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84
상황이 너무 꼬여서 어떤 초월자가 중국이 개전을 선택하도록 몰고 간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왕쉬안은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블랙메탈 금수조치를 해제하는데 이 정도라면 핵융합 발전소는 뭘 내줘야 하는가?
확실한 건 이런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왕쉬안은 현 중맹의 실세이기에 누구보다 그것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좋습니다. 자세한 국경선은 실무진 협의 때 완성합시다.”
“이제 국내에 투자해도 좋습니다.”
당연하지만 금수조치를 해제했다고 블랙메탈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블랙메탈을 가공하려면 한국에 공장을 건립해야 한다.
이쯤 되면 과거에 그를 협박하고 납치를 사주한 옛 관료들이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마음 같아서는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대우를 원했지만 그 경우 대체 뭘 내줘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둘은 그 후에도 논의를 이어나갔으나 대단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블랙메탈의 금수조치를 해제하고 남중국해의 매장지를 포기하는 대신 대만해협의 매장지를 중재한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 대가로 한국은 2만㎢에 달하는 땅을 새로 얻었다.
영토를 키운 이 정상회담의 성과에 유지하는 어마어마한 지지를 얻었다.
―요즘 세상에 영토를 넓히는 건 어지간해서는 불가능한데 그걸 해버리네···
―이번에 핵융합로 수주금과 중국에서 입금한 자금도 모조리 북한에 투입된다. 사재를 털어서 북한을 정상화시키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개인 돈이고 신라그룹의 돈인데···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유지하의 입장에선 다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평이었다.
한반도나 신라그룹이나 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왼쪽 주머니에서 오른쪽 주머니로 옮긴 것뿐인데 이해가 되지 않는군.”
“언젠가는 독재가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뭐 그렇긴 하지.”
한 70년 후에는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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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유지하가 만난 정상은 푸틴 대통령이었다.
그간 양 정상이 잠정적으로 합의한 사항은 꽤 많았으나 이번 기회에 확정을 지으려는 것 같았다.
실무진의 규모도 엄청나고 회담 전에 러시아 정부의 조직 개편까지 있어서 미국이 우려를 표명할 정도였다.
―극동북극개발부가 폐지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벨라루스에 이어 우크라이나가 EU에 매달리는 대신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통합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 러시아는 동유럽 방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였다. 일련의 사태와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서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서진이 마침내 현실화되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블랙메탈로 거금을 만지게 된 러시아가 그에 만족하지 않고 구 소비에트 연방을 꿈꾼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옛 벨라루스처럼 스스로 러시아에 합병을 요청하지 않는 한, 그리고 미국이 유럽을 포기하지 않는 한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의 영광을 되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변수가 등장했다.
러시아의 행보로 봐서 이번 한국과의 정상회담에 거대한 제안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선 여러 추측이 오갔지만 땅이라는 주장이 우세했다.
―유지하 대통령은 땅을 좋아하는 것 같다. 북한을 흡수한 것도, 그리고 중맹과의 협상으로 영토를 넓힌 것도 그런 성향이 투영된 결과물일 것이다.
―어쩌면 연해주를 줄 수도 있다. 한국과 인연이 없지는 않은 땅이다.
―그 대가로 러시아는 전면적인 협력을 얻어내려 할 테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이런 추측을 내놓았고 매킨리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 친구 욕심이 보통이 아니야. 절대 프리모리예 정도로 만족하지는 못할 거요.”
“설마 사할린까지 생각하시는 겁니까?”
“글쎄, 내가 회담장에 가지 않는 이상 모를 일이지.”
블라디보스토크의 인구만 60만을 넘고 주변에는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기지까지 존재한다.
얼핏 잘못 생각하면 부동항을 내주지는 않을 거라고 의심하기 쉽다.
하지만 반대로 러시아가 부동항을 내주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게 뭔가를 생각해야 한다.
매킨리 대통령은 정찰위성으로 찍은 테라 섬의 구조물을 확인했다.
“언제 봐도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군. 저 구획은 언제 건설된 거요?”
