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325
Chapter 093화.
태수에겐 전혀 관심 없는 일들이라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중이었다.
“……제3어시스던트에 닥터 최, 보조에 케이시 간호사.”
난데 없는 호명에 태수는 멍한 정신이 화들짝 깨어났다.
뭐지?
태수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태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닌 모양이었다.
“…….”
“…….”
어느새 다들 태수를 보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들이었다.
태수 본인도 모르는 일이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때 닥터 구라모토가 나서서 모두가 듣고 싶은 주제에 대한 답을 말했다.
“제가 임의대로 투입시켰습니다.”
“그런가?”
닥터 슈미트가 묵직하게 반응했다.
닥터 구라모토는 예상했단 듯이 말했다.
“들어보니 몇몇 레지던트들을 여러 의과 수술에 참여시킨단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결정하게 됐습니다.”
닥터 구라모토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의 말은 꼬집어봐도 딱히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스윽.
닥터 올리버가 손을 들며 물었다.
“좋은 뜻은 알겠지만 그래도 사전에 통보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닥터 최가 이번 환자에게 관심이 많아 저도 갑자기 결정하게 됐습니다.”
“흠.”
닥터 올리버가 바라만 보자 닥터 구라모토가 이어서 말했다.
“가까운 이웃나라에서 이 먼 곳까지 배우러온 닥터 최의 열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
“바치스타 수술에 참여함으로써 흉부외과에 자부심도 느낄거라 생각합니다.”
닥터 구라모토의 말이 끝난 후였다.
닥터 올리버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했다.
“그…….”
턱.
옆에서 닥터 올리버를 붙드는 손길이 있었다.
순간 닥터 올리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손길의 주인공이 태수인 탓이다.
“뭐하는 짓이지?”
“참여하겠단 짓입니다.”
“심장막천자랑 동급으로 보나?”
“급이 다르단 걸…….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태수의 의미심장한 대답에 닥터 올리버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알고도 그러는 걸 보니까 자신감이 넘치는 모양이야.”
“제 3 어시스던트니까요.”
찡긋.
미소를 지은 태수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닥터 구라모토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아주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짝, 짝.
닥터 구라모토는 박수까지 쳐가며 기뻐했다.
그런 그의 눈빛에 슬쩍 날카로운 이채가 스쳐지나갔다.
마주한 태수는 희미한 그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어제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상관없었다.
‘수술만 잘 끝나면 돼.’
딱 그 생각이었다.
밖에서 발을 동동 굴리긴 싫었다.
수술에 참여해 그 원인을 직접 찾는 길을 택했다.
브리핑은 수술인원이 정해지며 마무리 됐다.
곧 닥터 구라모토는 닥터 슈미트를 필두로 중견의사들을 안내하며 밖으로 나갔다.
닥터 타케시도 그 대열에 포함됐다.
브리핑 룸엔 일본 의료진들 밖에 없었다.
태수를 향한 시선들이 썩 곱지 않았다.
온 몸으로 느끼고 있지만 태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런 태수 앞에 진행을 하던 반듯한 느낌의 일본인이 다가왔다.
“닥터 야마구치입니다. 전문의 3년차고 마취담당입니다.”
의외로 인사성이 밝은 의사였다.
태수도 날카로움을 내리고 부드럽게 응대했다.
“닥터 최태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갑작스런 수술 스텝 명단에 올라 당황하셨겠습니다.”
“좀 놀랐지만 기회를 열어주셨으니 감사한 일이죠.”
태수가 수더분하게 답하자 닥터 야마구치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수술 준비 좀 부탁해도 될까요?”
“환자부터 모시는 게 순서겠죠?”
“그게 순서가 맞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중히 인사한 태수가 먼저 몸을 돌렸다.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진하게 지어졌다.
뚜벅, 뚜벅.
태수가 걸어가자 케이시 간호사가 바로 따라붙으며 감탄했다.
“돌아 돌아서 결국 만나게 됐네요.”
“이래서 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요. 타이밍 이즈 나우네요.”
“두 번 놓칠 순 없죠. 지금 만나뵈러 출발합니다.”
태수가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케이시 간호사와 함께 움직였다.
사실 수술 참여 과정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문제가 우선 되어야하기에 서로 말을 아끼고 있었다.
브리핑 룸을 나선 태수는 당당하게 바네사를 찾아갔다.
드륵.
해당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네사만 자리하고 있었다.
1인실은 아니다.
병실이 일본 의로진들에게 할당된 듯 했고, 첫 환자가 바네사라서 홀로 누워 있는 걸로 보였다.
그런 바네사 옆엔 20대 후반의 간호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태수는 지금까지 언급된 이름들을 떠올려 그녀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카가리 간호사?”
“하이.”
그녀는 태수의 등장에 사뭇 긴장한 듯 크게 대답했다.
실제 나이로 따지면 동연배였다.
그런데 연장자를 대하는 듯한 느낌에 태수가 표정이 어색해졌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태수는 카가리 간호사의 착각을 기회로 활용하기로 했다.
“닥터 최태수입니다. 혹시 영어로 대화 괜찮으십니까?”
“네.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힘 줄 거 없습니다. 병실은 깔끔하니 좋네요.”
태수는 정말 연장자처럼 느긋하게 행동했다.
물론 덮어놓고 이러는 건 아니었다.
삐빅, 삐빅.
ECG 모니터를 틈틈이 주시했다.
그런데 모니터의 수치가 약간 변화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내려갔다.
‘편안함?”
갑자기 왜?
의아한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툭.
뒤에서 케이시 간호사의 가벼운 터치가 느껴졌다.
