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078
02081 2081화
“누가 들으면 제가 나타나는 곳마다 사고가 터지는 줄 알겠습니다.”
“어.”
“선배.”
“지금까지 네 전적이 얼마나 화려한지 모르는 것이냐? 너만 나타나면 뭔가 문제가 터진다니까.”
박성민이 더욱 두리번거리자 태수가 울컥했다.
“한 번도 제가 문제 일으킨 적 없습니다.”
“어디서 그런 거짓부렁을. 네가 공주로 돌아오고 얼마 안 돼서 대형사고 터졌지, 대전으로 가자마자 또 연속 추돌 사고 터졌지.”
“…….”
“화이트엔젤 만들고 나서 동부간선도로 사고 터졌지, 응급의료대는 네가 사고를 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지.”
“네, 좋습니다. 그건 다 제가 원인이라고 치고요. 그럼 이번 청화대교 사고는요?”
태수가 회심의 질문을 건네자 박성민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가 충선대에서 시끄럽게 지내니까 다리가 무너진 거야.”
“……제가 그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내 말은 곧 진리인 법.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암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어. 그걸 빨리 찾아야 해.”
박성민이 계속 오버하자 태수가 뚱한 얼굴로 바라봤다.
“지금 스트레스 엄청 받으셨죠?”
“뭔 소리야? 지금 나, 박성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즐거운 남자라고.”
“인사 몇 번 하셨습니까?”
“…….”
“하객들이 대충 500명은 넘는 거 같던데.”
태수가 콕콕 짚어 대던 중이었다.
박성민이 갑자기 바짝 다가와 울상을 지었다.
“나 미치겠다. 축하해 주는 건 고맙다고. 너무 고마운데, 그냥 대충 인사만 하고 가면 안 되냐?”
“왜요?”
“뭘 그렇게 나한테 할 말이 많은지. 악수는 또 왜 죄다 하자는 거야? 나 지금 손이 아파. 주먹이 안 쥐어진다고.”
“그래서 저한테 짜증내시는 겁니까?”
태수가 미간을 좁히며 묻자 박성민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가 제일 만만하니까.”
“네. 그러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곧 예식입니다.”
“나 지금 허리도 끊어질 거 같아. 인사를 하도 해서 허리하고 무릎하고 미치겠다고.”
“진통제라도 가져올까요?”
태수가 묻자 박성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통제 말고, 하나만 대답해 줘.”
“뭡니까?”
“봉투에 얼마나 넣었어?”
“네?”
“빨리 대답해 봐. 네 성의에 따라 내 몸 컨디션이 달라질 거 같으니까.”
박성민은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태수는 그제야 상대가 박성민이라는 걸 다시 일깨웠다.
스윽.
가까이 다가간 태수가 가볍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와 동시였다.
박성민의 얼굴에 힘이 가득 들어가더니 목소리가 커졌다.
“아이고, 내가 제일 아끼고 또 사랑하고 또……. 좌우간 우리 태수, 이 형님 결혼식에 와 줘서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
“…….”
“니가 딱 오니까 여기 이벤트 홀이 막 반짝반짝거리고 완전 그냥 난리 났네. 자식, 대견한 자식. 들어가서 아니, 아니지, 장인어른께 인사드리고 들어가.”
“네. 형님, 축하드립니다.”
태수는 순식간에 변화한 박성민의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식이란 단어는 절대 박성민에게 통용되지 않았다.
이내 돌아선 태수는 엄수찬 차관에게 다가갔다.
품이 넉넉한 팔을 든 그가 태수의 양쪽 어깨를 가볍게 잡으며 말했다.
“오, 최 팀장, 아까 도착한 거 같은데 이제 오나?”
“형수님도 뵙고, 인사할 분들도 있어서요. 그런데 차관님, 진짜 한복 잘 어울리십니다.”
“사돈어른하고 좀 고심했지. 요즘 한복 입을 날이 줄어서 우리는 입어 보면 어떨까 했고.”
“진짜 이번 결혼식에서 최고의 한 수라고 생각됩니다.”
태수 말에 엄수찬 차관이 빙그레 웃었다.
“최 팀장도 맨날 가운 차림만 보다가 이렇게 양복 입은 모습을 보니까 아주 멋있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머님들은 어디 가셨습니까?”
태수가 인사하려 둘러보며 묻자 엄수찬 차관이 말했다.
“화촉 준비해야 한다고 데려가던데. 진짜 곧 식이 시작될 모양이야.”
“막상 시작할 때가 다가오니 시원섭섭하시죠?”
