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243
02246 2246화
긴 비행을 마친 태수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태수와 팀원들 중 홍진만이 기지개를 켜며 투덜거렸다.
“으아, 길었다. 진짜 길었다고.”
찌뿌듯함을 털어 내듯 토해 내는 그의 투정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힘든 미국행이 생각난 탓인지 다들 지긋지긋하단 표정들이다.
그래도 이제 다시 한국에 도착했다.
이제 공항 복도로 향하는 길이지만 공기부터가 질적으로 달랐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오랜만에 들이쉬는 모국의 공기가 좋기만 했다.
그런 태수와 팀원들 곁을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지나쳐 가며 인사했다.
“팀장님, 귀국 환영해요.”
“응급의료대 파이팅!”
저마다 인사말을 건네며 갈 길을 재촉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장시간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며 잠깐씩 대화를 나눈 탓이다. 또 비행기가 착륙한 후 멈췄을 때 잠깐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친근하게 인사만 하며 지나칠 수 있었다.
그때 홍진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팀장님, 혹시 입국장 나서면 막 기자들 몰려 있고 꽃다발 주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
“아마 그러지 않을까?”
“헤엑!”
“왜 그렇게 놀라?”
태수가 묻자 경악한 홍진만의 눈이 반달로 변해 갔다.
“너무 좋아서요. 완전 꿈에 그리던 장면 아닙니까. 이 홍진만이를 환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요.”
“홍, 너 기다리는 거 아니야.”
“야, 김 선생, 나도 알거든.”
홍진만이 인상을 박박 구기자 김명철이 연달아 핀잔을 줬다.
“아는 녀석이 왜 혼자 흥분하고 그래?”
“그냥 나도 팀장님 옆에 껴서 좀 즐기려고 그랬다. 왜!”
홍진만이 연신 투덜거려도 김명철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얼굴만 보면 토닥거리는 후배들 모습에 태수가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던 중 태수가 뒤를 돌아봤다.
간호사들은 이미 풀 메이크업을 한 상태였다.
“나 안 부었어?”
“언니는 괜찮아요. 제가 문제지.”
“기미 잘 숨겼지?”
손거울을 보며 화장 상태를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다들 기대가 큰 모양이었다.
처음이라 설레는 모습을 십분 이해했다.
하지만 태수의 걱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수화물을 찾기도 전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일지도 모른단 점이었다.
“흠.”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건 아무래도 좋았다.
알아봐주고, 또 응원해 주는 분들에게 인사하는 건 태수에게도 즐거운 일이다.
다만 그 시간이 너무 지체되고, 또 한 번에 몰려든 인파에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이 됐다.
그에 대해 생각하던 중이었다.
툭.
브레드 김이 옆구리를 가볍게 찌르며 말했다.
“캡틴, 저기.”
“저기 뭐……. 엥? 뭡니까?”
“뭐기는, 마중 나온 분들이지.”
“그러네요.”
브레드 김의 말에 태수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답했다.
태수의 눈에 가득 들어온 건 다름 아닌 공항 경비대의 늠름한 모습이었다.
기관단총까지 착용한 그들은 쉽게 다가서기 힘든 분위기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그들 중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 걸음 먼저 다가왔다.
태수는 자연스럽게 여권을 꺼내려 주머니를 주섬주섬했다.
다가선 경비대장이 가볍게 거수경례하며 말했다.
척.
“반갑습니다, 최태수 팀장님.”
“아, 네.”
“뭘 꺼내시는…….”
“여권이요.”
그 소리에 경비대장의 입꼬리가 좌우로 벌어졌다.
“이런 일이 미국에서도 있으셨나 봅니다.”
“뭐, 그랬죠.”
“그럼 설명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이쪽으로.”
경비대장이 비켜서서 태수와 발걸음을 나란히 했다.
태수와 브레드 김은 자연스럽게 함께 움직였지만 팀원들은 아니었다.
“뭐야, 공항경비대가 왜?”
“혹시 그거 아니야? 연예인들 막…….”
“오오! 그거?”
다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혹감보다 호기심을 더 진하게 내보였다.
