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60
00061 61화
지금은 참아야 했다.
허나 문승현을 향한 눈빛은 곱지 않았다.
이명석 치프가 중간에서 한마디 더 보탰다.
“다들 똑같으니까 괜히 걸고 넘어지지 말라고. 나도 그래서 전문의 따려고 개지랄하잖아. 그리고 최태수.”
“네.”
“수술실에서 만에 하나라도 눈 까뒤집고 난리치면 그땐 각오해. 병원생활을 지옥으로 만들어주지.”
“…….”
태수가 대답하지 않자 이명석 치프가 나지막이 보챘다.
“왜 대답이 없어?”
“주의하겠습니다.”
“어머니 수술이라 예민한 거 아는데 수술실에서는 짤 없다. 그럼 이따가 보자.”
이명석 치프도 이내 몸을 움직였다.
스스로 준비할 것도 있는 모양이다.
당직실에는 이내 태수와 정관영, 문승현만이 남았다.
태수와 문승현의 분위기가 너무도 좋지 않기에 당직실에는 싸늘함만이 감돌았다.
정관영이 중간에서 슬쩍 중재에 나섰다.
“승현아, 니가 잘못 했어. 그리고 태수 너도 그만 기분 풀고.”
“미안하다니까.”
문승현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태수는 뭐라 한 마디 할까 하다가 애써 참았다.
‘어머니 수술이야.’
어느 때보다 집중력을 요구하는 수술이다.
컨디션을 스스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넘어간다?
‘언젠가.’
태수는 속으로 이 일을 깊이 담았다.
드디어 태수가 수술실에 도착했다.
어머니가 수술할 곳이라 그런지 전보다 더욱 꼼꼼하게 둘러봤다.
그때 수술실 전담 간호사인 김수진이 다가와 물었다.
“혹시 빠진 거 있는 지 좀 봐주세요.”
“네?”
“어머니 수술이라면서요. 최 선생님 눈으로 직접 보셔야 더 안심이 되실 거 아닌가요?”
“감사합니다.”
태수가 인사하자 김수진 간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당연한 거죠. 그리고 잘 될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그럼요. 과장님이 직접 해주시는 건데요.”
“솔직히 수술할 인력이 과장님 밖에 없으니까요. 아, 그렇다고 실력이 없으신 건 아니에요. 할 때는 또 잘 하시니까요.”
김수진 간호사의 너무도 직설적인 말에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수술 기구 확인에 들어갔다.
췌장 절제술에 사용될 기구가 빠짐없이 놓였다.
김수진 간호사 혼자 준비한 건 아니지만 경험은 있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몇 가지를 더 준비했다. 김수진 간호사가 지켜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왜요?”
“혹시 필요할지도 몰라서요.”
“그거 가지고 안심이 되겠어요? 아예 다른 수술 기구들도 모두 가져올까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수술할 공간은 있어야죠.”
태수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치며 미소를 지었다. 허나 속으로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숨겼다.
수술준비가 끝난 태수는 어머니를 스크레쳐카에 모시고 다시 수술실로 들어왔다.
어머니 얼굴에 조금은 불안감이 떠올라 있었다. 아무리 아들이 옆에 있다고 하나 전신마취를 하는 큰 수술이다.
긴장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태수는 굳어진 어머니의 눈빛만으로도 그 불안함을 느꼈다.
꼬옥.
손을 굳게 잡아준 태수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한 숨 주무시고 나면 아주 깔끔하게 다 끝나 있을 거예요.”
“그럼. 우리 아들이 옆에 있는데.”
“그럼요. 제가 이 자리에 서서 어머니 손 꼭 잡고 있을게요.”
“고맙다.”
톡톡.
가볍게 손등을 두드려주는 어머니 얼굴이 조금씩 부드럽게 풀려갔다.
드디어 수술실.
마취과 의사의 손에서 전신마취제가 주입되고 얼마 안지나 어머니는 깊은 마취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제야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집도의인 하석준 과장의 입에서 첫 번째 수술 기구 명칭이 흘러나왔다.
“메스.”
“보비, 리트렉터.”
하석준 과장의 손길에 맞춰 이명석 치프의 보조도 이어졌다.
태수는 처음 약속한 대로 수술실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물론 어머니의 손을 잡아줄 순 없었다.
환자가 심적으로 안정을 느낄 순 있지만 수술하다 돌발변수가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 태수는 하석준 과장 옆에 섰다.
