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481
Chapter 249화.
태수는 궁금한 게 많은 탓에 하나 씩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브레드가 팀원이 된 겁니까?”
“파둠에서 복귀한 브레드가 혼자 방황을 좀 했어.”
“네? 아.”
태수가 머쓱한 표정으로 변하자 닥터 오즈마가 바로 핵심을 찔러 말했다.
“사실 닥터 최와 두 사람이 떠나는 바람에 소속이 붕 떠버린 거지.”
“닥터 슈미트가 데리고 있겠다고 했는데요.”
“나도 그렇게 들었는데, 어느날 제임스 박사님이 닥터 김을 데려왔어. 자세한 건 우리도 몰라.”
“그래요?”
뭔가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태수는 살짝 호기심을 보였지만 이내 접었다.
자세한 뒷얘기는 후에 브레드 김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여기 온 목적이 더 중요한 터라 인사는 이쯤에서 멈췄다.
“오즈마. 실은…….”
“환자들 보러 온 거 아니야?”
“맞습니다.”
태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건 닥터 오즈마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순서니까 유난떨 건 없고. 차트부터 보는 게 좋겠지?”
“제가 차트까지 볼 건 아니죠.”
“괜히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말고 따라 와. 수술 내용도 적혀 있으니까.”
“그러시다면 굳이 사양 안하겠습니다.”
태수는 곧장 닥터 오즈마를 따라 나섰다.
그 뒤를 이어 정민수와 브레드 김도 함께 움직였다.
얼마 후.
태수와 정민수는 각각 차트를 들고 있었다.
슥슥.
눈으로 내용을 빠르게 살피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첫 번째 환자의 집도의가 닥터 오즈마였다.
태수를 다그쳐 이끈 이유가 이거였던 모양이다.
지금도 닥터 오즈마는 앞에 서서 콧대를 진하게 높이고 있었다.
“이번 수술은 참 까다로웠어. 내가 아니었다면 상당히 고생했을 거야.”
“수술 내용에도 오즈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그렇지. 거기다가 어시스던트가 아직 담금질이 덜 돼서 더 힘들었다고.”
어시스던트는 브레드 김이었다.
옆에 있는데도 대놓고 험담했다.
그러나 악의적인 비난이 아니라 친근함이 담긴 면박 정도였다.
브레드 김도 슬쩍 머리를 긁적거리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는 파둠시에서 중견 의사로 대우 받았지만 제임스의 수술팀에서는 그저 서툰 막내 팀원에 불과했다.
그 만큼 제임스 수술팀원들 개개인의 수준이 높았다.
가까이서 경험한 태수였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이어서 차트를 마지막까지 훑어본 태수는 약간 놀랐다.
“수술 끝나고 몇 시간 안 됐는데, 벌써 아침에 ventilator(인공호흡기)를 뗐네요.”
“찢어진 폐 안쪽에 출혈이 좀 있지만 호흡하고 대화에 지장 줄 정도는 아니야.”
“spontaneous respiration(자가호흡)이 훨씬 좋죠.”
“그렇지. 그리고……. 슬슬 깨어날 시간이네. 아니면 깨어났거나.”
닥터 오즈마가 벽걸이 시계의 시간으로 가늠하며 말했다.
대부분 써전들은 손목시계를 잘 착용하지 않았다.
언제 수술에 들어갈지 모른 탓이다.
그 부분은 태수와 조금 달랐다.
태수는 정규수술 외엔 손목시계를 항상 착용하고 다녔다. 응급이 터졌을 때 시간을 체크하는 게 무척 중요해서였다.
스윽.
태수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차트와 비교한 후 물었다.
“깨어나는 간격이 좀 짧은 거 아닙니까?”
“그 환자는 그 정도가 적당해.”
“음. 이런 바이탈 수치면…….”
태수는 바로 차트 속 바이탈 수치와 처치내용을 머릿속에 담았다.
참고할 내용이라면 절대 빼놓지 않았다.
그런 태수의 모습에 닥터 오즈마는 방해하지 않고 기다렸다.
