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613
01616 1616화
놀랐을 심장을 달랜단 느낌으로 압박하던 중이었다.
황지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CPR 스톱! 그대로 대기. 다들 대기해요. 아직은 긴장 풀지 말고.”
“…….”
모두 숨소리까지 억누르며 ECG에 집중했다.
황지혁은 몇 가지 약을 더 투여한 후 지켜보다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태수에게 말했다.
“일단 안정됐어.”
“바로 개흉해도 됩니까?”
“……솔직하게 얘기할까?”
“아니요.”
태수가 딱 잘라 말하자 황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최 팀장 판단에 맡길게.”
“개흉부터 개복까지 한 번에 갑니다.”
“한 번에?”
모두 그 소리에 놀랐다.
보통 개흉이나 개복, 둘 중에 하나만 진행한다.
그러나 태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한 번에 갑니다.”
“……그럼 가야지. 준비는 됐으니까 바로 진행합시다.”
모두 이해가 빨랐다.
심정지까지 일어난 아이를 앞에 두고 설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태수가 가진 수술에 대한 직관력을 믿었다.
태수가 해야 한다면 해야 하는 거다.
때문에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개흉과 개복은 빠르게 진행됐다.
한송이의 몸이 작아서 가슴과 배까지 한 번에 절개한 후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로 넓게 벌렸다.
태수를 포함한 모두는 심장부터 확인했다.
확인과 동시에 다들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심근이 부분 괴사해 양쪽 심실 모두 상당히 수축되어 있었다. 심방과 연결된 혈관들의 모습도 썩 온전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정민수가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뛰는 게 기적이라고 해야 하나?”
“이건 여기서 수술 못해.”
“그럼 어떻게 하자고? 이제 와서 다시 닫아?”
정민수가 묻자 태수가 고개를 젓더니 송현미 간호사에게 물었다.
“인공혈관 있죠?”
“잠시만요……. 좀 있어요.”
“준비해 주세요. 민수야, 대동맥, 폐동맥, 상대정맥, 폐정맥 모두 우회혈관을 만들어서 기존 혈관의 부담부터 줄이자.”
태수의 말에 정민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만……. 그러니까 아예 심장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혈관을 하나씩 더 연결하자는 거 아니야.”
“그렇지.”
“어쩌면 그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심장을 멈출 순 없는 노릇이니까.”
“부담도 줄어들고.”
태수가 덧붙여 말하자 정민수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했다.
“괴사한 조직은?”
“정규 수술로 미룰 거야.”
“더 얘기하지 말고 일단 심장 우회혈관들부터 만들자.”
정민수의 빠른 결정에 태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되면 바로 진행합니다.”
“네!”
태수의 말에 모두 크게 대답하고 빠르게 필요한 걸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태수는 개방된 복부를 흘깃 쳐다봤다. 심장도 문제지만, 역시 위하고 간에 상당히 문제가 많았다.
심장부터 빨리 해결하고 복부로 넘어가야 했다.
태수의 마음이 점점 바빠졌다.
치분하고 싶었지만 잠시라도 마음을 놓는다면 죽음이 이 아이를 삼킬 상황이었다.
이 순간에는 침착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민수야, 겁나게 달려 보자.”
“닥치고 가.”
“시작합니다.”
태수의 선언과 동시에 죽음으로부터 좀 더 아이를 떨어뜨려 놓을 수술이 바로 시작됐다.
수술은 다급하게 진행됐다.
척척.
좌우에 선 태수와 정민수의 손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언제 다시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상황이라 긴장감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가는 목소리도 곱지 못했다.
“정민수, 이 새꺄!”
“잡았다고. 뭐 해? 그쪽 당겨!”
“끄응.”
“야야! 야, 이 새꺄, 힘 빼. 너무 조이고 있잖아!”
목소리만큼 서로를 향한 눈빛도 날카로웠다.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살벌했다.
그런 두 사람만큼이나 김혁권과 송현미 간호사의 대화도 날이 서 있었다.
“현미야, 거기, 거기!”
“봤다고요. 뭐 해요? 얼른 거즈!”
“가고 있잖아. 썩션!”
“손, 손, 손부터 치워요!”
부부싸움 직후에 수술실에 들어온 것같이 으르렁거렸다.
황지혁은 그런 네 사람을 쳐다보며 섬뜩함을 느꼈다.
“장난 아닌데.”
“황 선생님, 칼륨 추가!”
