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12
00715 715화
성재경이 옆에서 빠르게 말했다.
“우리도 지금 계속 이거 때문에 애를 먹고 있어. 출혈이 너무 심해서 근원지를 찾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고.”
“일단 피부터 체외로 배출시키겠습니다.”
“지금 썩션이 없다는…….”
성재경이 갑갑하다는 듯이 말하려 할 때였다.
태수는 간호장교에게 손을 내밀며 오더를 내렸다.
“메스.”
“네?”
“…….”
“아, 네. 메스.”
간호장교는 화들짝 놀란 가슴을 억지로 누르고 메스를 건넸다. 간호장교뿐 아니라 성재경과 다른 의사들까지도 놀란 얼굴이었다.
도대체 이 상황에서 왜 메스가 필요하다는 걸까?
메스의 원래 사용 용도로 본다면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태수는 그런 주변 시선을 개의치 않고 한 손으로 메스를 들었다. 그리고 다른 빈손을 배 속으로 넣었다.
마치 핏속으로 손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태수는 심중한 얼굴로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메스로 환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푹.
“어어?”
“지금 뭐 하는……!”
모두 깜짝 놀란 순간이었다.
태수가 개의치 않고 메스를 빼자 갈라진 살 틈으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주르륵.
흘러내린 환자의 피는 수술대를 타고 흘러 바닥까지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흐름이 길어질수록 환자 복부에 차오른 피의 수위는 점점 내려갔다. 이건 마치 물이 꽉 찬 페트병의 옆구리에 상처를 낸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들 두 눈은 휘둥그레 크게 떠졌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성재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런 비상식적인…….”
“…….”
태수는 대꾸하지 않고 만들어 낸 출혈 부위를 보비로 지지며 피부 출혈을 막았다.
비상식적이다?
통상적으로 보면 그게 옳은 표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응급상황에서는 상식이 아니라 빠른 조치가 우선이다. 환자의 몸이 조금 더 상하더라도 생명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태수는 주변 반응에 일일이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다행히 태수의 과감한 행동으로 복부에 고인 피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메스로 찌른 부분을 더 벌리면 피를 더 많이 배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환부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너무 높은 일이었다.
약간 벌어진 틈으로 피가 충분히 배출되길 기다리는 편이 지금으론 최선이었다.
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고 태수는 이 짧은 시간을 허비할 생각이 없었다.
태수의 시선이 바로 이기준에게로 향했다.
이기준은 심장을 압박하는 유병태를 계속 다그치고 있었다.
“유 선생, 오른쪽하고 왼쪽에 좀 더 골고루 힘을 더하라고.”
“말이, 쉽…….”
“말하지 마. 집중력 흐트러뜨리지 말고 환자만 신경 써.”
“헉헉!”
유병태는 냉정한 이기준의 오더를 묵묵하게 받아들였다. 평소 욱하는 성격이라면 뭐라고 한마디 할 법도 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참고 있었다.
이를 악문 얼굴로 계속 CPR을 이어 갈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이기준이 연신 재촉했다.
“한 번만 뛰게 해.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되니까.”
“나도, 훅훅, 알아. 하지만…….”
“핑계는 대지 마. 환자 위에 멋대로 올라탔으면 결정이 날 때까지는 책임을 져야지.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올라간 거잖아.”
“나도…… 헉헉, 나도 비킬 생각 없어!”
유병태의 목소리가 강하게 울렸다.
왠지 모를 집착도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런 반면 이기준의 목소리는 너무도 냉정하게 느껴졌다.
태수와 함께 들어와서 응급이라는 걸 뻔히 보고 있는데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환자가 중요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이력에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느새 제세동기는 이기준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기준도 최소한의 준비는 마쳐 놓은 상태였다.
태수는 그런 이기준보다 유병태를 바라봤다.
교대를 하는 짧은 시간이라도 공백이 생기기 마련이기에 하던 의사가 계속 CPR을 이어 가는 게 좋았다.
그렇지만 평소와 조금 다른 다급함이 느껴졌다.
환자의 죽음을 보기 싫어서?
그런 이유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했다.
태수는 제세동기 충격기를 들고 선 이기준에게 바로 물었다.
“이 선생, 그쪽은 어때?”