태수는 팀원들의 쑥덕거림에 옅게 미소 지었다.
좋은 일로 환영을 받는 중이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태수와 팀원들은 공항경비대의 보호를 받으며 수화물을 찾고, 이어서 입국심사장도 논스톱으로 통과했다.
그런 태수와 팀원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봤다.
“우와, 최태수야.”
“저기 홍진만이지? 안성훈도 있어.”
“김명철 선생님은 진짜 차갑나 봐. 얼굴에 표정이 없어.”
“간호사분들은 화면보다 더 예쁘다.”
여기저기에서 감탄사도 들려왔다.
하지만 공항 경비대가 함께였기에 다가오지는 못했다.
태수와 팀원들은 시선이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볍게 눈인사를 하거나 휴대폰 액정이 보이면 잠시 얼굴을 비춰 주는 걸로 감사함을 대신했다.
그렇게 입국장을 나서자 이번에도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별도의 기자회견장은 마련되지 않았다.
입국장 앞에 나란히 선 채로 입국 기자회견이 바로 진행됐다.
찰칵찰칵.
이젠 귀에 익숙한 셔터 소리와 함께 낯익은 기자의 질문이 들려왔다.
“최 팀장님, 입국 소감부터 부탁드립니다.”
“우선 귀가 너무 즐겁습니다.”
“귀가 즐겁다니요?”
“우리나라 말만 들려와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역시 훈민정음이라 자부합니다.”
태수의 엉뚱한 소감에 기자들이 파안대소했다.
“하하하!”
“아, 역시 우리 최 팀장님.”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네.”
몇몇 기자들은 엄지까지 내밀며 웃어젖혔다.
이렇게 넉살 좋고 분위기 잘 맞춰 주는 인터뷰 대상이 드문 탓이었다.
한바탕 웃음으로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는 계속 이어졌다.
“우선 건강은 회복…….”
“걱정해 주신 덕분에…….”
“요세미티국립공원의…….”
“어렵고 힘든…….”
질문과 대화가 순탄하게 이뤄졌다.
자극적인 질문도 전혀 없었다.
전부터 다져 놓은 친분 관계가 다분히 영향을 미친 인터뷰였다.
잠시 후 입국 인터뷰가 끝났다.
카메라나 휴대폰을 내린 기자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와 태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공적인 인사가 끝났으니 표정은 더욱 부드러워져 있었다.
“이거 몇 달 만에 귀국이십니까?”
“그러게요. 계절이 바뀌었네요. 박 기자님은 안녕하셨죠?”
“저야 뭐, 그렇죠.”
“어? 입술이 부으셨는데. 수포 올라오고 따끔하다고 느껴지면 바로 병원 가세요.”
태수의 말에 인사한 기자가 머쓱한 얼굴로 변했다.
“또 그러신다. 우리는 환자가 아니라 기자라니까요.”
“직업병인 걸 어쩝니까. 아, 조 기자님!”
“아이고, 최 팀장님, 우리 몸이 아니라 팀장님 건강부터 걱정하셔야죠.”
다른 기자가 자연스럽게 다가와 대화에 참여했다.
입국 인터뷰보다 기자들과의 인사가 더 길게 이어지는 기이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런데 태수와 기자들 모두 밝게 웃으며 당연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런 태수의 친화력에 팀원들이 조용히 쑥덕거렸다.
“이야, 저렇게 해맑게 웃으시나.”
“진짜 기자들하고 친한 의사는 팀장님이 처음일 거야.”
“같이 일을 해 봐야 우리 팀장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홍진만의 마지막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그사이 태수는 아주 반가운 기자와 마주 보고 있었다.
바로 김성국 기자였다.
기자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지만 둘 사이를 알기에 오히려 그들이 먼저 자리를 비켜 줬다.
태수가 먼저 그에게 살갑게 인사했다.
“형님, 건강하셨습니까.”
“내 건강은 됐고, 최 팀장은 어때? 다 나은 거야?”
“거의 다 나았습니다.”
“에이그. 하여간 몸 좀 사리면서 일하라니까. 이게 다 날 버리고 가서 병 난 거라고.”
김성국 기자가 작정한 듯 타박했다.
