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27
#닥터 플레이어 327화
‘폴른 그룹이 뭐야?’
은행장이 설명해 주었는데, 대륙에서 손꼽는 9개의 은행이었다.
그게 모두 로즈 영애의 소유란 것이다.
어마어마한 부자라고는 상상했지만, 이건 그 스케일을 넘었다.
‘이 정도면 대륙 최고의 부자라고도 할 수 있잖아.’
레이몬드는 얼이 나간 얼굴을 했다.
“모르셨습니까?”
“아, 네. 전혀…….”
“그렇군요. 흠. 어쨌든 이 카드를 가져오셨으니, 이 정도 이야기는 해드려도 괜찮겠지요.”
레이몬드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도대체 그 카드가 무엇이길래 그럽니까?”
“VVVIP 카드. 회장님이 가족처럼 소중히 생각한다는 분들에게만 발급되는 카드입니다. 저도 실물을 보는 건 처음입니다. 아마…… 카드 발급 자체가 처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레이몬드는 침묵했다.
‘왜 그런 카드를 내게?’
은행장도 고개를 갸웃했다.
‘두 분께서 무슨 관계인 거지? 정말 아무 관계도 아닌 건가?’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 무서운 회장이 이런 카드를 발급했을 리가 없다.
은행장은 잠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레이몬드의 얼굴을 살폈다.
‘남녀 간의 일을 깊게 묻는 건 실례이지. 그만 넘어가자.’
“어쨌든 여기 100만 페나 대출입니다. 법정 최저금리 적용하였습니다.”
50만 페나만 빌리려다가 추가로 돈이 필요한 일이 떠올라 50만 페나를 더 빌렸다.
‘……내 빚은 어디까지 느는 거야?’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혹시 또 돈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방문해 주십시오! 최저금리로 모시겠습니다!”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급히 돈을 구하는 게 고민이었는데, 잘 해결되어 다행이었다.
나가기 전, 레이몬드는 이전부터 궁금했던 사실을 물었다.
“혹시, 로즈 영애께서는 어느 가문 출신이신지요?”
어린 나이에 이런 부를 이루었을 리는 없으니, 상속일 것이다.
하지만 은행장은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그건 절대 말할 수 없는 특급 기밀인지라.”
그 대답에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문이 기밀이라니? 왜 안 알려주지? 무슨 사정이 있길래?’
순간, 레이몬드는 서늘함을 느꼈다.
‘……설마 게이볼그 가문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니겠지?’
게이볼그 대공가.
자유 도시 연합의 군주 가문 중 하나였다.
사실상 자유 도시 연합을 이끄는 최고 군주 가문.
가히, 철의 제국 황가와도 비견되는 대륙 최고의 가문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자유 도시 연합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이용해 거대 금융업을 하고 있었다.
그 게이볼그 대공가과 연관이 있다면 뒤에서 폴른 그룹 같은 거대 은행 연합을 소유하는 것도 가능했다.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하지만 레이몬드는 자신의 추측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수법의 독함 때문이었다.
‘……게이볼그 대공가도 돈을 못 갚으면, 같은 무게의 살을 잘라가는 가문으로 악명 높잖아.’
악덕 사채업자 악마 론의 악명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물론 로즈 영애가 정말 게이볼그 가문과 관계가 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게이볼그 가문 말고도 이런 일이 가능한 가문이 대륙에 몇 개 더 있긴 했으니까.
하지만 어느 쪽이든 다 무시무시한 가문들이었다.
‘……더는 로즈 영애와 엮이면 안 되겠어.’
레이몬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미 쇠사슬 목줄을 찬 상황이지만, 레이몬드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른 대출 루트를 알아보자. 내 뛰어난 장래성을 보고 저리로 투자해 줄 은행이 있을 거야.’
이후, 실벤느가 요구한 물건들을 구해 감옥에 전해주고, 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 왕족이라 편의를 봐줘 감옥에서도 아티팩트를 제작할 수 있었다.
환자들의 상태가 안 좋아 최대한 빨리 제작을 하였고, 곧 결과물이 나왔다.
“여기 완성된 물건이에요.”
“……!”
레이몬드는 놀란 얼굴을 했다.
커다란 마도구였는데, 현대 지구의 혈액 투석기와 굉장히 흡사한 형태였다!
“이곳 관을 통해서 혈액을 추출해 풍(風)계 마법으로 혈액을 기계 안에 순환시킬 거예요. 이곳 몸체 안에서는 수(水)계 마법을 통해 혈액 안 노폐물이 정화될 거고, 말씀하신 대로 마도구 내부의 청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약한 독(毒) 마법을 걸어놨어요. 혈액이 굳지 않기 위해 출혈 저주 마법도 걸었고요.”
레이몬드는 감탄하였다.
‘굉장히 어려운 개념이었을 텐데, 정확히 이해하였구나.’
지금 이 마도구 안에는 현대 의학의 어려운 개념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걸 모조리 이해한 거다.
실벤느는 팔짱을 끼며 에헴 하였다.
“제가 원래 천재예요.”
“…….”
“농담이고, 마법사이니 생체 지식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그뿐 아니라, 에스텔 때문에 기본적인 치료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환자를 돕는 마도구를 여러 번 제작한 적이 있다나?
‘그래도 천재긴 천재구나.’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합니다. 이걸 마법으로 구현하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을 텐데.”
투석기에 적용된 마법은 크게 4가지였다.
음압을 통해 혈액을 몸에서 추출해 순환시키는 풍계 마법.
혈액의 노폐물을 정화할 수계 마법.
내부 무균 상태를 유지할 독 마법.
혈액이 굳지 않게 하는 출혈 저주 마법까지.
