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61
561화
‘답신을 보낸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헬렌은 곧 알리시아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대공께서 연합군의 의지를 전달해 주십시오.”
헬렌의 허락이 떨어지자 알리시아가 씨익 웃더니 손에 들고 있던 철가시를 휙휙 돌렸다.
그러고는 이내 철가시를 단단히 쥐고 던질 준비를 했다.
쿠구구구구구―
그녀에게서 대력사의 힘이 한껏 피어올랐다.
콰드드드득!
그 엄청난 힘에 철가시의 표면이 우그러지며 손자국이 남을 정도였다.
알리시아는 도움닫기도 없이 그 자리에 꼿꼿이 선 채 그대로 블라드 백작이 있는 곳으로 철가시를 집어 던졌다.
부아아아아아아앙!
철가시가 대기를 가르며 아까 블라드 백작이 던졌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를 일으켰다.
그렇게 알리시아가 던진 철가시는 블라드 백작을 꿰뚫을 기세로 날아갔다.
블라드 백작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철가시를 보며 미동도 없이 말 위에 가만히 서 있었다.
오히려 옆에 있던 드라큘 기사단의 인원들이 방패를 꺼내 들고 방비를 하려 분주히 움직일 때, 알리시아가 던진 철가시는 엄청난 속도로 가까이 쇄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블라드 백작이 있던 곳에서 조금 비껴 나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알리시아가 던진 철가시는 그대로 뒤에 있던 성벽에 박혔는데, 실린 힘이 얼마나 힘이 강했는지 그 주변의 벽들이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쿠르르르릉!
단단한 성벽 한쪽 면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을 보고 냉혈의 기사단이라 불리는 드라큘 기사단마저도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정작 이를 본 알리시아는 아깝다는 듯이 혀를 차며 손을 털었다.
“아씨, 검왕 노친네한테 또 혼나겠네. 힘 조절 못 했다고.”
단번에 적왕의 머리통을 날려 버릴 작정으로 던졌는데 아쉽게 빗나가 애꿎은 성벽만 무너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헬렌은 알리시아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대공께서 아주 멋진 답신을 보내 주셨습니다.”
블라드 백작이 보낸 도발을 알리시아가 역으로 받아쳐서 오히려 사기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된 셈이었다.
게다가 여전히 중앙대륙 가문 중에는 북부 기사단을 무시하는 기색이 있었는데 알리시아의 활약으로 그들의 시선 역시 단숨에 뒤바꿀 수 있었다.
‘오늘 일이 오히려 연합군의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겠어.’
말 위에 가만히 서 있던 블라드 백작은 헬렌과 알리시아가 있는 곳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서 다시 성안으로 들어갔다.
드라큘 기사단들 역시 백작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가니, 성의 앞쪽에는 흉물스럽게 박혀 있는 철가시들만 남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쥬피터 성벽에 허물어진 흔적 역시 남았다는 것이었다.
만약 알리시아의 활약이 없었다면 빽빽하게 박혀 있는 쇠기시들을 볼 때마다 연합군의 사기가 떨어졌을 터였다.
헬렌이 옆에 있는 듀크를 바라보며 결연한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듀크 경.”
듀크가 그녀를 쳐다보자 알리시아와 히모나스 기사단 쪽으로 시선을 돌린 헬렌이 말을 이었다.
“쥬피터 성을 공략할 계획이 떠올랐습니다.”
* * *
쾅!
카스트로 폴록이 탁상을 강하게 내리치며 앞에 놓여 있던 술잔을 바닥에 내던졌다.
“젠장! 블라드 백작은 도대체 가서 뭘 하고 온 것이냐!”
그 역시 블라드 백작이 연합군을 도발하기 위해 가시를 박아 넣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백작이 총사령관인 강철의 기사 헬렌 드레이커에게 가시를 내던진 것까지는 그 역시 만족스럽게 지켜봤다.
그의 도발에도 연합군 쪽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이고, 그런 상황에 빠지면 사기가 떨어지며 금세 와해가 될 것이 분명하기에 백작의 묘수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북부 대공이 느닷없이 반격을 가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카스트로 폴록이 이를 박박 갈았다.
“지금 당장 기수들을 내보내서 놈들을 쳐라! 냄새나는 북부인 놈들이 신성한 제국 안에서 설쳐 대는 꼴을 더는 지켜볼 수가 없다!”
