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193
01196 1196화
태수는 다음으로 수술 준비를 마친 황경석과 정유현에게 말했다.
“황 선생,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 준비.”
“네!”
“정 선생은 osteotome(뼈 절단기) 들고 있어.”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답하자 태수가 박성민을 바라봤다.
“선배!”
“보비하고 썩션 들고 있어.”
“김 간호사.”
“메스 준비 완료.”
역시 척하면 척이었다.
“도 선생.”
“디버하고 센리트렉터 들고 있어!”
도성민까지도 확실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마취 후 이제 수술만 진행하면 된다. 하지만 모든 응급처치를 보던 태수는 긴장된 표정을 절대 풀지 않았다.
“환자가 마취 후 수술대에 오른 순간부터 최대한 빨리 인공심폐기부터 연결합니다. 모두 긴장하십시오.”
태수의 입에서 긴장하라는 말이 나오다니.
이런 경우는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많이 겪어 본 김혁권과 박성민, 송현미 간호사는 느긋할 정도로 여유롭게 목을 돌렸다.
두둑두둑.
물론 겉으로만 여유로울 뿐이었다. 단 한순간도 환자를 향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두 준비하는 사이 스트레쳐카 쪽도 부산했다.
서영우는 제일 먼저 처치에 나섰다.
곧 고통에 신음하던 환자가 정신을 놓고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서영우가 행동에 나섰다.
“전신마취 시작. 셋…… 둘, 하나. 마취됐어.”
서영우의 말에 절로 다급해진 레지던트들이 서둘렀다.
“옮길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영우가 버럭 소리쳤다.
“야, 이 정신 빠진 인간아! 이대로 수술대로 올린다고? muscle relaxant(근이완제) 투여는? 그리고 옷은?”
“…….”
“너만 급한 거 아니다. 옷부터 찢어.”
“알겠습니다.”
찔끔한 레지던트들이 가위를 잡아 양복 상하의를 말 그대로 찢어 버렸다.
찌익.
엄수찬의 맨살이 드러나자 ECG(심전도 모니터) 패드를 부착하고 손가락에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설치하는 일들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사이 서영우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근이완제를 투여했다.
삑삑삑!
ECG 소리가 따갑게 울리며 심장이 상당히 좋지 않단 걸 다시 한 번 알렸다.
다들 알고 있지만 그 소리가 더욱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돌아가는 상황을 본 서영우가 지시를 내렸다.
“됐어! 옮겨!”
“다들 잡아!”
팔다리, 허리, 목 가릴 것 없이 레지던트들과 남자 간호사들 손이 환자를 받쳤다.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최악 중에 최악으로 접어들기에 다들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둘…… 셋!”
“끄응.”
환자를 들자 빈 스트레쳐카가 빠지고, 조심스럽게 수술대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빠져.”
“바로 그대로 나가!”
우르르.
모두가 수술실을 나가는 사이 태수를 비롯한 수술팀원들이 재빨리 수술대에 모여들었다.
태수는 메스를 든 채 서영우를 불렀다.
“서 선생님!”
“잠깐…… 아직, 아직 아니야.”
서영우는 초조한 얼굴로 수술실 벽에 걸린 전자시계를 쳐다봤다.
근이완제가 전신의 근육을 부드럽게 만들 때까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탓이다.
하지만 그렇게 지체되는 수십 초 사이에도 ECG(심전도 모니터) 소리가 더욱 따갑게 변했다.
삑비비삑!
맥박의 변화로 소리가 엉망이었다.
그만큼 환자 심장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가 없었다.
환자의 목숨에 한계가 찾아올 것 같은 직감에 태수는 서영우에게 빠르게 말했다.
“일단 들어갑니다.”
“……젠장. 들어가. 시작하라고!”
서영우도 더 기다릴 수 없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 근이완제가 덜 퍼졌을 터였다. 하지만 그 몇 분을 더 기다리는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일부러 심정지를 방관할 의사는 아무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산소 공급 때문이었다. 인공심폐기가 연결되지 않은 이상 심정지 후에는 뇌의 산소가 점점 부족해질 터였다.