“내 딸? 언제 내놨는지 기억도 안 나. 약혼한 지가 언젠데. 그때부터 이미 다 한 가족이었다고.”
“그건 또 그러네요.”
“지금은 인사하고 뭐 하고 하느라 정신없어. 사실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야.”
“하하하.”
태수가 웃자 엄수찬 차관이 재차 입을 열었다.
“웃기는. 안에 장관님 계시니까 인사도 좀 하고. 김 국장이 옆에 있으니까 알아서 소개해 줄 거야.”
“아닙니다. 나중에 얼굴 뵐 일 있으면 그때 뵈면 되죠.”
“오늘이 그 얼굴 볼 때야.”
“오늘 주인공은 선배님하고 형수님이잖습니까. 다음에요.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태수는 밝게 인사하고 엄수찬 차관에게서 멀어졌다.
결혼식이 진행될 이벤트 홀로 들어가니 뭔가 달랐다.
가운데에 신랑, 신부가 걸어갈 버진로드가 레드 카펫이 깔린 채 준비되어 있었다.
그 길을 기점으로 좌우에 4인용 원형 테이블들이 넓게 퍼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와인과 샴페인이 준비되어 있고, 개개인마다 코스 요리가 제공되고 있었다.
최고급 호텔의 결혼식은 뭔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었다.
프랑스 세미나에서 한 번 경험해 봤기에 태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천천히 둘러보며 앉을 테이블부터 물색했다.
저 멀리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그 테이블 옆에 김석준 국장이 서 있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그 모습으로 추측컨대 보건복지부 장관이 그 테이블에 자리한 모양이었다.
그쪽으로 다가가는 이기준의 모습도 시야에 잡혔다.
‘자식, 잘하고 있네.’
만족한 태수는 그쪽을 등지고 돌아섰다.
지금 찾아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굳이 인사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태수가 다른 테이블을 둘러보던 사이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누구십니까? 최태수 팀장님 아니십니까?”
또 태수를 알아보는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이젠 어색하지 않은 인사용 미소를 지은 태수가 그 상대를 향해 인사하다 묘한 표정으로 변했다.
“안녕하…… 십니까.”
“전 상당히 반가운데, 최태수 팀장님은 반갑지 않으신가 봅니다.”
반백의 머리에 푸근한 미소를 뿌리고 있는 그는 다름 아닌 차경석 연성대학 병원장이었다. 그 옆에 이추명 부원장도 함께였다.
인턴 시절 태수가 차경석 병원장을 따로 만난 적은 없었다.
그저 지나치며 얼굴을 봤을 뿐, 그조차도 오래되어 선명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병원장임을 확신한 건 역시 이추명 부원장이 함께였기 때문이다.
태수는 차경석 병원장의 부드러운 미소를 마주한 순간 뒤통수가 서늘했다.
첫 대면인데도 이유 없이 위험한 느낌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걸 표현할 정도로 어수룩하진 않았다.
다시 제대로 미소를 지은 태수가 차경석 병원장에게 말했다.
“반갑지 않은 게 아니라 처음 봬서 좀 놀랐습니다.”
“그러네요. 이렇게 얼굴을 마주한 기억이 저도 없네요. 그래도 요즘 TV로 자주 봬서 그런지 반가운 마음이 먼저라 이렇게 다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원장님이 되셨다고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태수가 이추명 부원장에게 인사말을 건네고 가볍게 고개 숙였다.
이추명 부원장도 녹록하지 않은 상대였기에 태연한 얼굴로 마주 인사했다.
“고마워. 오랜만에 최 팀장을 이런 자리에서 만나네.”
“진짜 오랜만이네요. 제가 마지막으로 연성에 갔을 때가 제임스와 함께였는데요.”
“그렇지. 그랬던 거 같아. 그런데 나보다는 병원장님과 대화하는 게 어떨까?”
이추명 부원장이 자연스럽게 권했다.
태수의 시선도 다시 차경석 병원장에게 돌아왔다. 차경석 병원장은 여전히 미소 띤 표정으로 말했다.
“반가운 분들 사이에 불청객이 되었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참 죄송합니다.”
“음음,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전 최태수 팀장님이 하시는 일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차경석 병원장의 권유에 태수가 빙긋 미소 지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그동안 연성에서 제가 하는 일을 안 좋게 보신다고 오해했지 뭡니까.”
“사람이 얼굴을 보지 않고 남의 얘기만 들으면 오해라는 게 생기죠. 그리고 제가 정말 안 좋게 봤다면 이기준 선생을 응급의료대로 보내지도 않았겠죠.”