평소에는 신사적인 모습을 보이는 카스트로 폴록이었지만 인간이 아닌 타 종족이 개입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그래서 안 그래도 그는 여러 종족들이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북부대륙을 혐오했는데, 그런 북부대륙의 지배자인 북부 대공이 눈에 띄는 활약을 하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것이었다.
옆에 있던 부관이 그런 카스트로 폴록을 보며 말했다.
“주군, 쥬피터 성은 공성에 유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곳입니다. 굳이 유리한 지점을 버리고 놈들을 공격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부관의 말은 이미 카스트로 폴록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애초에 쥬피터에 자리를 잡고 장기 전략을 세운 것도 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앞마당에 북부인들이 빨빨거리며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강제로 명령을 내리려는 그때 시종이 다가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드라큘 기사단의 부단장이 군단장님을 뵙고자 합니다.”
카스트로 폴록은 애써 화를 눌러 참으며 심호흡을 하고 원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들어오라 해라.”
허락과 함께 집무실 안으로 드라큘 기사단의 부단장이 들어왔다.
척!
절도 있는 태도로 부단장이 인사를 한 뒤 카스트로 폴록에게 말했다.
“주군의 명을 전하러 왔습니다.”
부단장의 말에 카스트로 폴록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쥬피터 성을 점거하고 군단을 이끌고 있는 것은 그였다.
하지만 적왕의 명성에 비하면 쌍아궁의 기사라는 카스트로 폴록의 이명은 매우 작은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부터가 적왕을 대할 때도 조심스러웠는데 부단장이 대놓고 그에게 명을 전달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나 지금 상황에서 적왕이 없다면 우리가 불리하다.’
본래 처세술에 능한 만큼 그는 애써 표정을 풀고 부단장에게 말했다.
“하하, 백작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소이까.”
부단장은 절도 있으나 무감정한 표정으로 적왕의 말을 전했다.
“곧 연합군에서 공격을 가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방비가 필요할 겁니다.”
부단장의 말에 카스트로 폴록이 다시 미간을 그러모으며 말했다.
“연합군이 먼저 성을 공격할 것이라는 말이오?”
쥬피터 성이 천혜의 요새임을 알면서 적왕까지 합류한 상황에 연합군이 먼저 공격을 할 리는 없다고 생각한 카스트로였다.
그러자 부단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군의 말씀으로는 연합군이 군단장을 도발하여 우리 쪽에서 먼저 성문을 열도록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역시 공격이니 그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부단장의 말에 카스트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리 적왕이라 하더라도 현재 군단의 지휘자는 카스트로 폴록 자신이었다.
상당히 모욕적인 언사를 전달함에도 본인이 직접 오지 않고 수하를 보냈다는 것 역시 무례한 일이었다.
카스트로 옆에 있던 부관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카스트로가 폭발하기 전에 먼저 앞으로 나섰다.
“적왕께서 북부 대공의 도발 때문에 기분이 많이 언짢으셨나 보오. 하지만 지나친 우려는 오히려 군단의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자제하시는 것이 좋겠소.”
부관의 말에 부단장은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카스트로 폴록은 속에서 들끓는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애써 입을 열었다.
“……백작께 무슨 뜻인지 이해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다 말씀드리시오.”
부단장은 카스트로의 대답을 듣고 역시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절도 있게 인사를 한 뒤 집무실을 나갔다.
부단장이 나간 뒤 얼굴이 완전히 굳어진 카스트로가 주먹을 꽉 쥐었다.
‘……빌어먹을.’
모욕적이기는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적왕의 명성에 기대어 연합군을 견제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크래반 공작이 등을 돌린 이후 그의 군단에 호응해 준 흑색 기사가 없어 불안했는데, 유일하게 적왕이 쥬피터로 합류를 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로서는 화를 꾹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다.
카스트로 폴록은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 애써 분노를 감내하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 결심은 이튿날이 되자마자 깨질 수밖에 없었다.
적왕의 도발이 있었던 이튿날부터 알리시아가 쥬피터 성을 향해 철구가 달린 꼬챙이를 집어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콰콰콰콰콰쾅!
뾰족한 가시가 꽂혔을 때도 성벽 한쪽 벽이 와르르 무너졌을 정도였으니, 묵직한 철구가 달린 꼬챙이가 날아오자 공성 무기나 다름없었다.
알리시아가 날린 철구들은 성 앞에 위협적으로 꽂혀 있던 철가시들을 날려 버리는 것과 동시에 성벽에 볼썽사납게 틀어박혔다.
