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0
“우진 씨를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장면 혹시 원테이크(한 번의 컷)만에 OK 된 건가요?”
우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것 같았어요.”
라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며 차를 들이켰다.
뜨, 뜨거우실 텐데…?
“ 촬영할 때 조감독이 연재필이란 친구였죠?”
“어, 맞아요. 연 감독님 아세요?”
“그럼요. KAFA 때 제일 친한 동기였는걸요.”
진지하던 라 감독의 표정이 어느새 천진난만하게 바뀌어있었다.
첫인상이 너드 같았던 이유가 이거였나.
배우 못지않게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었다.
“재필이가 그러더라고요.”
“뭐라고요?”
“영화 개봉하면, 우진 씨 몸값 엄청 뛴다고요. 하하하.”
농담으로 분위기를 한층 누그러뜨린 라 감독은 약간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들으셨겠지만, 아직 투자를 받지 못했습니다. 정 안 되면 제 사비로 찍을 예정이지만, 그렇게 되면 우진 씨 출연료가 좀….”
그는 말끝을 흐렸다.
이 개봉하면, 우진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그 직전이라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라 감독의 입장에서는 한정된 제작비로 인해 우진의 출연료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솔직한 말에, 우진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감독님.”
“네?”
국내 독립영화 역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릴 작품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어서가 아니다.
애초에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돈’이 아니었으니까.
조금 속물처럼 보일 수 있는 얘기를 하자면, 미래의 라 감독이 오를 위치.
그걸 알기에 그와의 좋은 관계를 생각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의 페르소나(Persona)가 된다는 건, 추후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허나, 앞서 소속사 식구들과 김수림 작가에게 말했던 그 이유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러닝 개런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우진의 마지막 한 마디에, 라 감독은 마치 그의 등 뒤에 펼쳐진 하얀 날개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냥 기본 출연료 없는 러닝 개런티로 가시죠, 감독님.”
55화
라호찬 감독은 우진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악!”
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신의 볼을 세게 꼬집어보더니, 곧바로 짧은 비명을 질렀다.
아픈 걸 보니, 이거 분명 꿈이 아니라 현실인데… 정말, 실화냐?!
“감독님,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믿기지 않아서요. 저도 모르게 그만….”
영화 출연료는 보통 기본 출연료와 러닝 개런티로 이루어진다.
지금처럼 제작비가 한정적인 경우라면, 러닝 개런티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긴 시점부터 발생하는 수익에 따라 지급하는 ‘추가 인센티브’니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바로 기본 출연료.
말 그대로, ‘기본적으로’ 지급되어야 하는 금액이다.
배우의 몸값은 인기와 경력에 따라 그 액수가 천차만별인데, 우진의 경우에는 보통의 신인 배우 기준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원하는 제작사, 감독들이 워낙 많아야지.
수요가 많아지면, 공급가가 상승하는 것과 같은 이치.
또한, ‘S사’가 지급한 커피 모델 광고료가 우진의 몸값을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했다.
아무리 이 개봉되기 전인 시점에 출연료를 책정한다고 치더라도, 평균 이상으로 높을 터.
라 감독은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우진이 캐스팅되자마자 어떻게든 다른 부분에서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이틀을 고민하며 밤을 새웠었는데,
「그냥 기본 출연료 없는 러닝 개런티로 가시죠, 감독님.」
귓가에 계속해서 맴도는 우진의 한 마디로 그동안의 걱정과 부담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우진 씨,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요?”
“네, 감독님.”
우진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확 와 닿는 그의 진심.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고마움보다 당황스러운 감정이 먼저 들 정도로 놀란 라 감독이었다.
‘노 개런티’, 즉 ‘출연료가 없어도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상업영화라면 모를까, 러닝 개런티를 지급할 수 있는 독립영화가 몇이나 되겠는가?