“알았어, 알았다고. 빨리 준비해 줘요.”
황지혁은 태수의 날카로운 눈빛에 흠칫 놀라며 응급처치를 이어 갔다.
그러는 사이 태수가 황지혁에게 이어서 말했다.
“빈맥, 혹은 부정맥이 올 거 같으면 바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나도 알아.”
“한 번 더 멈추면 진짜 끝입니다. 민수야, 대동맥 쪽으로!”
태수가 소리치자 정민수의 손이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여기, 이렇게.”
“좋아. 계속 갑니다.”
태수와 정민수가 이어서 수술을 진행했다.
황지혁은 ECG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눈빛을 굳혔다.
“미치겠네. 수혈팩 좀 더 열고, 강심제 하나 더 추가해 줘요.”
오더를 이어 가고 있지만 너무 위험한 수술이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얇은 실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주 조금, 그리고 약간의 실수가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도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과 송현미 간호사는 절대 손을 멈추지 않았다. 망설임조차 없이 과감하게 수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황지혁은 이런 상황에서도 수술을 이어 가는 저들을 끝없이 놀란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수술이 이어졌다.
이제 네 군데 혈관 중 두 군데에 보조혈관을 만들었다.
쉴 틈도 없이 세 번째 혈관으로 넘어가던 찰나였다.
황지혁의 목소리가 귀를 따갑게 울렸다.
“arrhythmia(부정맥)!”
심장이 불규칙하게 움직인단 뜻이다.
그 소리와 동시에 태수와 정민수도 눈으로 확인했다.
쿵덕, 쿵덕.
이렇게 뛰어야 할 심장이,
구구궁.
이런 느낌으로 뛰기 시작했다.
“손 떼!”
태수가 소리치자 정민수를 비롯한 김혁권과 송현미 간호사가 썰물처럼 손길을 거뒀다.
반면, 태수는 그들과 반대로 심장을 손으로 크게 감쌌다. 혈관을 압박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심장을 넓게 펼쳐 잡은 모습이었다.
태수는 심장의 움직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빠르게 쥐었다.
하나, 둘, 하나, 둘.
속으로 박자를 맞추며 엇나간 심장의 리듬을 억지로 돌리려 노력했다.
그건 태수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었다.
태수가 심장에 전력을 쏟는 순간이기에 정민수가 나섰다.
“송 간호사님, 제세동기 20줄, 직접 자극할 수 있게 세팅해 주시고요.”
“알았어요.”
송현미 간호사가 돌아서자 정민수는 이어서 김혁권에게 오더를 내렸다.
“심부 온도가 조금 내려가 있습니다. 웜 셀라인(따듯한 식염수).”
“바로 준비합니다.”
우당탕.
김혁권은 재빨리 수술대 아래로 몸을 굽혔다.
주변이 북적한 사이에도 태수는 꾸준히 심장을 규칙적으로 압박했다.
심장을 쥘 때마다 이질적인 박동이 계속됐다.
완벽해야 할 하모니에 쉰 목소리가 끼어든 느낌과 같았다. 그리고 심장의 불규칙적인 움직임이 점점 약해져 갔다.
그 느낌들이 태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비가 죽던 그날 밤, 술에 찌들어 잠든 자신이었다.
그때 스스로 말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살릴 순 없다. 하지만 품 안에 있는 사람, 자신과 인연이 닿았던 사람은 살리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피하고 싶었던 그 순간이 바람처럼 다시 곁에 왔다.
지금 이 상황이 태수의 가슴을 꽉 죄어 왔다.
“좀, 좀!”
목소리가 갑갑하게 터져 나왔다.
그날의 기억을 털어 내고 싶었다.
가슴속 응어리를 이젠 풀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태수의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초조함이 더해 가던 중이었다.
“비켜!”
정민수의 외침에 번뜩 정신이 든 태수가 손을 뗐다.
그 틈으로 제세동기가 다가와 심장 좌우에 멈추고, 정민수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샷!”
치직!
미약한 전기 충격에 심장이 한 차례 파르르 떨었다.
그 뒤를 이어 곧바로 황지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직!”
“송 간호사님!”
“충전 중이에요!”
“태수야!”
정민수가 소리치며 제세동기를 뗐다.
태수는 얼른 다시 심장을 손으로 쥐고 압박했다.
그런 태수의 손등에 약간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의 식염수가 부어졌다.