그래도 태수의 얼굴엔 미소만이 가득했다.
“그러게요. 형님을 모시고 갔어야 했는데요. 이번에 헬기 출동은 아주 죽여줬는데.”
“안 그래도 CNN에 출동 영상 요청해 전달받아서 봤는데 어휴, 난 패스.”
“오시고 싶으셨다면서요.”
“볼티모어에. 좌우간 그런 얘기는 나중에 소주 마시면서 하고. 그나저나 이번에는 어쩐 일로 출발 전에 연락을 줬어?”
김성국 기자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자 태수도 장단을 맞춰 대답했다.
“이번에도 몰래 들어오다가 들키면 얻어맞을까 봐요.”
“그렇지. 이거 봐 봐. 미리 연락하고 오니까 내가 싹 다 준비해 놓잖아.”
“저도 형님께 자진 신고한 걸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고. 그보다 밖에 성호종합병원에서 보낸 미니버스가 도착해 있던데.”
휙휙.
김성국 기자가 말꼬리를 흐리며 크게 둘러봤다.
태수도 덩달아 돌아보던 중 이쪽을 주시하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인물은 바로 정민수의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정민수가 먼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손을 들었다.
태수는 얼른 김성국 기자에게 인사했다.
“민수가 와 있네요. 형님, 그럼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어서 가 봐.”
“네. 실례합니다. 기자님들, 마중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수가 크게 인사하며 기자들에게서 멀어졌다.
그런 태수의 모습을 확인한 팀원들도 함께 움직였다.
기자들은 손을 흔들며 마주 인사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깔끔한 만남과 깔끔한 헤어짐이었다.
기자들을 뒤로한 태수와 팀원들은 정민수와 만났다.
가장 먼저 다가선 태수가 주먹을 내밀자 정민수가 말없이 부딪쳐 왔다.
툭.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진하게 미소 지었다.
반가움을 간단한 인사로 대신한 후 정민수가 먼저 투덜거렸다.
“참 너도 난 놈이다. 미국에서도 응급출동이라니.”
“내 말이.”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고. 브레드!”
정민수는 바로 태수를 지나쳐 브레드 김에게 향했다.
미국에서 먼저 통화를 했는지 안부를 묻기보다 어깨를 부딪치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그 외에 다른 팀원들과도 인사를 이어 갔다.
잠깐 혼자가 된 태수는 좀 더 넓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정민수 외에 다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시선이 마주치는 건 이쪽을 주시하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태수는 그들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관심에 대한 감사함을 간단히 전했다.
그런 겉모습과 달리 정민수 혼자 마중 나온 것에 대한 의아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태수와 팀원들은 정민수가 준비해 온 미니버스를 타고 공항을 벗어났다.
다들 피곤한 줄도 모르고 창밖을 둘러보기 바빴다.
“역시 한국!”
“딱 보면 푸근함이 느껴진다니까.”
귀국에 대한 소감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달리고 달리던 미니버스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 느낌에 쪽잠을 자던 태수가 눈을 뜨자 성호종합병원이 떡하니 눈앞에 펼쳐졌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숨이 탁 놓아졌다.
은은히 담고 있던 모든 긴장감이 일시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돌아왔다.
이런저런 일에 치여 이제야 도착했다.
의미 없는 순간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 간 것도 사실이었다.
이젠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 감격을 태수가 가장 진하고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정문을 통과하고야 긴 여행의 끝이 다가왔단 실감이 났다.
다들 금의환향했단 자부심에 들뜨는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미니버스가 멈춰 섰다.
“기사님,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를 마친 태수가 앞문으로 내렸다.
탁.
내려섬과 동시였다. 여행이 끝났단 생각에 기지개를 켜려던 중이었다.
“저쪽이다!”
“빨리, 빨리!”
신속대응센터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에엥!
구급차가 오가는 소리까지.
시간이 지나도 여긴 변함없이 똑같았다.
그래서 더 고향 같은 정겨움이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은은한 미소를 짓던 태수의 귀가 꿈틀거렸다.
차르릉, 차릉.
빈 스트레쳐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본 태수가 움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