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603
02606 2606화
가뜩이나 복잡한 한강 이남의 도심 한복판이 아수라장이 됐고, 교통 통제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듯했다.
그런 혼란으로 소방차와 구급차가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고 도로 한복판에 갇혀 있었다.
그 모든 건 지상이 아닌 헬기에서 촬영된 듯했다.
방송국 헬기가 어떻게 먼저?
그것도 김성국 기자가 근무하는 방송국 로고가 선명했다.
하지만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속보입니다. 서울의 상징인 그랜드 타워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태수가 재빨리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미성이 TV 리모컨을 든 모습이 보였다.
그보다 공중파 뉴스였고, 이젠 전국에 이 소식이 빠르게 퍼져 나갈 터였다.
주미성이 TV를 켠 건 거의 동시였다.
그리고 태수가 그 모든 걸 확인한 시간은 단 10초였다. 그 짧은 사이 상황을 파악한 태수가 빠르게 브레드 김에게 물었다.
“그랜드 타워 화재 말씀하시는 겁니까?”
“보고 있어?”
“우선 출동부터 해야 할 거 같습니다.”
“1차 출동 인원은 옥상으로 뛰고…… 아니, 지금 날아가고 있어. 2차는 헬기 회항하면 보낼 거고, 그 외에는 차량으로 이동할 거야.”
브레드 김이 빠르게 응급의료대 상황을 말했다.
빠르게 눈을 굴린 태수는 양해부터 구했다.
“잠시.”
동시에 휴대폰을 귀에서 슬쩍 뗀 태수가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미성이는 민수! 사라는 박 선배! 영수는 김 간호사! 각각 전화해서 상황 알리고, 최대한 빨리 출동 준비하라고 해!”
“네!”
동시에 대답한 아이들은 각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서둘러 전화했다. 화면을 보여 주던 윤사라도 마찬가지였다.
“빨리 받으세요, 빨리!”
“신호가 가는데……. 성민이 삼촌! 큰일 났어요!”
“아이씨, 왜 안 받으시는데…….”
아이들의 목소리가 따갑게 울렸다.
그사이 태수는 다시 브레드 김과 통화를 이어 갔다.
“이쪽도 최대한 빨리 인원 소집해서 현장으로 가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현장에서 보자고. ……뭐 해? 챙길 거 다 챙겼어? 지금 서로 쳐다볼 시간이…….”
브레드 김의 불호령이 멀찍이 들려오며 전화는 끊어졌다.
태수가 바로 신속대응센터로 전화하려 할 때였다.
빠라밤.
휴대폰이 먼저 울렸고, 이번엔 김성국 기자의 전화였다.
지금은 통화를 보류하는 시간이 더 지체될 상황이라 태수는 받자마자 얼른 말했다.
“형님, 지금 전화할 상황이…….”
투두두!
헬기 소리?
다급히 말하던 태수의 목소리가 절로 잦아들었다.
그러자 김성국 기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지금 내가 헬기에 있는 거거든! 젠장! 연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도 못할 상황이야!”
“어떻게 된 겁니까?”
“데스크에서 평온한 대한민국의 아침을 한 컷 따 오라잖아! 그래서 헬기 타고 돌다가 연기가 보여서 왔는데. 이 난리였다고!”
김성국 기자의 목소리엔 다급함이 가득했다.
그럴 만했다.
그보다 태수는 그가 현장에 있단 사실에 주목했다.
“최대한 고층 쪽에 접근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몇 명이라도 구조 좀 해 주십시오!”
“이게 방송 헬기지, 구조 헬기냐? 거기다가 연기하고 열기 때문에 접근도 쉽지 않아!”
“카메라 뒀다 뭐합니까! 줌으로 당겨서 보세요!”
태수가 마주 소리치자 김성국 기자의 기세가 꺾였다.
“그건 그러네. 뭐 해? 줌으로 쫙 당겨서 훑어! ……좌우간 빨리 현장으로 와야겠어!”
“서두를 겁니다.”
“겁나게 서두르라고. 안 그러면 수중전은 맛보기 수준이 될 참사가 될 거 같으니까. 젠장, 어떤 개새끼가 이 지랄을 했냐고!”
김성국 기자 목소리가 거칠어졌으나 태수는 침묵했다.
“……”
“지랄, 그때 그렇게 사람 죽은 거 보고도, 겪고도 이럴 생각이 드냐! 이 인간 같지도 않은 놈아!”
이어진 그의 목소리는 쩍쩍 갈라지고 또 증오로 가득했다.
청화대교의 참사를 직접 봤기에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또 다른 지옥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태수가 그 감정에 같이 휘둘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냉정한 눈빛 그대로 차갑게 말했다.
