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807
02810 2810화
그 순간 태수 옆에서 묵직한 무게가 쏠려 왔다.
“어디, 어디?”
“윽! 선배! 저 깔려죽겠습니다.”
“민수야, 바빠 죽겠는데 너 죽는게 중요하냐? 하여간 몸뚱이는 커가지고!”
“윽! 진짜 적당히 좀 미세요. 이러다가 반건조 오징어 되겠습니다.”
인상을 가득 찌푸린 정민수의 앓는 소리도 지금 박성민에겐 통하지 않았다.
“괜찮아. 내가 건조는 잘 시켜 줄 테니까, 부디 타의 모범이 되는 멋진 마른오징어가 되거라.”
“전혀 안 감사합니다.”
“그건 네 사정이고. 마우스에 셔터 좀 내려 봐. 태수가 지금 듣고 있잖아.”
“윽, 크윽.”
박성민의 무게에 눌린 정민수였지만, 할 수 있는 건 버텨 내며 일그러진 눈으로 휴대폰 액정을 보는 것뿐이었다.
옆에서 소란이 일어나도 태수는 오로지 휴대폰 화면에 집중했다.
그런데 화면을 향한 태수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이어폰 잭을 꽂은 헬멧 속에선 쉴 새 없이 따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끼, 거기 잡아!
-옆으로, 더 옆으로!
-복부는 일단 멈추라고!
-혈액 더 들어가고 있어요? 빨리 확인해 주세요!
-셀라인! 식염수가 있어야 씻어 낼 거 아니야!
거기에 ECG의 정신없는 소리까지 더해졌다.
삑삑삑!
그 소리만큼 심장이 덩달아 격하게 뛰었다.
“…….”
태수는 침묵하고 있었지만 옆에선 같이 들썩였다.
“저거 뭐야! 뭔 난리야!”
“선배, 잠시만요. 조용히 좀요.”
“너 같으면 저거 보고 조용히 하겠냐!”
“여기서 떠들어도 안 들린다니까요. 아악, 제 팔을 왜 비트세요!”
정민수이 비명을 질러도 박성민의 손은 여전히 팔을 비틀었다. 그 손길이 자신도 모르게 거칠어질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때 서영우가 이성혁의 옆에서 나타났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빙 돌아온 모양이다.
그렇게 태수를 중심으로 좌우에 2명씩 모여든 모습으로 변했다.
태수는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선과 신경 모두 화면에 빼앗긴 상태였다.
지금 수술실 모습?
한마디로 끔찍했다.
수술대 위에 피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응급은 대형 출혈이 동반된 터라 그에 놀란 건 아니었다.
태수가 집중하고 있는 건 수술대 모습이다.
그런데 그 거리가 약간 멀었다.
환부는커녕 수술대 근처에도 다가서지 못한 상태였다.
태수는 지체 없이 양정한에게 따갑게 말했다.
“양 선생, 더 가까이!”
-네!
양정한의 굳은 대답 소리와 함께 화면이 수술대 쪽으로 움직였다.
곧 화면은 수술대에 접근했다.
황진호의 머리 쪽에서 발 쪽을 비추는 구도였다.
흉부를 집도 중인 도성민이 꿈에 볼까 무섭게 피칠을 한 채 휴대폰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양정한, 미쳤어? 수실에 누가 휴대폰을 들고 들어와!
양정한이 더 난감해지기 전에 태수가 얼른 목소리를 냈다.
“도끼! 나야.”
-태수? 뭐야, 네가 왜 휴대폰…….
도성민의 얼굴이 황당하게 변했지만 태수는 개의치 않고 상황부터 물었다.
“자잘한 건 나중에 따지고.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때?”
-어떠냐고? 대동맥궁이 터졌어!
“터져? 이런 미친!”
태수가 버럭 소리쳤다.
그 소리에 박성민이 옆에서 인상을 구겼다.
“이런 아름다운 자식들이! 니들끼리 지금 뭐라고 떠드는지 이 형님은 하나도 모르겠거든!”
“Aortic Arch Rupture(대동맥궁 파열)!”
태수가 모두가 듣게 짧게 중계했다.
그 소리에 박성민과 정민수는 물론 서영우와 이성혁의 얼굴도 순간 핏기가 사라졌다.
“파, 파열?”
“이 자식들이 응급수술을 하라니까 더 응급하게 만들어 버리면 어쩌자고!”
박성민이 버럭 소리치자 태수가 얼른 말렸다.
“선배,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나도 알아, 인마. 넌 잔소리 끄고. 좌우간 태수, 더 자세한 상황부터 중계해!”
