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364
Chapter 132화.
그 성격을 그나마 알고 있는 브레드 김이 얼른 중재에 나섰다.
“지금 나갑니다. 자자, 갑시다.”
툭. 툭.
브레드 김은 어깨와 등을 떠밀기까지 했다.
그 적극적인 밀어냄으로 곧 모두가 밖으로 나갔다.
탁.
문이 닫히고야 태수도 수술대로 돌아섰다.
“…….”
김혁권의 날카로운 눈빛이 태수를 직시하고 있었다. 한 마디 잔소리를 퍼붓기 직전의 눈빛이다.
그걸 느낀 순간 태수는 어색하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짝, 짝.
“우, 우리 청소는 좀 하고 쉬죠.”
“청소?”
“피비린내 때문에 머리가 아프네.”
“아이코, 그러네. 어쩐지 좀 이상했어.”
정민수도 이럴 때는 눈치 빠르게 태수의 편을 들었다.
괜히 김혁권을 자극해 봐야 돌아오는 건 모진 팩트 폭행 밖에 없었다.
그렇게 태수와 정민수는 김혁권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수술실 청소를 시작했다.
잠시 후.
수술실은 상당히 깔끔해졌다.
그리고 태수와 정민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수술대와는 조금 떨어진 장소였고, ECG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위치였다.
삐빅, 삐빅.
고요한 수술실에 ECG 소리만 울렸다.
태수는 가만히 생각했다.
‘창규는 괜찮나?’
수술이 끝났는지, 잘 끝났는지.
여러 부분이 궁금했다.
그런데 샨메흠은 직접 수술한 환자였다.
아직 안정을 찾지 못했는데 자리를 비울 순 없었다.
때문에 샨메흠에게 집중하는 건 이치적으로도 당연했다.
반면 정민수는 피로감이 몰려오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태수도 두 눈이 가물거렸지만 눈을 감진 않았다.
힐끔.
옆에서 졸고 있는 정민수를 바라보다 결국 가볍게 건드리며 불렀다.
“민수야.”
“흐으음……. 왜, 뭐, 무슨 일이야.”
정민수의 격한 반응에 태수는 가볍게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나가서 그냥 자.”
“아니야. 흐음, 나 안 잤어.”
“입에 침이나 닦아.”
태수의 지적에 정민수가 얼른 소매로 입을 훔쳤다.
“어? 쓰읍. 에이, 모양 빠지게.”
“빠질 모양이나 있어?”
“너 참……. 말을 아름답게 하는 착한 아이구나.”
정민수가 아무리 흘겨봐도 태수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알아줘서 고마워.”
“그런데 혁권씨는 계속 저러고 계신 거야?”
정민수는 민망했는지 화제를 돌렸다.
지금 김혁권은 수술대 앞에 바짝 앉아 샨메흠을 주시하고 있었다.
“…….”
소리를 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태수가 대신 반응했다.
끄덕.
간단한 고갯짓이 전부였다.
그런 태수도 김혁권의 모습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김혁권이 오랜 침묵을 깨고 말했다.
“신기한 동물 보듯이 관찰마시고, 두 분 다 나가서 좀 쉬었다가 와요.”
“신기하다니요.”
“그럼 내가 언제 이런 적이 있었습니까?”
“…….”
태수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김혁권이 한 명의 환자에게 이렇게 까지 신경을 쓰는 건 사비 이후에 처음이었다.
정민수도 처음 보는 모습이라 똑같이 침묵했다.
그때 김혁권은 수술포를 끌어올려주며 이어서 말했다.
“두 분 고생 많았어요. 몇 번이나 숨넘어갈 뻔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같이 고생했죠.”
“그런데 내가 보호자도 아닌데 이렇게 말하니까 웃기네.”
“그렇게 웃기진 않습니다.”
태수가 답하자 김혁권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기죠. 오늘 처음 보는 아이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게 안 웃기겠습니까.”
“뭐…….”
“창규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내가 이렇게 신경 쓴 적은 없었잖아요.”
“…….”
