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29
0228 메추리(2)
“이제 알들을 전부 하나씩 확인해서, 새끼가 없는 알들은 버려야 돼.”
“왜에?”
“이렇게 놔두면 썩을 수도 있거든. 아직까지 새끼가 생기지 않는 알들은 씨앗이 없는 알이라고도 할 수 있어. 우리가 먹는 메추리알이랑 똑같은 거지. 썩으면 어떻게 되겠어?”
“냄새나! 더러워져!”
여러 이유가 있긴 하지만, 소은이가 딱 이해하기 좋은 것을 예시로 들어주니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기가 스스로 나서서 알들을 하나씩 검란하기 시작했다.
휴대폰 플래시에 알들을 올려보고 새끼가 있으면 둥지에 놓고, 없으면 따로 빼놓는 식으로 검란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눈을 꾹 감고 조명으로 인해 시린 눈을 달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은이가 열심히 검란을 하고 나니, 남은 알들은 전부 열 개에 지나지 않았다.
“근데 유정란인데도 새끼가 없는 거 이써!”
유정란에서도 무정란같이 발달이 되지 못한 알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유정란이라고 파는 묶음에서 꺼냈기에, 그것을 구분하기 위해 빨간색으로 칠을 해둔 상태였다. 그런데도 알 내부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소은이가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무정란이랑 섞여서 그럴 수도 있어. 이렇게 부화시키기 전에는 유정란인지 무정란인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가 없거든. 그래서 유정란이라고 파는 사람들도 유정란이겠지~ 하고 유정란이랑 같이 두는 거야.”
실제로, 유정란이라고 파는 계란도 절반가량 무정란이 포함된 상태로 판매하고 있었다. 암컷과 수컷이 번식한 상태에서 산란한 알들을 수거해서 유정란으로 판매하긴 하는데,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아 무정란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적당히 소은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말해주니, 소은이가 놀란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거는 거짓말하는 건데!”
이유야 어찌 되었든 무정란을 유정란이라고 파는 건 거짓말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꼭 그런 건 아니야. 유정란이라는 게 새끼가 될 수 있는 씨앗이 포함된 알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건강한 알이라는 말로도 쓸 수 있거든.”
실제로, 유정란들은 대부분이 실제 번식을 통해 생기는 알이다 보니 일종의 동물복지 제품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좁디좁은 곳에서는 번식도 할 수 없다 보니, 넓은 사육장이나 방목 형태로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유정란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편이었다.
“으우웅.”
물론, 소은이는 여전히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크게 신경 쓰는 것은 아닌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소은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럼 이제 알들은 유부한테 다시 맡기고, 소은이가 유부를 잘 챙겨줘야 한다?”
“나만 미더!”
힘차게 대답한 소은이는 유부를 열심히 케어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방과 베란다를 오가며 먹이나 물 같은 것들을 공급해 주었고, 혹여라도 유부 녀석이 바람에 추울까 주변에 상자들을 쌓아 바람을 막아주기도 했다.
“남캣! 그러면 안대!”
심지어, 유부가 보이질 않고, 둥지에서 가만히 있는 것에 흥미를 보이던 남캣이 소은이에게 붙잡혀 혼나기도 했다.
유부를 툭툭 치면서 알 좀 보게 비켜보라고 하다가, 그대로 소은이에게 붙잡혔던 것이었다. 심지어, 양쪽 앞발이 소은이에게 제대로 붙잡혀서 어떻게 저항도 못하는 중이었다.
소은이에게 붙잡혀서 잔소리를 들으며, 연신 콧잔등만 핥는 것이 남캣 녀석이 할 수 있는 행동의 전부였다.
무력으로는 동물원에서 두 번째인데다, 양아치력으로 따지자면 동물원 최강인 냥아치 남캣도 소은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또 그러면 안대!”
“애우웅…….”
남캣 녀석은 이제 슬슬 풀어주려는 듯한 소은이의 모습에, 한껏 몸을 낮추며 앓는 소리를 냈다.
“나중에 노라주께.”
소은이는 자신의 잔소리가 잘 들어먹혔으리라 믿는지, 그대로 남캣을 놓아주었다.
남캣은 그런 소은이를 보며 잠시 동안 그루밍을 하다가, 곧장 도망치듯 베란다에서 떠나갔다. 베란다 난간을 밟고 담벼락 위로 안정적인 착지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에겐 일상 그 자체였기에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유부야 잘하구이써!”
소은이는 남캣에게 치이던 유부를 쓰다듬어주었다. 유부는 그런 손길을 즐기며 조심히 알을 품었다.
그리고, 아주 열성적으로 유부와 알들을 돌보는 노력이 가상했는지, 유부가 알을 품은지 약 2주가량의 시간이 흘렀을 때. 드디어 알에 변화가 생겨났다.
“이보시오! 알이 깨지고 있소!”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순간. 베란다에 자리를 잡고 있던 유부가 크게 소리쳤다. 유리창 너머에서 부우부우- 소리를 치는 유부의 모습에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소은이를 데리고 베란다로 향했다. 누나도 은근히 관심이 있던 건지, 은수를 안고서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추운 건 싫었기 때문인지 베란다 문을 스르륵- 닫고 유리창 너머로 구경하고 있었다.
