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지크가 머뭇거리자 시몬이 다시 크게 외쳤다.
“쏘란 말이다! 당장!”
석궁을 든 지크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자 시몬이 지크의 다리를 발로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지크가 쓰러졌다.
시몬은 바닥에 떨어진 석궁을 들고 지크를 향해 겨누었다.
“안 쏘면 네놈이 죽는다.”
지크는 천천히 일어나서 시몬에게서 석궁을 넘겨받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아이를 감싸고 있는 남자에게 석궁을 겨누었다.
그가 남자를 향해 석궁을 쐈다.
픽!
석궁이 남자가 아닌 그 옆의 땅바닥에 꽂혔다. 손이 떨려서 조준이 빗나간 것이었다.
지크는 다시 석궁을 장전했다.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다시 정확하게 남자의 머리를 겨누려 했다.
그때였다.
“사, 살려 주세요…….”
남자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바들바들 떨면서 지크를 향해 애처로운 목소리로 애원했다.
아이는 죄가 없었다.
소마의 생산 공장이 이 마을에 있었을 뿐이었다.
지크가 들고 있는 석궁에서 화살이 발사됐다.
퍽!
“크어억!”
아이를 감싸던 남자의 어깨에 화살이 깊숙이 박혔다.
그러자 아이가 남자를 감싸며 소리쳤다.
“쏘지 마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어느새 지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광경.
그는 점차 자신의 자아가 흔들리고 정신이 무너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시몬이 외쳤다.
“안 죽이면 네가 죽는다! 빨리 죽여라!”
지크는 손을 덜덜 떨면서 울고 있는 아이를 겨누었다.
악몽을 꿀 때면 항상 이 장면이 나왔었다.
그곳에서 지크는 살기 위해 모두를 죽이고 흔적을 감추기 위해 불로 마을도 태웠다.
돈 후앙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그의 개가 되어 수없이 많은 죄 없는 자들의 피를 손에 묻혔었다.
그가 어금니를 꽉 깨물자 입에서 피가 흘렀다.
덜덜 떠는 아이를 바라보며 지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꿀 수 있어.”
시몬이 뒤에서 다시 소리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어서 쏴라!”
순간 지크가 뒤를 돌아 소리치는 시몬을 향해 석궁을 겨누며 외쳤다.
“다시 바꿀 수 있어!”
지크가 시몬을 향해 석궁을 쐈다.
슈슈슈슉!
연사된 화살이 시몬의 몸에 박혀 들었다.
“크윽.”
시몬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지크가 석궁을 버리고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러고는 울고 있는 아이 쪽으로 다가갔다.
단검을 든 지크가 아이를 감싸며 말했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바꾸겠다.”
화살에 맞은 시몬이 비틀거리면서 부대원들에게 외쳤다.
“저놈을 죽여라!”
지크 주변을 부대원들이 감쌌다.
한 명, 한 명이 메케인 카르텔의 주요 전력들이었다.
지크는 단검을 들고 아이를 향해 말했다.
“내 곁에 붙어 있어.”
아이가 울면서 지크에게 안겼다.
“사, 살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
지크가 아이를 감싸며 말했다.
“걱정 마라. 너는 내가 지켜 주마.”
부대원들이 지크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이 지크를 향해 석궁을 들었다. 그러고는 사방에서 지크를 향해 석궁을 쏘기 시작했다.
슈슈슈슉!
지크는 순간 아이를 감싸며 등으로 화살을 막았다.
퍼버버벅!
그의 등에 화살이 꽂혔다.
“으윽!”
지크가 신음을 흘리며 아이를 더욱 꼭 안았다.
아이가 그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아, 안 돼. 안 돼요!”
지크가 아이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나, 나는 괜찮다.”
그가 아이를 안고 순간 빠르게 옆으로 굴렀다. 그러고는 부대원들을 피해서 숲 안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실제 상황이라면 절대 벗어날 수 없었겠지만, 전생에서와 다른 행동을 했기 때문인지 도망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후욱, 후욱!”
지크는 아이를 안은 채 숲을 지나 이곳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가 뛸수록 등 뒤에 박힌 화살들이 지크의 폐부를 찔렀다.
울컥!
입에서 붉은 피를 토해 내면서도 지크는 또 뛰고, 뛰었다.
한참을 뛰어 메케인의 부대원들이 보이지 않을 때쯤 지크가 아이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가라.”
아이가 지크의 팔에 매달리며 울었다.