“이틀 사이에 올라왔습니다. 용도는 방어포대인 것 같습니다.”
“방어포대라고 하면 레일건인데 너무 크지 않소?”
“초대형 레일건일 가능성도···”
미국은 테라 섬을 유지하에게 양도하고 1년간 경비를 서주기로 했다.
유지하 뿐만이 아니라 미국에도 좋은 일이었는데, 덕분에 테라 섬의 주위를 돌면서 뭐가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찰위성과 근거리에서 찍은 영상을 조합한 결과, 테라 섬에는 거대한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블랙메탈로 이뤄진 도시였다.
매킨리 대통령은 화가 나는지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저 구획 하나만 분해해도 우리가 캐내는 1년 치 블랙메탈을 능가하겠군. 대체 매장량이 얼마인지 가늠이 되질 않아.”
“블랙메탈의 정확한 매장량을 추산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그걸 감안해도 너무하지 않나 그 말이오. 마치 그를 위해 준비된 것 같지 않소?”
“···혹은 만들었을지도 모르지요.”
“진짜 외계인인가?”
겉으로 보면 확실한 한국인이지만 그에겐 수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언제나 붙어 다니는 비서는 대학 졸업 외에는 생활흔적을 찾을 수가 없는 신비한 인물이었다.
“사회보장번호는 있지만 친구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이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지 않은가.
여러모로 의심스러웠지만 당장 조치를 취할 순 없었다.
일단은 아군이니까.
“하지만 러시아와의 밀회가 내 결심을 흔들리게 하는군···부디 선은 넘지 말기를 바라겠소.”
미국은 아직 한국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들의 앞에 선을 그어놓았다.
동아시아의 강국은 인정하지만 태평양을 넘어서는 건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와의 경제협력도 봐줄 순 있지만 그 이상으로 친해지는 건 곤란했다.
벌써부터 민주당에선 유지하의 행보가 심히 우려스럽다며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반발하고 있었다.
그가 확실한 아군이었다면 그럭저럭 넘어갔겠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봐서는 참으로 애매했다.
매킨리 대통령은 그가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랐다.
“내 임기가 끝나면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오겠지. 부디 그들을 자극하진 마시오.”
그리고 며칠 후 푸틴 대통령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한국을 떠났다.
양측의 실무진이 밤샘 논의를 이어가던 와중에 기절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10월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크렘린궁의 지도가 살짝 바뀌었다.
거의 동시에 청와대 집무실에 존재하는 한반도 지도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세상에 공표되지 않았다.
현재의 한국은 북한을 정상화시키는 것만 해도 벅찼기 때문.
전 세계가 나서 구충제를 투입하고 의사들을 파견한 결과 주민들은 간신히 기생충 위험에서 약간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식료품을 비롯한 생필품도 차곡차곡 들어오고 있어서 당장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주민들 중 상당수가 마약 중독증상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
북한 내부의 마약은 흔히 백도라지와 빙두로 불리는데 아편과 필로폰을 뜻한다.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아이들도 심심치 않게 접하는 등 개판이었다.
농촌에 숨은 게릴라의 준동도 심각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문제였다.
아르마의 계산에 의하면 평양부터 정상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 주위는 자연스럽게 안정화된다.
유지하는 건설사 대표들을 불러놓고 펑양 대동강 이남의 지도에 선을 그었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몽땅 비우고 밀어버리세요.”
쿠쿵!
화약이 폭발하며 건물이 연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평양이 평탄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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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평야가 꽤 많군.”
“재령평야와 평양평야가 꽤 유명하죠.”
“메가시티를 건설하기에 최적의 위치야.”
당장 메가시티를 건설할 순 없으나 그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도시계획을 짜는 게 중요했다.
다행히도 북한의 모든 도시계획은 전적으로 루시아가 맡고 있었다.
기초 토목공사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모조리 루시아의 통제를 받아 진행된다.
자재 하나하나까지 감시하는 건 아니지만 대금 결제 전체가 루시아를 통하도록 되어 있어서 빼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유지하는 테라 섬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여기는 메가시티 퍼시픽. 그리고 북한은 메가시티 노스.”