“알, 부화하는 거야?”
“응. 그렇다네.”
나와 소은이는 유부의 둥지 앞에 사이좋게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자 유부가 몸을 슬그머니 일으키며 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알을 품던 유부가 몸을 일으키니 보인 알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기했다. 누구 하나 건드는 사람이 없음에도, 저들끼리 좌우로 까딱거리듯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압빠, 알이 움직여!”
“응. 이제 곧 태어날 것 같네. 알 안에서 열심히 알을 깨고 나오려고 노력하는 거야.”
“메추리! 홧팅!”
알이 흔들리며, 알에 금이 조금씩 가기 시작하자 소은이가 열심히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은이의 응원에 힘입은 듯, 알들이 하나둘씩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빠직 빠지직 소리가 약하게 울리며 알 껍질이 깨져나갔고, 드디어 새끼 메추리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열 마리의 메추리들이 모두 태어난 것이었다.
자그마하게 조각난 알 껍질들을 밟은, 거진 손가락만 한 것 같은 열 마리의 메추리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와아아!”
찌지짓 소리를 내며 열심히 울어대는 메추리들의 모습에, 소은이는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그것은 방 안에서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던 누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 역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직관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꽤나 신기함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먹을 것들을 사기 위해 찾았던 마트에서 구매한 메추리알을 부화시킨 것이었기에 그 신기함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하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유부 녀석이었다.
유부는 자신을 향해 찌잇찌잇 우는 새끼 메추리들의 모습을 보며 난감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하하하하핫!”
“웅? 압빠 왜 그래?”
“수환아?”
내가 웃음을 터트리는 것에 소은이가 크게 호기심을 드러냈다. 심지어 춥다고 베란다 문을 닫고 있던 누나 역시 문을 살짝 열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나는 찔끔 흐르려는 눈물을 닦아내며 웃은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얘들 지금 찌르르 우는 거 있잖아.”
“메추리 울음소리!”
“응. 지금 태어난 메추리들이, 유부를 보고 엄마라고 하고 있거든.”
내 말에 누나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소은이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빠가 아니라 엄마야? 유부 암컷이어써?”
“아니, 유부는 수컷이 맞아. 아주 듬직한 수컷이지.”
나는 난감해하는 유부를 가리키며, 메추리들이 유부를 보며 엄마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새들은 알을 막 까고 나왔을 때, 가장 처음 본 동물을 부모님이라고 여겨. 그리고, 암컷들이 알을 많이 품다 보니까 가장 먼저 본 동물을 엄마라고 생각하는 거지. 반대로, 수컷들이 알을 품는 새들은 아빠라고 먼저 할 거야. 이건 아빠도 처음 보는 거라서 확실하다고는 못 하겠네. ”
“메추리한테는 처음 보는 동물이 엄마인데, 유부가 품었으니까 유부가 엄마구나!”
“그렇지. 이걸 각인효과라고도 하고, 임프리팅이라고도 해.”
내 설명에, 그제야 이해가 됐는지 소은이도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와중에도 유부는 새끼 메추리들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중이었다.
“엄마! 엄마! 엄마!”
“차라리 아빠라고 불러다오…….”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빙글빙글 돌리던 유부였다.
하지만 새끼 메추리들이 찌잇찌잇 울며 엄마라고 해대는 것을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는지, 유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휴.”
엄마라 불리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유부 녀석은 새끼 메추리들의 털을 가볍게 골라주었다. 알 내부에 있던 모종의 액체에 젖어 있는 메추리들의 털을 말려주는 것이었다.
왠지 체념한 듯한 그 모습에 다시금 웃음을 터트린 나는, 유부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고생했어. 그래도 아직 새끼들이니까 며칠만 더 부탁할게.”
“알겠소이다. 이 작은 것들은 그냥 놔두면 죽을 게 뻔하니 나라도 돌볼 수밖에…….”
체념한 것도 있긴 하지만, 묘하게 부성애를 느끼는 듯한 유부의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나중에 녀석에게 최고급 한우라도 먹여주며 수고를 치하해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유부가 새끼들을 제 체온으로 따듯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있던 소은이가 박수를 짝! 쳤다. 마치 무언가 떠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얘들 이름 정해써!”
“이름? 뭐로 할 거야?”
“일추리, 이추리, 삼추리, 사추리, 오추리, 육추리, 칠추리, 팔추리, 구추리, 십추리! 태어난 순서대로!”
자기가 지은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건지, 소은이가 어깨를 활짝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고, 콧구멍까지 살짝 씰룩이는 걸 보니 그 이름에 정말 만족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수환아. 소은이 작명 실력은 확실히 너를 닮은 거 같네.”
“왜?”
“구스에 거위 합친 다음 숫자로 구거일 부터 구거팔. 기억 안 나?”
“…….”
나는 누나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