“가, 같이 가요!”
“나는 이미 늦었다. 어서 가거라.”
지크는 피가 잔뜩 묻은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가 우는 얼굴로 지크를 바라봤다.
지크는 다시 한 번 피를 울컥 토해 냈다.
아이가 더 크게 울면서 지크의 품에 안겼다.
지크는 마지막으로 아이를 안아 주고자 천천히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푹!
지크는 배에서 끔찍한 통증을 느꼈다.
“커헉…….”
아이가 지크의 품에 있던 단검을 집어서 그의 배를 찌른 것이다.
지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어, 어째서…….”
서럽게 울던 아이가 그를 원망스럽게 노려보며 말했다.
“어째서 우리 아빠를 죽였어! 왜! 왜! 죽였어!”
아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지크의 귓가에 꽂혔다. 지크는 덜덜 떨면서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 나는 바꾸…… 바꿔 보려…….”
그러자 아이가 이번에는 지크의 심장에 천천히 단검을 박아 넣으며 말했다.
“너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순간 아이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크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축 늘어지며 초점이 사라졌다.
심장을 찌른 아이가 지크의 마지막을 확인하더니, 피 묻은 손을 털고서는 일어났다.
“끈질긴 놈. 정신력이 이렇게 강한 인간은 또 처음 보내.”
보통 인간들을 자신의 환상 속에 끌어들이면 그들은 현실 같은 환상에 빠져서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금세 잊고 말았다.
그런데 이 지크라는 놈은 어찌나 정신 방어가 강한지 아무리 환상을 강하게 보여줘도 자아를 잃기는커녕 더 강하게 저항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혹시라도 환상이 중간에 깨질까 봐 더 빠르게 트라우마를 증폭시킬 무대를 마련해야 했다.
아이의 모습을 한 마족이 쓰러진 지크를 보며 씨익 웃었다.
“아무튼 잘됐군. 이렇게 강한 놈이라면 육체를 차지해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어. 현상계에 내 본래 육신으로 나올 수 있다라. 사도 녀석들이 아주 재밌는 걸 발견했…….”
푹!
“커헉!”
그 순간, 아넥시의 단검이 아이의 등에 박혔다.
동시에 단검과 연결된 사슬이 아이의 온몸을 휘감았다.
차라라락!
사슬이 닿은 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치이이익!
“크아아악!”
영혼 봉쇄술에 붙잡힌 마족은 아이가 아닌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외모였으나, 오히려 그래서 중성적인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미형의 마족이 정체를 드러냈다.
“크아아악!”
마족이 고통 속에서 간신히 고개를 들고 앞을 봤다.
분명 정신이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한 지크가 심장에 단검이 박힌 채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마족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지크를 보며 말했다.
“어, 어떻게?”
지크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심장에 박힌 단검을 뽑아냈다.
곧 그가 들고 있던 싸구려 단검이 바하무트로 바뀌었다.
그가 사슬에 묶인 마족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잘도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놨군. 상급 몽마(夢魔), 판.”
지크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판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내 이름을……!”
천천히 판에게 다가간 지크가 말했다.
“그건 네가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지크가 성화기로 달군 바하무트의 검 끝을 판의 배에 찔러 넣었다.
치이이익!
“크아아아아악!”
끔찍한 고통에 판이 비명을 질렀다. 그가 그 와중에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크를 봤다.
“여, 여긴 내가 만든 환상이다. 고, 고통이 느껴질 리가 없는데…….”
“내 꿈을 바탕으로 만들었더군.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내 영역인 셈이지.”
지크의 말에 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몽마들은 추락한 성좌 중 하나인 ‘끝없는 꿈을 꾸는 자’를 추종한다.
그 수많은 몽마들 중에서도 판은 성좌의 직속 권속으로서 상급 마족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상급 마족이라도 판의 환상에 걸리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아를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한낱 인간이 판의 미로와 같은 환영을 깨고 오히려 그를 정신 속에서 제압한 것이었다.
지크가 성화의 불꽃을 판의 몸에 서서히 주입하며 물었다.
“놈들이 뭘 발견했기에 너 같은 상급 마족이 현상계에 현신할 수 있었던 것이냐.”
판은 지크를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걸 알려 줄 것 같으냐! 하찮은 인간 놈 주제…….”
지크가 그런 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쉽게 말하면 재미없지. 네놈이 나한테 한 짓이 있는데 말이야.”
순간 판의 몸 주위에 성화가 피어올랐다.