북한의 위도는 노스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편의상 그렇게 적은 것이다.
아르마가 남해 지역에 이름을 적었다.
“그럼 여기는 사우스가 되겠네요.”
지도 곳곳에 메가시티가 세워졌다.
현재까지 얻은 땅으로는 총 4개의 메가시티를 세울 수 있으며 이는 15개의 목표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3년 만에 이렇게 됐으니 느린 편은 아니지?”
“일정을 따지면 거의 오차가 없습니다.”
“만주까지 얻으면 최소 6개는 세울 수 있을 거야.”
이런 일정은 2103년에 플레이그가 최초로 나타난다는 가정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아르마는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보고했다.
“마스터, 달에 뭔가가 날아왔습니다.”
“사전에 포착을 못했나?”
“중력자 레이더의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현재 세틀러호가 있지만 지구를 감시하는 데만도 벅찼다.
우주 플랜트는 생산에 특화되어 있고 채굴선은 말할 것도 없다.
유지하는 문득 한숨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3년 동안 많이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달에 뭐가 오는지도 모르는군.”
“본격적인 달 개발이 이뤄지면 나아질 겁니다.”
“그러길 바라야지. 탐사정 보내서 확인해 봐.”
정지궤도에 머물러 있던 세틀러호에서 탐사정 한 대가 분리되어 달로 향했다.
하필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 고요의 바다에 떨어져서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의 국가가 알아버렸다.
지진파까지 발생하는 통에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달을 관측하고 있던 천문연구소에선 이게 뭐냐고 난리가 났고 탐사정은 그들의 감시를 피해 조심스럽게 크레이터로 향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마스터, 선지자의 유물입니다.”
“···”
그게 벌써 올 리가 없다.
하지만 탐사정의 카메라에 잡힌 것은 틀림없는 선지자의 유물이었다.
유지하는 진회색의 금속제 캡슐을 바라보며 신음을 흘렸다.
“···골든 레코드가 벌써 도착했다고? 원래 2030년으로 예측하지 않았었나?”
“어쩌면 우리가 통과한 워프게이트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가져오느라 워프게이트를 두 번이나 이용했다.
그 결과 전체적인 타임라인이 흐트러졌을지도 모른다.
“침공일을 재계산할 수 있나?”
“거기까진···”
플레이그에 대한 것은 대부분 불명이라 초대량의 연산에 특화된 아르마도 알 수 없다.
“일단 저거 가져와. 기록이 맞는지부터 확인하지.”
탐사정이 선지자의 유물을 회수하는 동안 유지하는 침통한 안색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계획은 모두 플레이그가 2103년에 침공한다는 것을 전제로 조율되었다.
이런 식으로 타임라인이 앞당겨지면 대응하기가 곤란해진다.
‘사이커 계획에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티마를 데려오긴 했지만 유전자를 분석하기 위해선 성인이 될 때까진 기다려야 한다.
사이커 능력은 원래 나이가 차면서 제대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10대 중반부터 임관해 규격 외의 능력을 발휘한 유지하가 특이 케이스였다.
하여튼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긋날 위기에 놓였다.
의자에 앉은 채 침묵하고 있는데 뒤에서 아르마가 그의 머리를 껴안았다.
“마스터, 제가 있잖아요. 아무 문제없도록 스케줄을 조정하겠습니다.”
“···”
그게 가능할진 의문이지만 뒤통수가 부드러운 것에 닿으니 진정은 되었다.
얼마 후 세틀러호에 선지자의 유물이 운반되어 왔다.
이 캡슐 형태의 유물은 사이커가 없으면 절대로 반응하지 않는다.
유지하가 표면에 손을 대자 진회색의 캡슐이 마치 블랙메탈처럼 분해되었다.
그리고 빛이 펼쳐지며 함교 내부에 알아보지도 못할 우주지도가 가득 찼다.
“선지자의 고향으로 향하는 항로도군.”
수많은 별빛 사이로 선명한 선과 점이 보였다.
