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192
01195 1195화
태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더니 나지막이 물었다.
“다들 자신 없다고 그러나?”
“네? 아니, 무, 무슨 말씀을……. 진짜 피치 못할 상황이라 양해를 좀 해 달라는 겁니다.”
“전화로 상황을 얘기했더니 다들 다른 곳으로 보내라고 했을 거고, 막상 보낼 곳이 마땅치 않으니까 다시 데려가라는 거 아니야.”
“…….”
“니들 진짜 질린다.”
태수가 한탄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김경식은 끝까지 대꾸하지 못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엄수찬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태수는 머리가 꽉 찼다.
자신이 직접 구두로 처치를 했기에 어떤 상황인지는 대강 짐작이 갔다.
태수는 빠르게 생각한 후 김경식에게 말했다.
“최대한 빨리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출발 전에 morphine(모르핀), cardiotonic(강심제)도 한 번 더 투여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거친 태수의 반응에 기분 나빠진 김경식의 목소리였지만 태수는 상관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상태 나빠지기 전에 빨리 움직여.”
“그럼.”
뚝.
김경식이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끊어 버리자 태수는 할 말이 없었다.
진짜 나쁘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저러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좌우간 통화를 마친 태수는 생각했다.
다시 보내 올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대동맥폐쇄부전증에 복막염.
이렇게 병을 키우기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발병했고, 이쪽으로 이송되어 오고 있다.
태수는 모두를 바라봤다. 모두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태수는 그들에게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드 엔젤…… 발령합니다.”
“젠장.”
“역시!”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휴대폰을 들었다.
비상 연락망을 통해 단체로 문자를 보냈다.
띠링띠링.
사방에서 울리는 메시지 소리만 들어도 자신을 제외한 모두에게 발송하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황경석이 재빨리 레지던트 숙소를 박차고 들어가 소리쳤다.
“코드 엔젤!”
그 소리와 동시였다.
우당탕!
“뭐?”
“뛰어! 악!”
눈도 제대로 못 뜬 레지던트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가운도 입지 못한 이들도 있었고, 양말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부스스한 얼굴이지만 모두 정신 차리려 애쓰는 모습들이다.
이 모습 하나로도 태수는 눈빛을 강하게 번뜩거렸다.
이 병원은 무조건 발전한다.
레지던트들의 적극성만 봐도 건성종합병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20분 후.
불과 20분이다.
그런데 화이트엔젤팀은 전원 모여 있었다.
오프를 나갔던 의료진조차도 모두 들어온 상태였다.
브레드 김, 도성민, 조현민 등등 의사들과 간호사들로 의국이 꽉 찼다.
멍한 표정은 누구에게서도 보이지 않았다.
눈빛이 반짝이다 못해 날카로워 찔릴 정도였다.
그런 그들의 시선만으로도 태수는 이 팀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졌다.
그 생각은 정말 잠깐이었다. 태수는 모두에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약 5분 전에 건성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이쪽으로 환자 한 명이 이송 길에 올랐습니다. 이름은 엄수찬, 나이…….”
환자의 기본적인 프로필을 시작으로 마지막 통화를 할 때 바이탈과 눈에 보이는 증세들까지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듣고 있던 의료진들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감염성 심내막염.
초기에는 약으로 다스릴 수 있었다.
그보다 조금 심하면 최근에 개발된 수술 방법으로 카테터를 이용해 농양만 걷어 내고, 약물치료를 병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이미 몇 시간 전 이야기다.
병이 얼마나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상만으로도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란 걸 모두가 직감했다.
그리고 복막염.
발생하면 치사율이 상당히 높은 증상 중 하나였다.
그나마 요즘에는 다양한 수술법과 치료법이 개발됐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으면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눈이 노랗게 변했다는 건 간 또한 좋지 않단 거다.
마지막으로 환자의 발작.
이건 신경외과 쪽에서 담당해야 할 일이었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에 모두 암담한 표정으로 변했다.
이내 브리핑을 마친 태수는 너무 좋지 않은 환자 상태를 듣고 어깨가 아래로 처진 의료진들에게 말했다.
“이번 수술,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저도 자신 없습니다.”
“…….”
“그래서 이번 수술은 지원자에 한해서 인원을 편성할까 합니다.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 주세요.”