“장시간 통화는 힘드니까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난 뭐 현장 전문이냐!”
“데스크에 따지세요. 시간 없습니다. 그럼.”
뚝.
태수는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게 옳았고 또 당연했다.
목적지가 바뀌었지만 태수는 아직 집안이었다.
이럴 시간이 없었다.
태수는 재빨리 현관으로 달려가며 아이들에게 소리쳐 물었다.
“전화했어?”
그 순간 아이들도 태수의 뒤를 바짝 쫓아오며 차례로 답했다.
“민수 삼촌은 데이트 중이셨다고, 아름 이모하고 같이 바로 현장으로 가신다고 했어요.”
“큰 성민 삼촌은 알았다고 바로 간다고……. 그런데 절규하시던데요.”
“혁권 삼촌하고 현미 이모는 성호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병원으로 가신다고 했어요.”
주영수가 말하는 할머니는 정민수의 어머니였다.
그렇게 차례로 전화한 내용을 말하는 사이 신발을 신던 태수가 멈칫했다.
“두 분 다 출발하신다고?”
“네.”
“물이 아니라고 위험하지 않은 줄 아나. 일단 알았어. 너희들은……. 사라야, 넌 왜?”
태수는 옆에서 자신만큼 서둘러 신발을 신는 윤사라에게 물었다.
그러자 윤사라가 거칠게 발을 신발에 구겨 넣으며 말했다.
“저도 가야죠!”
“집에 있어.”
“저 충선대 간호학과…….”
윤사라가 다급하게 말하던 중이었다.
턱.
태수가 어깨를 잡아채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래. 넌 아직 간호사가 아니야.”
“그래도…….”
“어쭙잖은 실력으로 뭘 어쩌겠다고. 거긴 실습실이 아니야.”
태수의 눈빛이 강렬했지만 마주한 윤사라 또한 지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알아요. 그런데 이런 저라도 최소한 아픈 분들에게 붕대라도 감을 수 있어요. 최소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물 한 잔이라도 건네 드릴 수 있다고요.”
“사라야!”
“그냥 한순간 감정으로 이러는 거 아니에요. 전 최태수 조카라고요. 삼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아는데 집에서 지켜만 보라고요?”
“위험해.”
“알아요. 하지만 청화대교 때와는 달라요. 여기선 저도 현장으로 갈 수 있잖아요.”
윤사라의 눈빛이 너무도 매서웠다. 아무리 설득해도 흔들리지 않을 결심이 너무도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태수를 답답하게 했다.
“지금 내가 여기서 너랑 말씨름해야 한다고 보이니?”
“아니요. 그러니까 어서 가요.”
“두 번 말할 시간도 없고, 할 생각도 없으니까 똑똑히 들어. 네가 가도 될 곳이라면 내가 데려가. 아니니까 안 데려가는 거야.”
“…….”
“대답.”
태수가 딱 잘라 강요했다.
이번 일엔 절대 양보 없을 단호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아직 어리고 여린 윤사라가 감내할 수 없는 싸늘함이 담겨 있었다.
윤사라는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언제나 자신들에게 미소를 지어 준 태수가 이 순간은 지옥 문 앞에서 노려보는 듯했다.
얼른 시선을 피한 윤사라는 가늘게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요.”
“푸. 나중에 얘기하자. 일단 간다.”
벌컥!
현관문을 열어젖힌 태수는 닫을 생각도 못하고 재빨리 내달렸다.
그와 동시에 휴대폰을 들고 오늘 근무인 서강재에게 전화했다.
“서 팀장, 화재 소식 들었지? 헬기부터…….”
“준비하느라 바빠 죽겠으니까 와서 말해!”
뚝!
서강재의 따가운 한마디가 끝이었다.
하지만 그 하나로 태수는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 무거워졌다.
그나저나 또 대형 사고라니.
방화로 추정된다고 했다.
범인 색출은 당연한 일이지만 태수의 영역이 아니다.
태수가 할 일은 하나다.
오늘 사고에선 희생자가 최대한 없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 하나를 마음에 품은 태수는 더욱 빠르게 엘리베이터로 내달렸다.
같은 시각.
태수의 눈빛을 직격으로 받은 윤사라가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런 윤사라에게 다가선 주미성이 어깨를 감싸며 나지막이 말했다.
“갈 준비 하자.”
“어, 어?”
“가자고.”
주미성의 말에 윤사라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삼촌이 오지 말랬잖아. 언니도 들었잖아.”
“그래. 그런데 나하고 영수한테 오지 말란 말은 안 하셨어.”
“언니…….”
“네가 그랬잖아, 우리는 최태수의 조카들이라고. 가면 뭐든 할 일이 있을 거야.”