이어서 김혁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굳어 있어?”
“…….”
“그때의 우리가 아니잖아.”
그 소리에 태수는 힐끔 김혁권을 쳐다봤다.
“그때의 우리가 아니라고요?”
“경험도, 이런 시설도…… 그리고 이런 사람들도 없었다고. 혈청조차 부족했던 이잠바크가 아니란 말이야.”
“…….”
“털어 내자며. 반복하지 말자며.”
김혁권은 태수에게 용기를 줬다.
정작 그렇게 말하는 김혁권의 손끝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심장에 쏟아지는 식염수 줄기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건 태수를 향한 확신이었다.
그런 그의 눈빛을 보고야 태수도 마음을 달리 먹었다.
과거는 머릿속에 있을 뿐이다.
돌이킬 수 없어 항상 같은 상황만 반복되는 게 기억이었다.
이 상황은 현재다.
사비란 마음의 짐을 안고 있으면 같은 상황만 반복될 뿐이다.
태수는 가라앉은 마음을 굳혔다.
진정 사비를 위하는 일이라면?
현재만을 보며, 미래를 향해 단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야 한다.
위기는?
기회.
태수의 복잡하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와 동시였다.
“태수야!”
정민수의 목소리에 태수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몇 줄?”
“20!”
“10줄 더 올려.”
“너무 강……. 아니다. 송 간호사님!”
정민수가 목소리를 높이자 송현미 간호사가 바로 반응했다.
그녀가 설정을 바꾸는 사이 태수는 황지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황 선생님, 투약을 좀 더 강하게!”
“괜찮을까?”
“됩니다. 되게 할 겁니다.”
태수의 단호한 목소리에 황지혁은 보조 간호사에게 오더를 내렸다.
“승압제, 혈관 확장제 추가.”
“기관지 확장제도요!”
“그것도 추가하고, 글루콘산 칼슘(calcium gluconate), IV에 중탄산나트륨, 인슐린도 하나 달아 줘요.”
투약 종류를 늘린 황지혁은 슬쩍 태수 눈치를 봤다. 허락을 받았다지만 너무 갑자기 투약 종류를 늘리면 환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태수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투약이 하나씩 진행될 때마다 심장을 쥐는 강도와 빠르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심장을 쥐고 느낀 태수만이 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어느새 정민수가 다시 제세동기를 들고 다가왔다.
“30줄이야. 바로 샷?”
“잠시 대기.”
그렇게 말하며 태수의 시선이 ECG로 향했다.
삐비빅, 삐비빅.
ECG 소리는 계속 응급 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태수의 시선은 맥박의 움직임을 표시해 주는 그래프에 고정되어 있었다.
부정맥인 만큼 그래프 파형이 고르지 않았다. 대책이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들쭉날쭉한 파형이었다.
태수는 심장을 압박하는 걸 멈추지 않은 채 파형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분석했다.
다양한 투약 효과가 나타나는지 파형이 미묘하게 변하는 중이었다.
태수는 계속 파형을 관찰하며 말했다.
“김 간호사님, 수혈량을 좀 더 늘려 주세요. 황 선생님은 마취 강도를 좀 더 올려 주시고요.”
“그럽시다.”
“마취 강도 올릴게.”
김혁권과 황지혁의 목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그사이에도 태수는 눈 한 번 끔뻑하지 않고 파형을 관찰했다.
두근, 두근, 두근.
태수는 자신의 심장박동에 맞춰 손을 쥐었다가 펴는 걸 반복했다. 이리저리 날뛰는 심장을 억누르는 행동이기도 했다.
몇 번 더 심장을 쥐던 태수는 손끝에 미묘하게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태수가 빠르게 말했다.
“민수야, 준비.”
“하고 있어.”
“바로 간다. 둘, 하나. 지금!”
태수가 말함과 동시에 손을 떼자 정민수가 재빨리 제세동기로 충격을 줬다.
“샷!”
치직.
전기 충격에 심장이 파르르 떨었다.
그러나 심장의 불규칙적인 움직임에 변화가 없었다.
바로 이어서 태수가 다시 심장을 압박해야 했다.
그게 정석이었지만 태수는 심장을 그냥 지켜봤다.
정민수가 움찔하는 사이 심장을 바라보던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30줄 한 번 더.”
“충전됐어.”
“바로 샷.”
“바로?”
정민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지만 두 손은 이미 제세동기를 심장에 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