인턴 때처럼 수술기구를 건네주는 역할이었다.
물론 태수는 그때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어머니 수술에 도움이 될 것만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러면서도 태수는 하석준 과장의 손길을 주시했다.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손 움직임도 좋고, 혈관을 잡거나 일부 조직을 절개하는데도 거침이 없었다. 개원을 희망하는 만큼 스스로의 실력을 많이 갈고 닦은 모양이다.
반대편에 있는 이명석 치프 실력도 괜찮았다.
실력을 보일 곳이 별로 없을 뿐이었지, 전문의를 향한 노력은 계속 이어간 모양이다.
내심 안도한 태수는 다시 수술이 진행되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머니의 배를 열고 하는 수술이다.
흥건하게 배어 나오는 피.
살타는 냄새.
겸자에 잡혀서 나오는 일부 조직들.
하지만 태수의 얼굴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왜?’
스스로 궁금할 정도였다.
허나 태수는 곧 자신의 정신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태수는 지금 어머니를 순수하게 환자로 봤다.
그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이유기도 했다.
오죽하면 하석준 과장이 물었다.
“기분 괜찮아?”
“수술만 보고 있습니다. 다른 생각하면 머리가 터질 거 같아서요.”
“그래. 그게 정답이야. 실제로 내가 전에 다른 병원에 있을 때 말이야. 비슷한 경우가 있었어. 레지던트 아버지 수술이었는데,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태수가 묻자 하석준 과장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토하고 정신도 불안정했고, 오죽하면 마취과 의사가 valium(바리움, 신경안정제 일종)까지 가져오라고 해서 먹였어.”
“저런.”
“안쓰럽다고? 거의 대부분이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가족이니까 평소와는 다른 모양이야.”
하석준 과장의 말에 태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냉정한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때 태수의 눈에 하석준 과장의 왼손이 조금 거치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환부가 생각보다 작았다.
최대한 흉터를 적게 남기기 위해 신경써준 모양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자 제한된 시야에 간까지 췌장이 드러나는 걸 방해하는 중이다.
섣부르게 먼저 나설 순 없는 일이다.
태수도 알지만 원활한 수술이 우선이었다.
“디버(견인하는 기구.)”
태수의 말에 수술 기구를 건네주던 김수진 간호사가 멈칫했다.
집도의의 입에서 떨어진 말이 아닌 탓이다. 그러나 김수진 간호사는 조금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디버를 건넸다.
태수는 디버로 간을 조금 옆으로 옮겼다.
한 손은 쓸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다른 손으로 집도의에게 수술도구를 건네주는 건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때 하석준 과장이 태수를 힐끔거리더니 다시 수술을 이어가며 물었다.
“환부를 더 벌린 이유는?”
“간이 과장님 왼손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눈치 좋은데?”
하석준 과장의 칭찬에 태수는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CT를 보면서 많이 연구했습니다. 최대한 과장님이 불편하지 않게 수술하셔야 저희 어머니가 쾌차하시니까요.”
“그건 그렇지.”
하석준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수술을 이어갔다.
그러나 태수가 간을 옮긴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십이지장을 좀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위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이기에 육안으로 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위나 간을 수술할 때면 모를까, 그 외에는 일부러 들어나게 할 이유가 없는 탓도 있다.
태수는 그걸 알기에 일부러 예상된 환부를 드러나게 했다.
동시에 태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역시 십이지장 겉면이 조금 울퉁불퉁했다. 아니, 미세할 정도라서 그런지 태수 외에는 십이지장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태수는 실망하지 않았다.
우선 췌장 절제를 마무리하는 게 먼저였다.
그 다음 문제는 차분히 해결해도 가도 늦지 않았다.
수술은 예상외로 길어졌다.
CT나 MRI로 확인했던 것보다 어머니의 췌장 상태가 좋지 않았다.
수혈팩이 벌써 다섯 개 들어갔다. 마취과 의사도 변화하는 바이탈 사인을 유지하는 데 점점 지쳐갔다.
물론 수술을 집도하는 하석준 과장과 이명석 치프도 마찬가지였다.
수술 시작한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주변을 문제없게 정리하고 이제 췌장의 절제만이 남았다.
본격적인 수술은 이제부터다.