멈칫한 태수의 시선이 아차함과 동시에 바네사에게로 향했다.
바네사는 이미 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욱, 후욱.”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보조 받고 있었다.
숨결에 맞춰 커버 속에 성에가 꽉 들어찼다.
곧 성에가 사라지더니 투명한 커버 안쪽에는 바네사의 잔잔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찾아와 줬네요.’
그녀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10분 정도 만난 사이였다.
하루란 시간을 빗대 봐도 너무도 짧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런데 바네사는 수술 전 다시 만난 태수를 너무도 반가워하고 있었다.
눈빛과 미소에 담긴 감정.
그건 바로 ‘믿음’이었다.
태수가 바네사를 다시 만나기 위해 겪은 여정에 꼭 맞는 반가움이었다.
순간 태수는 일전에 제임스가 해준 충고가 떠올랐다.
– 환자가 믿을 수밖에 없는 의사가 되도록 해.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까진 막연하고 막막했었다.
믿음이란 감정이 억지로 생기는 게 아닌 탓이다. 그런데 지금 바네사의 미소에서 무언가 느낌이 왔다.
1년 12달 만난다고 의사와 환자에게 믿음이 생기는 게 아니다.
반대로 잠깐 만났다면 더더욱 믿음을 얻기 어려웠다.
고로 환자를 마주하는 시간은 상관없었다.
정말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잠깐 만난 환자라도 성심으로 대하는 게 해답이었다.
태수는 한 명의 환자에게 보내는 마음일 터였다. 그러나 환자는 자신의 주변에 태수에 대해 얘기한다.
그런 소문들이 겹치고 겹치면 처음 만난 환자라도 믿음이 생길 수 있었다.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찾아오길 잘 했다.’
그리고.
수술에 위험이 될 원인을 기필코 찾아야할 이유가 생겼다.
자신을 믿어주는 환자에게 어떤 실망도 줄 수 없었다.
그건 태수가 아직 환자가 떠날까 무서운 겁쟁이인 탓이다.
깨달음은 한 순간이다.
지금 태수의 모습은 바네사에게 마주 미소 지어주는 모습만 가득했다.
찡긋.
가볍게 눈짓한 태수는 다시 느긋함을 풍겼다.
“카가리 간호사.”
“네. 닥터 최.”
“차트 어디 있죠?”
태수의 질문에 카가리 간호사는 재빨리 다가와 차트를 내밀었다.
사삭.
“여기 있습니다.”
“혼자 지키고 있느라 고생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래도 수술 전인데 바람 한 번 쐐는 게 좋을 거 같네요.”
태수는 부드러운 미소로 권했다.
그런데 카가리 간호사는 눈을 크게 뜨며 얼른 답했다.
“네, 그렇게 하, 할게요. 실례하겠습니다.”
휙.
재빨리 뒤돌아선 카가리 간호사는 잰 걸음으로 병실을 나갔다.
그 모습에 태수가 미간을 좁혔다.
“도대체 내 소문이 어떻게 난 거야?”
“호호호. 닥터 최가 얼마나 귀여운데, 무섭다고 저래.”
케이시 간호사가 툭 던진 힌트에 태수가 바로 반응했다.
“제가 무섭다고요?”
“무게 잡으면 좀 나이 들어 보이긴해요.”
“거울이……. 일단 나중에 찾고요. 차트도 나중이고…….”
“왜 다 미루세요?”
케이시 간호사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태수는 대답하기보다 몸을 먼저 움직였다.
탁.
병상 앞에 도착한 태수는 바네사의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
그리고 시선을 마주하며 잔잔하게 말했다.
“그렇게 보고 싶다고 하셔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
바네사는 미소 띤 얼굴로 마주보고만 있었다.
그제야 태수가 아차했다.
“아, 대화가……. 이거 참.”
그거까지 생각 못한 태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
문 쪽에서 이곳 언어가 대뜸 들려봤다.
이 목소리는?
화들짝 놀란 태수가 재빨리 고개를 돌려봤다.
“어머.”
케이시 간호사도 똑같이 반응했다.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을 받고 선 사람은 놀랍게도 김혁권의 얼굴이었다.
탁.
그는 태연하게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태수를 향해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어떤 어린 닥터 한 명이 근무지를 무단으로 이탈해서 여기저기 들쑤신다는데, 혹시 누군지 아십니까?”
“혁권씨.”
“닥터 정이 바네사 환자 쫓다보면 문제아 한 명 보일 거라고 합디다.”
그의 말에 태수는 또 한 번 놀랐다.
“민수가요?”
“서로 성격 뻔히 아는데 그 정도 눈치는 챘겠지.”
“자식.”
태수는 정민수의 서포터에 적잖이 감탄했다.
그런데 그때 김혁권이 다가와 손바닥을 척 내밀며 말했다.
“세상에 공짜 없는 거 알죠?”
“당연히 알죠.”
짝.
힘차게 대답한 태수는 차지게 손바닥을 부딪쳤다.
김혁권이 찾아오니 태수는 한결 편안해짐을 느꼈다.
여러 말 오갈 거 없이 그때그때 눈치껏 통역해주고 또 의료에도 적극적인 탓이다.
태수는 바로 김혁권을 활용했다.
그렇다고 그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 건 아니었다.
그냥 태수는 지금 바네사에게 하고픈 말을 내뱉었다.
“다시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갑습니다.”
“#%@$%@#$……. 찾아올 줄 알았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실은…….”
“^@#$#…….”
태수는 자신이 왜 찾아왔는지를 바네사에게 정확하게 알렸다.
그런 태수의 말을 김혁권이 실시간으로 통역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