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38
0237 해양 방류(2)
움직여도 된다는 신호를 주니, 상괭이가 그제야 다시금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거진 바닥에 닿을 정도로 가라앉은 녀석이 재빨리 내게 다가왔다.
물론, 조금 전에 내 마법의 단어로 인해 벽에 박고 바닥에 가라앉았던 것을 기억하는 녀석은 금세 속도를 줄였다. 그 속도 때문에 내가 자기를 멈춰 세웠다는 것을 아는 듯한 눈치였다.
그 모습에 녀석의 부드러운 유선형의 몸을 가볍게 쓸었다.
‘착하네.’
입에서는 공기가 부그르륵 새어 나올 뿐이었지만, 칭찬의 의미를 담아 뱉으니 녀석이 무척 좋아했다.
“거기 좋아! 더 긁어 주라! 안 그래도 가려웠어!”
다만, 좋아하는 방향이 조금 다른 것 같긴 했다.
그렇지만 상어나 돌고래 같은 녀석들이 긴 팔이 있어, 자기들 등을 긁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잠자코 몸을 긁어주었다.
“오오옹! 좋아좋아!”
몸을 긁어주니 무척 좋다는 듯, 녀석이 몸을 흐느적거렸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마지막으로 녀석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났다는 신호가 전해졌기 때문인지, 상괭이 녀석이 갑자기 내게 들러붙었다.
“보답으로 놀아줄게!”
놀아준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름대로 보답을 하려 한다는 것임을 아는 나는 일단 녀석의 지느러미를 잡았다.
기다란 지느러미를 살짝 감싸듯 붙잡으니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진력을 얻게 해주는 꼬리지느러미를 파닥파닥 움직이며 앞으로 헤엄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연히, 가슴지느러미를 붙잡고 있는 나를 이끌고서 말이다.
“재밌지? 인간들은 이거 해주면 좋아했어!”
이미 아쿠아리움에서 상괭이를 돌봐주던 이들을 대상으로 해본 것인지, 녀석은 재미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야생이 아니라 수조였음에도 상괭이의 몸을 끌어안고, 녀석과 헤엄치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힘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헤엄치는 것은 꽤나 스릴 넘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나는 녀석과 헤엄치기 위해서 이곳에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열심히 헤엄치던 녀석을 탁탁 두드리며 멈춰 세웠다.
“재미없는 거야?”
삐르륵- 소리를 내며 상괭이가 무척 아쉬워하고 있었다. 녀석은 자기와 노는 것이 재미가 없어서 멈춰 세운 거라 생각하는지, 슬쩍 눈치까지 보고 있었다.
‘그런 거 아니야. 할 게 있어서 그런 거야.’
그렇지 않다는 의미를 담아 기포를 내뱉으니 녀석이 안심하고서 다시금 내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돌고래와 다르게 둥글둥글하고 묘하게 귀여운 상괭이의 머리가 내 배를 눌러댔다.
녀석을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내가 찾아온 이유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이제 곧 원래 있던 자연으로 돌려보내줄 거고,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잊었던 감각들을 일깨워줄 거라는 이야기를 해준 것이었다.
“정말?!”
이 심심하고 좁은 곳이 아니라, 원래 살던 끝 모를 바다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니 상괭이 녀석이 몸을 크게 퍼덕였다.
‘당연하지. 대신, 네가 원래 살던 곳으로 가서도 굶지 않고 먹을 것들을 찾아먹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보내줄 거야.’
“지금도 할 수 있어!”
‘그래? 그러면 어디 한 번 보여줘.’
보여달라고 요구한 나는, 물속을 유유히 떠다니고 있는 오징어를 가리켰다.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오징어였는데, 오징어는 다행스럽게도 대화가 통하는 동물이 아니었다. 내가 영화관에서 반건조 오징어 버터구이를 먹으며 식재료로 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화가 통하지도 않고 호감이 생기는 일도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오징어 한 마리를 가리키니, 상괭이 녀석이 잘 보라며 빠르게 헤엄쳤다.
나를 데리고 헤엄치던 것은 정말 장난 수준이었는지, 녀석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오징어를 향해 헤엄치고 있었다.
황소가 돌진하듯, 녀석이 오징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기에 들이 받히면 단순히 ‘아프다’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위력이 담겨 있었다.
“맛없어서 먹기 싫긴 해도, 이런 것쯤은 얼마든지 잡을 수 있어!”
오징어에게 가까이 접근한 녀석은 오징어를 한 입에 삼키겠다는 듯 그대로 주둥이를 벌렸다.
“끄엥?”
하지만 상괭이 녀석의 주둥이에 오징어가 담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약 올리기라도 하듯, 오징어가 먹물을 쫙- 뿜으며 유유히 도망쳤다. 당연히, 그 먹물은 상괭이 녀석의 주둥이와 얼굴을 새카맣게 만들었다.