“아, 그러네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태수가 대충 장단을 맞춰 주자 차경석 병원장이 더욱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서로 간의 소통이 없어 발생한 오해들인 거죠. 지금 이렇게 얼굴 보고 얘기하니까 다 풀렸잖습니까.”
“그렇겠죠?”
“그래요. 앞으로도 대화라는 좋은 매개체를 통해서 오해보다 이해가 많은 사이가 되고 싶습니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또 말씀 듣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자리가 자리인지라…….”
태수가 말꼬리를 늘이자 차경석 병원장이 푸근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박성민 팀장의 결혼식인데 그 외의 얘기들이 중심이 되면 곤란하죠.”
“이해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태수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서자마자 미소 띤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장난 아닌데?’
태수가 손을 내려다봤다.
식은땀이 약간 맺혀 있었다.
그의 미소 속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이 엄청났다. 다시 볼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가급적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때였다.
“뭐 하는데 아직도 돌아다니나? 이리 와.”
구수한 목소리가 들려 바라보자 황석찬이 멀리서 손짓하고 있었다.
태수는 생각을 접고 얼른 그쪽으로 향했다.
같은 시각.
태수와 반대로 돌아선 차경석 병원장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흘렀다.
“최태수라. 생각보다 재밌고 강단도 있는 의사네요.”
“흠흠, 예전부터 그렇게 예의 바른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이추명 부원장의 말에 차경석 병원장이 잠깐 미간을 좁히다 다시 미소 지었다.
“아아, 예전에 인턴 하면서 문제 일으켰다던 그 친구.”
“한참 지난 일이지만 맞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 번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또 같은 문제를 반복하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추명 부원장이 몸을 낮췄다. 그 순간 차경석 병원장이 알듯말듯한 미소를 보이며 한마디했다.
“하지만 글쎄요. 트러블이 있을 걸 알면서도 품어야 할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때로는 말이죠.”
“…….”
“가시죠. 오늘은 결혼을 축하하러 온 거니까요.”
차경석 병원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미 보건복지부 장관과는 인사를 나눴는지 그 외에는 별로 관심 없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연성대학 병원장이란 직함답게 다른 의사들이 다가와 그에게 인사를 하고 친분을 다지려 했다.
그사이 태수는 황석찬 회장이 자리한 테이블에 도착했다.
4인 테이블에 황석찬 회장, 정용철 이사장, 석재봉 병원장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때 황석찬 회장이 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앉지 않고 장승처럼 서 있나?”
“여기 한 자리는 석 회장님 자리 아닙니까?”
“주례할 사람이 여기 앉겠어? 저기 저쪽에 있잖아.”
그의 말에 따라 시선을 돌려 보니 석정현 회장은 단상과 가까운 자리에 따로 앉아 있었다.
그 테이블에 박성민의 큰형 박성철이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석정현 회장의 안내와 말벗을 위해 전담 배치된 모양이다.
박성철도 박종석 병원장과 같은 성격이라 유쾌했다.
석정현 회장이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짓는 걸 보니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태수는 그걸 확인한 후에야 빈자리에 앉았다.
가만히 보던 황석찬 회장이 태수에게 말했다.
“듣자 하니 며칠 내로 스미스에게 간다고.”
“네. 매년 잡혀 있는 수술 약속이 있어서요.”
“도망가는 건 아니고?”
“도망가는 겁니다.”
태수가 당당하게 말하자 황석찬 회장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뭐 이리 쓸데없이 당당한가?”
“요즘 사방에서 치입니다. 이거 보십시오.”
태수가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지금도 전화가 오고 있는지 화면에 모르는 번호가 떡하니 떠올라 있었다. 태수는 바로 뒷말을 이었다.
“하도 전화가 많이 와서 이렇게 무음으로 해 놨습니다.”
“응급 환자가 있으면 어쩌려고?”
“여기 의사들이 한둘입니까? 상황 듣고 콜하면 바로 가면 되죠.”
“평소에는?”
황석찬의 집요한 질문에도 태수는 준비된 대답을 꺼냈다.
“집 전화까지 개통했고요. 그게 아니면 누군가는 항상 데리고 다닙니다. 주로 김 간호사나 정 선생이지만요.”
“사람이 너무 인기가 좋아도 불편한 법이야.”
“그래서 잠수 타러 가는 겁니다.”
태수가 바로 대답하자 황석찬 회장이 황당한 얼굴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