‘각각은 어렵지 않은 마법이지만, 그걸 정확히 투석의 원리에 맞게 운영하는 건 어마어마한 난이도야.’
예를 들면, 풍계 마법은 너무 빠른 속도로 혈액을 추출하면 쇼크에 빠지게 된다.
정화 마법도 노폐물을 몸의 균형에 맞는 수준으로 딱 정확한 농도로 정화해야 한다. 만약 너무 심각하게 농도를 낮추면 그에 따른 문제가 온다.
독 마법도 살균 효과 정도만 있어야 하고, 응고를 위한 출혈 저주 마법도 마찬가지다.
이걸 정확히 조율하는 게 어마어마하게 어렵기에 지금껏 투석기를 만들 엄두를 못 냈던 거다.
하지만 실벤느는 태연히 말했다.
“제 혈인 능력 덕분이지요. 전 머릿속의 개념에 맞춰 마법을 ‘조작’할 수 있으니까요. 머릿속에 정확한 개념만 떠올리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마법을 얼마든지 정교하게 조작할 수 있어요.”
레이몬드는 또다시 감탄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능력이었다.
‘확실히 저 능력이면 소피아를 구할 드래곤 하트를 대체할 마도구도 만들 수 있겠구나.’
순간, 레이몬드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실벤느 왕녀에게 이런 능력이 있는지 진작 알았으면 카탈 왕국에서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지만 리슈테인 왕족이 각자 정확히 어떤 혈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은밀한 비밀이었다.
실벤느의 능력도 인챈터로서 관련 있는 능력이라고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실벤느가 뜻밖의 물음을 하였다.
“그런데 왕세자께서는 어떤 계통의 혈인 능력을 가지고 있나요?”
“네?”
“구현계? 간파계? 조작계?”
레이몬드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고 보니 내 혈인 능력은 뭐지?’
그도 리슈테인 왕족이다.
그러니 혈인 능력이 있을 텐데 전혀 발현되는 게 없었다.
‘플레이어 시스템? 하지만 그건 혈인 능력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시스템은 혈인 능력과는 종류가 달랐다.
“아직 발현이 안 된 거면, 굉장히 대단한 혈인 능력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가요?”
“네, 강력한 혈인 능력일수록 발현이 늦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이렇게까지 늦게 발현되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레이몬드는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크게 관심 없었다.
대부분의 혈인 능력은 불, 물, 바람 등의 원소를 다루는 쓸데없는 구현계 종류였으니까.
‘실벤느 왕녀 같은 능력이면 좋겠네. 그러면 이런저런 마도구 만들어서 팔아먹을 텐데.’
어쨌든 레이몬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환자들을 치료할 때가 되었다.
그때, 실벤느가 말했다.
“환자들을 부탁해요.”
레이몬드는 시선을 돌렸다.
실벤느는 팔짱을 낀 채 그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에메랄드색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모두 살려, 그 재수 없는 광명의 탑 놈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주세요.”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부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환자들도 살리고, 이번 일을 꾸민 광명의 탑도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 * *
마을에 도착하니, 대기하고 있던 신문사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왕세자 전하. 환자들이 추가로 사망했는데, 해결책은 있으신 겁니까?”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레이몬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광명의 탑의 사주를 받고 레이몬드의 실패를 대서특필하려 노리고 있는 거다.
‘이미 한 차례 기사가 나갔지.’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페닌슐라 왕국 전체에 레이몬드의 무력했던 모습이 신문 보도되었다고 한다.
[의술! 볼품없는 잡술!]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번엔 완전히 쐐기를 박으려고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크리스틴, 메이 등이 기자들을 몰아내려 했다.
“환자 치료에 방해되니 이만 물러가세요.”
하지만 기자들은 꿈쩍도 안 했다.
“죄송합니다. 페닌슐라 왕국은 언론의 자유가 있습니다.”
레이몬드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차라리 잘 됐어. 역사적인 순간이니, 누군가 기록해 주면 좋겠지.’
그런 마음으로 기자들을 내버려 둔 채 환자들에게 다가갔다.
“바이탈 및 상태가 어떻습니까?”
제자들이 답했다.
“추가 사망자들이 나왔어요.”
“남은 환자들도 상태가 위중해요.”
남은 환자는 25명.
그들을 모두 살려야 한다.
레이몬드는 준비해온 마도구를 꺼내었다.
“마스터, 그건?”
“혈액 투석기입니다.”
제자들은 눈을 크게 떴다.
혈액 투석!
개념으로만 들었던 내용이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여진 것이다.
레이몬드는 가장 위중한 상태의 환자 먼저 투석 치료를 시도했다.
혈액을 추출하기 위해 목에 자리한 대정맥에 커다란 주사 루트를 잡고, 마도구를 작동시켰다.
파앗!
풍 속성 마법이 발현되었고, 혈액이 쭈욱 뽑혀 나왔다.
레이펜타아니아에서 투석이 처음 시행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저, 저건?! 피를 뽑다니?”
“저런 악마 같은 짓을!”
기자들과 광명의 탑의 힐러들은 거품을 물며 투석 광경을 손가락질했다.
“어서 기록해!”
“특종이다! 바로 영상 마도구로 전송해!”
찰칵! 찰칵!
고가의 마도구를 통해 투석 장면이 찍혀 실시간으로 언론사에 전달되었다.
곧바로 인쇄 후 수도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수도가 발칵 뒤집힐 거야. 저런 악마의 술수라니.’
광명의 탑 힐러들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피를 외부로 뽑아내는 투석 광경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악마의 술수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긴 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그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러든 말든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오히려 슬쩍 몸을 비키며 사진이 잘 나오게 하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