선은 항로도고 점은 선지자의 고향으로 추측되는 행성이다.
인류는 저곳으로 가기 위해 세틀러호를 건조했으나 정작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녹스에조차 가지 못했다.
“이제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마스터, 여기 골든 레코드가 있습니다.”
아르마가 캡슐 내부에서 황금색 원판을 찾아냈다.
그것은 51년 전 미국이 보이저 1호를 통해 태양계 외부로 보낸 골든 레코드와 완전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본색을 드러내다
“···”
유지하는 문득 일어나 우주기지의 좁은 창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공간에 섬뜩한 붉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인류에게 붉은 행성이라 불렸던 화성이다.
아니 이젠 조각조각 해체된 화성이라고 봐야겠지.
태양계 내부에 깊숙이 진입한 플레이그 군단은 모든 무기물을 먹어치우면서 마침내 화성 궤도까지 도착했다.
인류는 놈들을 막으려 애썼으나 역부족이었다.
전투에서는 연승했으나 전쟁에서는 끝임 없이 밀렸다.
저 어마어마한 물량을 감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화성까지 도착한 플레이그 군단은 마치 쿠키 부수듯 지각을 조각내고 포식하기 시작했다.
저 붉은 은하수처럼 보이는 기운은 플레이그가 지각을 먹어치울 때 나타나는 레드 클라우드 현상이다.
일명 행성의 최후.
유지하는 스러져가는 화성의 비명을 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언뜻 들려오는 플레이그 퀸의 사념도.
‘뭔가를 찾고 있군···’
이상하다.
원래 유지하는 플레이그의 사이코키네시스를 캐치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사이커다.
하지만 플레이그 퀸의 사념까지 들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의 사이코키네시스 필드는 너무 강력해서 의미 없는 절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행성을 먹어치울 때쯤이면 보통의 사이커는 특별히 제작된 시설이나 어설트 아머의 콕핏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유지하는 침대에 앉은 채로 플레이그 퀸이 발하는 온갖 종류의 사념을 읽었다.
‘불쌍한 생물들이라···왜 우리를 그렇게 여기지?’
플레이그가 지성체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느끼고 있지만 이런 식의 구체적인 감정까지 있을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어느덧 유지하의 의식이 분리되었다.
과거로 돌아온 유지하는 2177년 L2 우주기지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전의 나군.’
정확히 말하자면 플레이그 군단이 최후의 공세를 펼치기 직전에 휴가를 받아 쉬고 있는 자신이다.
당시 통합우주군의 전 장병은 끝없이 계속되는 전투에 기진맥진해 있었고 전황은 극히 좋지 않았다.
우주군 사령관 알렉산더 맥스톨 대장은 그런 장병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어차피 플레이그 군단은 화성을 포식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우리도 조금이나마 휴식을 가지도록 하지.”
화성의 포식이 끝나면 지구다.
모두가 그것을 알았지만 당장은 달콤한 휴식에 빠져들었다.
유지하도 모처럼 지구에서 올라온 루시아와 회포를 풀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루시아가 왔었지···’
시선을 돌리니 침대 가운데에 갈색 피부의 여성이 등을 드러내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루시아 로자노.
유지하는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었지만 진정으로 교감하고 사랑한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다.
유물해석기관 아크의 수장이자 최고평의회의 의원, 스승이자 동료···그리고 연인.
그녀가 어깨를 꿈틀거리더니 눈을 떴다.
입가에 살짝 웃음이 새겨지더니 유지하의 넓은 등을 뒤에서 껴안았다.
“무슨 생각해요?”
2177년의 유지하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우리는 언제일까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참 낭만 없는 남자네.”
“낭만이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죠.”
뭔가 이상하다.
2028년의 유지하가 들은 플레이그의 목소리는 그에겐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과거의 기억을 다시 꿈꾸고 있는 건가? 선지자의 유물과 접촉한 결과로?’
이게 꿈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유지하는 잠자코 둘의 수작을 지켜봤다.
“오늘 진찰을 받았는데···아쉽지만 임신이 아니래요.”
“루시아, 다시 말하는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