태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여기저기서 대나무처럼 손들이 쑥쑥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본 태수의 등골에 짜르르 전기가 흘렀다.
바로 이 모습이다.
상대가 누구라도, 어떤 병이라도 물러서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
태수가 바라고 원하는 이상적인 광경이었다.
언제 어깨가 처졌냐는 듯 모두의 눈빛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태수는 감격을 억누르고 나지막이 말했다.
“모두 참가하시겠다는 겁니까?”
“네!”
의국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머리카락까지 쭈뼛 설 정도로 전율이 흘렀다.
그러나 태수는 더욱 냉정하게 말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고, 수술 성공률도 턱없이 낮습니다.”
“그래서요?”
도성민의 반항적인 외침에 태수가 진하게 미소 지었다.
“좋습니다. 우리 한번 이 수술에 미쳐 봅시다.”
“할 수 있다!”
모두 서로를 격려했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격려의 말들도 드높았다.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은 태수가 가볍게 발을 굴렀다.
쿵!
그 소리를 듣자 시끄럽던 의국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모두 다시 태수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태수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거를 건 걸러야죠. 음주하신 분은 열외.”
“…….”
술을 마신 의료진들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한쪽으로 옮겨 갔다.
어떤 상황에서도 술을 마신 의사가 수술실에 들어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몇 명이 옆으로 빠진 후, 태수는 이어서 말했다.
“지금 현재 근무자들 열외.”
“이게 더 중요한 거 아닙니까?”
성재경이 다소 강하게 묻자 태수는 덤덤하게 반문했다.
“모두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
“열외해 주세요.”
태수가 한 번 더 말하자 결국 성재경을 포함한 근무자들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 박성민이 가만히 있는 모습이 보이자 태수가 물었다.
“선배, 옆으로 가셔야죠.”
“내가 왜 니 말을 들어요? 나 고문이야. 팀장 말을 순순히 듣는 고문 있으면 나가서 찾아와 봐. 그럼 내가 옆으로 빠질게.”
“조금 전에 수술하셨습니다.”
“지금은 안 하고 있는데 뭐가 문젠데? 체력? 지금 내 손에 든 거 보고 말해.”
박성민은 양손에 샌드위치를 내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브레드 김이 말했다.
“내가 사 온 건데. 좌우간 캡틴이 뭐라고 해도 닥터 박은 필요해. 캡틴하고 닥터 박이 한 조를 이뤄서 들어가야 될 정도잖아.”
“음.”
“우리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환자 상황 보고 걱정해 줘. 그리고 캡틴, 언제 한두 번 수술했다고 수술실 출입을 제한시켰어? 이건 NGO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잖아.”
“여긴 NGO가 아니잖습니까?”
태수가 반박했지만 브레드 김은 고개를 저었다.
“시스템은 NGO 시스템이잖아. 조금 변형되고 발전시킨 시스템이지만. 그걸 만든 것도 캡틴이고.”
“…….”
“우리끼리 말싸움은 하지 말자고.”
브레드 김이 적당히 상황을 정리했다.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팀장의 권위?
그런 건 필요 없었다.
이들이 스스로 더 좋은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면 그 의견에 얼마든지 따라 줄 수 있었다.
태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남은 분들로 총 세 개 팀을 만들겠습니다.”
“왜 세 개야? 흉부하고 복부 아니야?”
“신경도 봐야 합니다. 발작까지 온 상태라면 뇌에 깨끗한 피가 장시간 공급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
태수의 말이 맞기에 다들 더 말하지 않았다.
태수는 열외에서 살아남은 의사들을 다시 확인하며 말했다.
“제1팀은 저와 박 선배가 들어갑니다. 도 선생이 제2어시스던트로 들어와 주고.”
“1팀은 이쪽으로 모여.”
일부가 부스럭거리자 태수는 이어서 말했다.
“2팀은 브레드 김과 성 선배가 들어갑니다.”
“2팀도 모여.”
그러고 난 후 태수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마지막 3팀은 민태경 선생님과 박인수 선생님이 같이 들어가셔서 신경과 정형 쪽을 모두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지.”