주미성은 당차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러나 윤사라는 태수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지 파르르 떨었다.
그때 주영수가 윤사라에게 말했다.
“누나는 처음이지? 우리는 몇 번 봤어.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잖아. 그때 삼촌이 얼마나 화내셨다고.”
주영수가 자신들의 과거를 들췄지만 주미성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반면 윤사라는 군병원에서 전해 들었지만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 순간 다시 기억해 냈다.
“그, 아…….”
“가면 분명 혼나겠지. 난 한 대 맞을지도 몰라. 그래도 이젠 TV 보면서 가슴 졸이는 게 싫어.”
“나, 나도 그래.”
“그러니까 가자고. 어떻게? 마침 내가 운전을 할 줄 아네? 출퇴근에 쓰라고 고모부가 주신 차도 있고, 문제없네.”
주영수가 짓궂은 눈빛으로 말하자 주미성이 주위를 집중시켰다.
“이럴 시간 없어. 수건하고 깨끗한 옷은 다 쓸어 와. 그리고 상가 마트도 들러야 하니까 빨리 움직이자!”
“알았어!”
주영수가 먼저 움직였고, 윤사라도 태수에게 눌린 독기를 다시 뿌리며 함께했다.
서두르는 아이들의 모습?
그 삼촌에 그 조카들이었다.
한편.
태수는 건물을 나서 성호종합병원으로 내달렸다.
그런 태수의 좌우엔 같은 건물에 사는 동료들이 함께였다.
타다닥.
발바닥에 땀 날 정도로 달리던 중 박성민의 숨찬 절규가 들려왔다.
“안 돼! 왜 하필이면 이럴 때! 헉헉! 내 안식처가 저기 있는데……. 헉헉! 어째서 이런 참변이 또!”
오피스텔을 힐끔거리는 박성민의 눈빛이 애잔했다.
그러나 함께 달리던 김혁권의 얼굴은 와락 구겨져 있었다.
“어떻게 저 인간 주둥이는…… 헉헉! 달리면서도 안 쉬어!”
“하루 이틀도 아닌데, 하악! 신경 끄고 달려요!”
조금 뒤처진 이선정 간호사가 빽 소리쳤다.
그사이 도성민과 유병태는 각각 통화 중이었다.
“후욱, 후욱. 네, 병원장님…… 지금 선배는 정신없고……. 헉헉, 네? 지원은 현장 도착 후에…….”
“……지금 정문 근처입니다. 헉헉……. 화이트엔젤이요? 아니, 잠시만요……. 티, 팀장!”
유병태가 빽 소리쳐 태수를 찾았다.
그 부름을 들은 태수도 통화 중이었다. 일단 휴대폰을 귀에서 뗀 태수가 헐떡이며 물었다.
“헉헉, 왜!”
“화이트엔젤, 후, 후! 어떻게 해!”
“출동 가능 인원…… 헉헉, 신속대응센터로!”
“오케이! ……네, 팀장님…….”
유병태는 대답 후 하석준 팀장과 통화를 이어 갔다.
그사이 태수도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대고 상대를 찾았다.
“차, 차관님!”
“그래.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니, 김 국장, 최소 두 블록 이상은 거리를 벌리라고 하라니까!”
엄수찬 차관이 김석준 국장에게 따끔하게 오더했다.
그쪽도 지금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난 후에야 다시 엄수찬 차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아, 그렇지. 좌우간 최 팀장이 현장에 도착하면 총지휘자가 되는 거야.”
“헉헉! 또, 또요?”
“또라니. 이미 소방대하고 구조대, 경찰들까지 그렇게 알고 있어. 청화대교 때 경험이 있으니까 혼선을 줄이자고 하는 모양이야.”
“지휘하면서…… 현장을 챙기기가, 훅훅, 얼마나 힘든…… 지 아십니까?”
태수는 숨이 차오르는데도 과중한 부담이라 호소했다.
그러나 엄수찬 차관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걸 알면 내가 안 시키겠지. 좌우간 우리도 기본적인 사항이 확인되는 대로 올라 갈 거야. 그때까지만 수고해.”
“빨리, 빨리…… 헉헉, 도착을…….”
“알았어.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지. 후, 이런 일이 또 안 생기길 바랐는데. 썩을. 현장에서 봐.”
뚝.
전화가 끊어지자 태수는 휴대폰을 내리며 인상을 구겼다.
또 현장 지휘?
사실 가장 머리 아픈 일이다.
청화대교 때는 특히나 현장이 세 군데로 나눠져 있어 더욱 골치가 아팠다.
이번엔 한 곳이라 괜찮다?
천만의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