상영관 수가 현저히 적고, 홍보가 거의 없는 독립영화 특성상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루가 멀다고 온갖 대작 시나리오가 그에게 쏟아질 텐데, 그런 배우가 초라하기 그지없는 작은 영화를 선택해주었다.
여기서부터 엎드려 절해도 모자랄 판이거늘.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 무명 감독을 오히려 신뢰하고 배려해주기까지.
이런 배우가 또 어디 있을까.
라 감독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당황한 우진이 건넨 티슈로 눈가를 닦으며 그가 말했다.
“무엇보다 작품을 먼저 생각하는 우진 씨의 배려와 마음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라 감독은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 우진 씨 필모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제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습니다.”
감독으로서 내비치는 강한 자신감이자 굳은 결의였다.
“시나리오에 얼마나 공을 들이셨는지 단번에 느껴졌습니다. 감독님께서 겪으신 창작의 고통만큼 저도 열심히 분석하고 표현하겠습니다.”
우진 역시 각오를 드러냈다.
그러자 라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우진 씨, 혹시 점심 드셨어요?”
“아니요, 아직입니다.”
“그럼, 식사하면서 얘기 나눌까요? 제가 사겠습니다.”
“좋습니다.”
“밑에 매니저분 기다리고 계시죠? 같이 갑시다.”
라 감독이 호쾌하게 웃으며 앞장서서 사무실을 나섰다.
두 사람의 미팅이 시작된 지 고작 15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허나, 충분한 시간이었다
박민재 국장, 류창민 감독에 이어 또 한 명의 ‘백우진바라기’가 탄생하는 데까지는.
* * *
식사 내내, 라 감독은 완전히 우진에게 꽂힌 모습이었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사람처럼, 이미 우진을 ‘내 배우’라 칭하며 한껏 들떠 있었다.
이미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형의 추는 우진 쪽으로 기운 지 오래였다.
배우가 보여준 진심과 배려, 그리고 감독과 시나리오에 대해 보내는 무한한 신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감독님. 시나리오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좀 궁금했었는데요….”
허기를 채우자마자 우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내는 질문들.
“이 장면은 아무래도 감독님께서 전체 풀샷을 놓고 찍으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맞는지요?”
마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감독과 똑같은 앵글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는 배우의 날카로운 시선이 한몫했다.
‘이 친구… 시나리오를 대체 몇 번이나 읽고 온 거지?’
단 이틀 만에 이만큼 준비해서 오는 배우가 있었던가.
정작 당사자는 배우로서 기본이라고 믿는 노력과 성실의 정도였지만, 상대방의 눈에는 그저 ‘언빌리버블’한 상황으로 보였다.
우진을 향한 경이로움은 한 차원 단계를 넘어서서 이젠 오싹하게까지 만들고 있었다.
예리한 질문은 계속 이어졌고, 라 감독은 땀을 뻘뻘 흘리는 와중에도 전부 자세히 답해주었다.
이쯤 되면, 누가 각본가인지….
오고 가는 질문과 답변 속, 서로의 생각과 의견이 섞이면서 시나리오의 수정 방향도 자연스럽게 잡혀갔다.
“…궁금증이 다 풀렸나요?”
“네! 감사합니다, 감독님.”
우진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 미소를 보고 나서야,
“후우.”
라 감독은 깊은숨을 내쉬며 호흡을 골랐다.
그것은, 안도의 한숨.
‘잘 넘어가서 다행이다….’
단둘이서 대본 얘기를 하는데 이렇게 진이 빠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시나리오를 직접 창작한 감독이 배우의 질문에 제대로 답해주지 못하는 것보다 창피한 일이 또 있으랴.
한데, 우진의 몇몇 질문들은 라 감독조차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신선한 관점이었다.
당장이라도 작업실로 달려가 시나리오에 반영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구쳤다.
동시에, 우진이 없는 결과물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백우진 = 주인공 이건우.’
라는 수식이 이미 그의 뇌리에 깊게 박혀버렸다.