태수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건 정민수도 마찬가지였다.
태수의 어정쩡한 대답을 예상했던지 김혁권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가 뜬금없는 말을 시작했다.
“살아있으면 된 겁니다. 살아있으면…….”
“혁권씨.”
정민수가 잔잔히 불렀다.
그런데 김혁권은 듣지 못한 건지, 일부러 듣지 않은 건지 또 한 번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죽으면 만날 수가 없으니까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충 눈치 챘겠지만……. 난 혼자 입니다.”
“그, 뭐…….”
눈치채고 있던 탓에 할 말이 없었다.
김혁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릅니다.”
“엇, 어.”
“그리고 어머니는 오래 전에 저 하늘로 떠나갔어요.”
“하.”
태수와 정민수는 입을 턱 막았다.
갑작스러운 자기 얘기였다.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아니, 김혁권이 자기 얘기하는 걸 극도로 싫어해 질문조차 건네지 못했다.
그런데 스스로 본인에 대해 풀어놓는 게 의아했다.
그런 태수와 정민수의 반응을 얼추 예상했는지 김혁권이 씁쓸한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이러니까 이상합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태수와 정민수는 동시에 답했다.
그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김혁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못된 짓도 많이 하고, 나쁜 짓도 많이 했습니다. 아이 혼자 살아갈 세상치고 뉴델리 뒷골목이 썩 좋은 곳은 아니었으니까요.”
“그야…….”
“그런데 한글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속된 말로 피똥 쌀 정도로요.”
“왜냐고 여쭤도 됩니까?”
태수가 조심스럽게 물음과 동시였다.
스윽.
시선을 마주한 김혁권이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라고 꺼낸 말인데, 궁금한 게 있으면 물으셔야지.”
“그럼 한글 공부는 어떻게 시작하신 겁니까?”
“편지 읽으려고요.”
그 소리에 태수와 정민수 표정이 동시에 묘하게 변했다.
이번엔 정민수가 물었다.
“편지요?”
“네. 어머니가 남겨둔 편지를 읽으려고요.”
“어머니가 한국 분이십니까?”
정민수가 어렵사리 물었지만 김혁권의 대답은 수더분하게 나왔다.
“아니요. 순수 인도 사람이요. 한국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나름 엘리트였죠.”
“음?”
태수와 정민수는 의아함만 깊어져갔다.
그 반응을 본 김혁권은 알아서 의혹을 풀어줬다.
“한국 유학 중에 그 인간을 만났답니다. 어머니는 인도로 돌아와서 날 가졌단 걸 알았다고 했고요.”
“아…….”
“뭐 뻔한 스토리죠. 딸을 유학까지 보낸 나름 부유한 집안이지만 앞뒤가 꽉꽉 막혀서 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고, 어머니는 그래서 집을 나왔다네요.”
말이 쉬웠지 아직도 계급주의가 팽배한 인도에선 엄청난 문제였다.
비슷한 문화를 가진 카슈미르에서도 간간히 목격한 태수와 정민수라서 더욱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김혁권의 삶이었다.
“그래서요?”
“뻔하다니까요. 애는 태어났고, 먹고 살아야 되니까 모진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했고, 그러다 보니 병을 얻었고……. 뭐, 그 다음은 말했으니까 패스하고.”
“그래서 혁권씨는요?”
태수가 조심히 물었지만 김혁권은 별다른 반응 없이 이어서 말했다.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내가 뭘 어떻게 했겠습니까.”
“…….”
“그것도 뻔하잖아요. 그쪽 집안 찾아갔다가 몰매 맞고 쫓겨난 정도. 그래서 어머니를 직접 묻어 드렸던 정도.”
“그때가 몇 살 때였습니까?”
태수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술술 흘러나온 김혁권의 대답이 순간 들리지 않았다.
“…….”
“…….”
태수와 정민수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렇게 갑자기 수술실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마음을 굳힌 건지 김혁권의 목소리가 덤덤하게 들려왔다.
“딱 샨메흠 나이 정도였네요.”