박성민이 태수를 보챘다.
안 그래도 태수의 입이 거의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파열이라고 말하고 끝이야?”
-지금 임시로 대동맥궁 만들고 있거든! 이쪽은 출혈 잡고, 또 그 시간 버느라고 난리라고!
도성민은 이제 휴대폰은 의식하지 않고 수술을 이어 가며 대꾸했다.
그런 그의 얼굴에 땀이 가득했다.
보조하던 송현미 간호사가 잽싸게 닦았지만 잠깐이었다.
금세 다시 땀으로 범벅이 됐다.
그건 반대편에 선 유병태도 마찬가지였다.
집도의와 어시스던트뿐만 아니라 간호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술실에 들어온 시간은 짧다.
그 사이에 이렇게 땀이 난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그 잠깐 사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머릿속에 그려 본 태수가 몸을 흠칫 떨었다.
몰려 있던 모두 같은 화면을 보고 있기에 똑같이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어후.”
“환장하겠네.”
한 소리씩 하며 환자의 상태에 안타까움을 보였고, 또 팀원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가슴에 들어왔다.
한차례 몸을 떤 태수는 수술대 상황이 궁금했다.
그래서 얼른 휴대폰을 아래쪽으로 내렸다.
하지만.
…….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본 박성민의 따가운 핀잔이 들려왔다.
“네가 움직이면 화면이 움직이냐? 양 군을 움직여야 화면이 움직일 거 아니냐고!”
“……양 선생, 환부 비춰!”
멈칫한 태수가 재빨리 오더했다.
그런 태수의 귀가 빨개지는 건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휙!
태수의 오더에 맞춰 움직인 휴대폰은 곧 개흉된 황진호의 가슴을 비췄다.
화면은 곧 출혈 가득한 흉부로 꽉 찼다.
촤악, 콰륵!
김아름이 옆에서 식염수를 들이붓고, 김혁권이 썩션으로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보조인 송현미 간호사와 이선정 간호사는 거즈로 돕고 있었다.
그런 정신없는 움직임 속에서도 출혈이 가득해 심장과 폐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출혈양이 어느 정도인지 이렇게 봐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태수는 곧바로 물었다.
“현재 출혈이 어느 정도인 거야?”
-양쪽 발목에 추가로 수혈해서 버티는 정도!
“젠장. 터진 대동맥궁은 어쩌겠다고 출혈에 쩔쩔매고 있는 건데!”
-누군 좋아서 이러고 있냐! 그러니까……. 아이씨, 바빠 죽겠는데. 유 선생!
도성민이 대뜸 소리쳤다.
양손은 출혈점을 확보하려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 부름에 응한 유병태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개흉 중에 터져서 지금 올 스톱 상태야. 처음엔 염증이 한 움큼이나 나왔다고.
“타까야수동맥염 때문에?”
-그거밖에 더 있겠냐. 잠깐만……. 어, 잡았어. 여기? 오케이……. 젠장. 가뜩이나 정신없는데 보고까지 해야 하냐?
“그냥 보기만 해?”
태수가 진지하게 반문했다.
대화가 방해가 된다면 입을 닫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옆에서 박성민은 전혀 다른 의견을 크게 알렸다.
“입을 다물기는 뭘 다물어! 이대로 출혈만 잡다가 세월 보낼 거냐고. 대책이 뭐가 있냐고 빨리 물어봐!”
“그건 나도 들어야 한다고 봐.”
정민수가 덧붙여 동의를 표했다.
태수도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완전히 집중한 도성민과 유병태에게 물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대안으로 김혁권을 찾았다.
“김 간호사님!”
-수진이는 나가서 셀라인 있는 대로 쓸어와……. 나도 바빠요. 찾지 말고 나타나라고!
“날아가는 중입니다!”
-무슨 태평양 건너는 것도 아닌데 아직도 오고 있으면 어쩌자고요!
김혁권의 다급한 목소리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단 걸 알려 주고 있었다.
이미 화면만으로도 충분히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다.
태수는 같이 날카롭게 맞서지 않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지금 출혈 막는 거만 하고 있는 겁니까?”
-그게 뭔 되도 않는 소립니까! 여기는 단세포만 있냐고.
“다른 소리 말고 핵심만!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소리치지 말고. 지금 닥터 김이 Artificial Blood Vessel(인공혈관)로 대동맥궁을 만드는 중입니다.
그 소리와 동시였다.
-식염수요! 양 선생, 비켜!
휘청!
화면이 크게 흔들리는 걸 보니 양정한이 뒤로 물러난 듯했다.
