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06
#닥터 플레이어 306화
애초에 그는 휴스톤의 왕세자였다.
추기경이 되어도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기껏 해봐야 여러 현안에 조언을 주거나,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주는 게 고작일 거다.
하지만 쥬드를 비롯한 카탈 왕국의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기뻐했다.
레이몬드가 얼마나 뛰어난지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까.
무엇보다, 레이몬드와의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었다.
잠깐 스쳤다 지나가는 햇살이 아닌, 앞으로도 ‘카탈의 빛’이 되는 거다.
레이몬드가 영원히 그들의 빛이 되는 것.
카탈 왕국 사람들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했다.
“카탈의 빛, 레이몬드 추기경 만세!”
“마제스티 레이몬드!”
“가난의 성자는 우리 거야!”
그런 환호와 함께 쥬드의 대관식과 레이몬드 추기경 임명식이 거행되었다.
이어 국왕 즉위와 추기경 임명을 기뻐하는 축제가 벌어졌다.
카탈 왕국의 백성들은 술에 취해 새로운 국왕 쥬드와 레이몬드의 이름을 끝없이 높여 불렸다.
특히 이런 정체불명의 노래가 온 거리에 퍼졌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으니!”
“이름하여 가난의 성자라!”
“가난의 성자의 빛이 카탈 왕국을 덮어!”
“만인을 이롭게 하리라!”
레이몬드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빌어먹을 가난의 성자. 누가 저딴 이름을.’
들을수록 열불이 터졌다.
하지만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지금 저 백성들이 어떤 마음으로 저러는 건지 이해는 했기 때문이다.
그간의 폭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기뻐하는 것이리라.
저렇게 사람들이 기뻐하는 걸 보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황금의 성자라고 불러 달라고.’
레이몬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렇게 될 날도 멀지 않았으니.’
이제 곧 페닌슐라 왕국에 갈 거다. 자연스레 그의 이명도 황금의 성자로 변하리라.
‘그러려면 오늘이 중요해.’
레이몬드는 긴장했다.
이제 곧 중요한 만남이 있었다.
마침, 연락이 왔다.
“전하, 라시드 왕자께서 만남을 청하십니다.”
그를 황금의 세계로 이끌어줄 인도자가 찾아왔다.
* * *
“라시드 왕자님을 뵙습니다.”
“아.”
라시드는 카탈 왕성의 귀빈실에 있었다.
레이몬드가 방에 들어오자 라시드가 벌떡 일어섰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라시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왜 저러지?’
그러고 보니 페이안 7세의 모습도 안 보였다.
같이 온다고 들었는데?
“귀국의 국왕 전하께서는?”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거동이 힘드셔서 많이 지치신 터라.”
레이몬드는 더욱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왜 직접 온 거지? 더구나 비공식적으로?’
지금 라시드와 페이안 7세는 남들에게는 비밀로, 비공식적 방문을 하였다.
레이몬드와 쥬드 및 일부 사람들만 그들의 방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페이안 7세 전하께서 치료받아야 할 병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하지만 그런 이유였다면 굳이 직접 오실 필요까지는…….”
레이몬드는 조심스레 말했고, 라시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국왕 전하께서 병을 앓고 계시기는 하시지요.”
“네?”
“오로지 당신만이 치료할 수 있는 병입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확히 어떤 병인 겁니까?”
하지만 라시드는 답하지 않았다.
더욱 얼굴을 굳히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 전에 한 가지 물을 게 있습니다. 혹시, 왕세자께서는 모친에 대해 어느 정도로 알고 계십니까?”
“……!”
레이몬드의 눈이 커졌다.
모친.
전혀 생각지 않은 이야기였다.
“……글쎄요.”
레이몬드는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에 대해 뭘 아냐고?
잠시 생각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나 아는 게 전혀 없구나.’
이름을 알긴 했지만, 아마 가명일 것이다.
모종의 사정으로 도피 중이었던 것으로 보였으니까.
“그런데 그건 어째서?”
“제가 당신 모친의 단서를 알고 있습니다.”
“……!”
레이몬드의 눈이 커졌다.
그는 즉각 말했다.
“말씀해 주십시오!”
모친의 정체는 이전부터 궁금했다.
하지만 라시드는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 황당한 이야기를 하였다.
“어째서 알고 싶은 것입니까?”
“네?”
“어차피 당신의 모친께서는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처럼 모르고 지내도 큰 상관이 없지 않으십니까?”
레이몬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웬 헛소리야?’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 알고 싶은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레이몬드는 단순한 궁금증 말고 어머니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곤궁한 사정으로 도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가족들도 분명 어려운 형편일 터. 어머니의 진짜 신분을 알아, 어머니의 가족들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
레이몬드는 씁쓸한 얼굴을 하였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절 사랑해 주었던 분의 가족들이니까요.”
일평생, 그에게 유일하게 진정으로 사랑을 베풀었던 어머니다.
분명 괴로운 사정으로 도피한 것일 터. 어머니의 가족이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이제 나 힘 있으니까.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레이몬드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라시드의 반응이 이상했다.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마치 눈물이라도 쏟을 것처럼.
“라시드 왕자님?”
라시드는 이를 악물더니 또다시 뜻밖의 이야기를 하였다.
“정말 죄송한데…… 제게 손을 빌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레이몬드는 엉거주춤 손을 내밀었다.
라시드는 마치 진귀한 보석이라도 만지듯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레이몬드의 손을 감쌌다.
그리고 경악한 얼굴을 하였다.
‘이 느낌은?’
마치, 동류를 만난 듯한 뭉클함.