그렇다고 골든타임인 5분 이내에 흉부를 열고 인공심폐기를 연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들 이토록 급한 건 그 때문이기도 했다.
서영우의 오더가 끝나기도 전, 태수가 쥔 메스는 이미 환자의 흉부를 가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짙게 떠올랐다.
서서히 흉부가 갈라지기 시작하자 박성민이 낮고 빠르게 외쳤다.
“도끼!”
“갑니다!”
흉부가 갈라짐과 동시에 박성민과 도성민이 나란히 1차로 나섰다.
치직, 콰륵!
보비로 출혈점을 지지고, 썩션으로 출혈을 걷어 냈다.
그사이 도성민은 리트렉터들을 이용해, 박성민이 출혈을 찾고 또 지혈할 수 있도록 사력을 다했다.
평소의 장난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신속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덩치답지 않게 꼼꼼한 도성민도 지금은 속도가 우선이었다.
그렇게 출혈을 걷어 내고 두 사람이 빠지자 그다음으로 황경석이 달려들었다.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를 흉부에 설치해 갈라진 살을 좌우로 벌리며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게 했다.
뒤를 이어 정유현이 재빨리 뼈 절단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뚝! 뚝!
억센 갈비뼈를 잘라야 하는 일이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한계를 모르는 것처럼 순차적으로 끊어 갔다.
그사이 서영우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osmotic diuretic(삼투압 이뇨제. 강심제와 이뇨제 작용을 동시에 발휘하는 약), potassium(칼륨) 올려서 신체 반응을 더 낮추고.”
“네!”
노지연 간호사도 이젠 이런 상황에 많이 익숙해졌는지 허둥거리지 않고 침착하지만 신속하게 움직였다.
태수와 박성민, 도성민은 이미 인공심폐기와 연결된 인공혈관들을 들고 있었다.
삑삑삑!
짙어지는 ECG의 소리는 상황이 다급해지는 걸 알려 왔다.
하지만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진행 중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그 약간의 시간이 정말 억겁처럼 길게 느껴졌지만 냉정을 잃진 않았다.
허둥거리는 순간 실수가 생기고, 그 대가는 환자가 목숨으로 지불해야 한다.
의사란 직업이 가진 본질적인 고독이다.
살리기 위해서 참아야 할 순간이다.
그걸 알기에 정말 미치도록 급한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그와 다르게 얼굴 곳곳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태수가 한 번 더 인공심폐기 기사에게 확인했다.
“heart-lung machine(인공심폐기)는 문제없죠?”
“없습니다.”
인공심폐기 기사조차 이 다급한 순간에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기계를 다루는 입장인데도 손이 계속 축축해지는지 땀을 식히려 가끔 흔드는 모습도 보였다.
잠깐 시간이 지나자 황경석과 정유현이 잘라 낸 갈비뼈를 들고 뒤로 빠졌다.
“됐습니다!”
“선배, 성민아!”
태수는 이름만 부른 채 다시 수술대로 달려들었다. 이미 들고 있던 인공혈관은 대동맥 기능을 대신할 수단이다.
곧장 박성민과 도성민도 인공혈관을 들고 다가왔다.
그 뒤를 이어 김혁권과 송현미 간호사까지 모두가 다시 수술대에 모여들었다.
해야 할 일이 분명하기에 아무런 지시도 필요하지 않았다. 본능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손을 움직일 뿐이었다.
삑삑삑!
ECG의 소리는 점점 더 빨라졌다.
저 소리가 길게 이어지면 심정지 상황이다.
정말 지금은 그 직전까지 왔다.
혀가 마르고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다급하지만, 정말 다급하지만 인공혈관들을 연결하기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았다는 게 문제였다.
이럴 때는 특히 부정맥을 조심해야 한다.
태수가 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서영우에게 말했다.
“arrhythmia(부정맥)에 대비해야 합니다.”
“간신히 버티고 있잖아.”
“어서!”
낮게 외친 태수의 눈빛이 서영우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마주한 서영우는 순간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총을 이마에 겨눈 느낌.