빛의 힘이 담긴 성화가 세차게 타오르는 것을 보며 판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네, 네 녀석 뭘 할 셈이냐!”
지크가 바하무트를 내려놓고 아넥시의 단검을 꺼냈다.
그러고는 사슬로 판의 입을 휘감아 막아 버렸다.
“으으으읍!”
입이 막혀 버린 판이 몸을 뒤흔들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성화의 불꽃에 잘 단군 단검을 든 지크가 판을 바라봤다.
“죽을 위험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천천히 심혈을 기울여서 고통을 주마.”
“으으으읍!”
* * *
제단 앞에서 지크가 멍하니 서 있은 지 몇 시간이 흘렀다.
리치몬드는 지크를 보며 초조한 듯 이리저리 오갔다.
“으으, 왜 아무런 반응도 없이 저러고 계시는 거지? 진짜 데리고 나가야 하나.”
지크의 명령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리치몬드였다.
그 순간 지크의 몸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허억?”
리치몬드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 빛을 피했다.
내내 반응이 없던 지크가 눈을 번쩍 떴다.
츠츠츠츠―
그러더니 곧 지크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지크의 손가락에 끼워진 솔로몬의 반지가 황금빛을 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지크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솔로몬의 반지에 상급 마족 몽마 ‘판’을 봉인했습니다.] [몽마 ‘판’의 고유 능력 ‘환상경’을 하루에 한 번 사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지크는 정신세계에서 판을 심문한 뒤 그를 솔로몬의 반지 안에 봉인했다.
솔로몬의 반지를 실험해 본 결과 상급 마족부터 봉인을 하는 것이 가능한 듯싶었다.
지크가 손가락에 끼워진 솔로몬의 반지를 살펴보니, 판지 표면에 작게 처음 보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건 판을 상징하는 인장이다.]아라타소가 지크에게 말했다.
‘상급 마족들은 모두 이런 인장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래, 상급 마족들은 대부분 성좌들의 화신이다. 직접적으로 성좌의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개별 인장을 부여받는다.]아라타소의 말에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빛을 피해 있던 리치몬드가 지크에게 달려왔다.
“주인님!”
리치몬드가 울상을 지으며 지크에게 매달렸다.
“어떻게 된 겁니까. 한참 동안 서 계시기만 해서 걱정했습니다요!”
“사도 놈이 상급 마족을 현상계에 현신시켰다.”
지크의 말에 리치몬드가 깜짝 놀랐다.
“사, 상급 마족의 현신이라니. 그, 그게 가능한 겁니까?”
리치몬드의 말에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락 놈들이 방법을 찾은 것 같다.”
판을 심문하며 꽤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런 세례 장소가 대륙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과 어떻게 상급 마족들을 현상계로 현신시킬 수 있었는지까지.
“리치몬드, 혈루석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나.”
그의 말에 리치몬드의 눈동자가 커졌다.
“혀, 혈루석 말입니까?”
“그래. 놈들은 그 혈루석을 이용해 상급 마족을 현신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지크의 말에 리치몬드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가 스스로 되물으며 중얼거렸다.
“혈루석에 그런 기능이 있었던가?”
그런 리치몬드를 보며 뭔가 낌새를 눈치챈 지크가 물었다.
“혈루석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리치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고는 있습니다만…… 혈루석이라는 게 아주 특정한 조건에서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데 구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리치몬드가 천천히 설명을 이었다.
“요정석에 원한을 깊게 품고 죽은 이들의 피가 스며들어서 오랜 시간이 흐르면 피처럼 붉은색으로 바뀌게 되는데 그걸 혈루석이라고 부릅니다.”
“요정석에 원한이 깃든 것이라.”
“예,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는 혈루석은 주로 상처 입은 마물들이 요정석이 있는 곳에서 죽었다가 그 피가 스며들어서 변화 되는 건데 만들어질 확률 자체가 너무 적습니다.”
“그 정도라면 소환에 쓸 정도의 양은 되지 않을 텐데…….”
그러자 리치몬드가 눈동자를 굴리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 그게 주인님. 사실…… 혈루석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혈루석을 만들 수 있다고? 흑마법사들은 모두 가능한 방법이냐?”
그러자 리치몬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그럴 리가요! 워낙 만드는 방법이 까다로워서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그 제조 방법 자체가 세상에 공개되질 않았습니다.”
그 말에 지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그 방법을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리치몬드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그 제조법을 제가 만들었습니다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