원래 회색이던 녀석이 새카맣게 변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
“이이익! 가만 안 둘 거야!”
그 웃음이 전해진 건지, 상괭이는 다시금 오징어를 향해 돌진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사냥에 실패했다. 먹물주머니가 텅텅 비었기 때문인지 먹물을 추가로 쏘는 일은 없었지만, 딱 10cm 정도의 간격만을 남기고 유유히 도망치고 있었다.
“나 화나따!”
바다에 있을 때는 한 입에 잡아먹던 것들에게 농락 아닌 농락을 당하니, 상괭이가 분한 듯이 계속해서 오징어를 노렸다.
타압, 타압, 타압 소리가 날 정도로 열심히 주둥이를 벌렸다 닫기를 반복했지만 여전히 오징어는 약 올리듯 10cm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히잉…….”
십여 번 정도 움직였음에도 10cm의 간격을 좁히지 못한 상괭이가 시무룩하게 내게 돌아왔다.
“나 못 돌아가……?”
‘돌아갈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고마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하니, 상괭이 녀석이 내게 몸을 비벼댔다. 나름대로 큰 덩치를 자랑하는 상괭이가 물속에서 비벼대니 몸이 훅훅 밀려났다.
그런 녀석을 부드럽게 밀어내며, 녀석에 사냥하는 움직임을 조금씩 교정해 주기 시작했다.
먹이 급여 등의 이유로 토막 난 먹이들을 먹다 보니, 사냥이라기보다 직선으로 내달려 먹이를 먹는 것이 습관화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냥할 때 너무 정직하게 움직이면 안 돼. 네가 너무 직선으로만 움직이니까 오징어가 한 번 펄럭이는 것만으로 피하잖아.’
“그럼 어떻게 해?”
‘살짝 뒤를 잡는 듯한 모습으로 접근하다가, 먹이가 회피하려는 방향을 미리 파악해서 움직여야지. 오른쪽으로 피할 것 같으면 미리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움직이면 되잖아.’
“예전에 그렇게 했던 거 같아!”
부그르륵 하는 공기방울 소리밖에 나지 않았지만, 용케도 알아들은 상괭이 녀석이 이해했다는 듯이 몸을 까딱였다. 인간들이 하는 것을 보며 배운 행동 같았는데, 이 정도가 되었으니 오징어 한 마리도 제대로 사냥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잠깐의 가르침을 주고 나니, 상괭이 녀석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겨났다.
마냥 직선으로 움직이던 녀석이, 언제든지 좌우로 움직일 수 있도록 조절해 가며 움직이는 것이었다. 특히, 오징어가 회피하려고 할 때 예측한 듯 아주 잠깐이지만 미리 움직이기도 했다.
“아까워!”
물론, 잡지는 못했다. 예전의 기억이 조금 떠올랐다고는 하지만, 몸이 그 기억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효과가 있는지, 10cm라는 간격이 9cm 정도로 줄어들었다.
‘좋아! 할 수 있어! 지금! 지금 오른쪽으로 틀어!’
나는 상괭이의 사냥 방식을 몇 차례나 더 교정해 주었다. 내가 돌고래가 아닌 인간이다 보니 조금 부족한 설명이 있긴 했지만, 녀석은 용케 행동 교정에 잘 따라왔다.
지느러미의 움직임, 몸을 흔드는 정도, 움직이는 방향 같은 것들을 계속해서 교정해 나가니 9cm의 간격이 최종적으로 0.1cm 정도까지 줄어들었다.
터업- 소리가 나며, 오징어의 기다란 다리 끝이 아주 살짝 물렸다가 빠져나올 정도였다.
‘와, 진짜 아깝다.’
“꾸으으응!”
살짝 물었다가 빠져나간 것이 무척 아쉬웠는지, 상괭이 녀석이 파닥파닥 몸을 흔들어대며 짜증을 토로했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빨랐으면 오징어를 베어 물었을 건데, 그것을 놓치니 무척 아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쿠아리움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너무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상괭이 녀석도 무척이나 지친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첫날을 마무리하고 다음 날 다시금 상괭이를 찾아가는 내 옆에는 한 마리의 동물이 함께하고 있었다.
“안뇽! 나는 페엥이양!”
바로, 우리 동물원에서 귀여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페엥 녀석이었다. 이 녀석이 지상에서야 뒤뚱거리면서 다니지, 수중에서는 제법 빠른 속도를 내며 사냥하는 녀석이었다. 물론, 콘크리트 위에서도 빠르게 미끄러지도록 깃털이 진화하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돌고래를 데려올 수는 없어도, 똑같이 바다에서 움직이며 사냥하던 녀석이라면 상괭이가 사냥에 성공하도록 만들기 충분하다고 여겨졌기에 데려온 것이었다.
‘오늘은 얘가 하는 걸 잘 보고, 따라 해 보자. 페엥. 저기 오징어 한 마리만 잡아.’
