 걸 아니까 배려해주셨죠. 궁금한 사항은 김태곤 팀장님께 물어보시는 게 더 빠를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 아무튼, 우진. 한국에서 볼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계속 푹 쉬고 있어요. 웨스트엔드에서 우진이 보여준 힘을, 한국 무대에서도 그대로 보여줘야 하니까. 하하하!
핸드폰 너머에서 맥이 호쾌하게 웃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리허설 데이라서, 길게 통화하기가 어렵다고.
…고맙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