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5
제 95화
바스락-
“뭐야. 또 금자 천 냥 벌러 온 조무래기냐?”
진천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희야. 하하하, 이 스승을 속이고 어딜 다녀온 거니?”
뒤를 돌아보니 제갈린이 서늘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보다 안색은 더욱 나빠져 있었지만 풍기는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그런 제갈린 뒤로 환자인 제갈린보다도 얼굴이 반쪽이 된 유호가 식은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유호 저 새끼……?’
그 순간, 제갈린의 손이 진천희의 귀를 잡았다.
“으아악! 스승님.”
“분명 폐관 수련을 하러 간 제자가 어째서 밖에 나와 있을꼬?”
“그게 아니고요. 스승님!”
“하하하, 그래. 내력도 많이 성장했고 몸도 꽤나 고강해졌구나.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자꾸나?”
꽈악-
진천희는 그제야 스승님의 경지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았다.
귀를 잡혔는데 용을 써도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
‘아니, 병세는 더 깊어지신 것 같은데 대체 이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거야?’
왕!
반면 황구는 밖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는지 기뻐 보였다.
끌려가는 진천희 뒤를 졸랑졸랑 쫓아가며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다.
* * *
진천희는 평생의 잔소리를 한 시진 안에 들었다. 한참 잔소리를 하던 스승님이 이윽고 한숨을 쉬었다.
“대략적인 정보는 이미 알아보았단다. 하지만 일단 네 입으로 듣고 싶구나.”
진천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진천희 발밑에서는 황구가 배를 까뒤집고는 헥헥거리고 있었다.
당과를 물려 줬기 때문일까,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그냥 당과도 아니고 백린의선의 당과다. 약재가 들어 있어 더욱 황구를 행복하게 했다.
‘몸에 좋은 건 알아 가지고는…….’
진천희는 그런 황구의 배를 긁어 주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은 만년화리의 내단이 필요했기에 나섰다는 건 짐작하실 겁니다.”
진천희는 봇짐에서 만년화리의 내단을 꺼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진흙으로 감싸서 경단처럼 포장한 상태였으나 불처럼 뜨거운 표면과 풍기는 기백에 진위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그것이 거기에 있는지는 어찌 알았느냐.”
제갈린은 곧바로 의표를 찔렀다.
진천희는 뜨끔했으나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다.
“사실 저는 적어도 다섯 마리의 영물이 살고 있는 곳을 알고, 일곱 가지 영약의 소재지를 알고 있습니다.”
이 판은 이미 끝난 판이다.
여기서 거짓말을 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
진천희는 한마디 덧붙였다.
“어째서 알고 있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
제갈린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래. 너를 제자로 받으며 이러한 것들은 더는 묻지 않겠다 약조했지.”
그게 두 사람의 계약이었다. 이윽고 제갈린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궁금하구나. 만년화리를 잡는 것 자체가 원래라면 네 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단다. 앞으로도 다른 영물을 찾아 목숨을 걸 것이냐?”
“스승님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겁니다.”
“희야. 나는 이승에 그리 미련도 없을뿐더러 제자의 목숨 외에는 귀한 것이 없단다.”
“알고 있습니다.”
“…….”
진천희는 단호하게 대답하며 제갈린을 바라보았다.
제갈린은 결국 진천희를 내보냈다.
진천희는 그런 제갈린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진천희가 간 곳을 제갈린은 한참 바라보며 차를 삼켰다.
“복잡해 보이십니다.”
유호가 말했다.
“불경한 제자 때문에 골치가 아프구나.”
“그럼에도 기뻐 보이십니다.”
“그래. 이렇게 스승에게 지극한 제자가 어디에 있겠느냐.”
제갈린은 자신의 입가에 작게 미소가 그려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감정이었다. 위험한 일을 한 것이 화가 나는데 더욱 성장해서 돌아온 건 스승의 기쁨이기도 했다.
“왜 강호의 노괴들이 고작 제자 하나 때문에 미쳐 버리는지 알 것 같구나.”
제갈린은 쓰디쓴 차를 삼키며 중얼거렸다.
“참 신기한 느낌이야. 걱정으로 분노가 치미면서도 기쁘면서도 뿌듯하니 말이지.”
이게 강호에서 말하는 사제지연인 건가.
제갈린은 생각에 잠겼다.
* * *
무림 세계에서 영단, 내단은 참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액체이기도 하고 고체이기도 하며 기(氣)의 성질을 셋 다 가지고 있다.
괜히 무협의 꽃이 아니다.
현대 과학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신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단을 이용해 봉합사를 만들어 왔는데 이번에는 심장 내에 설치할, 일종의 천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
진천희는 끌을 이용해 만년화리 내단을 감싸고 있는 진흙을 부쉈다.
깡!
흡사 도자기를 부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내부에서 열이 엄청났던 모양이다.
과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만년화리의 내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년화리의 몸체만큼이나 내단은 거대했다.
“후우…… 집중하자.”
진천희는 오행신공 금(金)을 이용해 내단을 실처럼 길게 뽑기 시작했다.
잘못했다가는 내단에 깃든 화기가 날아갈 수 있으니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따로 도와 드릴 건 없습니까?”
진천희의 옆에 있던 유호가 물었다.
잘만 하면 주군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유호도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내가 이걸 전부 금사(金絲)로 뽑아내면 설계대로 해 줘.”
“이게 정말로 몸속에 들어간다는 거죠?”
“응. 놀랍게도 말이야.”
재미있는 건 영단과 내단으로 만든 것들은 인체에 삽입되어도 거부반응이 없다는 점이다.
수용할 수 있는 것보다 과한 내공을 섭취하다가 주화입마로 터져 죽는 경우는 있어도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면역 반응으로 골로 가는 경우는 또 없으니 신기한 일이다.