“아라쪄!”
내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페엥이 쏘아져 나갔다. 마치 물속에서 어뢰가 발사되듯 어마어마한 속도로 가속한 녀석이 오징어를 향해 나아갔다.
오징어는 상괭이를 가볍게 피해내듯 페엥의 공격도 피해내려 했다. 하지만 페엥은 그런 오징어의 움직임을 예상한 듯이 움직였다.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하면서 도망치려던 오징어의 다리를 콱 물어뜯은 것이었다.
“오징어 자바쪄!”
오징어 다리 하나를 콱 뜯어낸 페엥이 다리를 물고 와 내게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그러고서 호로록 삼켜버렸지만 말이다.
‘페엥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하라는 건 아니야. 생긴 것부터가 다르니까. 하지만 페엥이 보여준 움직임 같은 것들을 참고해서 움직여봐.’
내 말에 상괭이 녀석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오징어를 향해 움직였다. 당연히 쌩쌩한 새 오징어였다.
그리고, 그런 상괭이의 근처에서 페엥이 아주 열성적으로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양! 거기서 이케이케! 나는 그러케 안해쪄!”
자기가 먼저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기도 하면서 상괭이에게 사냥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덕분에 상괭이의 움직임도 많이 변하게 되었다.
조금 펭귄 같아진 상괭이라, 자세히 보면 묘하게 이상한 구석을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껏 벌렸던 주둥이를 터업- 베어문 상괭이 녀석의 주둥이엔 오징어 한 마리가 먹물을 주르륵 내뿜고 있었다.
“와앙! 드디어 자바쪄!”
그 모습에 페엥이 기뻐했고, 나 역시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모습에 자기도 기쁜 것인지, 근처에 있던 다른 먹잇감들도 차례차례 하나씩 사냥해 보이기 시작했다.
정어리인지 뭔지 모를 자그마한 물고기, 펄럭펄럭 움직이는 새우 같은 것들을 사냥한 것이었다.
“나 이제 돌아갈 수 있어?”
‘그래.’
나는 기대감이 가득한 상괭이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야생의 환경에서 사냥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페엥 녀석이 ‘어디서 굶지는 않겠쪄!’하는 걸로 봐서는 야생에서도 통할 것 같았다.
그런 평가를 내리니, 빠르게 방류하고 손실을 최소화하고 싶었던 아쿠아리움에서 당장 해양 방류를 결정했다.
해양 방류가 결정된 상괭이는 이송 차량에 오르기 위해, 크레인에 연결된 해먹 같은 것에 몸을 올리고 있었다. 가슴지느러미 구멍이 뚫려, 해먹에 엎드려 팔을 빼내고 있는 사람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쀼엥.”
조금 불편했던 건지 몸을 꿈틀대는 녀석을 가볍게 쓰다듬어주니, 녀석의 움직임이 최소화되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안심시키며, 녀석을 아쿠아리움에서 바다로 풀어줄 선박까지 함께 이동해야 했다. 원래라면 힘겹고 스트레스를 가득 받았을 과정이었지만, 곁에서 페엥와 내가 함께 있어주었더니 무척 즐거워하고 있었다. 오히려, 돌아간다는 사실에 기대하며 기뻐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상괭이와 대화를 하며 이리저리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선박까지 올라오고, 방류할 지점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그물 같은 거에 걸리지 말고, 조심히 살아. 먹이가 많이 있다고 냅다 달려들어서 또 잡히지 말고.”
“잘가! 또 보면 좋겠쪄!”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되었기에, 나와 페엥이 상괭이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정작 헤어질 시기가 되니 상괭이가 무척 아쉬워하기 시작했다. 비록 함께 지낸 시간이 짧다고 하지만 무척 즐거웠기 때문인 것 같았다.
“같이 갈 수는 없어?”
“나는 바다에서 살 수 없으니까.”
같이 갈 수 없다는 내 말에 녀석이 무척 침울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상괭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바다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면, 나중에 데리러 올게. 그때 같이 살지 않을래? 바다처럼 넓은 곳은 아니더라도, 꽤 넓은 곳에서 지낼 수 있을 거야.”
내 물음에 상괭이가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아쿠아리움에서 지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좋아! 건강하게 지낼게!”
상괭이 녀석은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나는 녀석과 다시금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어차피 한 번 포획된 녀석들은 따로 위치를 알 수 있는 칩이 부착되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찾을 수 있으니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자, 크레인에 연결된 해먹에 붙잡혀 있는 상괭이가 천천히 들어 올려졌고, 녀석이 천천히 바다로 입수했다.
“안녕!”
바다에 들어가고, 해먹에서 빠져나온 녀석이 수면에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나는 그 이후로도 몇몇 해양생물들의 방류를 도와주었고, 해운대 아쿠아리움에서 다른 아쿠아리움으로 해양생물들이 이송되는 것 역시 도와주었다.