‘동질감’이었다!
‘이질감이 아니라, 동질감이 느껴지다니?’
이전 레이몬드와 접촉했을 때는 ‘이질감’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같은 리슈테인 왕족에게서만 느껴지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혹시 봉인이 조금 풀린 건가?’
어쨌든 이로써 더욱 명확해졌다.
“왕세자님, 당신 모친의 이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라시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라스텔 드 리슈테인. 그게 바로 당신의 위대한 모친의 성명입니다.”
* * *
“네? 라…… 뭐라고요?”
레이몬드는 잠시 멍한 얼굴을 하였다.
라스텔 드 리슈테인.
그 이름의 뜻은 명확했다.
‘어머니가 리슈테인 왕가의 인물이었다고?’
말도 안 됐다!
레이몬드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농담은…….”
하지만 라시드는 농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레이몬드의 얼굴이 굳었다.
“……그럴 리가요? 어머니께서 로열 하프이셨단 말입니까?”
로열 하프.
리슈테인 왕가의 인물 중 성안을 타고나지 않은 인물을 뜻한다.
레이몬드는 어머니의 눈동자가 에메랄드빛이 아님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시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신의 모친께서는 우리 왕가의 직계였습니다. 모종의 수법으로 성안을 숨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 하지만…….”
레이몬드는 당황해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왕족, 그것도 페닌슐라 왕국의 왕족이었다니?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무언가 잘못 알고 계신 걸 겁니다. 절대 그럴 리가……?”
라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몬드가 저런 반응을 보일 건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믿기 어려운 것 이해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라시드는 가방에서 투명한 수정을 꺼내었다.
“우리 왕가의 보물, ‘감별석’입니다. 왕가의 성안을 타고난 이를 판별하는 역할을 합니다.”
리슈테인 왕족은 오로지 성안을 타고났느냐로 나뉜다.
모계의 혈통이라도 성안을 타고 태어났다면 왕족으로 인정하고 왕의 직계라도 성안을 타고나지 않았으면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다만, 그러다 보니 가짜 성안을 가진 이들이 불쑥불쑥 출현해 이런 마도구를 만든 거다.
이 마도구는 성안, 정확히는 ‘혼돈’에 반응하다.
‘왕가의 진귀한 보물이라 원래 이렇게 외부로 반출해서는 안 되는 거지만.’
국왕인 페이안 7세와 동행했기에 간신히 외부로 반출할 수 있었다.
‘물론 레이몬드 왕세자님의 혼돈은 봉인되어 있어서 수정구가 반응할지 안 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지만 그 문제는 한시름 놓았다.
방금 ‘동질감’이 느껴졌으니, 수정구도 반응할 것이다.
“이 마도구는 성안의 ‘혼돈’에 반응합니다. 확인해 보면 제 말이 진실임을 알 것입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혼돈이라니. 내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혼돈.
외대륙 요르문드의 고위 종들이 지니는 특수 능력이었다.
참고로, 요르문드에서 기원한 진혈족 미엔도 이 혼돈을 지니고 있었다.
“농담하지 마시…….”
하지만 레이몬드는 입을 우뚝 다물었다.
라시드의 눈빛이 저릿한 간절함에 물들어 있었다.
헛소리 따위를 하는 눈이 아니다.
라시드는 진심이었다.
“……제발, 부탁입니다.”
결국, 레이몬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아닐 거로 생각하지만…… 확인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시드는 허겁지겁 ‘감별식’을 준비했다.
준비한 촉매들을 늘어놓고, 마법진을 그리고, 가운데에 투명 수정구를 놓았다.
“그런데 어떻게 확인을 하는 겁니까?”
“그냥 보시면 됩니다.”
“네?”
“성안으로 수정구를 바라보면 됩니다. 그러면 성안의 혼돈에 수정구가 반응할 겁니다.”
다행히 별달리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레이몬드는 가만히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1초. 2초. 3초…… 5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거 얼마나 바라봐야 하는 겁니까?”
레이몬드는 조심스레 물었다.
라시드는 당황했다.
‘왜 반응이 없지?’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반응이 있어야 했다.
‘아까 분명 동질감이 느껴졌는데? 어째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부탁합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라시드의 눈빛이 워낙 간절해 조금 더 바라봐 주었다.
5분이나. 가만히.
하품까지 하였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역시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그럴 리가. 아닙니다! 당신은 분명……! 이건 오류가!”
라시드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왜 저래? 내가 왕족이든, 아니든 그게 본인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든 페닌슐라 왕국에서 돈 벌 궁리나 해보자.’
황당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라시드를 잘 구슬려야 했다.
‘페닌슐라 왕국의 황금을 모두 내 것으로!’
그러며 레이몬드는 방 한가운데의 감별석 수정구를 다시 바라보았다.
특별한 의미로 바라본 건 아니었다.
그냥 갖다 팔면 비쌀 것 같아서 탐나서 봤다.
‘저 수정구보다 더 비싼 보석들을 수집하겠어!
굳게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왜인지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파아앗.
수정구의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다.
투명한 빛이 노란색으로 변한 것이다!
“어?”
라시드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감별석의 반응이었다!
‘어째서 갑자기? 설마?’
레이몬드가 어떤 결연한 다짐을 하는 듯하더니, 감별석이 반응했다.
라시드는 다급히 물었다.
“혹시 환자에 관한 생각을 하신 겁니까?”
“아……? 네? 네, 네.”
레이몬드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로 돈 벌 생각을 하긴 했다.
라시드는 속으로 외쳤다.
‘역시! 환자를 위한 마음에 성안의 혼돈이 움직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