췌장을 절제한 후 필요한 혈관들을 다시 연결하고 혈액이 원활하게 도는 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때 하석준 과장이 태수에게 양해를 구했다.
“다들 지친 거 같은데 잠깐 쉬었다가 가도 되나?”
“그건 과장님이 말씀하셔야죠.”
“무서운 보호자가 바로 옆에 있어서 꼼짝도 못하겠는데?”
하석준 과장이 피식거리며 의향을 다시 물었다.
수술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에게는 부담이 많이 갔다.
그건 태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사람이다. 생명이 초를 다투는 순간이 아니라면 잠깐씩 쉬어야 능률이 오른다.
그게 오래 수술을 할 수도 있고, 집중력도 끌어올려주기 때문이다.
태수도 내심 기다렸던 순간이다.
그렇기에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셔야죠.”
“김 선생님, 20분 정도 쉬어도 문제없겠죠?”
하석준 과장이 묻자 마취과 의사가 크게 반색했다.
“저야 좋죠. 20분은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자, 그럼 잠깐 쉽시다.”
하석준 과장의 말이 떨어지자 수술실 모든 인원들이 크게 대답했다.
“네!”
그러나 바로 수술에서 손을 떼는 건 아니었다. 혹시 모를 이상을 대비해 다시 한 번 상태를 확인하는 걸 잊지 않았다.
쉴 때도 집도의 주변은 한산했다. 어시스던트는 물론 간호사들이 집도의 옆에 와 있을 리도 없었다.
덕분에 태수는 기회를 잡았다.
‘지금이야.’
태수가 조심스럽게 하석준 과장에게 말했다.
“제가 조금 전에 디버를 썼을 때 궁금한 게 하나 생겼습니다만.”
“뭔데?”
“저희 어머니 십이지장 쪽이 조금 이상한 거 같았습니다.”
태수의 말에 하석준 과장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무슨 이상?”
“겉면에 좁쌀 같은 무언가가 돋아나는 거 같은데, 혹시 종양이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종양이 그렇게 작게 생길 리가 있나. 어머니 일이라고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하석준 과장은 별 거 아니란 듯이 말했지만 태수는 기회를 잡았단 기분으로 휴대폰을 꺼내 내밀었다.
수술 전에 이미 소독을 해 놓았기에 손으로 잡아도 문제 없었다.
“실은 제가 만성 췌장염 수술에 대해서 조사하다가 발견한 겁니다만 흡사한 경우가 있어서요.”
“어디서 발견한 건데?”
“카프레네의 저서에서 발견한 겁니다.”
태수의 말에 하석준 과장이 조금 날카로운 눈매를 묘하게 바꿨다.
“카프레네, 그 양반이 뭐라고 써 놨는데?”
“여기 제가 휴대폰에 정리해 놓은 게 있습니다.”
“어디?”
하석준 과장은 태수가 내미는 휴대폰을 슬쩍 들여다봤다. 영어로 쓰인 원문이지만 읽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듯 했다.
하석준 과장이 눈으로 보다가 특정 부분을 자그맣게 읊었다.
“만성 췌장염의 괴사한 세포들이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라. 가장 가깝게 붙어 있는 위나 간, 십이지장의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
태수가 짐짓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아니겠죠?”
“카프레네라, 자기가 째보지 않은 건 쓰지도 않는 양반인데. 일단 찝찝하니까 확인부터 해보자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하석준 과장이 바로 수술부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태수가 의심된다는 십이지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하석준 과장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진짜 조금 이상한데?”
스윽.
수술기구가 위치한 곳에서 주사바늘을 하나 집어든 하석준 과장이 십이지장에 댔다.
살짝 포를 뜨듯이 세포조직을 떼어낸 하석준 과장이 어느새 다가온 간호사에게 건네며 말했다.
“지금 병리과로 보내서 생검하라고 하세요. 응급이라고 하고요.”
“네.”
주사바늘을 투명한 비닐봉투에 넣은 간호사가 빠르게 수술실을 나갔다.
하석준 과장은 묘한 얼굴로 태수를 바라봤다.
“일단 확실한 건 검사결과가 나온 후야.”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숙제부터 해결하자고.”
하석준 과장이 말하자 태수가 수술실에 있는 다른 의료진에게 크게 말했다.
“수술 재개하신 답니다.”
그제야 의료진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어시스던트 자리로 돌아온 이명석 치프가 묘한 눈빛으로 태수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