그렇게 각도가 변한 휴대폰 화면 속에 김아름이 보였다. 머리끝부터 말끝까지 수술 복장으로 꽁꽁 가려져 있지만 이들은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태수는 순간 황당한 얼굴로 김아름을 찾았다.
“김 선생, 대동맥궁을 만들다 말고 왜……. 그런데 김 선생이 그게 가능해?”
-저 아니에요! ……다음 식염수 준비할게요!
휙!
김아름은 반사적으로 대꾸하고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김혁권이 한 손에 썩션, 그리고 다른 손엔 자그마한 밧드(철제 그릇)을 든 채 수술대로 다급히 접근했다.
휙, 콰륵!
밧드로 식염수와 뒤섞인 출혈을 퍼내고, 썩션으로 흡입을 동시에 진행했다.
따로 움직이는 양손은 각자 다른 사람의 손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역할에 충실했다.
그런 김혁권의 마스크로 가려진 입 속에서 강한 짜증이 흘러나왔다.
-여기 닥터 김이 한 명입니까? 다른 닥터 김 있잖아요!
“아, 은영이요?”
-그래요. 거참, 그쪽은 오죽 답답하겠냐마는 이쪽도 환장하겠습니다……. 닥터 유, 손 잠깐만 아래로. 땡큐!
김혁권은 대화하면서도 자신의 일에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답답한 건 사실이었다.
수술대 상황을 대강 파악했다.
더 묻는 건 그들을 방해하는 일이다.
그 생각으로 태수가 휴대폰을 옆으로 돌리다 멈칫했다.
“그럼 지금 김 선생은 이쪽에……. 이게 무슨 지랄이야. 양 선생, 김은영 선생 쪽으로!”
-네!
태수가 따갑게 오더하자 양정한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지금은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움직인 화면은 수술대 발치 옆 의료 카트에서 멈췄다.
성재경이 양손으로 수혈팩을 짜고 있었고, 김은영이 의료 카트에서 빠르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태수의 눈이 가늘게 변하며 더 빠르게 오더했다.
“양정한, 더 가까이!”
-네!
흔들흔들.
휴대폰 화면이 춤을 추더니 곧장 김은영의 앞에 도착했다.
김은영은 그런 양정한이 다가섰는지도 모른 채 양손을 움직이는 일에만 집중했다.
곧 화면은 의료 카트를 보여 줬다.
수술포가 넓게 깔린 카트 위에서 인공혈관들이 대동맥궁과 같이 복합적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말이 그랬지, 실제로는 굵기가 다른 인공혈관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는 수준이었다.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정민수가 새삼 놀랍단 목소리로 말해 왔다.
“저거 다 연결되면 대동맥궁 모조품으로 딱이야. 각 혈관들 길이도 적당해 보이고.”
“그러게. 전에 태수가 만들 때보다는 조금 투박한 느낌인데, 그래도 저 정도면 대동맥궁하고 흡사한데?”
“선배보다 나아 보이는데요?”
정민수가 한마디 했다.
그 말은 신기하게도 꼭 매를 불렀다.
딱!
“큭! 아야.”
“넌 그래서 안 된다고. 뺀질거리는 것도 때와 장소를 봐 가면서 하란 말이다.”
“선배는…….”
“나, 뭐?”
“아닙니다.”
정민수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을 말해도 구박받는 건 언제나 자신의 몫이라 이젠 억울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행동이 실없는 장난이 아니었다.
김은영의 손길에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건 확실히 임시로 대신하기 좋을 인공 대동맥궁이었다.
물론 흉부외과 전문의인 박성민과 퀄리티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외과 전문의인 김은영의 손에 의해 엇비슷하게 만들어지고 있단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태수는 잠자코 지켜보다 약간의 조언을 건넸다.
“김 선생, 지금 그거. 그건 조금 아래쪽으로 연결해야 돼.”
-최 선생님? 어디……. 뭐야, 휴대폰으로 보고 있는 거야?
“팀장님이라며.”
태수가 되짚어 상기시켜 주자 김은영의 양손이 잠깐 멈칫했다. 그런 그녀는 휴대폰을 보지 않고 손을 움직이며 답했다.
-네, 팀장님.
“지금 거기는 좀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니까.”
-원래 이 자리 아니에요?
“그 자리가 맞는데, 임시로 연결할 땐 좀 더 내리는 게 봉합하기 쉬워.”
태수는 나지막이 이유를 말했다.
그러자 멈칫한 김은영은 바로 위치를 바꿨다.
그것도 달라진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