‘어찌 보면 혈고와 비슷하긴 하네.’
진천희가 신기해하는 두 번째가 혈고다.
혈고는 분명 기생충인데 불구하고 숙주의 내공을 섭취해 자신을 동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의학적 거부 반응은 없다.
주천 중 주화입마의 원인이 되지도 않는다.
혈고에게 제때 먹이를 주지 않아서 몸속에서 터져 죽는 경우는 있어도.
‘그리고 세 번째가 환골탈태지.’
직접 겪어 봤지만 아직도 원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몸이 다시 조립이 된다니. 거기다가 젊어지거나 성장하거나 할 수 있다니.
‘내가 있던 곳에는 과학이 있듯이 이곳에는 기(氣)가 있는 거겠지.’
이 정도면 무림에 잘 적응했다고 자부하건만 아직도 어렵다.
옆에서 지켜보던 유호가 말했다.
“내공이 어째 더 정순해지셨습니다? 유지력도 웅후해지셨고요.”
“나 환골탈태했어.”
진천희의 뜬금없는 말에 유호의 눈이 커졌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원래 무공을 수련하다 보면 근골 성장이 빠르고 몸집이 커지기는 하지만 도련님은 해도 해도 너무했으니까요.”
“스승님한테는 이야기 안 했어. 나중에는 하겠지만.”
“아마 아실 겁니다. 도련님을 보자마자 화가 누그러지셨으니까요.”
그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봤을 때 이미 아셨겠지.”
“이목구비는 어째 크게 안 변하셨습니다?”
“왜, 반했어?”
“하하하, 역겨운 얼굴 좀 치우십시오.”
“미워하는 것도 지금뿐이야, 유호. 내가 이거 다 하면 나머지는 이제 다 네 일이다.”
진천희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다시 집중력을 높였다.
만년화리의 내단의 화기 때문에 손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수(水)기를 순환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빙(氷)을 사용하기에는 자칫 조화가 깨질 수 있으니…….’
손이 다소 타더라도 이것만은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도련님도 참 독하십니다.”
“오, 드디어 내 인품에 반했나?”
“하아…… 저걸 죽일 수도 없고.”
진천희는 키득키득 웃으며 자신의 살을 태웠다.
수기의 순환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고통이 밀려왔다. 그러나 진천희의 표정은 냉정했다.
“이 정도면 젊어서 금방 나아. 내가 좀 아픈 건 괜찮아. 스승님 목숨이 더 중하니까.”
“진지하게 묻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주인님이 돌아가시면 그 모든 건 당신 것이 될 텐데요.”
치이익-
열기를 품은 금사(金絲)가 길게 늘어난다.
진천희의 손가락에 긴 상흔이 그어졌다.
“글쎄다. 수술 실패하면 네가 날 죽이러 올 테니까?”
“그거야 정해진 수순이지만 그거 말고는 없습니까?”
“무공을 가르쳐 준 스승을 제자가 목숨을 걸고 지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 거에 얽매일 성격이 아닌 건 압니다만.”
“…….”
진천희는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일까. 자신이 이렇게까지 하며 제갈린을 살리고자 하는 이유는.
한참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반대 입장이었어도 그분도 똑같이 했을 테니까. 애초에 나를 제자로 받은 것 자체가 그럴 생각에서 아니었어?”
“맞습니다.”
“그러면 된 거야. 깊게 생각해 봐야 골만 아플 일이지.”
진천희는 계속해서 금사를 만들어 나갔다. 살이 타는 냄새가 방 안에 진동했다.
진천희가 말했다.
“이거 수련되네. 전신 세맥을 이용해 오행신공 수(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계까지 집중을 해야 하는 거잖아? 이걸 내가 끝까지 실수 없이 마친다면 공력이 한층 더 깊어질 수 있겠는데?”
진천희의 말에 유호가 미친 자를 보는 눈으로 한 번 바라봐 주었다.
“왜, 유호?”
“도련님 뇌를 한번 끄집어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하하, 농담도.”
“도련님 얼굴은 보기 싫어도 뇌는 정말 보고 싶네요.”
‘이 새끼 진심이구만.’
진천희는 혀를 쯧쯧 차고는 꾸준히 일을 이어 나갔다.
* * *
진천희는 결국 만년화리의 내단을 1차 가공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어려운 걸 해냈으니 이제 2차, 3차 가공은 유호와 의각원들이 할 일이었다.
진천희는 그동안 흉부 대동맥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TEVAR)의 개요와 해야 할 일들을 의각원들과 공유하고 훈련했다.
‘원래라면 다른 전공의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인데…….’
하지만 이곳에서는 혼자다.
실패한다면 스승님은 사망하고 진천희를 죽이러 유호가 올 거다.
그놈이 진천희를 죽일 때 일말의 자비도 없을 것임을 진천희 자신도 잘 알고 있다.
목을 딸지 비틀지 정도나 고민할 터였다.
‘성공해야 해. 반드시 성공해야 해.’
그렇게 준비까지 일주일.
어느덧 수술 당일이 되었다.
* * *
이른 아침, 진천희는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명상에 잠겼다.
내공을 주천하지는 않았다.
그저 머릿속 수술 시뮬레이션을 수십 번, 수백 번 돌려 봤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옛날 수련의 때가 생각났다.
그때의 진천희도 이랬다. 실패하는 게 두려웠고, 자기 자신을 믿을 수가 없어서 더 두려웠다.
가족이 없는 진천희에게 돌아갈 곳은 의국뿐이었다.
‘언제나 두 번은 없었지.’
유리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이 아래가 깨지면 그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나날들.
그걸 일로 채우려고 안간힘을 써 왔다.
어찌 보면 사람들이 날 필요로 해 줬으면 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감정을 진천희는 다시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