“저기, 우진 씨. 뭐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안경을 고쳐 쓴 라 감독이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우진 씨만 괜찮다면, 저와 함께 오디션을 주관해주시겠습니까?”
어려운 제안이었고, 순간 멈칫하게 만드는 부탁이었다.
“아, 그건….”
“어려우실까요?”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오디션에서 떨어졌을 때 몰려오는 상실감과 무기력함, 그리고 좌절감 등등.
여러 가지가 복합된 그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진이었기에 제안을 수락할 수도, 그렇다고 라 감독의 순수한 의도를 단칼에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침묵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잠시 후, 그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저는 아직 신인에 불과하고, 많이 부족합니다. 감히 감독님의 고유권한을 나누어 가질 만한, 그리고 누군가의 연기력을 평가할 만한 자격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우진의 말에 라 감독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부담을 드리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짧은 시간에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분석한 우진 씨의 시선을 빌리려는 겁니다.”
전문가의 실력은 동종의 전문가가 제일 잘 아는 법.
연기력에 관한 판단은 감독보다 배우의 시선이 더 정확할 것이라는 게 라 감독의 의견이었다.
잠시 고민에 빠진 우진은,
“솔직히 주관자로서는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가벼운 참관이라면, 부담 없이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환한 웃음을 보인 라 감독은 옆에 놓인 계산서를 들고 먼저 일어섰다.
그러나 여전히,
‘과연 이게 잘한 결정일까, 혹은 맞는 일일까.’
부탁에 응하긴 했으나, 확신이 서지 않았다.
“…….”
그때였다.
– 툭툭.
옆에 앉은 준안이 말없이 우진의 등을 토닥여주며 속삭였다.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고마워요, 형.”
사소하든 아니든, 한 번의 걱정이 지나간 자리에는 기대와 설렘만이 남았다.
“빨리 촬영하고 싶네요.”
그제야 홀가분한 미소를 보인 우진도 준안을 따라 일어섰다.
* * *
이미 미팅 일정을 조율할 때부터 캐스팅이 확정된 사안이었다는 건, 플라워엔터테인먼트 관계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이야기.
그래도, 감독과의 미팅까지 마쳐야 비로소 ‘공식적인 확정’이라 말할 수 있겠지.
라 감독과의 미팅 후, 홍보팀에서는 우진의 차기작에 관한 기사 준비와 더불어 각 언론사와 엠바고 일정을 조율했다.
그 무렵.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거장의 화려한 피날레… ‘8월 16일’ 개봉 확정(오피셜)] [오성철 × 백우진 주연 ‘붉은 꽃잎’, 여름 극장 강타한다!] [화제의 기대작 , 류창민은 ‘천만 관객 恨’을 풀 것인가!] [‘붉은 꽃잎’ 8월 16일 개봉, 조선 최악의 폭군 연산군의 광기를 담은 ‘실화’]바로, 의 개봉일이 확정된 것.
추후 듣게 된 여담에 따르면, 류 감독은 개봉일을 정하는 것에 있어서 두 가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첫째, 여름 시기에 개봉할 것.
그리고 둘째, 영화가 다루고 있는 역사 속 시기와 최대한 연관성이 있는 날짜였으면 하는 것.
은퇴작인만큼,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마저 의미를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렇게 정해진 8월 16일.
그 의미에 대해 류창민 감독은,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가 사망한 날짜가 1482년 음력 8월 16일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연산의 광기는 그때부터 시작했다고 봐야 하겠지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더불어,
“여태까지 제가 만들어온 영화 중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성철, 백우진, 신다희 배우와 이재순 선생님의 명연기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리는 멘트도 잊지 않았다.
개봉일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붉은 꽃잎’은 각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 자리를 한동안 유지했고,
└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 다 필요 없고 시사회 언제임? 언제냐고오오오!!!
└ 소식 듣자마자 달려왔습니다. 와드 박고 갑니다.
└ 222222222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