그렇게 수술팀 배정이 끝난 후였다. 다들 호명된 대로 모여 있었고, 그렇지 못한 레지던트들은 아쉬움을 삼키고 있었다.
태수는 그들에게 물었다.
“참여하고 싶나?”
“네!”
“1팀은 황경석, 정유현, 2팀은 이강목, 설국진, 3팀은 박모현, 차준식이 추가로 들어온다.”
“아자!”
호명을 받은 레지던트들과 그렇지 않은 레지던트들의 희비가 갈렸다.
태수는 기운이 쭉 빠진 레지던트들에게 말했다.
“기회는 언젠가 온다. 그때까지 스스로를 가다듬도록.”
“네.”
“그리고 수술 끝나는 순간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절대 끝까지 긴장 풀지 마라.”
태수의 말은 경고였지만, 레지던트들은 다르게 해석했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반드시 긴장하고 있겠습니다!”
“좋아. 그럼 가서 수술실부터 열어 놓고, 필요한 모든 걸 세팅해 놔.”
“갑니다!”
우르르.
레지던트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빠르게 수술실로 달렸다. 물론 그 뒤를 파트너가 된 간호사들이 뒤쫓았다.
태수가 1팀으로 돌아오자 박성민이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참 잘 다룬다. 아주 강아지 훈련시키는 재주가 일취월장하네.”
“저런 녀석들이 애완동물이면 지겨울 거 같은데요.”
“자식, 웃기기는. 그보다 이제 우리도 슬슬 수술 계획을 잡아야 하는데, 뭘 아는 게 있어야 잡지.”
박성민의 말에 태수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알아낼 방법이 없긴 합니다. 수술실에서 열어 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니까 무턱대고 수술실부터 들어가야 할 상황이라는 거 아니야?”
박성민의 난감한 표정을 보고 태수가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heart-lung machine(인공심폐기)는 무조건 필요하고, 상황에 따라 인공판막이나 기계판막으로 대체해야 할 겁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그리고 농양이 얼마나 커졌느냐에 따라서 수술 방법이 달라지겠고.”
“역시 여기서 이렇게 얘기하는 건 한계가 있네요.”
태수가 인정하자 박성민이 말했다.
“다행이라면 우리가 떠드는 사이 시간이 많이 지났어.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조용히 오고 있다는 거고.”
“준비해야겠죠?”
“그래야지. 빵 아저씨!”
박성민이 소리 높여 부르자 진지하게 팀원들과 대화하던 브레드 김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또 시작이네, 또! 그래서 왜 불러요?”
“우리는 먼저 들어가 있을 테니까 환자 도착하면 좀 올려 달라고.”
“그건 이미 얘기하고 있거든. 빨리 수술실로 가 버려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우리 사이에 왜 그래?”
박성민이 찡긋거리자 브레드 김이 거칠게 소리쳤다.
“모두 저런 의사는 절대 본받지 마. 국제사회에서도 절대 환영받지 못할 테니까.”
“크흐흠.”
“음음.”
이 심각한 상황에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분위기상 꾹 참는 팀원들의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느새 태수와 박성민, 그리고 수술 1팀으로 배정된 의료진들이 수술실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
“…….”
이 순간만큼은 박성민도 떠들지 않았다.
수술 전 마음을 다듬는 건 의사뿐만이 아니라 수술팀 간호사들에게도 꼭 필요한 절차인 탓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순간이었다.
그르륵.
수술실 문이 열리는 소리.
귀를 쫑긋한 모두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 순간 브레드 김을 선두로 스트레쳐카에 실린 엄수찬이 들어왔다.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먼저 울렸다.
“general anesthetic(전신마취제)!”
“뭐?”
모두의 시선이 스트레쳐카로 향했다.
“아으윽!”
심장을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엄수찬이 보였다. 상반신이 퍼렇게 변한 모습에 눈빛이 절로 흔들렸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태수가 바로 서영우에게 소리쳤다.
“바로 general anesthetic(전신마취제) 투여해 주세요!”
“여기 anesthesia machine(전신마취기) 좀 옮겨 줘!”
“heart-lung machine(인공심폐기) 바로 가동되죠?”
“준비됐습니다!”
인공심폐기 기사 또한 목소리가 크고 거칠었다. 그만큼 응급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