“그럼 그때부터 혼자 사셨던 겁니까?”
“말했잖아요. 나쁜 짓도 많이 하고 못된 짓은 더 많이 하면서 살았다고.”
대답하는 김혁권의 목소리가 메말라 있었다.
그러나 태수와 정민수는 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혈혈단신이 되어 무법지대에서 자랐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
“…….”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김혁권은 별 거 아니란 듯이 심드렁하게 이어서 말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개차반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이사하려고 집을 치우다가 우연히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쓰는 걸 뭐라고 하던데…….”
“유언장이요.”
“아, 그거요. 편지가 아니라 유언장이 맞겠네요.”
“그렇겠죠.”
태수가 눈을 끔백이며 대답해도 김혁권은 여전히 개의치 않았다.
“아무튼 그게 한글로 쓰여 있더라고요. 그때 어려서는 맞아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한국어 책을 그때 내 손으로 펼쳤죠.”
“계기가 있어야 달라지긴 하니까요.”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마음 딱 잡고 펼쳤는데, 한글이 익히기가 의외로 쉽대요. 한 시간 만에 내 이름 썼잖아.”
김혁권이 이상한 감탄을 하자 정민수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은데요.”
“아니야. 쉽더라고. 어머니가 집에선 한국말만 해서 그런가, 단어를 익히니까 뜻은 바로바로 이해가 되고 말입니다.”
김혁권의 말이 자꾸 다른 방향으로 향하자 듣다 못한 태수가 나섰다.
“뭐 아무튼 그래서 유언장은 모두 읽으신 겁니까?”
“3일 정도 걸렸지만 읽긴 읽었죠.”
“3일이면……. 진짜 머리 좋긴 하시네요.”
태수도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 부분에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집에서 한국어로 대화했다고 해도 제2외국어였다. 중학생이면 완전히 언어가 자리 잡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고작 3일만에 편지를 읽는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정작 김혁권은 심드렁한 반응만 계속 되고 있었다.
“한글이 익히기 쉽다니까요.”
“뭐 그렇다고 치고요. 흠.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유언장 내용이 뭐냐고요?”
“…….”
끄덕, 끄덕.
태수와 정민수가 동시에 격한 고갯짓으로 답을 표현했다.
아무래도 유언장 내용을 말해달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할 수 없어서 행동으로 대신 한 거였다.
김혁권은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뭐가 어려운 거라고. 혼자두고 가서 미안하다는 둥, 밥 잘 챙겨먹으라는 둥, 걱정만 한 가득이었죠.”
“…….”
“그리고 한글 공부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대요.”
“그렇군요.”
할 말이 그거 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혁권의 어머니가 어떤 마음인지는 얼추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 김혁권이 아버지와 연락이 된다면 한글로 안부를 묻고, 또 한국어로 대화하길 바란 모양이었다.
당사자인 김혁권도 분명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그에 대한 말을 쏙 빼놓고 이후의 자신에 대해 들려줬다.
“아무튼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뉴델리에 한국 기업이 많이 있잖아요. 아무데나 찾아가서 통역 할줄 아니까 좀 써달라고 했죠.”
김혁권의 심심한 말투와 달리 태수와 정민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태수가 물었다.
“써주던가요?”
“그러데요. 아무튼 거기서 의식주 다 해결하면서 10년 정도 있었어요. 그때 한국어가 완전히 입에 뱄지.”
“그런데 왜 통역 일을 하게 된 겁니까?”
태수가 슬쩍 묻자 김혁권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한국으로 철수하고 나니까 할 게 없더라고요. 그때 월급 모아둔 걸로 장사나 하려고 했는데 너무 순진했지.”
“혹시 사기…….”
“사기당할 만 했지.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어른들 몇 년치 월급을 쥐고있었으니까.”
김혁권의 어두운 얼굴을 보며 태수가 안타까움을 전했다.
“큰 돈이었군요.”
“제대로 당했지. 그쪽 동네가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가는 놈들 투성이거든요.”
“…….”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그냥 답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