“피가 너무 많이 빠져나가서 심장이 제대로 못 뛰는 거 같아.”
“그럼 지혈이 우선이라는 건데.”
“내 생각도 같아. 지금은 유 선생의 CPR이 최선이라고 생각될 정도니까.”
그 말을 들은 태수의 시선이 옆에 있는 성재경에게로 향했다.
“후욱, 후욱. 왜?”
시선을 마주한 성재경은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대답했다.
얼마나 이 상황을 견뎌 왔는지 이미 체력이 바닥이었다.
태수는 빠르게 반대편에 선 임진호도 확인했다.
그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체력은 곧 집중력이다.
태수가 초곡리에서 매일 선착장까지 달린 이유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이미 한 차례 수술을 마치고 온 태수 역시 정상적인 컨디션은 아니다. 하지만 전보다 훨씬 강해진 체력과 정신력은 이 정도는 능히 버틸 만했다.
반대로 다른 두 의사는 수술을 이어 갈 형편이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는 집도의를 맡은 태수가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다.
피는 점점 환자의 몸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바로 지혈을 위해 집중력을 쏟아 부어야 할 때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두 사람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거기까지 계산한 태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단 걸 직감했다.
이기준을 잡아끌듯이 데려온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태수의 시선이 다시 성재경에게로 향했다.
“성 선배, 임 선배는 뒤로 빠져 주십시오. 이 선생, 아래로 내려와.”
태수의 다급한 오더에 일순간 수술실에 정적이 흘렀다.
“…….”
“…….”
너무도 예상치 못한 오더였다.
그러나 유일하게 유병태만큼은 심장을 압박하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태수가 그런 유병태에게 안타까움을 담아 말했다.
“유 선생, 조금만 더 고생해.”
“나, 신경 쓰지 말고, 헉헉, 환자부터, 얼른!”
“이 선생, 빨리 내려오지 않고 뭐 해?”
“……그래. 어디까지 가나 보자.”
이기준은 외과 수술에 흉부외과 전문의인 자신을 호출하는 태수를 어이없단 얼굴로 바라보며 한 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그런 반면 수술대에서 밀려난 성재경과 임진호는 황당했다.
“최 선생…….”
“체력부터 회복하세요.”
태수는 그렇게 말을 잘라 버렸다.
그 속에 너무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고, 그걸 모르는 의사들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 필요한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를 명확히 구분했다.
기준점은 체력, 그 하나뿐이었다.
곧 성재경과 임진호가 수술대에서 물러났다.
두 의사 스스로 지금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했다.
아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떨어지는 땀으로 시야가 가려질 정도였고, 양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수술하겠다고 버티는 건 욕심이 아니라 우격다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순 없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빠르게 마주쳤다.
끄덕.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는지 바로 몸을 움직였다.
성재경은 태수에게, 임진호는 이기준에게.
각각 다가선 두 사람이 수술 가운을 펼쳤다.
성재경이 빠르게 말했다.
“팔만 끼워.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선배님.”
“다른 말은 됐고, 살려 주라, 제발.”
성재경의 눈빛이 복잡했다.
그건 임진호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에게 내세울 자존심은 없었다.
엄연히 태수와 자신들은 남남이었다. 같은 의대 출신도 아니고, 같이 레지던트 생활을 한 적도 없었다.
그저 한 공간에서 일하며 같은 마음이란 이유로 태수가 꼬박꼬박 존대해 주고 챙겨 주며 선배라고 불러 줄 뿐이다.
그걸 모르지 않기에 힘이 빠질 대로 빠진 몸뚱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이었다.
태수와 이기준도 진하게 전해져 오는 그들의 진심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두 의사는 오른손부터 뒤로 내밀었다.
쑥.
가운이 입혀지자 바로 오른손은 환부로 가져왔고, 왼손을 내밀었다.
이내 왼손까지 수술 가운에 싸였다.
원래는 수술 가운을 입고 수술 장갑을 끼워야 한다.
그 순서가 반대인 상황이지만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뒤에서 성재경이 수술 가운의 끈을 조여 주는 사이, 태수는 환부로 시선을 돌렸다.
옆구리로 피가 대부분 빠져나간 상태였다.