곧 태수는 1번째 환자에게로 향했다.
차트에 기입된 이름을 당연히 머릿속에 입력해 뒀다.
“로이스 루베르트라.”
자그맣게 곱씹으며 병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내 태수는 로이스의 병상 앞에 도착했다.
먼저 시선을 둔 건 ECG였다.
삐빅, 삐빅.
차트에 기입된 바이탈 수치와 당연히 똑같았다. ECG로 시선이 향하는 건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습관이었다.
바이탈을 확인한 태수는 로이스를 바라봤다.
‘음.’
확실히 잘생기긴 했다.
겨울시즌 화보촬영차 산에 올랐다고 해도 믿음이 갈 정도였다.
갖은 상처로 인해 여기저기 테이핑 되어있는데도 눈에 띠는 외모였다.
나이는 설산에서 가늠한대로 태수와 비슷했다.
그런가보다 했다.
그렇게 로이스를 잠시 지켜보던 중이었다.
파르르.
“흐음.”
로이스의 눈꺼풀이 흔들리고 미약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어서 서서히 눈을 뜨며 잠에서 깨어났다.
눈빛이 몽롱하고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장시간 수술 후 3번째로 깨어나는 거라 힘들어하는 게 정상이었다.
이럴 땐 자극을 주기보다 지켜보며 기다리는 게 옳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로이스의 몽롱한 눈에 초점이 잡히고 눈빛도 선명해졌다.
“끄으응.”
앓는 소리를 낸 로이스는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무심결에 눈길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다 멈칫한 로이스는 이번엔 정확하게 태수를 바라봤다.
그제야 기다리던 태수가 인사했다.
“깨어나셨습니까. 저는 닥터 최태수라고 합니다.”
“…….”
“낯선 동양 의사가 보이셔서 놀라셨을 겁니다.”
태수는 일부러 짧게 끊어서 말했다.
방금 깨어난 환자를 위한 배려였다.
그런데 로이스의 반응이 이상했다.
귀를 쫑긋쫑긋 거리더니 점점 눈을 크게 떴다.
“당신, 당신 설마…….”
“목소리도 멋지시네요. 그런데 혹시 저를 기억하십니까?”
태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동시에 로이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고문관?”
“네. 제가 고문을……. 네?”
엉겁결에 대답하던 태수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그 순간 로이스가 아차한 얼굴로 정정해서 다시 질문했다.
“아니아니,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그보다 그 설산에서 저를 구하러……. 오셨던 분 맞습니까?”
“정말 기억하십니까?”
“진짜 그 분이 맞습니까?”
서로 놀란 얼굴로 질문만 오갔다.
꼬이는 대화에 태수가 먼저 대답으로 방향을 바꿨다.
“제가 설산에 응급출동 갔었습니다.”
“얘기 들었습니다. 너무너무 고생하셨다고요.”
“고생은요.”
태수가 계면쩍게 답하자 로이스가 바로 이어서 인사말을 건넸다.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몸이 이래서 아니, 알고 계시겠지만요. 끄응.”
용을 쓰려는 모습에 태수가 얼른 만류했다.
“가만히. 가만히 계세요. 아직 이름니다.”
“그래도 일어나서 정식으로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요.”
“인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누워서 대화하는 부분은 죄송합니다.”
끔뻑.
로이스는 눈을 감고 고개를 아래로 깊게 내리며 인사를 대신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운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런 그로써는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의를 보이는 거였다.
태수는 진심이 가득한 인사에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다.
‘자식. 마음 약해지게.’
사실 모진 말도 하고 욕도 쏟아낼 마음으로 찾아왔다.
로이스의 인사를 보니 그럴 마음들이 싹 사라졌다.
잘생긴데다가 인품까지 좋았다.
이래서 세상은 불공평 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태수가 속으로 진한 감동의 여운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스윽.
다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마주한 로이스가 이어서 말했다.
“너무 추워서 꽁꽁 얼어버릴 거 같았습니다.”
“음.”
“얼마나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랬을 겁니다.”
태수가 이해하자 로이스도 이어서 말했다.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데, 그래도 살겠다고 버텼지만 눈이 감기더군요.”