이를 본 연합군들의 마음속에는 가시공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오히려 사기가 더 올라가고 있었다.
거기에 일부러 보라는 듯이 북부 기사들과 타 종족들이 어울리며 술판을 벌이고 마법으로 목소리를 키워 그들을 조롱해 댔다.
“푸하하하! 카스트로 폴록, 이 머저리 같은 놈아! 와서 내 술이나 한잔 받아라!”
안 그래도 종족 차별주의자인 카스트로 폴록은 가뜩이나 북부인들이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상태였는데, 대놓고 저러니 더욱 화가 치솟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카스트로 폴록은 어떻게든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다.
반응을 하지 않으면, 며칠 저러다 말지 싶었는데 그건 북부인들의 특성을 전혀 모르고 한 생각이었다.
북부인들의 조롱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 것이다.
“푸하하하! 카스트로 저 X신이 종족 차별주의자가 된 이유가 드워프 처녀에게 차여서 그랬다는 소문이 있던데!”
“크하하하! 드워프 처녀? 내가 듣기로는 오크 처녀한테 차였다던데 말이야!”
마법을 통해 한껏 커진 모욕적인 언행들이 쥬피터 성안 쪽까지 울려 퍼졌다.
일주일간 그와 같은 대치 상황을 이어 가던 카스트로 폴록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가 부관에게 소리쳤다.
“당장 놈들을 쓸어버리겠다!”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카스트로를 진정시키며 부관이 말했다.
“지금 연합군과 전면전을 치르는 것은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들은 서서히 명분을 잃고 와해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자 카스트로가 부관을 향해 노호성을 내질렀다.
“저놈들이 지금 하는 짓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냐! 이제는 아주 음유시인까지 데려와 나를 조롱하는 노래를 만들어 하루 종일 불러 대고 있다! 성안에서도 그 노랫가락이 들린단 말이야!”
카스트로 폴록은 고귀한 가문 출시인 만큼 명예를 중요하게 여겼고 자존심이 강했다.
그런 그가 야만인이라 여기는 북부인들과 타 종족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어 버리니 도저히 참지를 못하고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었다.
칠왕국 시절부터 전통을 이어 온 귀족 가문이 많은 롬 제국은 특히나 각 가문끼리 자존심을 내세우는 일이 무척이나 잦았다.
자신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느낀 카스트로는 당장이라도 성문을 열고 치고 나가 놈들을 죄다 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역시 바보는 아니었기에 자신이 직접 군단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를 알고 있었다.
카스트로가 흥분했던 것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인상을 팍 쓰다가 이내 한숨과 함께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작 쪽의 반응은 어떻더냐.”
부관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아무 반응이 없이 고요합니다.”
적왕이 먼저 카스트로에게 도발에 대응하지 말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볼 때 그는 이대로 성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고수할 셈인 듯했다.
카스트로는 부관의 말을 듣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서 다른 의심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설마 백작이 내 명성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치고 쥬피터를 차지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적들의 조롱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별의별 생각들이 떠올랐다.
카스트로 폴록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한참 후, 그가 부관을 향해 말했다.
“연합군 놈들 쪽으로 게이트를 열도록 흑마법사들에게 말해라.”
그의 말에 부관이 깜짝 놀랐다.
“게이트를 이곳에 열면 테르모 관문 쪽에 있는 병력이 고립될 수도 있습니다.”
카스트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몬스터로 놈들을 쓸어버린 뒤 이쪽에서 병력을 보내 롬으로 치고 올라가면 된다!”
그가 이를 꽉 물며 말을 이었다.
“몬스터로 뒤를 치면 놈들도 저렇게 여유 있게 있을 수는 없겠지. 쫓겨서 당황하는 사이에 용병단과 드라큘 기사단을 보내서 쓸어 버리면 연합군 따위는 금방 무너져 내릴 것이다.”
카스트로의 말에 부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정한 그의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어 보였다.
‘여기서 웅크리고 있는 것이 제일이기는 하지만 만약 연합군이 더 버티면서 롬 쪽의 재건이 끝나고 레오 황자를 중심으로 다른 가문들이 규합되면 오히려 우리가 반격당할 수도 있다.’
부관은 냉정하게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흑마법사들에게 명령하신 바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관이 나가자 카스트로 폴록은 창가로 가, 성 밖에서 여전히 요란스럽게 떠들고 있는 연합군 진영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더러운 이종족들아. 네놈들의 머리를 성벽에 걸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