그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았다.
눈빛만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느낌이었다.
서영우의 생각은 길지 않았다. 지체했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단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이었다.
서영우는 질린 얼굴로 빠르게 노지연 간호사에게 말했다.
“antiarrhythmic(항부정맥제) 준비해 줘요. 종류는…….”
서영우의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려 왔다.
가까이서 대화하는 노지연 간호사만이 그걸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도 그렇게 카랑카랑한 태수의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슬리퍼가 바닥에 쩍 달라붙은 듯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체할 순 없는 일이었기에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태수의 주변에서 리트렉터를 들고 보조하던 황경석과 정유현도 마찬가지였다.
리트렉트를 움켜쥔 채 수술대에서 한 걸음 떨어져, 태수를 비롯한 팀원들의 손놀림을 방해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태수의 그 싸늘한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들은 건 그 두 사람이다.
황경석과 정유현은 최대한 침착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바로 태수의 질책이 날아왔다.
“똑바로 못 당겨?”
“죄, 죄송합니다!”
두 사람이 리트렉터를 고쳐 쥐며 손끝을 억지로 안정시켰다.
태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계속 대동맥과 인공혈관을 연결할 뿐이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ECG의 소리도 여전히 따갑게 귀를 울리고 있었다.
계속된 서영우의 필사적인 응급처치로 간신히 맥박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 태수와 박성민, 도성민의 손은 단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들을 보조하는 김혁권과 송현미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태수가 두 손을 번쩍 들며 낮게 외쳤다.
“aorta(대동맥) 연결 끝!”
“잠깐만…… 잠깐이면 돼……. 여기도 끝!”
박성민도 얼른 두 손을 들며 한 발 뒤로 빠졌다.
남은 건 도성민이 담당하는 부분이었다.
어느새 그의 머리를 감싼 헤어캡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 또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지만 아직 그에 따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은 도성민이 아니라 태수에게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불같이 소리칠 것 같은 아찔함 때문이었다.
모두의 생각과 달리 태수는 다른 말을 꺼냈다.
“혁권 씨, 메스.”
“오케이.”
김혁권은 그 소리에 바로 의료 카트로 몸을 돌렸다. 한 번 사용한 메스의 날을 버리고 새로운 메스 날을 준비하는 중이다.
반면, 다들 태수를 향한 긴장을 놓지 않았다.
도성민 또한 마찬가지였다.
긴장감까지 더해져 더욱 땀이 많이 쏟아졌다. 스스로에 대한 갑갑함까지 더해졌는지 인상도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때 박성민이 도성민에게 말했다.
“야, 인마, 절대 쫓기지 마.”
“…….”
“니 친구, 아니 팀장은 네가 할 수 있다고 믿고 기다리고 있는데, 니가 안달나면 어쩌잔 거야.”
“저 때문에 늦어지잖아요!”
도성민은 계속 인공혈관 연결을 이어 가면서도 늦어지는 자신이 갑갑했는지 결국 버럭 소리쳤다.
대선배에겐 절대 할 수 없는 건방진 말투였지만 박성민은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그럼 어서 해.”
“하고 있습니다. 거의…… 거의…… 조금만 더.”
안달하는 목소리가 절규에 가까웠다. 그래도 태수는 단 한순간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기다렸다.
거의 마무리가 되고 있단 걸 눈으로 보고 있기에 안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초나 더 지났을까.
삐비비빅!
ECG(심전도 모니터) 소리가 더욱 격하게 변했다. 이미 항부정맥제를 투여했는데도 이젠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면 심장이 멈출 상황.
도성민은?
초조함이 한계까지 달했는지 손끝이 무뎌졌다.
그 순간 태수가 따끔하게 말했다.
“환자 죽일 거야?”
“…….”
자극적인 얘기에 도성민의 눈빛이 더욱 흔들렸다.
마스크와 헤어캡을 착용해 눈밖에 보이지 않으니 무슨 표정을 짓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무뎌지던 손길이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됐다!”
도성민이 마지막으로 두 손을 든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