조금 전엔 웅덩이였다면 지금은 가뭄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내부 장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태수는 들고 있던 믹스터와 인터네셔널 포셉으로 먼저 출혈 부위를 살폈다.
뒤따라 이기준도 태수의 흐름에 합세했다.
이기준의 손이 보이자 태수는 바로 오더를 내렸다.
“출혈 부위부터 확인해.”
“하고 있어. 그런데 정확하게 집어 줘야 빠르지.”
“후복막 쪽으로. 난 간 뒤쪽.”
“오케이.”
이기준은 간단하게 대답하고 바로 후복막 쪽으로 시선을 옮겨 갔다.
이기준은 엄연히 흉부외과 의사다.
인턴 마지막 시기부터 지금까지 흉부외과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러나 외과 수술의 기본적인 흐름은 알고 있었다.
“디버, 후크.”
면적이 다른 리트렉터를 양손에 쥐고 조심스럽게 위, 장, 췌장 등을 젖히며 후복막 쪽으로 접근해 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기준은 힐끔거리며 환자 흉부를 압박하는 유병태를 가차 없이 지적했다.
“유 선생, 좀 더 약하게 압박해! 애 갈비뼈 다 부러뜨릴 거야?”
“조금만 더, 빨리, 하면…….”
“침착해. 아직 죽은 거 아닌 거 알잖아. 무조건 누른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까. 그리고 조 선생님, hypertensor(승압제), cardiotonic(강심제) 얼마나 투여됐죠?”
이기준의 질문에 마취의가 얼른 대답했다.
“그러니까…….”
마취의가 순서대로 말하자 이기준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 갔다.
“기준치에 너무 오버되었습니다.”
“피는 없지, 심장은 멈췄지. 이런 상황에서 어쩌라고.”
“너무 압력을 높여도 심장에 무리가 간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휘발유 없는 차에 계속 시동 건다고 시동 걸리지 않습니다. 차만 상하죠.”
“그럼?”
“우선 hypotensor(혈압강하제), diuretics(이뇨제)부터 추가해 주세요. 투여된 약부터 중화시켜야 합니다.”
이기준은 냉정하게 상황을 진정시켰다.
아직 환자의 심장이 멈춰 있었고, 혈액이 계속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양손으로는 출혈 부위를 찾기까지 해야 한다.
그렇게 다급한 상황에서도 이기준은 허둥거리는 기색이 없었다.
이기준의 시선이 힐끔 태수에게로 향했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태수는?
‘저 자식은 도대체…….’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이기준이 속으로 투덜거릴 정도로 태수의 손놀림은 신속했다.
간호장교에게 간을 건 리트렉터를 넘긴 태수는 수술 도구들을 움직여 출혈점에 다가가는 중이었다.
일차적인 문제는 역시 예상한 대로 간 뒤쪽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젖히자 혈종이 드러났다. 피로 가득한 상황에서는 절대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출혈점 중 하나를 찾아낸 태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aneurysmal hematoma(동맥류혈종).”
간동맥에 생성된 혈종이다.
혈종은 혈관 밖으로 피가 흘러 조직과 뒤섞여서 만들어진 종괴를 뜻했다.
태수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방해되지 않게 서서 쉬고 있던 성재경이 깜짝 놀랐다.
“동맥류혈종?”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혈클램프.”
태수가 오더를 내리자 간호장교가 얼른 지혈클램프를 건넸다.
탁.
그걸 받아 든 태수는 혈종 옆에 있는 간동맥을 차단했다.
그러고 난 후 마취의에게 상황을 말했다.
“간 기능 차단했으니까 알부민 부탁합니다. 그리고 혈압은 어떻습니까?”
“잠깐만……. 조금 올라왔는데. 아니, 다시 떨어지고 있어!”
“다른 출혈점이라. 이 선생!”
태수가 부르자 이기준이 빠르게 말했다.
“지금 살펴보고 있는 중이야.”
“찾을 수 있어?”
“내 전문 아니라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기준의 손은 쉬지 않았다.
태수는 얼른 눈을 굴리며 성재경에게 물었다.
“선배님, 수혈팩 좀 부탁합니다.”
“알았…….”
대답이 막 나오려는 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