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6
제 36화
“체질 때문인 건지, 아니면 심병(心病)이라도 오신 건지. 맛을 못 느끼시는 몸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간식까지…….”
“네. 간식까지 맛나다며 챙겨 드시죠. 도련님 때문입니다. 허나, 도련님이 곁에 없으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실 테죠.”
유호의 목소리에서 고통이 느껴진다.
“제가 어떻게 죽을지는 상관없습니다. 그저 주인님께서 오래 사신다면 그것으로 심복의 일은 다 했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살려 준다는 거죠?”
“지켜보겠다는 것 정도로만 말씀드리죠.”
유호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원망스럽고, 고마우며, 기쁘면서도 살의가 치솟는 감정을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마른 대나무 잎이 시야를 가린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간 후에는 이미 유호는 없었다.
귀신도 놀랄 몸놀림이었다.
진천희는 그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높은 경지임을 깨달았다.
또한, 스승님 역시 소설에 드러난 모습만이 전부가 아니었음도.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진천희는 작게 중얼거렸다.
소설에 나온 구결을 담아.
“……번뇌(煩惱)라고 하죠.”
그러고는 그 자리에 앉아 천천히 운기조식을 했다.
궁귀의 깨달음이 끝날 때까지.
* * *
그의 깨달음이 끝난 것은 그로부터 3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진천희는 그동안 오행심법을 운공했다. 평소 자연에서 모으는 것보다도 훨씬 정순하여 꽤나 놀랐다.
그가 부공삼매의 경지에 빠져 있는 동안 파사(破邪)의 바람이 계속해서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파사(破邪).
직역하자면 ‘삿된 것을 부순다’는 뜻으로 불가에서 사용하는 논파의 형식을 뜻한다.
그렇게 부수고, 부수다 보면 결국에는 진실(空)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
파사신공 역시 같다.
깨달음에 다다르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 안의 삿된 것을 비우고, 부숴 나가야 한다.
‘그게 무(武)라는 게 무협의 재미있는 점이긴 해.’
살생을 해서는 안 되는 게 불가의 방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학으로서 뛰어나며, 숱한 정사대전에서 민초를 구하기 위해 많은 피를 묻히게 된다.
그건 도가도 마찬가지다.
신선이 되기 위해서 사람을 죽여도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쪽도 불가처럼 살생을 멀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 무학 역시 심후하며, 결국에는 사문과 은원에 얽혀 검을 빼어든다.
‘악인이라고는 해도 생명의 소중함을 양쪽 모두 명백히 강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사람의 일이지.’
진천희는 이 모순이 좋았다.
불가와 도가의 비전을 익힌 숱한 인물들이 이 문제로 고민을 하곤 했다.
이 모순을 이용해 약을 올려 기어이 도사가 검을 뽑게 만드는 장면도 참 좋았다.
-무량수불, 오호, 통재라. 네놈 때문에 내 오늘 불살(不殺)의 계를 깨고 기어이 손에 피를 묻히게 되겠구나!
무협 소설을 읽다보면 한 번쯤은 나오는 대사다. 참 좋아한다.
‘고민을 하는 게 인간이고, 정답이 없기에 무협은 재미있는 법이고.’
불가의 전승을 익혔음에도 결국 기어이 악당이 되고 말아야 했던 궁귀가 참 좋았다.
그의 고뇌가 좋았다. 분노가 좋았다.
질기고, 질긴 악연의 끝.
그의 비참한 결말마저도 좋았다.
‘아재, 잘 읽었소. 내 책값은 충분히 한 것 같소.’
바람이 서서히 잦아든다.
진천희는 자신의 오행심법이 삼 성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꼈다.
수기나 금기, 목기야 나무를 치료하고 사람을 치료하면서 단련이 되었다. 하지만 토기와 화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풍기(風氣)는 원래라면 오행심법의 삼 성부터 다루어야 할 기운이었다.
오행은 수, 목, 화, 토, 금.
이 중에 풍은 없다.
풍기는 화기와 목기, 수기를 구결에 따라 조합하여 만드는 다음 속성이다.
원래라면 진천희가 풍기를 축기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였다.
‘이게 고렙 렙업하는 데 쪼렙이 버스 탄다는 거군.’
진천희는 기운을 갈무리했다.
‘덕분에 잘 탔소. 아재.’
스승님이 보면 무척이나 놀라실 것 같다. 그리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시겠지.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하늘에 떠 있던 궁귀의 몸이 천천히 땅에 내려앉았다.
백발로 풍화된 그의 머리카락은 원래의 색으로 빛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노화되었던 피부 역시 탄력이 돌아왔다.
‘궁귀 아재, 어째…… 젊어지셨네.’
원래도 미중년 소리 들을 법한 외모였는데, 깨달음을 얻고 나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생기와 완숙미를 다 갖춘 미모가 되었다.
‘선천진기가 채워지고 진원진기까지 돌아왔구나. 상상 이상이다. 역시 잡초 빌런이야!’
모두 다 채워졌을 뿐만 아니라 본래의 경지에서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는 땅에 내려앉은 후에도 눈을 감고 잠시 자신이 깨달은 것을 정리했다. 그 모든 감각을 갈무리하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깊고 심우한 눈빛이었다.
진천희가 포권을 했다.
“축하드립니다.”
“소협 덕에 촌부가 화경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화경!
진천희의 눈이 커졌다.
모든 무림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경지, 그러나 거기까지 도달한 무림인은 전 중원에서 채 30명이 안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벌써 화경? 선천지기에 입은 피해만 다 치료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궁귀는 진천희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가장 힘든 순간, 소협만이 제게 손을 뻗어 주셨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딸의 목숨만으로도 갚기 힘든 은공을 입었는데 평생 바라 왔던 경지까지 올랐습니다. 제 무엇으로도 이 은공을 갚을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진천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왔다!’