“저런.”
“그때 닥터 최가 절 찾아오셨습니다.”
“다행이네요.”
태수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크으. 이 맛이지.’
환자가 자신을 알아주자 태수는 더욱 가슴이 진동했다.
로이스도 그때 기억을 더욱 또렷하게 상기시키며 말했다.
“네. 그렇게 오셔서 입에 물을 막 쏟아 부으셨죠.”
“그…….”
“숨이 막힐 거 같긴 했지만, 그래서 정신을 더 차릴 수 있었습니다.”
로이스는 분명 사실을 말했다.
하지만 듣는 태수의 입장에선 뭔가 애매했다.
“그러셨군요.”
“얼마나 가차 없이 들이붓던 지요.”
“그때…….”
“그렇게 했었어야 했을 겁니다. 그래도 해갈은 좀 되더군요.”
“다행이네요.”
태수는 뭔가 찝찝했다.
그러나 로이스의 말투가 너무 공손해서 딴죽을 걸 수가 없었다.
그런 사이에도 로이스의 회상은 계속 됐다.
“그리고 또 결정적이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어떤…….”
“갑자기 옆구리가 아주 화끈거리지 뭡니까.”
“그, 어…….”
“그때 알았습니다. 이게 칼침이다. 라고 말입니다.”
“칼, 칼침이라니요.”
“정말 아프더군요. 그리고 분명히 정신 놓지 말란 신호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로이스는 그 당시 일들을 자기 관점으로 생생하게 전했다.
그런데 그 표현이 조금 애매했다.
‘이건 씹는 것도 아니고, 칭찬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듣냐에 따라 상당히 기분이 달라질 뉘앙스였다.
문제는 로이스 얼굴에 가득한 진심이었다.
어떻게 봐도 가득 담긴 고마움이 사람을 환장하게 했다.
그 만큼 듣는 태수의 입장에선 뭐라고 말하기 껄끄러웠다.
“음. 그렇게 느끼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때 제가 정말 건방지게도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어떤 생각입니까?”
태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로이스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설마 그냥 마취도 안하고 그냥 찔렀을까.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죠.”
“그, 그건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다음에 감각이 사라지는 거 같더라고요. 그후로는 기억이 없는 거 같습니다.”
로이스는 미간까지 가득 좁히며 말했다.
이 순간에도 생각을 거듭 되뇌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태수의 눈에는 좀 다르게 보였다.
‘다 씨불여 놓고 뭐, 기억?’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말투도 뭔가 특이했다.
예의를 분명하고 정중하게 갖추고 있다.
막상 꺼낸 말은 직설적이다 못해 적나라했다.
게다가 말주변까지 좋았다.
진짜 뭔가 희한한 부류였다.
그런 생각을 하던 태수는 순간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
꾹.
‘흠.’
아찔한 느낌 만큼 정신이 확 들었다.
아차 하다가는 말도 못 꺼내고 휘둘릴 판이다.
한 대 쥐어박긴 이미 틀렸다.
그렇다고 환자가 기억하는 자신의 실수까지 미화시킬 건 아니었다.
사실은 사실이다.
태수는 그 점을 분명히 상기시키며 사과했다.
“사과를 드려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사과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아니요. 기억하시는 게 맞습니다.”
태수가 운을 떼자 로이스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맞다니요?”
“제가 급한 마음에 마취를 하지 않고 hemothorax(혈흉) 응급처치를 시작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태수는 꿋꿋하게 사과의 말을 건넨 후에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의외였다.
로이스는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거부했다.
“그 사과 받지 않겠습니다.”
“부족하시다면…….”
“어쨌든 그 상황항에서 절 살려주려고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거 아닙니까.”
“그건 맞습니다.”
태수가 대답하자 로이스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결과는 이렇게 제가 살아서 대화하고 있잖습니까.”
“네.”
“그럼 문제 될 게 없다고 봅니다. 이 일에 대해서 추후에도 문제 삼는 일은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태수는 다시 고개 숙였다.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이해해준 고마움의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