손끝이 자르르 울린다. 마지막 챔질을 준비하는 강태공의 손맛이다.
이럴 때 해야 하는 말은 단 하나다. 그러나 상대는 강호에서 굴러먹을 대로 굴러먹은 궁귀다. 허술해서는 안 되었다.
‘겸허? 아니야. 이 상황에서 나올 반응은…….’
진천희는 궁귀의 팔을 붙잡았다.
“아저씨, 일어나세요.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어요.”
‘당황이다.’
궁귀가 말했다.
“은공,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 촌부가 평생이라도 좋으니 갚도록 하겠습니다.”
소협에서 은공이라고 호칭이 바뀌었다.
궁귀에게 있어 이건 무척이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치료비는 스승님 통해서 의각이 이미 받았는걸요. 저는 그저 아저씨의 동운공을 보고 싶어서…….”
“아닙니다. 은공, 부디 원하는 것을 알려 주십시오.”
진천희가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진천희의 어깨가 떨린다. 당황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궁귀의 마음이 흔들렸다.
‘엄청난 신기로 딸을 구하시고, 나 역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게 하셨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아이시다. 내가 미련했구나.’
진천희의 모습에서 그는 자신의 딸, 각연이의 모습을 보았다.
결심은 빠르고 무거웠다. 그가 말했다.
“미흡하나마 평생 은공의 곁에서 충의로 보필하여 백분지일이라도 보답하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진천희의 얼굴이 순진하게 붉어진다.
“어, 어어…… 사실 말이죠. 스승님께 대협의 의각 취직을 권유하려고 했어요. 의각에 있으면 무공 문제도 해결이 될 거고요, 약재나 의료 연통을 전달하는 일이니 다른 일들에 비해 안전할 거니까요. 아! 그리고 보수도 좋아요.”
강호 은원에 뒤범벅된 환자를 옮기는 일도 궁귀가 하게 될 것이지만 진천희는 그 말은 뺐다. 궁귀가 말했다.
“아, 그래서 무공을 견식하고자 하셨던 거군요.”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모습에 궁귀의 눈가가 자르르 떨렸다.
‘이리도 순수하고 마음이 깊으신 분이실 줄이야.’
궁귀가 말했다.
“충심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단순히 은혜를 갚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공의 인덕에 깊게 감읍하였을 뿐입니다.”
진천희가 부끄러운 듯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알겠습니다. 부족한 저이지만 잘 부탁드려요.”
“충!”
“하하하, 낯간지러우니 그 말은 빼 주세요.”
진천희는 순수하게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 화경으로 리폼한 궁귀 놈 의각에 스카웃시켰습니다. 딸인 왕각연도 전신 세맥이 다 뚫려서 왔으니 원 플러스 원이네요. 스승님.’
진천희는 함께 돌아가자고 궁귀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는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마공에는 파사신궁이 쥐약이지. 괜히 파사(破邪)가 아니야.’
천마 놈이 이 아재에게 애를 먹은 게 다 이유가 있다.
파사신공의 근본은 삿된 것을 멸하는 데에 있으니까.
‘후에 있을 마교 소교주들 전쟁에서 우리 의각은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
곧 리틀 천마 여하륜이 소교주에 올라, 다른 소교주들과 서로 죽고 죽이는 천마혈로가 시작된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정파, 사파, 의각들이 휩쓸리게 되던가.
‘내 사람들은 내가 지킨다.’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 * *
의각에 돌아온 후, 궁귀는 스승님과 오랫동안 독대를 했다.
그동안 진천희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방금 얻은 풍기를 주천시키며 천천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원래 속도라면 반년은 지났어야 오행심법 삼 성에 오른다.
그걸 한꺼번에 올렸으니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완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정착시키려면 더욱 조심하면서 그만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진천희는 미리 배워 두었던 풍기의 구결을 떠올리며 운공을 이어 나갔다.
‘확실히 오행심법이 뇌에 좋긴 하네. 옛날이었으면 한번 듣고 홀랑 까먹었을 구결을 어제 들은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려 주니 말이야. 거기다 이렇게 운공하면서 딴생각도 가능하고.’
제갈가의 저력이 무섭다.
한편으로는 이런 제갈가를 단번에 멸문까지 내몬 흉수에 대해 궁금해지기도 했다.
‘소설에서는 복수를 했다고만 나왔지.’
스승님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초반에 병으로 사라지는 조연이다.
천마를 꾸준히 괴롭히는 역할인 궁귀나 공손현 같은 분량은 없으시다.
‘그리고 조연의 조연인 유호는 더더욱 분량이 없고.’
삶이라는 건 참 재미있다.
소설 속에서는 비록 주인공을 빛내 주는 조연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도 한 명의 사람이고, 인생이 있다.
단지 주인공과 얼마나 얽히느냐에 따라 분량이 무참히 삭제되는 것뿐이지.
‘예전에 스승님이 지나가듯 유호는 오행심법을 익힐 수 없는 몸이라 하셨지.’
수술을 앞두고 회의를 할 때 하신 말씀이셨다.
‘다른 무공을 익히고 있는 건가.’
그것도 인간의 피와 체액을 다룰 수 있는 형태의 무공. 정파가 사용할 만한 것은 아니고, 보통은 마공이다.
재미있는 게 이 마공이라는 건 익히면 익힐수록 정신이 혼탁해져 살의가 치민다는 거다.
리틀 천마 놈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천살성의 힘과 맞물려서 더 거센 혈로를 만들게 되고, 마교 교주의 자리에 올랐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살의를 완전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